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99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고리형 모양의 파문이 퍼져나갔다.
한제는 재빨리 그 파문을 피하며 다시 달려 나갔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또 한 번 천둥번개를 쏘아 보냈다. 이번에는 심지어 불바다까지 일어나 사방을 뒤덮으며 천둥번개를 뒤따랐다.
“캬오오오!”
길궁은 다시 한 번 포효했고 그중 남색 머리의 사내 머리가 두 눈으로 서늘한 빛을 번득이며 입을 쩍 벌려 남색 빛을 쏘아냈다. 그 빛은 눈 깜짝할 사이 전방에서 수증기로 변해 부풀어 올랐고 순식간에 허공에는 드넓은 바다가 생겨났다.
한제가 쏘아 보낸 천둥번개와 화염이 달려들어 그 바다를 파고든 순간, 길궁의 머리 중 아이의 머리 하나가 전방을 향해 한 움큼 한기를 뿜어냈다.
한기는 마치 음산한 바람처럼 온 세상을 바들바들 떨게 만들었고 하늘에 나타난 바다마저 꽝꽝 얼어버렸다. 바다를 파고든 전광 역시 그대로 얼어붙었으며 무궁무진한 화염 또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끝이 아니었다. 그 한기에 뒤덮인 바다가 얼어붙으면서 내는 쩌적 소리에 한제는 자신에게도 한기가 훅 끼쳐오는 것을 느꼈다. 사방팔방이 얼음으로 뒤덮인 것만 같았다.
허나 위기 상황에 익숙한 한제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온몸에서 붉은 빛을 번득이며 주작의 갑옷을 소환했다.
하얀색 주작의 문양이 새겨진 갑옷에서 주작명(朱雀鳴)이 울려 퍼지면서 한제의 전신에는 하얀 화염이 솟아올랐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곧장 얼음층을 파고들었다.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얼음은 한제에게 닿기도 전에 빠르게 녹아내렸다. 덕분에 한제는 여유롭게 얼음층을 꿰뚫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얼음층에서 벗어난 한제는 오른손을 치켜들었고 그 순간 천둥번개가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노린 것은 길궁이 아니라 아래 지면에 자리한 검의 무덤이었다.
콰쾅!
눈 깜짝할 사이 지면을 때린 천둥번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퍼져나갔고 반경 1만 척 안의 모든 검들은 번쩍번쩍 전광을 번득였다.
“하앗!”
길궁이 1천 척 가까이 이른 순간 한제는 낮은 기합을 내지르며 두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한 자루 한 자루의 검들이 쉭 소리와 함께 전광에 이끌려 지면으로부터 뽑혀 나와 천둥소리와 검명(劍鳴)을 울리며 곧장 길궁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의 눈에 살기가 번득였다. 길궁이 자신을 향해 살기를 내보인 이상 자신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수준으로 길궁을 죽이기란 힘들었다. 만약 그의 속도가 조금만 느렸어도 벌써 이 끔찍한 마수에게 산 채로 뜯어 먹혔을 터였다. 그렇게 된다 해도 이는 그의 분신에 불과하니 본체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그랬다가는 탁삼의 힘을 확인한다는 목적도 달성할 수 없다.
한제는 빠르게 몸을 뒤로 물리며 검의 무덤을 향해 연달아 전광을 날렸다. 전광이 한 번 떨어질 때마다 반경 1만 척 범위의 검들이 솟구쳐 올랐다.
한제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졌고 눈 깜짝할 사이 반경 수십만 척 범위의 검들이 전부 솟아올랐다. 전광이 흐르는 검들은 빽빽한 그물망을 이룬 듯했고 끊임없이 쉭, 쉭 소리를 내면서 길궁의 포효마저 덮어버렸다.
검우(劍雨)!
지금 이 광경을 설명하기에 그만큼 적절한 표현은 없었다.
수없이 많은 검 중에는 녹이 잔뜩 슨 것들도 있었지만 그 녹들은 흐르는 전광에 툭툭 떨어져 내렸고 이내 한제의 시야에는 길궁을 향해 날아드는 은빛 검들로 가득 찼다.
한편, 길궁의 머리들은 끊임없이 주문을 중얼거렸을 뿐만 아니라 두 손으로 수련자처럼 결인을 그리기까지 했다. 이에 그의 주변에는 검은 빛을 번득이는 문양들이 떠올랐다. 그 수는 점점 많아졌고 또 점점 더 빠르게 나타나 순식간에 하나의 장막을 형성했다.
펑! 펑! 펑! 펑!
각각의 검은 그 빛의 장막과 충돌하면서 검신에 흐르던 전광의 위력을 폭발시켰다. 빛의 장막이 파괴되거나, 검이 파괴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콰콰쾅!
수많은 검이 무너져 내리며 가루가 되어 흩날렸고 그보다 더 많은 검들이 검의 부스러기들을 뚫고 빛의 장막에 달려들었다.
