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97
청룡성종 장로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한제의 이전 신분에 대한 존경심과 선대 주작성황에게 오랫동안 입었던 은혜가 아니었다면 벌써 공격을 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청룡성존? 내가 아니었다면 여태 우계에 봉인되어 있었을 그자 말인가?”
한제가 비릿하게 말했다.
“너⋯⋯.”
한제를 응시하던 청룡성종 장로의 안색은 매우 어두워졌다.
“주작성종의 선대 성황이 아니었다면 너희 청룡성종은 일찍이 흩어져 사라졌을 것이다! 가서 그에게 전해라. 나를 보고 싶다면 직접 오라고!”
한제가 그 말을 마친 순간 하늘이 활활 타오르며 그의 위압감을 한층 드높였다.
청룡성종 장로는 분노가 극에 달했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침묵했다.
그때, 노련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그 안에 깃든 신통력은 연소 성역 내에서 타오르는 화염을 그대로 멈춰버렸다.
“선대 주작성황은 사성종을 위해 살고 사성종을 위해 죽었지. 그건 인정한다.”
일곱 명의 장로는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포권을 하며 외쳤다.
“성존을 뵙습니다!”
줄기줄기의 푸른빛이 하늘에 나타나더니 빠르게 응집됐고 화염이 사방으로 마구 퍼져나가며 빈 공간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 응집된 푸른빛은 곧 청룡성황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우의 선계에서 봤던 엉망이 된 모습과 지금의 청룡성황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푸른 옷에서는 번득이는 빛이 흘렀고 뒷짐을 진 자세에서는 하늘을 놀라게 할 위압감이 뿜어져 나와 사방을 뒤덮었다.
“이곳에 온 것은 내게 태고의 성물을 주기 위해서겠지. 내놓아라.”
청룡성황은 손을 뻗으며 덤덤하게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서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냉랭하기만 한 눈빛이었다.
“내 벗들은 어디에 있지?”
한제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청룡성황을 바라보았다. 그는 상대의 위압감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으나 애써 참아냈다.
청룡성황은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역시 매우 서늘했다.
“내게는 그들을 괴롭힐 이유가 없다. 모든 외부자는 사성종 밖의 여러 수련성으로 보내졌지.”
“난 주작성황의 신분 따위 필요치 않다. 태고의 성물 역시 네게 줄 수 있고 이곳에서 나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져가야 할 것이 딱 하나 있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하얀 화염석 한 덩어리를 소환해냈다. 그 안에는 성물의 피 한 방울이 들어 있었다.
“선대 성황의 시신을 가지고 가겠다.”
한제가 덤덤하게 말했다.
청룡성황은 잠시 말없이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드러난 냉랭한 빛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곧 원상태로 돌아왔다.
“내 생각에 그는 사성종에 묻히는 것을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선대 성황께서는 평생을 사성종에 바치셨지. 숨을 거둔 뒤에는 당연히 그 책임에서 해방되어야 하지 않겠나. 내가 모시고 가겠다.”
한제는 단단한 눈빛으로 손을 휘둘러 쥐고 있던 돌을 날렸다.
청룡성황은 그 돌조각을 받아 자세히 살피더니 작게 한숨을 내쉴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떠나갔다. 일곱 장로가 그 뒤를 따랐다.
주작성종의 두 장로는 한제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했지만 청룡성황이 자신들을 바라보자 결국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석상이 된 선대 주작성황의 육신을 가지고 사성종을 떠난 한제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두 등을 만나게 됐다.
이제 더 이상 그는 사성종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허나 주작성종 장로가 마지막에 무언가를 전하려 했던 것 같은 모습이 한제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지금의 상황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선대 주작성황이 남긴 물건에는 태고의 성물 외에도 역대 성황들이 사용했던 피풍의와 주작의 성령으로 만들어진 영패 등도 있었으나 청룡성황은 그 물건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또한 당시 수련자 연맹과 곤허 성역 사이에 발발했던 전쟁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주작성황뿐이었는데 청룡성황은 그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한제가 일행을 이끌고 멀리 떠나가던 그때, 사성종의 청룡성종 대전에서는 청룡성황이 피곤한 듯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태고의 성물 네 개가 둥둥 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이 성물이 아니라 대전 밖을 향해 있었다.
