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9
또 다른 장로가 음산한 목소리로 일갈하며 안개 속에서 초록빛이 도는 마른 손을 뻗었다.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는 그 마른 손이 다가오자 위삼은 창백해진 얼굴로 철퍼덕 소리가 나도록 바닥에 꿇어앉아 와들와들 떨었다.
“저, 정말입니다. 저 자의 수준을 잘못 파악하긴 했지만 분명.”
끔찍한 공포에 그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주위의 투사파 동문들은 무심하게 이를 지켜봤다. 심지어 몇몇은 위삼의 불행을 고소해 하는 듯했다.
위삼은 점점 더 심하게 떨었다. 그 마른 손이 눈앞에 닥친 순간, 위삼은 머릿속에 벼락이 번쩍 스쳐가는 것을 느끼며 소리쳤다.
“부, 분명 저자가 연기각 점원에게 5품 이상의 단로는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는 순전히 위삼이 지어낸 말이었으나, 놀랍게도 세상에서는 이런 우연이 일어나기도 한다.
마른 손은 우뚝 멈춰 서더니 다시 음산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5품 단로? 위삼, 내게 거짓말을 했다가는 죽음뿐임을 알고 있겠지?”
위삼은 이를 악문 채 고개를 쳐들었다.
“제가 어찌 감히 목숨을 걸고 장난을 치겠습니까.”
그는 덜컥 겁이 났으나, 당장은 죽음을 모면해야 했다.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직접 가서 보면 알겠지.”
줄곧 말이 없던 세 번째 장로가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세 사람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한제를 뒤쫓았다. 나머지 제자들도 분분히 그 뒤를 따랐다. 위삼 역시 식은땀을 훔쳐내며 황급히 따라 붙었다.
세 명의 장로는 투사파를 대표하여 남투성을 장악하고 있는 세 종파와 협상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와있는 상태였다. 지금은 일을 마친 후로 누구도 세 종파의 인정을 받게 된 투사파의 세 장로를 막지 않았다.
반면 한제는 중간 중간 검문을 받고 영패를 확인받아야 했다. 이에 한제는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했고 추격자까지 점점 늘어나자 더 이상 검문소에서 멈추지 않고 무작정 돌진했다.
한제가 성문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투사파 수련자들도 성문 밖으로 나왔다. 또한 잠시 후 남투성 세 종파의 제자들과 몇몇 결단기 수련자도 성문에 나타났다.
그들은 방금 상대가 성 안에서 결투를 벌이지 않는 이상 저들을 가로막지도 돕지도 말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한제는 성 밖으로 나가자마자 토둔술을 펼쳐 순식간에 달아났다.
결단 (5)
추격 중이던 투사파 장로 중 하나가 손을 휘두르자 거울이 나타났다. 그 장로가 영기를 토해내자 영기는 거울을 감쌌다.
이어 거울 안의 수정이 번쩍였고 곧 긴 무지개가 뻗어 나와 허공에서 몇 바퀴 도는가 싶더니, 어딘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세 사람은 그 빛을 따라갔다.
투사파의 제자들도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세 명의 장로와 함께 사냥을 하는 듯한 느낌에 그들은 마음 깊이 감격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끈질긴 추격에 짜증이 난 한제는 콧방귀를 뀌더니 위삼의 몸에 심어둔 신식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위삼이 갑자기 비참한 신음과 함께 선혈을 토해내더니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곁에 있던 동문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제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계속해서 도망치면서도 신식을 펼쳐 투사파 제자들을 공격했다.
툭또 한 명의 투사파 제자가 목숨을 잃고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추격하던 투사파 제자들은 그 자리에 멈춰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오직 세 장로들만이 조금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거울의 빛을 쫓았다.
한 장로가 손을 휘둘러 거대한 인장을 소매에서 꺼내 던졌다. 허공에서 빠르게 몇 바퀴 회전하던 인장은 거대한 산봉우리가 됐다.
우르릉
장로가 산봉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산봉우리가 순식간에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한제는 재빨리 방향을 틀어 산봉우리를 피했다. 그러자 산봉우리를 만들어낸 장로는 더욱 차가워진 얼굴로 연거푸 손가락질을 했고 거대한 산봉우리는 연속적으로 바닥을 찍어 눌렀다.
