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88
격렬한 소리와 함께 대지는 더욱 격렬하게 붕괴했고 그 아래 허무에는 거대한 회오리가 나타나 떨어지고 있는 돌조각과 가루들을 모두 빨아들였다. 그의 손짓은 이 우계의 조각만이 아니라 가뜩이나 불안정한 상태였던 우계 전체를 와해시킨 것이다. 이에 먹먹한 포효가 끊임없이 들려오면서 우계는 당시의 뇌계처럼 끊임없이 갈라지고 무너졌다.
“이한제, 여태까지 네가 해온 모든 것에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구나. 나중에 또 연이 닿는다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쯤 나는 천도를 이루는 데 성공할 수 있겠지! 크하하하!”
천운자는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빠져나가려 했다. 허나 그때, 방금 막 속박에서 벗어난 청룡성황이 두 눈을 서늘하게 번득이면서 결인을 그려 위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뒤에 허상으로 나타난 청룡이 입을 쩍 벌려 포효하면서 천운자를 집어 삼킬 듯 돌진했다.
청룡성황은 오른손으로 가슴을 두드려 피를 한 움큼 토해냈고 이 피는 한 줄기 화살이 되어 청룡의 체내에 녹아들었다. 그러자 청룡의 전신에는 핏빛이 맴돌았다.
“캬오오오!”
용은 포효를 터뜨리며 천운자를 단번에 따라잡더니 한 입에 집어삼켰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청룡은 흩어져 사라졌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천운자의 미간에서는 봉인 두 개가 해제되어 있었다.
천운자는 피를 토해내며 청룡성황을 노려보더니 거칠게 웃었다.
“크흐흐. 과연 사성종 최강의 성황답구나! 그 실력을 직접 확인하게 되어 기쁘다.”
말을 마친 그는 몸을 훌쩍 날려 다시 먼 곳으로 달아났다.
주위의 사성종 장로들이 뒤쫓으려 했지만 청룡성황은 이들을 만류했다.
“그냥 두게! 저자는 깊고도 강한 수준을 숨기고 있어. 더 압박한다면 사상자가 많이 생겨날 터. 그럴 필요는 없다. 게다가 난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탓에 제힘을 내기도 힘들어.”
그 말에 사성종의 장로들은 공손히 허리를 숙여 답했다.
“네가 새로운 주작이냐?”
청룡성황은 한제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한제는 공손히 포권을 했다.
“청룡성황을 뵙습니다!”
청룡성황은 한제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성종은 혈통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따로 고맙다는 말은 않겠다.”
“천운자가 산 아래에서 가져간 것은 대체 뭡니까?”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궁금했던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천도의 피다!”
답을 하는 동안 이오와 호연에게로 시선을 돌린 청룡성황의 눈동자가 졸아들었다.
“천도의 피?”
한제가 찬 숨을 들이마셨다.
“난 당시 우계가 무너지자마자 중현자 등과 함께 가장 먼저 이곳으로 왔다. 선계의 선술과 법보를 얻기 위해서였지. 허나 여기서 발견한 것은 수많은 신비로운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 때문에 선계가 파괴됐음을 알게 됐지!”
청룡성황이 설명하는 동안에도 붕괴는 점점 격렬해졌고 일행은 허공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선계가 무너지면서 본디 선제 청림의 봉인이 찍혀 있던 이 쇄산(鎖山)에는 균열이 생겨났다. 당시 난 중현자의 유혹에 함께 그 안에 들어갔다가 뜻밖의 사고로 갇혀 버렸지. 이 산에 찍힌 봉인 때문에 나의 구조 요청은 특수한 사람만 들을 수 있게 됐다.”
청룡성황은 한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저 쇄산 아래에서 선제 청림이 봉인해둔 한 덩어리의 피를 발견했다. 계속해서 연구했지만 그 내력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 그러다가 네 번째 천쇠를 겪게 되었는데 당시 내 상태로는 견뎌낼 수가 없었어. 심각한 위기가 닥쳐온 순간… 나는 그 피를 마셨다.”
