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78
허나 산붕 선술의 관건은 산과 혼의 붕괴나 심신으로 허상의 산을 만들어내는 것 또는 선력과 신념을 녹여내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구현’해내는 것이었다. 즉, 허상으로 만들어낸 그 광경을 실체화하는 것이 산붕 선술의 중점이자 가장 어려운 부분인 셈이다.
저 멀리서 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바라보며 자신이 있는 화산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조짐을 느낀 한제는 멍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모완, 이것은 대체… 진실이냐, 거짓이냐?”
한제의 말에 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묵묵히 세상의 파동을 느끼던 한제의 미간이 점차 구겨지기 시작했다.
“신념으로 만들어낸 허상의 산봉우리를 어떻게 실체화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청수도 확실한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한제의 심신에 남겨놓은 그의 깨달음도 흐릿하고 모호하기만 했다. 이는 한제에게 그 깨달음을 전수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한제가 스스로 깨닫게 되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진실, 거짓⋯⋯ 이 역시 삶과 죽음, 원인과 결과처럼⋯⋯.”
한제는 다시금 두 눈을 감고 끊임없이 생각을 이어나갔다. 화산은 계속해서 폭발했고 갈수록 격렬해졌으며, 더 먼 곳의 화산 역시 폭발하기 시작했다.
순간 한제는 무궁무진한 화염에 뒤덮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제는 다시 눈을 뜨고는 말없이 전방의 관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그 관은 한 줄기 흐르는 빛이 되어 사라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제는 곧장 그 화산의 분화구 안으로 들어갔고 짙은 용암을 가르며 얼마후 화산의 바닥에 이르렀다. 그는 곧장 가부좌를 틀고 앉아 결인을 그린 두 손을 휘두르고는 두 눈을 감았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신경 쓰지 않는다. 세상에 진실이 없다면 거짓도 자연히 없어질 터. 그러니 진실과 거짓은 하나인 셈이다. 진실도 거짓도 삶과 죽음처럼 상대적인 것일 뿐! 만약 삶이 없다면 자연히 죽음도 없다. 원인이 없다면 결과도 없지. 묵지는 모든 경지가 심신의 깨달음이라 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두 눈을 감은 순간, 그의 온몸을 채운 불 속성 원력이 가동되면서 체내로부터 뿜어져 나와 용암과 융합되더니 점차 하나로 뒤섞였다. 이 순간, 한제는 마치 용암이 된 듯했다.
이어서 한제의 불 속성 원력은 다시 한 번 퍼져 나가 용암으로 덮인 화산에도 섞여들어 일체가 되었다. 나아가 용암, 화산, 검은 연기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 속성 원력과 완벽하게 하나로 합쳐졌다.
이 순간, 한제는 화산에서 서늘하고 거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화산의 혼이었다.
산혼이 자신의 원신과 섞여 들어감에 따라 한제의 뇌리로 어떤 광경들이 스쳐갔다.
활활 타오르는 불 속성 원력으로 가득 찬 산봉우리들이 나타나는 광경이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 불 속성 원력은 점차 용암이 되었고 결국 극한에 이르러 산봉우리 꼭대기가 무너져 내리고 짙은 용암이 분출되었다.
강한 열기가 불어 닥치자 식물 종자들이 산봉우리에 떨어져 하나하나 붉은 싹을 틔웠고 곧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드문드문 떨어져 자라났다.
또 얼마나 지났을까? 끊임없는 순환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지가 진동했고 산봉우리가 다시 한 번 폭발했다.
수만 년의 시간이 한제의 눈앞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한제는 자신이 이 화산의 산혼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화산이 한 번 폭발할 때마다 뭔가를 발산하는 듯한 느낌을 받던 한제는 부지불식간에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곧 화산이고⋯⋯ 나의 분노가 곧 산붕이구나!”
