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71
한제의 계획
성황이 된 한제를 축하하러 다른 세 성종의 장로들까지 속속 도착하면서 주작성종은 한층 시끌벅적해졌다.
사성종은 본디 하나의 뿌리를 가진 만큼 다른 세 성종의 장로와 한제는 서로를 공손하게 대했다. 그리고 세 성종의 장로들은 이 새로운 주작성황에게 상당한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청룡성종의 세 장로는 더욱 한제를 공손하게 대했다.
3년 전 한제가 주작성황에게 청룡성황과 관련된 소식을 알려준 후로 그들은 한제에게 한층 호의적이 된 것이다.
새로운 성황의 등극에는 성대한 의식이 뒤따르는 것이 사성종의 전통이었다. 이는 한제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그 의식은 엿새째 되는 날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남은 며칠 동안 한제는 쉴 틈도 없을 정도로 바쁠 터였다. 주작성종에 관련한 모든 사람과 일들에 익숙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제는 그 어떤 것도 하려 들지 않았다. 그가 주작성황이 되기로 한 것은 그저 선대 성황과의 약속 때문이었을 뿐이다.
이후 3년간 선대 성황으로부터 따뜻한 보살핌과 은혜에 어떻게든 보답할 생각이나, 지금 자신이 한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지난 3년 동안도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한제는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예지력도 높아지고 있었다.
게다가 한두 번 스쳐간 느낌이었다면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불편한 느낌은 무려 열 번도 넘게 찾아왔고 갈수록 또렷해졌다. 더구나 그 불편함은 주작성, 정확히는 탁삼으로 인한 것이었다.
1천 년도 더 전, 고신의 땅을 떠나올 당시 그의 귀에 박힌 탁삼의 포효는 여태까지도 심신에서 울리고 있었다.
‘언젠가 너를 찾아 서사의 기억의 유산을 되찾을 것이다!’
“탁삼이 곧 나올 모양이군.”
한제는 주성의 화산 분화구 부근의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 아래 화산에서는 수시로 짙은 연기와 뜨거운 열기를 품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한제에게 있어 탁삼은 그림자에 숨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암살자 같은 존재였다.
지난 1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제는 단 한 번도 탁삼의 존재를 잊은 적도 그 위기감에서 벗어난 적도 없었다.
또한 본체가 5성급 고신이 된 후 열린 기억의 유산을 통해 탁삼의 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었는데 그 결과 한제는 심장이 바짝 졸아들었다.
그토록 강한 존재가 언젠가는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아올 것이 분명한데 마음 놓고 이곳에 머물 수는 없었다. 여기 있는 동안 탁삼이 찾아온다면 자신만이 아니라 사성종까지도 멸망할 것이 분명하니까.
허나 그동안 자신도 당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력해져 있었다. 탁삼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만약 선제 청림이 부활한다면 탁삼과 비교해 누가 더 강할까?”
한제는 산 아래 대지를 바라보았다. 주작성종 내의 수련성들은 모두 불타오르고 있었기에 온통 붉은색이었다.
“청룡성종의 성황을 구해내는 것으로 선대 성황의 은혜에 일부라도 보답해야겠군. 주작성종이 다시금 전성기를 맞게 하는 것은 탁삼을 이길 만한 실력을 쌓은 후에 할 일이다. 한데 만약 내가 탁삼의 손에 죽는다면⋯⋯?”
한제의 표정은 일순 씁쓸함으로 물들었으나, 이내 비릿하게 웃기 시작했다.
“탁삼이 그렇게 쉽게 빠져나오게 둘 수는 없지. 탐욕스런 수련자들이 8성급 고신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때, 하늘 저 멀리서부터 한 줄기 화염이 긴 빛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한제로부터 1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서 흩어진 그 빛에서는 적의(赤衣)를 입은 한 노인이 나타났다.
“성황 폐하, 시음종과 나천성역, 연맹성역의 출운국에서 보낸 사신이 도착했습니다. 주작 후전(後殿)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만나보시겠습니까?”
이 노인은 요령의 땅에 찾아왔던 여섯 노인 중 하나는 아니었다. 한제가 저 노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가 서 씨이며 쇄열기 중기 수준이라는 것 정도였다. 주작성종에서 명망이 상당하다고 했다.
지난 며칠 동안 연맹성역의 적지 않은 세력들이 사신을 파견해 축하를 해왔다. 그러나 나천성역과 시음종에서 사람을 보내온 것은 처음이었다.
연맹성역 세력들에 별 관심이 생기지 않아 접대를 장로들에게 맡겨두었던 한제는 잠시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다.”
서 장로는 한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외람되오나 즉위식을 거행하신 뒤에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저뿐만이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가진 궁금증입니다. 부디 성황 폐하께서 그 의혹을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청룡성황을 구할 것이다!”
짧게 답을 마친 한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서 장로 한제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상기하고는 놀란 표정으로 몸을 가늘게 떨었다.
“청룡성황!”
그 네 글자에 심신이 진동했다.
청룡성황에 관한 일은 선대 성황과 청룡성종의 세 장로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이 노인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처음으로 한제에 대해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막막함을 느꼈다.
