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8
흠칫 놀란 마혼은 손을 비비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 비검을 삼켰으니 난 이제 어디로 들어가?”
한제는 고개를 들어 마혼을 힐끔 쳐다보더니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교룡의 힘줄이 저물대에서 튀어나왔다. 한제는 손을 뻗어 반응로를 가리켰다.
그러자 아까 남겨둔 구슬이 솟아올랐고 교룡의 힘줄이 그 구슬로 날아들었다. 둘은 합쳐진 이후에도 크기와 모양은 교룡의 심줄 그대로였으며, 색만이 황금색으로 변했다. 한제가 다시 힐끗 쳐다보자 마혼은 순순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한제는 그것을 한동안 살핀 후 저물대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위쪽의 푸른색 수정과 같은 벽을 바라보며 오른손에 황천의 화염을 일으키더니 훌쩍 날아올랐다.
한제는 순식간에 몇 만 척 깊이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우르릉
그 속도에 황천의 화염의 위력이 더해지자 시체 골짜기의 지면이 흔들렸다. 마수의 뼈를 찾던 수련자들은 모두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분분히 시체 골짜기를 빠져나갔다.
지면의 흔들림은 갈수록 격렬해졌다. 눈썰미가 좋은 몇몇 수련자는 열네 번째 골짜기 방향에서 우르릉 소리가 들려오다가 검은 인영이 솟아오른 것을 보았다. 하나 그 검은 인영은 순식간에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한제는 곧장 남쪽으로 날아갔다. 이전에 상목에게서 들은 대로라면 남투성은 남쪽 끝, 시체 골짜기로부터 30만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한제는 자신이 연기술에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음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속도를 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빨리 용로를 찾아 천리단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꼬박 이틀을 이동한 후에야 한제의 시야에 거대한 검은 성이 들어왔다. 그 성은 매우 커서 멀리서 보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곳이 바로 수마해에 존재하는 998개의 성 중 하나인 남투성이었다.
남투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 성 주인의 이름이 남투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원영기 수준의 실력자일 뿐만 아니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고수를 거느린 맹주였다.
사실 수마해에서 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실력자임을 입증한 것이었다. 성 안에는 크고 작은 문파가 여럿 존재하지만 어찌되었든 그 문주들도 성주의 위엄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나 남투성의 성주는 5백 년 전부터 실종 상태였고 그 동안 남투성을 중심으로 반경 1백만 리에 소속된 문파들은 투사파 같은 대형 문파들로 발전됐다.
결단 (4)
주인 없는 성이 된 남투성은 몇몇 대형 문파들이 연합하여 관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투성은 수마해의 구석진 외곽에 자리하고 있어 여전히 자원이 부족했고 영맥도 귀했다.
원영기 수련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외곽 지역에 머물지 않았기 때문에 반경 1백만 리 안에는 결단기 수련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원영기 수련자가 나타난다면 그는 남투성의 새로운 성주가 될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하나 지금껏 남투성의 성주가 되기를 원했던 원영기 수련자들은 그 척박함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금방 떠나버렸다.
지금의 남투성은 주천교(誅天敎), 멸혼문(滅魂門), 그리고 천일도교(天一道敎) 세 개의 교파가 연합하여 관장하고 있었다. 투사파도 낄 자격은 되었으나, 세 개의 교파가 연합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한 발짝 들여놓기도 어려웠다.
관장하는 교파가 셋이든 넷이든 별 차이는 없었으나, 투사파가 더 커질 경우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세 교파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열 개의 하급 영석을 지불하고 진입용 영패를 받은 한제는 남투성 동쪽에 있는 연기각(煉器閣)으로 향했다. 연기각은 3층짜리 건물로 층을 올라갈수록 법보의 가격이 몇 배나 올라갔다.
한제가 연기각에 들어섰을 때, 1층에서는 일고여덟 명의 수련자와 연기각 점원들이 흥정을 하고 있었다.
★ ★ ★
저물대에서 검은 도포를 꺼내 얼굴을 가린 한제는 연기각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1층의 법보는 주로 비검이었는데 비단이 깔린 상자에 정성스레 놓여 있었다. 상자 양쪽에는 봉인이 붙어 있어 비검을 함부로 꺼낼 수 없었다.
