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79
염뇌자 역시 마음을 추스르며 포권을 했다.
“이한⋯⋯ 주작성황이시여, 열운자 역시 옥패를 가지고 뇌선전에 돌아왔습니다. 저 역시 그 옥패에 담긴 것이 어디 있는지 묻고 싶어 왔습니다.”
한제의 신식이 어째서 갑자기 이토록 강력해졌는지, 염뇌자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역 안 수련성들의 혼을 이렇게 완벽하게 하나로 융합되게 만든 신통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려울 지경이었다. 주작성종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한 셈이었다.
“좋다, 원한다면 알려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곳은 매우 위험하니 갈 것인지는 각자 알아서 결정하도록 해라.”
한제의 신념이 울려 퍼지자 허공에 셀 수 없이 많은 반짝이는 빛이 나타나더니 하나의 성도(星圖)를 형성했다. 그 성도는 주작성의 위치를 가리키더니 몇 번 반짝이다가 점차 흩어져 사라졌다.
“주작성?”
염뇌자는 눈을 번득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성황께서 이리 중요한 정보를 저희들에게 알려주시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중년 사내는 미소를 지으며 덤덤하게 물었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목표가 있는 법이지. 난 다른 이들의 힘을 빌려 그 시체를 보호하고 있는 이들을 제거하고 싶을 뿐이다.”
한제의 신념이 퍼져 나갔다. 시음종과 나천성역에게 굳이 이 일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어설픈 거짓으로 상대에게 의심을 심어주었다가는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으니 차라리 깔끔하게 밝히는 편이 나았다.
“크하하! 성황께서는 과연 호쾌하시군요. 이 일은 시음종이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삼왕은 크게 웃더니 한제의 신념이 전해져 오고 있는 곳을 향해 포권을 한 뒤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염뇌자는 잠시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너를 한참 과소평가했구나. 이렇게 될 줄이야⋯⋯. 이한제, 이제부터는 뇌선전의 사람이라는 내 신분도 주작성황이라는 네 신분도 떼어놓고 마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좋습니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신념을 통해 답했다.
“확실히 답해주니 좋구나. 이한제, 난 네가 옥패를 통해 전한 소식이 사실인지, 아니면 너조차도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것인지 알고 싶을 뿐이다.”
염뇌자가 깊은 눈으로 한제의 신념이 전해지는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선배님, 그 옥패를 통해 전한 사실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염뇌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포권을 하더니 이내 떠나갔다.
두 사람이 떠나가자 성역을 가득 채웠던 신식은 그대로 흩어져 셀 수 없이 많은 빛으로 변해 점차 사라졌다. 이에 따라 수련성들의 혼도 곧장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신념이 무너져 내리면서 세상의 원력이 강력하게 흔들렸고 주작성종의 모든 사람들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한제가 있는 수련성의 화산도 폭발을 멈춘 상태였다. 그 가장 큰 화산 내부에서 한제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눈에서 번득이는 밝은 빛은 마치 전광처럼 그 화산 속의 용암을 관통했다.
‘이 이한제의 경지는 생사의 윤회였다가 인과의 순환으로 전환되었지. 그리고 지금 산붕의 뜻을 깨닫고 진실과 거짓을 짐작하게 되었다. 한 번의 생각으로 인과의 경지는 가득 차게 됐고 수준은 규열기를 돌파해 정열기에 이르렀지. 또한 조금 전 산붕을 깨우치면서 진실과 거짓의 변화도 나타났다. 이 진실과 거짓은 허상과 실체와는 달라. 이것은 더 큰 도(道)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제가 걸음을 내딛자 용암에 파문이 일어났다.
화산 밖으로 나온 한제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정열기!”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자신의 몸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전의 몸은 불 속성 원력을 견딜 수는 있어도 극한에 부딪히곤 했는데 지금은 심신을 움직이기만 해도 세상에 바람이 몰아치고 불 속성 원력이 끊임없이 응집되어 체내로 치고 들어왔다.
한제는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전방에 한 줄기 균열이 나타났다.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한 균열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한데 그 순간, 무궁무진한 원력이 그의 손에서 발산되어 균열을 뚫고 들어가더니 그 안에서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콰르릉!
공간을 찢어발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균열 안의 공간은 점점 더 커졌고 동시에 그 원력과 융합되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그리고 결국 거의 극한에 이를 때쯤 쉽게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감을 갖추었다.
“앞으로는 저물대가 필요 없겠군.”