★ ★ ★
모든 것이 붉은 옥으로 만들어져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건물 주변에는 붉은 나무가 가득했고 바닥에 깔린 길마저 붉었다. 심지어 건물에서는 작열하듯 뜨거운 기운이 흘러넘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건물 안에는 지금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요염한 여인은 남색 옷 너머로 가슴이 절반 정도는 드러나 있었고 두 눈에서는 야릇한 기운이 흘렀다.
그녀는 줄곧 멀지 않은 곳에 앉은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노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머리카락이 없었다. 만약 한제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이 노인과 대머리 사내를 한눈에 알아보았을 터였다.
적의(赤衣)의 노인은 가만히 있어도 위엄이 넘쳤다. 처음부터 두 눈을 감고 있었는데 주위 공간이 왜곡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그가 놀랄 만한 수준의 강자임을 알 수 있었다.
머리가 벗어진 평범한 외모의 사내는 청의(靑衣)를 채 덤덤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눈은 이따금씩 멍해졌다가 이내 정신이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한데 여인은 대머리 사내의 눈빛이 멍해질 때마다 대전 안의 원력이 잠깐 굳어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대전 안에서 주작성종 사람 하나가 나오더니 차와 과일을 내놓고는 총총 물러났다.
요염한 여인은 차를 한 모금 머금더니 곁의 노인을 바라보며 샐쭉 웃었다.
“나천성역의 열운자 선배 아니신가요? 소녀는 시음종의 이옥지라 합니다.”
적의의 노인은 나천성역 전가의 현임 가주 열운자였다.
열운자는 요사스러운 여인을 쓱 훑더니 차게 말했다.
“그래, 내가 열운자다.”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내려놓고는 말을 이었다.
“열운자 선배님의 명성은 나천성역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더군요. 주작성황을 축하하러 오신 모양인데 나천성역에서도 주작성종에 호의를 가진 모양이지요?”
“그러는 시음종은 어떠한가? 너는 시음종의 핵심제자로 어린 나이에도 정열기 수준에 이르렀구나. 소문에 의하면 네 구의 시체를 가지고 있고 그중 세 구는 쇄열기 수준에 상당하는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다던데… 그런 너를 보낸 것을 보면 시음종도 주작성종을 중시하는 모양이구나.”
열운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지만 이옥지의 두 눈은 찰나의 순간 살짝 번득였다.
“그렇다면 연맹성역에서 왔을 이쪽 도우의 이름은?”
여인은 화제를 돌리며 대머리 사내를 향해 물었다.
사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출운국에서 온 묵지라 하네.”
“묵지?”
이옥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열운자는 굳은 눈으로 대머리 사내를 살피며 느릿하게 말했다.
“자네가 묵지로군!”
대머리 사내는 미소를 지으며 열운자를 향해 포권을 했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두 분, 새로운 주작성황의 내력에 대해 아는 바라도 있습니까?”
이옥지가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난 그저 그가 매우 고고하다는 것만 알고 있네. 여태 축하하러 간 사신 중 그의 얼굴도 본 사람이 없다더군. 사성종에서도 그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면 무척 비밀스러운 사람일 걸세.”
열운자는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뇌선전의 명을 받고 온 그에게는 새로운 주작성황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로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직접 움직이지도 않았을 터였다.
“소녀가 들은 이야기로는 3년 전의 큰 전투 때 선제 청림의 동굴에서 주작성종이 누군가를 데리고 갔다고 하던데요?”
이옥지의 중얼거림에 열운자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그 일은 그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나천성역에서는 이에 대해 연구한 바 있었고 염뇌자는 그 ‘누군가’가 ‘그’일 것이라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허! 이한제가 새로운 주작성황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열운자는 심기가 불편했다. 당시 청수만 아니었어도 그자를 사로잡아 꼭두각시로 삼고 전(戰)자 족자의 비밀을 캐내는 데 사용했을 터였다. 또한 그는 청수의 실종을 일찍이 예상했다. 심지어 연맹 본부의 급격한 변화가 청수와 관련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이번에 그가 직접 주작성종에 찾아온 것은 나천성역으로부터 받은 임무 때문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나천성역을 등에 업고 이한제를 데려갈 생각이었다.
당시 주작성종에서 한제를 데려간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3년이 지났으니 지금쯤은 그들에게 쓸모없는 존재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를 데려가기란 어렵지 않을 터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 사람은 한 번의 신통술로 허공자를 죽이고 심지어 천운자의 분신을 둘이나 처리했다더군요. 열운자 선배께서는 어찌 그자에게 성황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당시 주작성종에서는 엄청난 공을 들였고 주작진령의 안내까지 받았다 하던데⋯⋯.”
이옥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열운자를 바라보았다.
“그자가 청림의 동굴에 들어서기 전에 만난 적이 있다. 그러니 그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내가 잘 안단 말이다.”
열운자는 한제가 짧은 시간에 그토록 강해졌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저 여인이 하는 말은 뜬소문이거나 과장된 것이 분명했다.
이옥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시음종에서는 갖가지 단서를 끌어모아 청림의 동굴을 뒤흔든 이한제가 새로운 주작성황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한데 어째서 열운자는 결코 아닐 거라고 확신한단 말인가?
‘이한제는 나천성역의 정뇌선이었다지? 그런데 나천성역의 주요 인물인 열운자가 저리 말한다면⋯⋯?’
이옥지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 말씀하신 자가 혹시 이한제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