1층 정중앙에는 수정으로 이루어진 원기둥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안에는 세 자루의 비검이 날을 아래로 한 채 둥둥 떠 있었다. 그 비검들은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 하며 계속해서 빛을 발했다.
한제가 수정 기둥을 주시하고 있자 한 점원이 다가왔다. 스물을 갓 넘은 듯한 점원은 영리해 보이는 사내였다.
그는 한제가 연기각에 들어왔을 때부터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뭔가 범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더구나 비술(秘術)을 통해 확인한 상대의 수준은 결단기와 꽉 찬 축기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사내는 매우 놀랐지만 겉으로는 그런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사형, 그 비검이 마음에 드십니까?”
한제는 비검으로 부터 눈길을 거두고 응기 8~9단계 수준인 점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툭 내뱉듯 물었다.
“여기에서 연단로도 파나?”
청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이 남투성 내에서 연단로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연기종뿐입니다.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니까요. 저와 함께 2층으로 가시지요.”
한제는 차분한 표정으로 계단을 올랐다. 점원은 몇 걸음 뒤에서 길을 안내했다. 그런데 1층에서 다른 점원과 가격 흥정을 하고 있던 수련자 하나가 잠시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가 한제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2층으로 올라온 점원은 곧장 오른편의 등나무 의자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에게 무언가를 속삭인 후, 한제에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중년 남자는 인자하게 웃으며 한제에게 다가왔다.
“어느 정도 품질의 연단로를 찾으시는가?”
중년 남자의 수준은 한제와 같은 꽉 채운 축기였다. 한제는 문득 3층에는 결단기 수준의 점원이 있는 게 아닐까 궁금해졌다.
“우선 좀 보고 결정하고 싶소.”
그러자 중년의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옆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시게. 원하는 물건을 가져다주지.”
말을 마친 그는 차를 한 잔 내온 뒤 옆쪽의 벽으로 다가갔다. 그가 손을 뻗어 두드리자 벽은 반짝거리는 빛과 함께 천천히 사라졌다. 이어서 세 명의 여인이 나타났는데 그녀들이 받쳐 든 백옥 쟁반 위에는 직경 2척 정도의 붉은색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세 개의 나무 상자는 크기가 똑같았지만 그 위에 새겨진 꽃무늬가 달랐다. 또한 각 나무 상자에는 크기가 다른 봉인이 붙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들은 한제가 뒤집어쓰고 있는 검은 도포를 바라보았다.
중년의 남자가 탁자 위의 나무 상자를 살짝 두드리자 그 상자가 중간에서부터 열렸고 주먹만 한 크기의 정교한 단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우, 이건 수마해 깊은 곳의 청강암(靑强岩)과 현무정(玄霧晶)을 융합하여 49일에 걸쳐 만들어낸 청현(靑玄) 3품 단로라네.”
모완의 단로는 2품인데 적어도 4품 이상은 되어야 천리단을 무리 없이 만들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기에 한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거두었다.
중년 남자는 웃으며 오른손을 휘둘러 탁자에 있던 나무 상자를 첫 번째 여인이 들고 있던 백옥 쟁반 위로 이동시켰다. 이어서 두 번째 여인을 건너뛰고 세 번째 여인의 쟁반 위에 있던 나무 상자를 탁자에 올려놓은 그가 웃으며 말했다.
“도우가 만들어내려는 것은 진귀한 단약인가 보군. 이것은 수마해에 존재하는 하급 영수 99마리의 내단(內丹)을 융합해 만든 백수(百獸) 단로라네. 이것으로 단약을 만들면 안에 깃든 영수의 단의 기운을 흡수해 더욱 품질이 높아지지.”
이번 나무 상자에는 붉은색 단로가 들어 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표면에 99마리의 흉악한 영수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생동감 넘쳤다. 또한 미약하게나마 영력의 파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봉인된 상태에서도 새어나오는 영기가 느껴질 정도이니, 봉인을 풀면 얼마나 강한 영기가 느껴질지 알 수 없었다.
