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82
찰나의 순간, 그의 몸을 뒤덮은 무궁무진한 불바다는 그의 갑옷에 흡수됐고 그 위에 새겨진 문양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는 주작이 되어 날아올랐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화염은 선회하는 주작과 함께 춤을 추듯 맴돌면서 어우러졌다.
한제에게 이 화염 형태의 천벌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한제의 눈에는 도전의 빛이 어려 있었다. 수련자로 지내온 평생을 그는 수차례 천벌을 마주했고 그때마다 엉망진창이 되어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굴복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 천둥과 불의 힘을 장악한 그는 그동안 억눌러온 저항심을 불태웠다.
천벌은 천도가 표현되는 방식의 일종으로 하늘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 천벌을 거역해야 했다.
끝없이 넓은 범위를 뒤덮은 천벌의 구름에서는 포효하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진정한 하늘의 위엄을 보여주겠다는 듯 격렬하게 꾸물거리던 구름 안에서 천위(天威)가 강림했다.
사실 한제는 이미 두 번이나 천위를 마주한 적이 있다. 그리고 두 번 다 그는 거역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뒤로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천둥, 불, 허상, 위엄… 그것뿐인가? 다른 방식의 천벌은 없는 것인가?”
한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꼼짝도 하지 않고 버텨 섰다.
하늘은 한제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갑자기 백 배는 더 짙어진 위엄을 내뿜었고 이에 허공에는 커다란 왜곡이 일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잡아 뜯는 것 같은 압박에 한제는 수십 척 아래로 가라앉았고 그의 갑옷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는 머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손을 크게 휘둘렀다. 순간 저 멀리 있는 자색 옷의 노인을 휘감은 긴 화염이 돌진해왔다.
노인은 극심한 부상에 가까스로 버티고는 있었지만 원신은 점차 색을 잃어갔고 수준은 정열기 초기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화염의 강이 한제의 근처에 이른 순간, 노인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원신을 폭발시켜 화염의 강에서 벗어나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죽여 버리겠다!”
노인은 생애 마지막 포효를 내지르며 한 줄기 짙은 살기가 되어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한제는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콰쾅!
순간 주위의 원력이 응집되어 거대한 손바닥을 이루더니 노인의 원신을 향해 튀어나갔다.
“9급 신종(神宗)의 역령인(役靈印)!”
손바닥을 본 노인은 크게 놀라 표정이 급변하더니 우뚝 멈춰 섰다. 허나 그 순간, 거대한 손바닥에 가격당해 한없이 밀려나더니 저 멀리 화염의 강과 충돌했다.
쾅!
짧은 굉음과 함께 노인의 원신은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한제는 노인이 마지막에 웅얼거렸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틈이 없었다. 그는 재빨리 결인을 그려 타오르는 화염의 강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 강은 곧장 그에게로 다가와 허공에서 응집되더니 새로운 산봉우리를 이루었다.
이 산봉우리에는 미세한 균열이 가득했고 그 균열을 통해 드러난 붉은 화염이 사방을 환하게 밝혔다.
그 순간에도 전보다 묵직해진 천위가 끊임없이 압박을 가해오고 있었다.
한제는 광기 어린 미소를 짓더니 두 손을 힘껏 내밀면서 낮게 외쳤다.
“산붕멸천(山崩滅天)!”
그 순간, 상공의 거대한 산봉우리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솟구쳐 올랐다. 어찌나 빠른지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한제는 그 뒤를 따르면서 산봉우리의 아래를 단단히 받쳤다. 마치 그가 산봉우리를 들고 하늘을 뒤덮은 구름을 향해 돌진하는 듯했다.
산봉우리는 위로 솟아오를수록 크게 무너져 내리면서 수많은 돌조각을 흩날렸고 이 돌조각들은 천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러나 한제는 멈추기는커녕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와 천벌의 구름 사이의 거리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한제의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렸고 그의 갑옷에서는 갈라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체내의 뼈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얼굴에는 푸른 정맥이 울룩불룩 돋아났다.
하지만 한제는 멈추지 않았다. 하늘과 여러 차례 맞붙어 매번 지기만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이 모든 상황에 저항하고 싶었다.
하늘로 솟구쳐 오를수록 무너져 내리던 산봉우리는 결국 와해되어 모든 돌덩이가 한 줌 재로 흩어졌다. 그러나 아직 산혼은 남아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거대한 화염의 산이었다. 산이라기보다는 산 모양의 새빨간 화염에 가까웠다.
