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89
그의 주위에는 이오와 호연, 사도환만이 아니라 은시도 있었다. 은시는 시종일관 한제의 곁에 붙어 있었다.
“이한제⋯⋯.”
호연은 방금 본 광경을 통해 한제의 심경이 얼마나 복잡할지 알 수 있었다.
“괜찮습니다.”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슬픔을 감췄다.
이오는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평평한 대 아래로 몸을 날렸고 호연은 한제를 한 번 더 살핀 그 뒤를 따랐다.
사도환 또한 한제의 어깨를 토닥여준 뒤 그와 함께 몸을 날렸고 은시도 한제를 뒤쫓았다.
우계는 끊임없이 붕괴되고 있었다. 곳곳에서 조각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심지어 이미 완전히 무너져 내려 거대한 회오리가 된 조각도 보였다.
회오리들은 흩어지고 있는 조각의 잔해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이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허공을 가로질렀다.
이오는 머릿속에 남은 당시 선계의 기억을 뒤져가면서 무너지는 조각들을 피해 이동했다. 그리고 반 시진 정도 지났을 무렵, 그의 두 눈이 굳어졌다.
“저기다!”
이오의 손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을 본 한제가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무너지는 조각 아래로 한 층의 대륙이 어렴풋이 보였다.
한데 그 조각은 한제에게는 무척 낯이 익은 곳이었다. 바로 주일의 타오르는 영혼이 손태와 일전을 벌인, 바로 그 조각이었던 것이다.
“붕괴한 우계는 수없이 많은 조각으로 갈라졌고 그중 일부는 겹치기도 했다. 당시 우계 존전의 방향을 따져볼 때 저 중첩된 조각에 있는 것이 틀림없어!”
말을 마친 이오는 오른손을 뻗어 꾹 눌렀다. 순간 푸른 물안개가 나타나 쏘아져 나갔고 무너지고 있던 조각은 광풍에 휩쓸린 낙엽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아래 가려져 있던 중첩된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행은 곧장 그 조각에 내려섰다. 그곳 역시 무너지는 중이라 대지의 진동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우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면 이곳은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모든 것을 그 빨아들일 것이다.”
이오는 오른발을 굴러 반경 1천 척 정도의 대지를 조각냈다. 그 충격에 대량의 돌조각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를 비롯한 일행은 무너져 내린 이 1천 척 반경의 조각을 따라 아래로 가라앉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는 그 아래 겹쳐져 있던 또 다른 조각이 들어왔다.
그리 크지 않은 이곳은 아직 붕괴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듯 진동은 미약했다. 하지만 신식을 펼쳐 훑어본 이오는 이곳에서도 존전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래쪽에 또 다른 조각이 있을 거야!”
그는 곧장 오른발을 다시 굴렀고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조각도 붕괴하기 시작했다.
표정이 급변한 이오는 소매를 크게 휘둘러 일행들을 이끌고 재빨리 후퇴했다.
그들이 뒤로 물러나기가 무섭게 좀 전에 이오가 발을 굴렀던 곳에 균열이 일었다. 한데 다른 균열과 달리 부서져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쪽으로 움푹 파이면서 눈 깜짝할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뒤이어 거대한 회오리가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회오리 안쪽은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한제 일행은 그 안에서 완전히 무너져 버린 조각을 볼 수 있었다.
파괴되어 빨려 들어간 조각 중에는 푸른빛을 띤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전혀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허무의 깊숙한 안쪽에서 느릿하게 표류하고 있었다.
“우계의 전존(殿尊)!”
이오는 표정이 변하더니 곧장 그 회오리 안으로 돌진했고 한제 등이 뒤를 따랐다. 한제의 눈 역시 그 푸른 건물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한제는 회오리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흡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이었다면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버렸을 테지만 지금은 왼쪽 눈을 번득여 온몸에 불바다를 피워 올려 화인(火人)이 되더니 단번에 허무 속을 표류하고 있던 건물에 접근했다.
다른 사람들도 회오리에서 빠져나와 대전으로 돌진했다. 특히 이날만을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오의 눈에는 감격의 빛이 번득였다.
한제 역시 마음이 진동했다.
대전은 높지는 않았지만 푸른빛에 휩싸인 채 엄숙한 기운을 풍겼고 특히 그 대문에 창공을 가르는 용과 같은 기세의 필체로 쓰인 청(靑) 자는 묵직한 압박감을 주었다.
이오는 한 걸음 다가가 대전의 문을 밀었다.
문이 느릿하게 열리면서 안쪽으로부터 푸른빛줄기들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전방의 허무마저 푸른빛으로 물들였다.
한제도 곧장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대전 안은 텅 빈 상태로 지면의 진에서만 푸른빛이 끊임없이 번득이고 있었다.
이오는 감격에 겨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지면의 진을 바라보았다. 호연은 곧장 그 진 옆으로 다가가 한참이나 살피더니 다소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런 진은 처음이야. 역혼(逆魂)의 효과가 있어서 사람의 혼백을 육체로부터 떠나가게 할 수 있어!”
“선체 청림의 육신을 꺼내주십시오!”
한제 역시 고개를 숙여 그 진을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말했다.
이오는 허공에 균열을 내더니 그 안에서 자신이 맡아두었던 청림의 육신을 꺼냈다.