그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땅에서 솟아 올라와 냉랭한 눈빛으로 세 사람을 훑은 뒤 빠르게 날아갔다.
“목숨이 아깝다면 연기각에서 산 법보를 내놓아라!”
거울을 쥐고 있던 장로가 두 눈을 번득이며 날카롭게 외쳤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눈부신 빛이 나타나더니 어마어마한 검의 기운이 닥쳐왔다.
깜짝 놀란 장로는 뻣뻣하게 굳은 몸을 왼쪽으로 틀었지만 가슴팍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가슴으로 들어와 등을 꿰뚫은 듯한 느낌이었다. 한 움큼의 선혈이 가슴팍에서 터져 나왔다.
“컥, 이건 대체 무슨 비검이지?”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두려운 듯 중얼거렸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바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 분명했다. 나머지 두 장로도 놀란 얼굴로 방어용 법보를 꺼내들었다. 그들의 형형한 눈빛이 한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한제는 안타까운 듯 입맛을 다시며 오른손을 흔들었다. 수정 비검이 번득이며 그의 손에서 다시 나타났다.
“꺼져라!”
한제는 냉랭한 눈빛으로 한 마디 내뱉은 뒤 빠르게 앞을 향해 날아갔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세 장로의 시선이 한제의 비검에 닿았다. 그들의 눈에 탐욕이 깃들었다. 저토록 예리한 비검은 드물었다.
세 사람은 말없이 다시 한제의 뒤를 쫓았다.
부상을 입은 그 장로는 단약으로 상처를 회복시키고는 몇 개의 방어용 법보로 주변을 철통같이 방비한 후에야 한시름 놓고 뒤를 쫓았다. 또한 그는 옥패 하나를 이마에 대더니 허공으로 던졌다. 옥패는 몇 번 번쩍이더니 사라져버렸다.
한제는 신식을 통해 세 사람이 아직도 자신을 뒤쫓고 있음을 확인했다. 지금의 한제로서는 한 명도 아닌 세 명의 결단기 수준 장로들을 당해내기 쉽지 않았다.
하나 그가 결단기에 진입하기만 하면 저 셋을 죽이는 것쯤은 개미를 눌러 죽이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 될 것이었다.
한제는 꼬박 하루를 도망 다니느라 다소 힘에 부쳤다. 수정 비검으로 기습을 해보기도 했으나, 상대의 공고한 방어에 별다른 효과는 보지 못했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 한제는 세 사람을 노려보며 극의 신식으로 번개를 일으켰다. 세 장로는 순간 눈앞에 붉은 번개가 번쩍하는 것을 보았고 머리를 거대한 망치로 두드려 맞은 듯 그들은 코와 입에서 피를 흘렸다.
특히 이미 부상을 입었던 장로는 본래의 상처에서 다시 한 움큼의 피가 터져 나왔다. 만약 다른 두 장로가 부축해주지 않았다면 그는 비검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었다.
“일반적인 축기 수련자가 아니야. 결단기를 코앞에 둔 자인 게 분명해!”
그는 깊은 숨을 몰아쉬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저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해! 저 자가 결단기에 이른다면 돌아와서 우리를 죽이려 할 거야!”
“장교께 알렸으니 곧 지원이 올 거야.”
한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축기에 불과한 지금 그의 수준으로는 원래대로라면 극의 신식을 쓴다고 해도 결단기 수준 수련자들에게 효과도 낼 수 없었다. 다만 황천승규결이 성공한 덕에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본 것이었다. 하나 상처를 입히는 정도에 불과할 뿐 그들을 극의 신식으로 죽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상대방이 입은 상처는 겉으로 보기에는 심한 것 같아도 결단기 수준 수련자들은 잠깐의 안정만 취해도 금세 상처를 회복할 수 있었다. 만약 상대가 한 사람 뿐이라면 마혼의 힘을 빌려 싸워볼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은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전속력으로 이동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한제는 이미 몇 차례나 극의 신식을 사용해 공격했으나, 그때마다 적들의 속도를 약간 늦추는 데 그쳤다. 그는 신식으로 주변을 훑으면서 잠시 멈춰 이틀째 자신을 뒤쫓고 있는 적들을 바라보았다.
한제가 갑자기 멈춰 서자 세 장로는 왠지 불길했다.