그 순간, 한제의 심신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눈 깜짝할 사이 사방의 화산들이 하나하나 그의 심신으로 들어왔다. 그의 심신은 갈라져 각 화산에 녹아들면서 산혼들을 건드렸고 이에 더 많은 광경들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많은 화산들이 붕괴하는 광경을 보고 더 많은 산의 분노를 느낀 그의 원신은 또 한 번 퍼져 나가 점차 이 수련성의 모든 화산들을 뒤덮었다. 마치 수천 개의 분신이 만들어진 듯했고 그 하나하나의 분신들은 각각의 화산이 되어 있었다.
“이건⋯⋯?”
주작성종의 장로 하나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의혹이 어린 눈빛을 보이던 그는 곧 몸을 휙 날려 한제가 있는 화산 쪽으로 향했다.
“성황이다!”
쇄열기 수준의 장로답게 노인은 곧장 이 상황이 어찌된 것인지 파악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받은 충격이 작아지지는 않았다. 그가 아는 성황은 수련을 시작한 지 2천 년도 채 안 되는, 규열기 수준의 수련자였다. 그를 비롯한 장로들은 표면적으로는 한제를 인정하고 있었으나 사실 마음속으로는 아직까지도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한데 지금 느껴지는 기운 속의 거친 서늘함은 쇄열기 수준인 자신마저도 별 볼 일 없는 하찮은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머지않아 그는 자신처럼 놀란 표정의 세 장로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들 역시 같은 것을 느끼고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머지않아 이 수련성의 모든 주작성종 사람들이 모두 같은 것을 느끼고는 충격에 휩싸였다.
스쳐 간 한제의 신념은 수련성 전체를 뒤덮고 그 안의 모든 화산을 깨워 폭발하게 만들었다.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소리에 수련성 전체가 진동했고 온 세상은 그 요란한 소리에 뒤덮였다. 하늘은 검은 안개에 뒤덮이고 대지에는 시뻘간 용암이 흘렀다.
네 장로는 안색이 급변해 외쳤다.
“주작성종의 모든 제자들이여, 곧장 수련성을 떠나라!”
이 벼락 같은 외침에 주작성종의 제자들은 분분히 하늘로 튀어 올랐다.
네 노인은 모든 제자들을 이끌고 수련성 밖으로 향했다.
우주에 모여든 사람들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여태까지도 그들 대부분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아채지 못한 상태였다.
장로들의 얼굴은 굉장히 어두웠다. 동시에 그들은 새로운 성황에 대해 강렬한 불만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의 불만이 막 생겨난 그 순간, 수련성 전체를 뒤덮은 신식이 다시 한 번 퍼져 나갔다. 이번에는 우주로 대피한 주작성종 사람들마저 뒤덮은 이 신식은 연소성역으로 끊임없이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또 하나의 수련성이 그 안에 뒤덮이며 곧장 섞여들었고 그 거칠고 서늘한 기운은 더욱 짙어졌다. 뒤이어 방금 막 그 신식에 뒤덮인 수련성에서도 화들짝 놀란 주작성종의 사람들이 다급하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확산되던 신식은 결국 성역 내의 모든 수련성을 뒤덮어 융합되었고 끊임없이 강력해지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신식이 되었다.
주작성종 사람들은 물론 대두 등도 자신이 기거하던 수련성에서 튀어나온 상태였다.
주작성황
연맹성역 동쪽 구역의 사성종 안, 주작성종 근처의 허공에서 파문이 일더니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붉은 옷에 백발이 성성한 그 노인은 바로 염뇌자였다.
뒤이어 저 멀리서 또 하나의 파문이 일더니 또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동시에 음산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중년 사내인 그는 푸른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얼굴은 준수했으나 낯빛은 시체처럼 창백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파동에 염뇌자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나천성역의 염뇌자 아니신가!”
그 중년 사내의 서늘한 눈빛이 염뇌자 쪽으로 향했다.
“시음종의 구왕(九王) 중 한 명이시로군.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소만!”
염뇌자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꾸했지만 두 눈은 상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 ★ ★
연소성역 내의 모든 수련성은 신식과 서늘하고 거친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에 주작성종 장로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수준이 극도로 높은 그들도 새로운 성황이 대체 어떤 신통술을 쓴 것인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의 식견과 수준으로는 선제 백범의 신통력을 간파하거나 이해한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한제의 신식으로 이렇게 넓은 지역을 다 뒤덮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모든 것을 잊은 채 화산의 혼이 되어 있었고 하나하나 융합시킨 각 수련성의 혼의 힘을 빌려 끊임없이 뻗어 나간 것이다.