그 무렵, 한제와 천벌의 구름 사이의 거리는 10만 척도 채 되지 않았다.
천위가 다시 한 번 증폭되기 시작했고 공간 자체에 균열들이 생겨났으며, 그 안에서 지독한 한기가 발산되었다.
한제가 떠받친 화염산은 마치 그 강력한 천위 아래 꺼져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점차 어두워졌다.
“얼마든지 덤벼라!”
한제는 크게 기합을 넣으며 두 손을 매섭게 내리치면서 체내의 원력을 뿜어내 추진력을 높였다. 이에 그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9만 척⋯⋯ 8만 척⋯⋯ 5만 척!
그 순간, 구름 안에서 포효하는 듯 콰쾅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에 화염의 산은 거세게 휘청거리다가 꺼져버렸다.
하늘과의 쟁탈
마지막 방어막을 잃은 한제를 향해 천위가 더욱 강력한 압박을 가했다. 이에 한제는 반항심 어린 얼굴로 이를 갈았다.
‘5만 척, 딱 5만 척만 더 간다면 공격할 수 있을 텐데!’
그때 그는 하늘의 위엄에 가격당하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 그의 왼쪽 눈에서는 화염이, 오른쪽 눈에서는 전광이 일었다. 그리고 한제가 두 팔을 벌리자 전광은 그의 오른팔을 타고 나가 주먹 크기의 번개 공을 형성했다. 동시에 화염은 왼팔을 타고 흘러 왼손에 하얀 화염 공을 응집했다.
“온 세상의 천둥이여, 천둥의 왕 이한제의 명에 따라 응집되어라!”
한제는 허공에 떠오른 채 고개를 번쩍 쳐들고 외쳤다. 순간, 그의 뒤에 한 마리 거대한 태고의 뇌룡이 나타났다.
온몸에 전광이 흐르는 녀석은 저항심 가득한 눈으로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이에 온 우주의 천둥번개가 나타나 한제의 오른손에 응집된 번개 공으로 모여들었다. 심지어 천벌의 구름도 그 전광에 그대로 응집되고 있었다.
이는 한제와 하늘이 천둥을 이용할 권리를 두고 겨루는 형국이었다. 무궁무진한 천둥번개가 응집됨에 따라 천벌의 구름 속 전광이 다시 한 번 흡수되기 시작하자 구름 속에서는 분노한 듯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어느 순간, 천둥번개는 우뚝 멈춰서더니 다시 천벌의 구름으로 돌아가려 했다.
“천도 천벌! 정말 천도가 있어 나를 소멸시키려거든 난 그 하늘을 소멸시키고 말 것이다! 이 이한제는 천도도 천벌도 믿지 않는다! 천도란 스스로를 가두는 도일 뿐이고 천벌이란 스스로를 가두는 벌일 뿐이다.”
천둥번개가 구름으로 돌아가는 것을 본 한제는 왼손을 움켜쥐며 낮게 외쳤다.
“온 세상의 불이여, 내 주작의 명에 따라 응집되어라!”
그 순간, 한제의 뒤에 나타난 뇌룡의 허상 옆에 하얀 화염이 나타나더니 활활 타오르면서 거대한 주작이 되어 날개를 퍼덕이며 날카롭게 울었다.
“캬오오오!”
순간 공간을 가득 채운 불바다가 한제의 왼손을 향해 몰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천벌의 구름 속에서도 대량의 전광과 함께 화염도 내리 떨어지기 시작했다.
화염은 깔때기 모양으로 한제의 왼손에 응집된 화염 공에 흡수되었다. 한제는 천둥만이 아니라 불을 놓고도 하늘과 싸우고 있는 셈이었다.
지금 그는 오른손에는 천둥의 공을 왼손에는 화염의 공을 쥔 채 하늘의 힘을 흡수하면서 천벌과 쟁탈전을 하고 있었다.
천벌의 구름 속 포효가 더욱 또렷해지던 그때, 핏빛 안개가 천벌의 구름에서 새어 나왔다. 다섯 번째 형태의 천벌이었다.
그 안개가 나타난 순간, 한제는 고개를 번쩍 쳐든 채 1천 척 크기의 천둥의 공과 불의 공을 가지고 천벌의 구름을 향해 달려들었다.
4만 척⋯⋯ 3만 척⋯⋯ 1만 척!
천벌의 구름과의 거리가 1만 척 이내로 접어든 순간, 짙은 피비린내 어린 안개가 한제를 향해 훅 달려들었다.