청룡성황의 눈에는 아직도 한 줄기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단 한 모금을 마셨을 뿐인데 난 의식을 잃었고 다시 깨어났을 때 네 번째 천쇠는 지나간 뒤였다. 허나 네 번째 천쇠를 겪고 난 수준으로도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어! 그저 그 봉인의 힘 아래 점차 약해지기만 했지.”
“천도의 피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제가 불쑥 물었다. 그 피에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철검에 묻어 있던 핏자국과도 비슷한 듯했고 8성급 고신의 머리에서 얻은 그 결정체의 힘과도 비슷한 것 같았다.
“그건 당시 선제의 사람이었던 자에게 물어야겠지!”
청룡성황이 이오와 호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군.”
이오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선계가 무너진 진짜 원인을 추측하고는 있었지만 청룡성황의 말에 점차 확신이 들었다.
“선계에 재난이 닥치기 1백 년 전쯤, 우의 선계에 붉은 비가 내렸다. 피와 같은 그 빗속에는 기이한 힘이 깃들어 있었고 스승님은 그것을 천도의 피라 불렀다.”
곁에 있던 호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시 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스승님만이 알고 계셨지. 천도는 일종의 생령이라는 것을! 또한 오래된 원고 시대의 선역이 아직 존재할 당시 천도는 이미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도 하셨다.”
이오가 아내의 말을 받았다.
“살아 있다 하더라도 중상을 입은 것은 확실해. 우계에 떨어진 물건에는 천도의 혈흔이 남아 있었다. 그 천도의 피를 모으고 끊임없이 제련하여 주먹만 한 덩어리로 만드신 스승님은 그 후 여러 사람에게 그것을 먹여 보았지. 허나 그것을 먹은 자들은 모두 핏물로 변해 죽었고 이후로는 누구도 감히 그것을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말을 마친 이오는 기이한 눈빛으로 청룡성황을 바라보았다.
“스승님은 우리 우계 안에 천도의 피가 떨어졌다면 나머지 세 개의 계에도 천도가 남긴 물건이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셨지.”
이오는 한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분명 놀라운 이야기야. 하지만 천도라는 존재를 한 사람이라고 상정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거다. 중상을 입고 조각난 몸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원신도 찢겨 수많은 갈래로 흩어진 거지. 허나 이는 그저 오랫동안 연구하신 스승님이 내린 결론일 뿐, 난 그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아.”
그 무렵, 일행은 어느덧 우의 선계의 대문인 평평한 대에 이르러 있었다. 그때, 청룡성황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도의 피를 훔쳐 간 그는 이를 또렷하게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 허나 그는 그 천도의 피 절반을 내가 마셔버렸다는 사실은 모른다. 반을 마셨는데도 이전과 크기가 똑같은 이유는 마신 만큼을 내 피로 채웠기 때문이지. 그자가 그것을 가지고 과연 어떻게 수련을 할지 궁금하구나!”
청룡성황의 어두운 얼굴에 기이한 미소가 드리웠다. 그 웃음을 목격한 사람들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주작, 넌 나와 함께 사성종으로 가서 지난 시간 동안 우리 사성종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라. 오늘 너만 이곳에 온 것을 보니 나머지 성황들은 이미 모두 죽은 모양이구나.”
청룡성황의 덤덤한 목소리에서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제는 아무런 내색도 않은 채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이오와 호연 곁에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청룡 선배님, 제게는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곧장 사성종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뭐라?”
청룡성황은 한제를 바라보았고 한제는 그런 상대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잠시 후 청룡성황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해라!”
말을 마친 그는 몸을 훌쩍 날려 그 평평한 대에 놓인 거대한 우계의 대문으로 향했다. 그 뒤로 사성종의 장로들이 따랐다. 몇 명은 고개를 돌려 한제를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특히 주작성종의 장로들이 그랬다.