이런 과정이 한참 이어져가던 중 빛의 장막이 점점 진동하기 시작하다가 결국 검은 빛을 번득이면서 무너져 내릴 조짐을 보였다. 검의 수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었는데 한제가 이런 상황을 두고 볼 리 없었다.
일찍이 그 검들을 뚫고 나가 빠르게 물러난 한제는 두 손으로 전광을 번득여 끊임없이 더 멀리 떨어진 대지에 쏘아 보내고 있었다.
그가 첫 번째로 솟아 올렸던 검들이 전부 무너져 내린 순간, 그보다 더 먼 곳에서는 이미 두 번째로 솟구쳐 올라온 검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 검은 빛의 장막 안에서 분노에 찬 포효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빛의 장막이 투명해지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서 한 덩어리 화염이 드러났다.
길궁의 머리들 중 검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던 중년 남자의 머리가 입에서 화염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이 화염은 붉은색이 아니라 금색이었다.
이 금색 화염은 빛의 장막을 뚫고 뿜어져 나왔는데 그 엄청난 열기에 근처에 있던 비검들은 전부 녹아내리고 말았다.
허나 그 화염을 본 순간, 한제는 오히려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그 눈에는 망설이는 기색이 있었으나, 이내 단단한 의지로 바뀌었다.
‘하늘이 주신 기회로군!’
한제는 왼쪽 눈으로 화염을 발산해 온몸을 감싸며 낮게 외쳤다.
“구현(九玄) 신통술, 화둔(火遁)!”
불이 있는 곳에서 한제에게 한계란 없었다. 한제는 화인(火人)이 되어 앞으로 튀어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다음 순간 길궁으로부터 30척 떨어진 곳의 금색 불바다 안에서 나타났다.
허나 이 금색 화염은 그로서도 견뎌내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웠다. 그럼에도 그는 이를 악문 채 한 번 더 화둔술을 발휘했고 다음 순간 그 중년 남자의 머리 위 10척 거리에서 나타났다.
한제는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곳곳에 잔뜩 녹이 슨 한 자루 철검을 꺼내 들었다. 이 검이 나타난 순간, 고신의 땅 금의 관문 검의 무덤에 꽂혀있는 모든 검이 일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한제는 체내의 원력을 철검에 주입했다. 그러자 철검은 빛을 번득이며 엄청난 기세를 드러냈다.
“나를 쫓아온 대가를 치를 때다!”
한제가 그 검을 내리친 순간, 핏빛이 사방으로 튀었다. 동시에 길궁은 고통스러운 듯 몸을 뒤틀었다. 특히 한제가 노렸던 중년 사내의 머리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거두고는 화둔술을 발휘해 그 중년 사내의 머리를 움켜쥔 채 1만 척 밖에 나타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길궁의 머리를 베어내는 데 성공하다니, 한제 자신조차도 놀라웠다. 사실 방금 검을 내리칠 때만 해도 길궁에게 부상을 입혀 사방팔방에서 날아드는 비검들에게 공격의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한데 단번에 머리를 베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그는 그 중년 사내의 머리를 움켜쥔 채 단번에 1만 척 밖으로 달아났다.
한데 그 순간, 그가 움켜쥐고 있던 머리가 펑 하고 터져버리면서 화염이 일었다. 그 화염 안에는 도자기 파편 같은 푸른 조각 하나가 들어 있었고 그 조각에서는 엄청난 위력이 흘러나왔다.
한제는 의외의 상황에 놀랐으나 멈추지 않고 그 조각을 움켜쥔 채 잔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돌진했다.
토(土)의 관문
한편, 머리를 잃은 길궁의 목은 빠르게 위축되면서 푸른색 기운으로 흩어져 버렸고 나머지 열일곱 개의 머리는 분노한 듯 고개를 치켜 올렸다. 그 몸은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크아아아!”
길궁이 내지른 포효는 하늘을 뒤흔들며 퍼져나갔고 이에 그를 향해 달려들던 수많은 비검은 일제히 진동했다.
그리고 그 순간, 길궁은 이를 갈며 몸을 날렸고 눈 깜짝할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한제를 거의 따라잡았다. 이 열일곱 개의 머리는 주문을 중얼중얼 외우면서도 한제를 뜯어먹으려 했다.
그때, 폭풍과 함께 짙은 푸른 안개가 나타나더니 전방에서 거대한 푸른색 머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사람의 머리 형태였지만 비늘로 가득 뒤덮인 채 무정한 두 눈을 번득이는 이 머리는 1만 척을 훌쩍 넘길 것 같았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이 머리의 미간에 손바닥이 하나 찍혀 있었는데 이 손바닥은 일종의 봉인인 듯 보라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캬오오오!”