한참 후 작게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거둔 청룡성황은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사람은 없었다.
★ ★ ★
대두 등을 새로운 우계에 데려다 놓은 뒤 뒷일에 대한 걱정이 사라진 한제는 홀로 우주 속을 표류하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태양처럼 밝게 번득였고 흘러넘치는 듯한 기운은 그의 체내에서 용솟음치며 전의가 되어 몸을 맴돌았다.
“탁삼, 1천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너와 내가 마침내 맞붙는구나!”
엄청난 기세를 발휘한 한제는 축지성촌을 이용해 익숙한 길을 따라 주작성으로 향했다.
★ ★ ★
주작성 근처를 맴도는 수련자는 몇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이미 주작성의 고신의 땅으로 진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허나 고신의 땅은 본디 공간의 균열로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외부에 어떤 영향도 일으키지 않았다. 때문에 그곳에 들어간 이들은 외부와의 연락이 끊겼기 때문에 그들의 안전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주작성 밖 허공에 나타난 한제는 주작성과 그 주위를 맴돌며 수련자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조용히 나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주작성 밖의 월성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수련자는 있었지만 한제의 존재를 알아차린 자는 없었다.
적당한 곳에 숨겨져 있는 산봉우리를 찾은 한제는 그 안으로 들어가 공간을 파낸 뒤 오른손으로 바닥에 복잡한 진을 하나 그렸다. 선제 청림과 융합했을 때 배운 것으로 모든 기운을 숨겨 다른 이들에게 존재를 들키지 않게 하는 신진이었다.
진을 다 그린 한제는 선옥을 사방에 꺼내놓고 진 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어서 두 손으로 미간을 두드린 그는 원신을 일부 갈라내 미간으로 뽑아냈다.
“응신성형(凝神成形)!”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자 그의 미간에서 빠져나온 원신은 한 줄기 푸른 연기가 되어 떠오르더니 서서히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다.
“응형성체(凝形成體)!”
뒤이어 그는 혀끝을 깨물어 피를 뿜어냈다. 체내에 얼마 남지 않은 선력이 그 피에 섞여 사람의 형상을 이룬 원신에 떨어졌다.
그 순간, 원신은 붉은 빛을 번득였다. 주위의 자갈들은 가볍게 진동하기 시작했고 모종의 흡인력에 이끌린 듯 순식간에 원신 안으로 녹아들었다.
원신 안에는 회오리라도 있는 듯 점점 많은 자갈을 흡수했고 이 자갈들은 끊임없이 원신에 녹아들었다. 이에 따라 원신은 점차 형체를 갖춰갔다. 그리고 1각쯤 지났을 때는 한제와 똑같은 모습의 원신이 서 있었다.
한제는 두 눈을 감았다. 그의 수준으로도 방금 원신으로 만들어낸 분신의 진위를 판별해낼 수가 없었다.
“선제 청림의 응신화체(凝神化體) 선술, 놀랍군!”
진짜를 빼닮은 분신을 만들어내는 것 정도로는 청림의 선술이라 할 수가 없었다. 이 술법으로 만들어진 분신은 그 진위를 판별해내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강력한 신통력을 가지고 있어 그 수준도 본체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또한 이 분신이 죽더라도 본체에는 그리 큰 손상을 입지는 않는다.
단, 이 분신은 열흘 동안만 존재할 수 있다는 제한이 따를 뿐이었다. 그리고 이 열흘 동안 본체는 수면 상태에 처해 있게 된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제는 저물공간에서 은시를 꺼냈다. 그 여인은 말없이 한제와 함께 그 진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 진의 은닉 능력은 여인의 시체까지 보호해주었으나, 한제는 강력한 금제 몇 개를 더 설치한 후에야 마음을 놓고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폐관수련을 하는 것처럼 호흡을 참았다. 심장 박동 역시 점차 사라져가면서 그는 죽은 사람과 같은 상태가 됐다.
한제의 기운과 심장 박동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 그의 앞에 석상처럼 서 있던 분신이 느릿하게 두 눈을 떴다.