바로 그때, 한제가 오른손을 하늘 높이 뻗었다. 그의 눈은 서늘하게 번득였고 머리카락은 바람에 따라 흩날렸으며, 입고 있는 옷도 바람에 펄럭였다. 또한 발밑을 받치고 있는 수정 비검에서도 서늘한 빛이 번득였다.
순간, 푸른색 화염이 한제의 오른손에서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사방의 공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 황천의 화염은 극의 신식과 함께 한제의 필살기로 이미 극의 신식을 사용한 이상 이것만은 아껴두고 싶었다.
더구나 황천의 화염은 영력의 소모가 엄청난 기술이었다. 하나 상대가 저토록 끈질기게 뒤쫓는 바에야 더 이상 아껴둘 수가 없었다.
세 장로는 깜짝 놀랐으나, 그들이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한제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휘잉
주먹만 한 얼음 화염이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 언뜻 보기에는 느려보였으나 사실은 매우 빠른 속도였다.
사방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이 점차 얼어붙으면서 작은 칼날로 변해 세 사람을 향해 몰아쳤다. 세 사람은 즉각 사방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황천의 화염은 더욱 속도를 냈다.
셋 중 처음 극의 신식으로 부상을 입었던 장로가 가장 먼저 황천의 화염에 팔을 내주었고 순식간에 푸른색 화염에 휩싸였다가 사라져버렸다.
휘이이잉
그때, 멀리서 귀를 찢을 듯한 소리에 이어 일고여덟 갈래의 무지개가 하늘을 뚫고 나타났다. 한제는 재빨리 황천의 화염을 회수한 후, 더 이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향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 ★ ★
한제는 도주하면서 신식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단배(丹胚) 안에 자리한 황천의 화염 색이 약간 옅어져 있었다. 황천의 화염은 단배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많이 쓸 경우 결단기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즉, 위력은 강하나 쓸 때마다 그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열네 번째 골짜기에서 사용했을 때는 그저 주변의 서리를 녹이는 정도였지만 적을 죽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더구나 상대가 법보를 이용해 대항한다면 황천의 화염을 소모하는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것이었다.
이는 한제가 지금껏 황천의 화염을 아껴 온 이유이기도 했다. 아직 결단기에 이르기 전이므로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황천의 화염을 쓰지 않을 수만 있다면 쓰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온갖 고생을 해서 겨우 맺은 단을 조금이라도 아끼고 싶었다.
하나 저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대로는 따라잡혀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기에 자칫하면 결단기에 이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단배를 찢고 그 안에 있던 황천의 화염을 사용했다.
그런데 저들에게 갑작스럽게 일고여덟 명의 일행이 붙었다. 그중에는 벌써 결단기 중기에 이른 자도 있었다. 한제는 더 이상 맞설 생각이 사라졌다.
그 순간, 한제는 자신이 결단기에 이르지 못한다면 언젠가 죽임을 당하게 될 운명임을 깨달았다.
30만 리를 달린 끝에 수마해의 가장자리에 가까워졌으나 뒤를 쫓는 자들은 전혀 급한 기색이 없었다.
“어디까지 가는지 보자. 우리 투사파의 장로를 죽이다니, 하늘 끝까지라도 쫓아가 죽여주마!”
결단기 중기의 대장로 전곤은 이를 갈며 오른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금색 부호 하나가 나타났고 전곤이 살짝 누르자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에 한제는 재빨리 몸을 날려 다가오던 부호를 피했다. 하지만 곧이어 더 많은 부호가 뒤따라 나타났다.
한제는 이를 악물고 부호들을 피하면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하나 점점 추격자들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휴”
한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금 단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매우 위험한 방법이지만 성공한다면 이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이었다.
두 눈에 한기가 흐르는가 싶더니, 한제는 몸을 휙 틀어 방향을 바꿔 다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산봉우리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산봉우리는 안개에 휩싸여 있어 또렷하지는 않았다. 한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산봉우리로 향했다.
막 산봉우리를 감싼 안개에 닿은 순간, 안개에서 길 한 갈래가 나타나더니 그 안에서 보라색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무척 놀란 모습이었다.
그때, 눈부신 금빛으로 번쩍이는 부호들이 번개처럼 내리쳐 한제의 등 복판에 찍혔다.
“으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