이때, 한제의 신식은 주작성종 모든 수련성에 결집되어 있었다.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 신식에 셀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쌓여 왔던 거친 기운을 느낄 수 있었고 그 거친 기운은 그들을 썩어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가장 먼저 그 기운을 감지하고 수련성에서 벗어난 네 명의 장로가 느꼈던 불만은 이미 흩어져 사라진 상태였다. 이제 그들의 마음을 채운 것은 끊임없는 충격과 두려움이었다.
“원인이 없다면 자연히 결과도 없어질 것이고 따라서 인과도 없어진다. 만약 삶이 없다면 자연히 죽음도 없어질 터이니 생사도 사라진다. 진실이 없다면 거짓 또한 없으므로 진실과 거짓은 그저 하나의 생각만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거칠고 서늘한 신념이 그 신식 안에서 울려 퍼지며 모든 사람들의 귓가에 닿았다.
‘그렇구나. 하나의 생각만으로 갈라지는 것이기에 청수 사형도 상세히 가르쳐주지 않으셨던 것이야. 한 번 깨달음을 얻는 순간 그 모든 것을 깨우치게 되니까.’
신념이 울려 퍼짐에 따라 한제는 깨어나려 했다.
한데 그가 깨어나려던 그 순간, 연소성역이 콰르릉 하고 흔들리면서 각 수련성의 화산들이 동시에 폭발했다. 온 우주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성역 전체에 울려 퍼졌다.
때를 같이해 성역 밖에 있던 염뇌자와 시음종의 삼왕(三王)이 활활 타오르는 연소성역 안에 들어섰다.
그 순간, 온 세상을 뒤흔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력한 신식의 존재를 단박에 눈치챈 삼왕은 크게 놀라 찬 숨을 들이켰다.
맞은편에는 한 사람이 아니라 이 성역을 수만 년 동안 지켜온 수련성들이 있는 듯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듯 거칠고 서늘한 느낌에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주작성황!’
삼왕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주작성황이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이옥지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주작성황은 분명 수련 기간이 길지 않았다. 이런 신식은 2천 년도 채 되지 않은 수련기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삼왕은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염뇌자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건⋯⋯?”
염뇌자가 보기에 이 신식의 강력함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일개 수련자가 가질 수 있는 기운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한편, 그들이 신식을 느낀 순간 한제도 자연스럽게 그들을 감지하고는 두 사람을 향해 신식을 뻗었다. 그러자 성역 내에서는 천둥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면서 화염이 용솟음쳤다.
“염뇌자⋯⋯.”
그 거대한 신식 안에서 울린 목소리가 성역 전체로 퍼져 나갔다.
염뇌자는 익숙한 신식의 느낌에 헛숨을 삼켰다. 하지만 상대의 정체에 대해 짐작은 할지언정 확신은 하지 못했다.
“귀하는⋯⋯?”
“주작성황이다!”
한제의 신식이 느릿하게 퍼져 나가면서 성역에 천둥소리를 울렸다.
“이한제!”
염뇌자의 뇌리로 충격의 파도가 몰아치면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음종의 삼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옆은 시음종 사람이겠군.”
한제의 신식이 서서히 퍼져 나가자 성역을 채운 불바다는 삼왕과 염뇌자 곁을 맴돌았다.
“저는 시음종의 삼왕입니다.”
삼왕은 진중한 표정으로 포권을 했다. 기쁨도 슬픔도 드러내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주작성종에 깊은 두려움을 느끼게 됐다. 원래는 주작성종을 자세히 관찰해볼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며칠 전 제자 하나가 옥패 들고 왔습니다. 제가 온 것은 성황께 그 옥패에 기록된 것이 어디 있는지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성황께서 알려주신다면 시음종은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삼왕은 공손하게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