한제는 웃음을 머금은 채 저물대에 있던 물건들을 전부 그 균열 안으로 흡수시켰다. 텅 빈 저물대는 가벼운 손길 한 번에 한 줌 재가 되어 흩어졌다.
뒤이어 한제가 그 균열을 쓰다듬자 그 위에 신념의 낙인이 남았고 이내 맞물리면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때, 돌연 한제의 표정이 바뀌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우주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마리 흡혈마수가 몸부림치듯 힘겹게 날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녀석의 자색 몸통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무척 지친 모습이었다. 꽤나 심각한 중상을 입은 듯했으나 주인에게 돌아가겠다는 의지로 버티고 있었다. 특히 그 흡혈마수의 등에 난 상처에서는 푸른색의 기운이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길고 날카로운 주둥이는 부러져 있었다.
녀석은 한제를 보자마자 슬피 울며 다가왔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흡혈마수의 등을 두드려 상처에서 피어오르던 푸른 기운을 흩어 없앴고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균열을 만들어내 대량의 단약을 꺼내서는 녀석에게 먹였다. 동시에 신식을 펼쳐 흡혈마수의 기억을 훑더니 폭발할 듯한 살기를 드러냈다.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 ★ ★
연맹성역 중부의 자갈로 뒤덮인 성역을 몰골이 엉망인 황의의 청년 셋이 조심스럽게 지나고 있었다. 한 명은 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다친 오른쪽 다리에 붕대를 감은 채 하얗게 질린 얼굴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다른 둘도 부상이 심했다. 손에 향을 든 채 가운데 선 청년의 오른쪽 가슴은 관통당한 듯 구멍이 뚫려 있었고 피가 울컥울컥 솟았다. 이를 악물고 버티고는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옆의 청년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들 뒤로는 열 마리가 넘는 거대한 흡혈마수들이 있었다. 이 마수들 역시 많거나 적게 상처를 입은 상태였지만 움직임에는 별 영향을 받지 않은 듯했다. 그들은 새빨간 두 눈으로 세 청년을 노려보면서도 향에 이끌려 그 뒤를 따르는 중이었다.
“젠장, 흡혈마수의 왕이 도망쳐 버리다니! 운해(雲海)에 녀석을 데리고 가 암성종(暗星宗)에 넘기고 진귀한 천쇠액(天衰液)으로 교환하려 했는데!”
다리를 다친 청년이 낮게 불평했다.
“닥쳐! 그 녀석은 분명 누군가가 기른 흔적이 있다. 운해에서 온갖 말썽을 부린 그 녀석을 굴복시킨 사람이라면 분명 강력한 사람일 터! 어서 장로님들과 합류하지 않다면 그자에게 발각돼 큰 곤욕을 치를지도 모른다.”
가슴이 관통된 채 향을 든 청년이 꾸짖듯 말했다.
“내내 순조로웠는데 녀석은 왜 연맹성역 동쪽 구역에 이르자마자 발버둥을 친 걸까? 덩달아 다른 마수들까지 난리를 치는 통에 수혼향(獸魂香) 두 개를 날려버렸군. 녀석이 도망친 건 안타깝지만 이 열아홉 마리만으로도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을 거야.”
마지막 청년이 탐욕 어린 눈으로 열아홉 마리 흡혈마수들을 힐끔거리며 중얼거렸다.
운해(雲海)
세 사람은 점차 자갈이 가득한 성역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이곳에는 푸른 장막이 옅게 드리워졌는데 청년들은 그 앞에 이르자마자 저물대에서 옥패를 꺼냈고 혀끝을 깨물어 그 옥패에 피를 뿜었다.
순간 그 옥패들에서는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앞에 드리운 푸른빛의 장막에 닿았다. 그러자 장막에 파문이 일면서 하나의 둥그런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청년들은 곧장 그 안으로 들어갔고 뒤를 따르던 흡혈마수들도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세 청년과 흡혈마수들은 빛의 장막 안쪽에 들어선 상태였다. 그제야 향을 들고 있는 청년이 한시름 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군. 이 연맹성역 안에 우리 운해성역의 흡혈마수들이 나타나다니. 그 수가 많지 않아 다행이야. 만약 풍(風)의 선계에서처럼 그 수가 수만에 달할 정도로 많았더라면⋯⋯.”
청년의 눈에 두려움이 어렸다.