여전히 검은 갑옷 차림에 미간에는 붉은 점을 하나 가진 청림은 두 눈을 굳게 감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청림의 육신을 호연의 지시대로 진법 중앙에 놓은 이오는 고개를 들어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말없이 저물공간에서 청상의 육신과 결정(結晶)을 하나 꺼냈다. 이오와 호연은 한제의 부탁으로 주작성종에 있는 동안 연구한 덕에 이 결정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두 육신의 머리를 맞대!”
호연의 외침에 한제는 청상의 시체를 청림의 육신과 정수리가 맞닿도록 일(一)자 놓았다. 그러자 청상의 육신과 함께 나온 결정이 두 사람의 정수리 사이에 떨어지더니 푸른빛을 발산했다. 이 빛은 진법에서 발산된 푸른빛과 융합했고 순간적으로 사방을 환하게 비추었다.
이오와 호연은 서로를 마주보더니 청림의 육신 양편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고 한제는 두 사람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청상의 옆에 앉았다. 금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덕분에 운선 부부의 행동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린 것이다.
“한 사람이 더 필요해. 주일이 적당하겠군.”
이오는 격앙된 감정을 애써 누르며 덤덤하게 말하더니 저물공간을 열었다. 순간 그 안에서 한 줄기 검광이 튀어나오더니 이내 주일이 나타났다.
한없이 부드러운 눈으로 청상을 바라보며 그는 이오의 분부에 따라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시종일관 그녀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시작하지!”
호연이 긴장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며 외쳤다. 그녀는 이 진을 자세히 연구할 시간이 없었기에 성공도 자신할 수 없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도환을 바라보았다.
“잠시 우리를 좀 보호해주십시오.”
사도환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라!”
은시(銀屍)에게는 따로 분부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마음속으로 명을 내리기만 하면 됐다.
호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한 줄기 빛이 중앙의 결정에 떨어졌다.
결정은 푸른빛을 더욱 휘황찬란하게 내뿜어 진 전체를 뒤덮었다. 동시에 한제의 오른손이 청상의 팔을 건드렸고 그 순간 청상의 팔에 한 줄기 상처가 났다. 원력이 녹아 들어감에 따라 그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결정 위로 떨어졌다.
이제 우계의 존전과 결정, 청상의 피까지 세 가지 요소가 갖춰진 상태였다.
청상의 피를 흡수한 결정의 푸른빛은 곧 붉게 변하더니 사방을 맴돌면서 콰쾅 하는 소리를 냈고 이에 진은 활성화될 조짐을 보였다.
그때, 한제가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그의 왼쪽 눈에서 화염이 번득였다. 그는 곧장 청림을 가리키며 낮게 외쳤다.
“성물의 피, 흡수!”
그 순간, 청림의 몸이 바르르 진동하면서 미간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선혈이 빠져나와 한제에게로 날아갔다.
성물의 피로 이루어진 봉인이 사라진 그 순간, 검은 기운 한 줄기가 청림의 얼굴을 뒤덮더니 마기를 내뿜었다.
그러나 진은 여전히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활성화될 조짐만을 보일 뿐이었고 오히려 청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만 짙어져갔다. 고마 타지아가 금방이라도 다시 나타날 것만 같았다.
이오와 호연은 물론 한제의 표정 역시 어두워졌다. 반면 주일은 그런 상황이야 어쨌건 오로지 청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해! 우리가 무언가를 빠뜨린 모양이야!”
호연이 외쳤다.
“대체 뭘 빠뜨린 거지?”
이오는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절망이 밀려왔다. 호연은 끊임없이 마기를 풍기고 있는 청림을 바라보다 쓰게 웃었다
한제는 덤덤해 보였다.
‘해야 할 것들은 다 했다. 세 개의 요소도 모두 갖추었어. 한데 청림이 아니라 고마 타지아만 깨어날 분위기로군. 도대체 뭐가 빠진 거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청림, 나에게 구해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는데 어째서 실패한 것이냐!”
한제는 이를 악문 채 상대의 신분도 개의치 않고 외쳤다. 어차피 고마가 깨어난다면 모두 이곳에 묻히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한제는 오른손을 들고 성물의 피를 가리키며 다시 한 번 청림을 봉인하려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선대 성황과 같은 힘이 없었으므로 과연 그 봉인이 성공할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스승님! 대체 무엇이 부족한 겁니까?”
이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통스러운 얼굴로 외쳤다. 거의 광기에 어린 모습이었다.
한데 그때, 머뭇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부족한 것은 어쩌면⋯⋯ 이 씨 성을 가진 이의⋯⋯ 피일지도⋯⋯?”
한제는 몸을 홱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인 은시를 쳐다보았다. 처음으로 입을 연 그녀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오와 호연 역시 은시를 바라보았다.
“계속 말해봐라!”
한제가 외쳤다.
“이전에 화비가⋯⋯ 주인님은 이 씨 성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선제의 동굴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은시는 방금 막 말을 배운 사람처럼 어눌하고 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 무렵, 청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짙은 마기는 거의 절정에 이르면서 고마의 형상을 이루었다. 타지아가 금방이라도 깨어날 것만 같았다.
그때, 한제가 곧장 혀를 깨물더니 결정을 향해 피를 뱉어냈다. 그러자 진에서 번득이던 푸른색과 붉은색의 빛이 급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흡입력을 방출했다.
이오와 호연은 체내의 선력이 흘러나가 진에 흡수되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매우 허약한 상태로 변해 얼굴도 창백해졌다. 한제 또한 체내에 얼마 안 남았던 선력이 모두 빨려 들어간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