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76
거대한 세력들에게 엄청난 파문이 일어난 이 모든 상황을 조성한 장본인인 한제는 주작성종에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온종일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화산 근처에 앉아 잠자코 좌선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의 곁에는 거대한 두꺼비가 엎드려 있었는데 그 몸에서는 전광이 흐르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두꺼비는 이곳의 열기를 제법 잘 감당하고 있었다.
한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최대한 힘을 키워야만 앞으로 발발할 전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보낸 두 개의 다른 옥패가 시음종과 나천성역을 들쑤실 것임을 알고 있었고 그곳에서 다시 사람을 보내올 것이라 거의 확신했다.
그는 모두에게 고신과 관련된 사실을 알렸다. 이 소식을 접한 이들은 누구나 그것이 한제의 술수임을 눈치 챘다.
그가 이한제 개인으로서 소문을 퍼뜨렸다면 모든 세력이 그를 붙잡아 수단을 가리지 않고 그 소문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려 들었을 것이다. 허나 그는 이제 주작성종을 등에 업은 주작성황이었다.
‘내가 고신의 육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더 이상 비밀이 아니지.’
요령의 땅에서 자신의 정체가 밝혀졌을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는 그가 주작성황을 따라 주작성종으로 온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 상태로 누군가에게 붙잡혔을 것이 뻔했다.
이런 상황이 합쳐져 그가 퍼트린 탁삼에 관한 소문은 신뢰도가 높아졌다. 대부분은 그 정보가 거짓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주작성에 가보면 금세 드러날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천성역, 시음종, 수련자 연맹⋯⋯ 이 세력들이 모두 고신의 땅으로 몰려들면 탁삼에게 대항할 수 있을까?’
이 세 세력을 주작성으로 보내는 것은 더 이어질 계획의 일부일 뿐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뇌와를 바라보았다. 두꺼비는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지만 줄기줄기 불 속성 원력을 흡수하고 있었다.
뇌와와 흡혈마수는 당시 한제가 주작성종에 들어온 뒤 풀려나 각자 힘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제 현무성종으로부터 빠져나온 뇌와는 한제에게 되돌아온 상태였다.
‘흡혈마수도 돌아왔어야 하는데 어찌 아직도 오지 않는 거지? 청룡성종의 장로들 말대로라면 그들이 출발하기 전에 떠났다고 했는데…’
한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다가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됐다. 며칠 지체될 만한 이유가 생겼을지도 모르지.’
이어서 그는 결인을 그려 몸 곳곳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는 기이한 홍조와 약간의 고통이 어린 표정이 드러났다.
그는 불 속성 원력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 열기에는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마에 콩알만 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한참 후에야 탁한 숨을 살짝 뱉어낸 그의 가슴팍에서 붉은 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하더니 부러진 검 한 자루가 조금씩 밀려 나왔다.
핏빛의 부러진 검이 모습을 드러내자 하늘을 뒤덮을 듯 엄청난 살육의 기운이 퍼져 나갔다.
짙은 기운은 눈 깜짝할 사이 주성 전체를 뒤덮더니 곧장 우주로 뻗어 나갔고 이에 수련성 밖에서 타오르던 화염도 잠시 멈칫했다가 일제히 바깥쪽으로 퍼져 나갔다.
요령의 땅에서 회색 옷의 천운자가 살육의 기운으로 응집해낸 이 핏빛 검은 지난 3년 동안 끊임없는 치료를 통해 천천히 제련됐다. 덕분에 당시 원신에 남았던 흔적은 이미 제련된 후로 이제는 체내에만 이 부러진 부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지난 3년의 수행으로 이 검에 대한 이해는 마쳤다. 제련을 끝내면 다시 살육선결을 수련해야겠어. 그럼 실수가 있다 해도 백만 살육선결의 기운이 자폭할 위험은 없을 테니까.’
한제는 살육의 기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살육 선결은 그가 오랜 시간을 들여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요 배이라의 도움으로 한제는 살육 선결의 위험성을 더욱 잘 알게 됐다.
만약 수련을 이어갔다면 그는 그대로 하나의 살육의 기운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내내 아쉬웠는데 이제 그 아쉬움은 사라진 상태였다.
외부인
몸 밖으로 비죽 튀어나온 핏빛의 부러진 검을 바라보던 한제는 오른손으로 불꽃을 번득였다. 그러자 전방에 타오르는 불바다가 나타나 그 검을 감쌌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결인을 그린 오른손으로 미간을 한 번 두드렸다.
태고의 뇌룡 형태의 원신이 미간에서 빠져나오더니 화염에 휩싸인 부러진 검을 향해 원신의 기운을 한 움큼 뿜어냈다.
동시에 뇌룡 원신에서는 한제가 구현변(九玄變)으로 만들어낸 두 번째 원신이 역시 원신의 기운을 뱉어냈다.
번개와 불이 교차된 원신의 기운이 몰려들면서 화염에 휩싸인 부러진 검에 부딪힌 순간, 화염은 기름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타올랐다. 심지어 천둥소리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내 핏빛 검의 가장자리에서는 녹아내릴 듯한 조짐이 나타났고 그 순간 음산한 살육의 기운이 피어올라 화염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한제에게는 낯설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부러진 검을 제련할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제에게는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반드시 이 검을 완전히 제련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만 계속해서 살육선결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현변에 성공하기 전이었다면 이 검을 제련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자신이 있었다.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그의 오른쪽 눈에서 나타난 화염이 더욱 활활 타오르면서 온 세상을 밝힐 듯 밝아졌다.
뒤이어 한제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켰고 체내의 두 번째 원신도 같은 동작을 취했다.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불 속성 원력이 두 번째 원신으로부터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오른손을 따라 불바다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염응(炎凝)!”