“돌아올 때 주작의 태고 성물을 가져오는 것을 잊지 마라!”
멀리서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청룡성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성종 사람들이 떠나고 난 뒤 묵묵히 평평한 대 위에 선 한제의 귓가에는 저 아래 우계가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한제는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청룡성황을 구한 것은 선대 주작성황의 은혜에 대한 보답의 일종이었다. 또한 사성종에 강력한 존재가 있어야만 앞으로 이어질 난리에서도 사성종이 계속해서 그 역사를 이어나갈 수 있을 터였다.
주작성종 전체에서도 몇몇 장로를 빼면 자신을 진정한 성황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것을 한제는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장로 아래의 제자들이 좀 더 진심으로 자신을 우러러보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천천히 바꿔갈 수 있겠지만 탁삼에 대한 불안함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이대로 가다가는 주작성종까지 피해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선대 성황에 대한 은혜를 원수로 갚는 꼴이다.
아까 청룡성황이 천운자를 뒤쫓지 않는 것을 본 순간부터 한제는 그가 상당히 꾀가 깊은 사람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제 자신이 간파하고 꿰뚫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어진 천도에 관한 이야기에 그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허나 그 충격은 청룡성황이 떠나기 직전 남긴 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마지막 말은 청룡성황이 한제의 심사를 다 꿰뚫어보고 있으며, 주작성황이라는 한제의 신분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주작의 태고 성물뿐이었다. 그 성물을 당분간은 네 손에 둘 수 있지만 너는 우계를 떠나온 뒤 곧장 사성종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뜻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주위에 많은 장로들이 있었고 방금 막 속박에서 벗어나 힘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당장 태고의 성물을 내놓으라고 했겠지!’
한제는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청룡성황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자신이 주작성황의 자리에 머물 마음이 없는 이상 그 성물을 계속 가지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한제 자신도 그 성물을 가지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한데 청룡성황은 나머지 세 성황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묻지도 않았고 그들이 죽었을 것이라 거의 확신했다. 마치 그들의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기까지 했다.
이에 한제의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주작성황이 사성종을 위해 영겁의 세월 동안 고통을 감수하며 사성종을 지켜온 것도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백호성황의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는 것도 청룡성황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란 말인가?’
한제의 표정에서 그의 생각을 읽어낸 사도환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망할 사성종에 뭐 그리 신경을 쓰느냐? 청림이 살아나면 우리는 온 우주를 호령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제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은 천도의 피가 매우 비범한 물건이라 말씀하셨다. 그것을 삼키고도 죽지 않았다면 성정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을 거야! 이전에 보았던 청룡성황은 호방한 사내였다고 기억하는데 오늘 본 그자는 성격이 상당히 음침해 보이더구나.”
이오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붕괴하고 있는 우의 선계에서 존전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초조하고 걱정되긴 했지만 그는 한제를 재촉하지는 않았다.
결정의 빛
한제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다가 무릎을 꿇고 앉아 우계의 대문을 향해 머리를 세 번 찧어 절했다.
‘선대 성황폐하, 그 은혜는 마음 깊이 새겨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주작성종에 어려움이 닥친다면 목숨을 걸고 반드시 도울 것입니다.’
고개를 든 한제의 눈에 선대 성황이 떠나가던 당시의 광경이, 그리고 그 자애로운 웃음과 피곤해 보이는 표정이 하나도 빠짐없이 떠올랐다.
‘도저히 사성종을 부흥시킬 수 없을 것 같다면 정말로 이 하늘이 우리 사성종을 소멸시키려 한다면⋯⋯ 그렇다면 굳이 힘겹게 버텨낼 필요는 없다.’
선대 성황의 그 말이 귓가에서 울렸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이오와 호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선배님, 존전을 찾으러 가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