이 분신은 몸을 잠시 움직여보더니 진 안에 앉은 자신과 은시를 힐끗 보고는 곧장 이 산봉우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축지성촌으로 단숨에 주작성 안으로 들어갔다.
길궁
한제는 주작성에 진입한 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수마해로 향했다. 고신의 땅에 진입한 수련자들 중 한제보다 이 주작성에 대해 더 잘 아는 이는 매우 드물었다.
그는 분신에 익숙해지기 위해 순간이동 대신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을 택했고 결과적으로 얼마후 그 몸에 완전히 적응할 수 있었다.
수마해로 향하는 도중 그는 당시의 투사파(鬪邪派)와 산에 조각된 거대한 창룡진(蒼龍陣)도 볼 수 있었다. 그 앞에 우뚝 멈춰선 그의 머릿속에는 방어용 옥패를 만들겠다고 창룡의 비늘 하나하나를 기록했던 여인이 떠올랐다.
1천 년도 더 된 그 창룡은 이미 반 이상 파손되어 형태만 겨우 남은 상태였다. 더 이상 문파도 존재하지 않는 그곳은 그저 황량하기만 했다.
시선을 거둔 한제는 곧 그곳에서 멀어져갔다.
그는 수마해의 절반을 관통하여 고신의 땅 범위에 진입했다. 이곳은 매우 조용했고 어떤 수련자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이미 고신의 땅으로 들어간 듯했다.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신의 땅 입구로 들어섰고 순간 어두운 허무의 공간에 들어가게 됐다.
짙은 피 비린내가 훅 끼쳐왔다. 이 허무의 공간에는 수많은 돌 부스러기들이 둥둥 떠 있었는데 피로 칠해진 듯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또한 수많은 시체들도 떠 있었다.
1천 척 정도 되는 남색 거미, 1만 척 길이의 뱀, 용 같은 외모에 날개가 달린 마수, 팔뚝만 한 날벌레 등 이름 모를 마수들의 시체와 수련자들의 시체가 뒤섞인 채였다.
남아 있는 원력의 파동들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곳에서 엄청난 전투가 벌어졌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마수들의 시체 대부분은 불에 탄 상태였고 일부는 얼음 결정으로 굳어져 있었으며, 독에 감염된 듯 고름을 흘리는 시체도 있었다.
앞으로 날아갈수록 시체는 늘어갔고 피비린내가 짙어졌으며, 시체들이 죽은 방식 역시 다양해졌다. 개중에는 거대한 검에 관통당한 듯한 이무기의 시체도 있었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잘린 사지나 다른 부위들만 보일 뿐 더 이상 온전한 시체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쯤 되자 한제마저 눈동자가 졸아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기억을 더듬어 다른 입구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음산한 기운을 느낀 한제는 우뚝 멈춰 서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 오른쪽으로 1만 척 정도 떨어진 곳에 떠 있는 거대한 원뿔형 바위 위로 수련자와 마수가 뒤섞인 시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 바위의 가장자리는 검은 빛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 검은 빛 안에는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의 몸에는 검은 털이 가득 자라나 있어 사람이라 보기 힘들었지만 그의 머리를 보면 분명 인간이었다.
그의 목에는 열여덟 개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한데 그 머리들은 모두 바닥에 놓인 무언가를 게걸스레 먹고 있었다.
쩝쩝, 쩝쩝⋯⋯.
그 작은 소리는 쉽게 묻힐 수 있었지만 그 바위 위의 기이한 사람을 본 순간 한제에게는 그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울리는 듯 크게 느껴졌다.
한제는 곧 그 소리의 근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이한 사내의 수많은 머리들은 어느 마수를 뜯어먹고 있었는데 살뿐만 아니라 뼈까지도 모두 씹어 삼키는 중이었다.
한제가 그를 본 순간, 그 사내 역시 한제를 보았다. 그리고 뒤이어 열 개가 넘는 그의 머리들도 고개를 들어 한제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얼굴들의 입은 모두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그중 몇 개는 아직도 우물거리며 무언가를 씹고 있었다.
한제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와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껏 수많은 위기를 맞닥뜨린 경험이 있는 한제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뒤로 물러나거나 도망치는 대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두 눈은 바짝 졸아든 채 저 사람인지 마수인지 분간하기 힘든 존재를 가만히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