멀리서 보면 한제가 그 피비린내 나는 안개에 잡아먹힌 것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순간 온 우주는 고요해졌고 흡혈마수는 자신의 동족을 데리고 초조한 듯 다가와 천벌의 구름을 이리저리 살폈다. 하지만 감히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했다. 천벌의 힘을 감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를수록 초조해진 흡혈마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천벌의 구름을 향해 달려들려 했다.
한데 그때, 낮은 기합 소리가 구름 아래 붉은 안개 안에서 울려 퍼졌다. 뒤이어 그 붉은 안개에서 전광이 번득이고 불바다가 휘몰아치는가 싶더니 이내 붉은 인영 하나가 튀어나왔다.
붉은 안개에서 벗어난 한제의 얼굴은 창백했고 두 눈에는 서늘한 살기가 가득했다. 그는 곧장 천벌의 구름으로 달려들어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천벌의 구름 안으로 진입한 순간, 한제는 엄청난 위엄을 느끼고는 두 손을 힘차게 휘둘러 천둥과 불을 교차시켰다.
콰쾅!
하늘을 찢어발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천둥과 불은 끊임없이 천벌의 위엄에 부딪혔고 이에 드넓은 범위에 퍼져 있던 천벌의 구름은 급속도로 수축했다. 동시에 천벌의 구름 안에서 흐르는 전광과 타오르는 화염도 점차 축소됐고 포효는 더욱 격렬해졌다.
바로 그때, 천벌의 구름이 대대적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한 쌍의 형태 없는 거대한 손이 끊임없이 그것을 잡아 뜯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천벌의 구름 안에서 그 강력한 힘을 또렷하게 느낀 한제는 자신도 잡아 뜯길 듯한 예감에 재빨리 뒤로 물러나려다가 경악한 얼굴로 우뚝 멈춰섰다.
구름 속 저 너머에 길이가 1백 척에 달하는 균열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서 짙은 안개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그 균열이 이 천벌의 구름의 근원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잠시 망설이던 한제는 결연한 얼굴로 눈 깜짝할 사이 균열 근처에 이르렀다. 기이하게도 그곳에서는 좀 전까지 느꼈던 잡아 뜯기는 듯한 느낌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이 기이한 현상에 한제는 더욱 신중해졌고 우선 신식 한 줄기를 그 균열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 순간, 한제는 몸을 격렬하게 떨기 시작했다.
그 균열 안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파란 하늘과 맑은 바다, 가득한 선기, 드넓은 땅은 한눈에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제의 눈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대지 위의 거대한 석상이었다. 다름 아닌 고신의 석상으로 미간에 여덟 개 반점이 있었다. 그 고신은 두 겹으로 봉인된 상태로 죽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제는 그 고신으로부터 흘러넘치는 살기를 똑똑히 느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 대지에는 열 개가 넘는 고신의 석상이 있었고 그 너머로는 1백 개에 달하는 고요와 고마의 석상도 서 있었다.
그중 한 고마의 석상 머리 위에는 도포를 입은 청년 하나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거울을 든 채 끊임없이 뭔가를 셈하고 있었다.
“마 사백이 말씀하신 천벌의 입구는 분명 이쯤 어디일 텐데⋯⋯?”
그때, 고개를 번쩍 든 청년이 짧게 탄식하더니 화색이 도는 얼굴로 한제의 신식을 바라보았다. 번득이는 그의 눈에서 한 줄기 흑청색 빛이 발사됐다.
한제는 즉시 균열 안으로 들여보낸 신식을 끊어낸 뒤 온몸을 천둥과 불로 감싼 채 천벌의 구름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흡혈마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허나 곧 그의 안색이 급변했다. 균열 안으로 들여보냈던 신식이 이미 소멸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이 한제는 더욱 빠른 속도로 흡혈마수 곁에 이르렀다. 그는 재빨리 소매를 휘둘러 허공에 균열을 낸 후 그 안으로 흡혈마수 무리를 들여보낸 뒤 흡혈마수의 등에 붙였던 노란색 부적을 뗐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부적을 자신의 몸에 붙였다. 그러자 그의 전신에서 회오리가 일었고 그는 몇 배나 빨라진 속도로 돌진했다.
한제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천벌의 구름은 끊임없이 수축한 끝에 사라지려 했다. 허나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수축해 한 줄기 흑청색 빛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흑청색 빛이 나타난 순간,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기운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고 천벌로 형성된 이 분리된 공간은 순식간에 와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