한제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퍼져 나간 순간, 수련성 내의 모든 불 속성 원력이 그를 향해 몰려들어 응집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연소성역 내의 다른 수련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불 속성 원력이 끊임없이 녹아드는 것을 느낀 한제는 들어 올렸던 오른손으로 부러진 검을 가리켰다.
순간 그에게 응축되었던 불 속성 원력은 곧장 검을 향해 돌진했고 이에 검은 더욱 빨리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검에서 발산되는 살육의 기운도 늘어나 화염에 저항했다.
한제는 잠시 이 모습을 보다가 오른쪽 눈을 몇 번 격렬하게 번득였다. 그러자 태고의 뇌룡 형태 원신 안에서 두 번째 원신이 쑥 빠져나오더니 한제의 오른쪽 눈을 따라 한 줄기 붉은 빛이 되어 검을 향해 쏘아졌다.
그 찰나의 순간,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입을 벌려 십팔지옥이 된 봉선인(封仙印)을 뱉어냈다.
“살두성병(撒豆成兵)! 허공자 천운자!”
그 순간, 봉선인 주위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이내 두 개의 허상으로 응집되었다. 하나는 허공자였고 다른 하나는 합체한 천운자의 두 분신이었다.
이 두 개의 혼은 봉선인 밖으로 나오자마자 부러진 검을 향해 달려들더니 한제의 두 번째 원신 주위를 둘러싼 채 제련을 도왔다.
동시에 한제는 왼손을 들어 옆의 화산 분화구를 가리켰다. 그러자 화산은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전보다 더욱 시커먼 연기를 뿜어냈다.
열기가 확 끼쳐왔고 시뻘건 용암이 분출됐다. 이 용암은 한제의 손짓에 따라 물처럼 흘러 부러진 검을 감싸며 약 1백 척 크기의 거대한 용암의 공이 되었다.
한제는 그 거대한 용암 공 밖에 선 채 두 손으로 끊임없이 주위의 불 속성 원력을 끌어들였다.
눈 깜짝할 사이 반나절이 지나 버렸다.
이 부러진 검의 제련에는 엄청난 힘이 필요했기에 언제까지고 계속할 수는 없었다. 벌써 지난 3년 동안 흡수한 선인 수십 명의 원신을 응집시켜 만들어낸 선력까지도 소모되고 있었다.
그때, 한제의 두 눈이 번득였고 그는 낮게 기합을 넣으며 두 손을 사방으로 휘둘렀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용암 공이 무너져 내리더니 수없이 많은 불타는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안에 있던 부러진 검 역시 완전히 녹아내렸다.
그 순간, 한제의 두 번째 원신은 녹아버린 검 조각을 꿀꺽 집어 삼키더니 곧장 체내로 돌아왔다.
허공자와 천운자의 혼도 봉선인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좌선하던 한제는 점차 그 두 번째 원신에 살육의 기운이 맴도는 한 자루 핏빛 검이 응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할 때면 언제고 그 살육의 기운을 곧장 쏘아 보낼 수 있을 터였다.
‘이 검의 제련 과정에서 살육의 기운이 너무 많이 소모돼 안타깝군. 지금 남은 살육의 기운은 백만이 되지 않아. 앞으로 차차 살육의 기운을 더 쌓아야겠어.’
두 눈을 번쩍 뜬 한제는 숨을 깊게 내쉰 뒤 저물대에서 새카만 빛 한 줄기를 꺼냈다. 그 빛은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삼지창으로 변했다.
한데 삼지창을 보는 한제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의 두 눈에 죄책감과 슬픔의 빛이 스쳐 갔다.
‘이 일을 설명해야겠지⋯⋯.’
한숨을 내쉰 그는 삼지창을 들고 몸을 휙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한제가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주작성종에 속한 다른 수련성이 하나 있었다. 이곳 역시 주성으로 새빨간 산들이 장관이었다.
그 수련성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는 한 여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매우 아름다웠지만 씁쓸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 앞에는 검은 석상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한제를 조각한 석상이었다. 그 뒤로는 새카만 동굴이 있었다.
석상 옆에는 흑의(黑衣)의 청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냉랭해 보이는 외모의 청년은 두 눈을 감고 침착하게 호흡하고 있는 중이었다.
“부탁이니 제발 그 안으로⋯⋯.”
여인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 검은 옷의 사내를 향해 말했다.
“안 돼!”
사내는 두 눈을 부릅뜨고 차갑게 말했다. 그러자 여인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뭔가를 더 말하려 했다. 그때, 돌연 하늘에서 누군가의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허공에 나타난 파문으로부터 한제가 나타났다.
그 순간, 흑의의 사내는 감격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손하게 말했다.
“십삼, 스승님을 뵙습니다.”
한편, 방금 전까지 십삼과 실랑이를 벌이던 여인, 영이는 한제를 보자 표정이 더욱 처연해졌다.
“영이야, 네 할아버지를 뵈러 가자.”
한제는 십삼을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여인을 향해 말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얼마 버티지 못하실 겁니다.”
영이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제는 씁쓸한 얼굴로 소매를 휘둘러 영이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데 한제가 떠난 뒤 이 산봉우리 꼭대기 동굴 안 깊은 곳에서 두 갈래의 밝은 빛이 번득였다.
두 눈을 번쩍 뜬 한제의 본체에게서도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의 어깨에 얌전히 엎드려 있는 성흔 담비는 혀를 내밀어 한제의 목을 핥았다.
한제의 본체는 목 아래로는 뼈만 남아 있었다. 음산한 기운이 발산되고 있는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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