“자 종파에서 맡긴 임무는 이미 완수했으니 최대한 빨리 떠나자고. 어쩐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단 말이야.”
세 사람은 가볍게 몸을 떨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후, 전방에 셀 수 없이 많은 자갈이 한데 응집되어 형성된 커다란 진이 나타났다. 그 위에서는 푸른빛이 수시로 반짝거렸고 그 너머로는 백 명에 달하는 황의의 수련자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주위에 퍼진 자갈들을 끌어와 진에 덧붙이곤 했다.
이 거대한 진 위에는 두 노인이 서 있었다. 자색(紫色) 옷을 입은 노인들은 백발이 성성했지만 번개처럼 번득이는 두 눈에는 위엄이 가득했다.
두 사람은 조용히 대화를 나누면서 진을 향해 손짓을 했다.
세 청년이 등장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지만 다들 크게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허나 그 뒤편 흡혈마수들에 이른 순간, 그 눈빛은 크게 변했고 몇몇은 놀라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흐… 흡혈마수!”
그 반응을 본 세 청년은 우쭐해졌다. 이는 자신들이 저 흡혈마수들을 처음 봤을 때와 다를 것 없는 반응이었다.
두 갈래의 빛과 함께 한달음에 달려온 자색 옷의 두 노인 중 앞에 선 노인은 주위의 수련자들에게 외쳤다.
“뭣들 하고 있느냐? 얼른 진을 만들지 않고!”
노인의 호령에 모든 수련자들은 얼른 흩어져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진의 배치를 재개했다. 그러나 그들의 탐욕 어린 눈빛은 수시로 흡혈마수에게로 향했다.
“소신, 대관절 어찌된 일이냐?”
노인은 다시 한 번 흡혈마수들을 살피더니 의혹이 어린 눈으로 세 청년 중 한 명에게 물었다.
가슴팍을 관통당한 청년은 공손하게 그간의 일을 보고한 뒤 잠시 망설이다가 도중에 흡혈마수의 왕이 도주해버린 일에 대해서도 고했다.
노인은 어두운 안색으로 곁에 있는 다른 노인을 바라보았다. 두 노인의 눈빛에서는 망설임의 기색이 드러났다.
“그 흡혈마수의 왕이 주인 없는 녀석이라면 괜찮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 그런 마수를 길들일 수 있는 자를 우리가 어찌 건드리겠는가?”
“흡혈마수는 분명 가치가 크지. 최소 수백 마리로 떼를 지어 움직여 6급 이상의 종파에서도 엄청난 대가를 들여서도 사로잡기 쉽지 않으니, 우리 천문종의 입장에서 이는 엄청난 자원인 셈이야.”
서로를 바라보던 두 노인은 상대의 눈에서 탐욕과 결단을 확인했다.
“청광진(靑光陣)이 있으니 연맹성역 수련자들은 쉽게 들어오지 못할 터. 쇄열기 절정 수준의 수련자라 해도 8급 종파에서 우리에게 보내준 청광진을 뚫으려면 며칠은 걸릴 것이다. 그때쯤이면 우리는 이미 운해성역으로 돌아가 있겠지. 운해성역까지 쫓아올 테면 쫓아와보라지!”
“진의 배치를 서둘러야겠어!”
두 사람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흡혈마수를 데리고 온 세 청년의 눈빛에 기대감이 어렸다. 이 일에 장로가 발 벗고 나선 이상 안전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고 종파로 돌아가면 자신들은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흡혈마수의 주인이 찾아올 것이 기대되기도 하는군. 그자가 어떻게 청광진을 뚫을지 궁금해.”
다리를 다친 청년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한편, 바로 그때, 청년이 말한 흡혈마수의 주인인 한제는 오른손을 흡혈마수의 머리에 얹은 채 싸늘한 눈으로 이를 악물었다. 한제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그가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터였다.
한제에게 있어 가만히 있던 자신의 흡혈마수를 먼저 건드린 상대는 자신을 건드린 것과 같았다. 그리고 한제는 먼저 자신을 건드리는 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한제는 주먹을 쥔 채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는 정열기에 이른 순간 천벌의 힘 한 줄기를 어렴풋이 느꼈으나 주작성종 안에 있던 터라 그 천벌을 강림하게 할 수 없었다. 주작성종에 엄청난 피해를 안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천벌의 강림을 마음대로 지연시킬 수도 없었지만 주작성종의 첫 번째 신통술인 구현변(九玄變)을 익힌 뒤부터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