이 단로에는 욕심이 생겼으나, 한제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러자 중년 남자가 나무 상자를 매만지며 말했다.
“도우도 알고 있겠지만 하급 영수는 결단기 수준에 필적하지. 우리 연기종에서 이 5품 단로를 만드는 데 들인 노력과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모를 걸세.”
한제가 시선을 거두고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가격은 얼마 정도인가?”
중년의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급 영석 10만 개가 기본이나 그에 필적하는 법보도 괜찮네.”
한제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그 높은 가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투사파 장로가 단로 하나를 구하느라 문파 내의 영석 반 이상을 썼다는 소문이 괜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중년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기 잔에 차를 따라 입술을 축였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제는 저물대를 두드려 교룡 가죽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교룡의 가죽? 중급 영수인 교룡의 가죽이라…”
중년의 남자는 놀란 기색으로 교룡의 가죽을 살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제는 여유롭게 찻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이 가죽이 어느 정도 있어야 백수 단로와 교환할 수 있지?”
중년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계산하는 듯하더니 한제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답했다.
“길이 1만 척 이상이라면 한 장으로도 가능하지.”
한제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곧 교룡의 가죽이 나타나 산처럼 쌓였다. 중년 남자는 황급히 눈앞의 교룡 가죽을 신식으로 살폈다. 틀림없는 1만 척에 이르는 한 장짜리 가죽이었다.
중급 영수는 꽉 찬 원영기 수준에 필적했다. 보고 들은 것이 많은 중년 남자도 이렇게 긴 중급 영수의 가죽을 본 적은 없었다.
깜짝 놀란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한제는 이미 붉은 나무 상자를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간 상태였다. 교룡의 가죽이 매우 얻기 힘든 보물이라는 것만큼은 한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귀한 보물을 내놓은 만큼 상대가 자신의 다른 보물에 욕심을 낼 수도 있었기에 한제가 그토록 서두른 것이었다.
더구나 교룡의 가죽보다도 더 놀라울 수 있는 영기가 깃든 액체의 존재라도 들킨다면 더욱 위험해질 수도 있었기에 한제는 재빨리 자리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연기각을 나선 한제는 맞은편 객잔에 앉은 자를 몰래 살폈다. 2층으로 올라갈 때 누군가가 자신을 엿보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상대의 체내에 신식을 심어두었는데 그 자가 객잔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곁에는 결단기 수준의 수련자가 세 명이나 붙어 있었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무 일도 없는 듯 이동해 몇 개의 모퉁이를 돌아간 후 발을 살짝 굴러 토둔술을 쓰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에서 하얀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강한 반발력으로 인해 토둔술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는 남투성 자체의 결계였다.
한제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는 조심스레 성문 쪽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머지않아 까무잡잡하고 마른 수련자 하나가 방금 한제가 토둔술을 사용하려 했던 자리에 나타났다.
그는 한제가 날아간 방향을 노려보며 입술을 핥았다. 그의 눈이 탐욕으로 번득였다.
이 수련자의 이름은 위삼으로 투사파에서 남투성으로 물건을 구입하러 온 자였다. 연기각에서부터 줄곧 멀리서 한제를 미행하던 그는 한제가 분명 방금 귀한 법보를 구입했으리라 확신했고 이를 뺏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상대의 수준을 짐작할 수가 없어 소리 전달 옥패로 동료들을 불러 모았다. 그의 요청에 도움을 주러 온 자는 열 명을 넘어섰다.
대부분은 축기 수준이었지만 검은 안개로 뒤덮여 있는 세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투사파의 장로들로 한제가 맞붙지 않고 물러난 것은 이 결단기 수련자들 때문이었다.
★ ★ ★
“저 자에게 분명 엄청난 보물이 있을 겁니다.”
위삼이 몸을 돌려 아첨하는 듯한 말투로 장로들에게 말했다.
“위삼, 허풍이 심하구나. 겨우 결단기 문턱에 걸친 수련자가 가진 보물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느냐?”
장로 중 하나가 거칠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역력했다.
“이 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