이 거대한 머리는 입을 쩍 벌려 포효하더니 한제를 단숨에 집어삼키려 했다.
한데 그 거대한 머리가 나타난 순간 하늘은 보라색 연기로 뒤덮였고 이 연기가 한데 응집하면서 하나의 손바닥을 형성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나 이 손바닥은 거대한 머리가 아니라 길궁을 향해 있었다.
“크아아아!”
“캬오오오!”
길궁의 머리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끊임없이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이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저 거대한 머리를 소환하려면 그 손바닥에 저항해야 하는 듯했다.
한편, 이 순간 한제는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어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길궁은 분명 강력했지만 서사의 기억에 남은 것만큼은 아니었다. 또한 그 기억 속 길궁은 서른여섯 개의 머리를 가진 반면 눈앞의 길궁은 고작 열여덟 개의 머리를 가졌을 뿐이었다.
이에 한제의 마음에는 의혹이 생겨났지만 그 순간 길궁은 그의 머리를 저릿하게 만들 신통력을 발휘했다. 거대한 머리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한제는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 거대한 머리의 입에서는 막강한 흡인력이 발휘됐다. 너무도 강한 그 힘에 한제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체내의 수준마저 응고된 상태라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기에 곧 그 입으로 끌려갔다.
그 머리가 발휘한 이 신통력은 온 세상이라도 빨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방팔방에서 달려들던 비검들도 바들바들 떨리다가 그 입에 흡수됐다.
허나 한제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세상 자체가 진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이 거대한 입에 세상이 갈가리 찢겨 모여드는 것만 같았다.
‘태고에 길이라는 이름의 영혼이 있었다. 세상을 한 번 삼킬 때마다 새로운 머리가 하나 더 만들어졌다!’
순간 한제의 머릿속에 그 문구가 떠올랐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그 음산한 입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오른팔은 펑 소리와 함께 석화(石化)됐지만 가까스로 미간을 두드리는 데 성공했다.
손이 미간에 닿은 순간, 한제의 체내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리고 오른팔이 터져나가면서 수없이 많은 자갈이 되어 거대한 머리의 입으로 흡수됐다.
그러나 그 순간, 오른팔을 폭발시키면서 얻은 힘으로 한제는 조금이나마 몸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그 순간, 그는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저물공간에 철검과 도자기의 파편 같은 조각을 얼른 집어넣고는 마수의 가죽 한 장을 꺼내 가슴팍에 붙은 노란색 부적에 댔다. 부적과 이 짐승의 가죽은 모두 속도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 가죽 부적은 부문족의 성조로부터 전수받은 타산이 직접 만든 것이니만큼 그 위력이 막강했다.
두 개의 부적을 몸에 붙인 순간, 한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감이 체내에서 폭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한제는 이를 악물고는 거대한 머리의 흡인력에 저항했다. 어마어마한 산에 대항하는 것만 같았으나, 그는 있는 힘껏 움직여 1백 척 정도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왼쪽 다리도 석화되어 펑 하고 부서지더니 거대한 머리에 흡수되었다.
길궁의 끊임없는 포효에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열일곱 개의 머리에서는 심지어 푸른 핏줄까지 드러났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보라색 손에 저항하고 있는 길궁의 앞에서 거대한 머리는 푸른빛을 더욱 짙게 발하며 전보다 배로 강력해진 흡인력을 발휘했다.
한제가 그 흡인력으로부터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는 사이 그의 오른쪽 다리 역시 무너져 내렸고 그의 몸은 끊임없이 강해지는 흡인력 아래 결국 더는 벗어나지 못하고 빨려 들어가 버렸다.
시커먼 입이 점점 더 가까워지자 한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돌로 변해가는 왼손을 들어올려 가슴팍에 붙은 부적과 짐승의 가죽을 뜯어 저물공간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고 수많은 비검들과 함께 그 거대한 머리의 입속으로 완전히 삼켜졌다.
1만 척 길이의 머리는 푸른빛이 되어 길궁의 체내로 녹아들었고 순간 하늘에서 내려오던 보라색 손은 길궁으로부터 10척 떨어진 곳에서 느릿하게 멈춰 섰다.
길궁의 열일곱 머리는 고개를 들고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면서도 계속해서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때, 손바닥에서 보라색 빛이 번득이며 그 빛을 길궁의 몸에 드리웠다. 그러자 길궁의 몸이 투명해져 그 내부까지 또렷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만약 한제가 그 입에 흡수되지 않아 지금의 장면을 보았더라면 길궁의 머리 열일곱 개 중 아홉 개에는 도자기 파편 같은 조각이 하나씩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터였다.
보라색 빛은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고 손바닥 역시 점차 모습을 감추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길궁의 열일곱 쌍의 눈에 어린 경계심도 조금씩 사라져갔다. 이때 그 목 부분에서는 한 덩어리의 피와 살이 끊임없이 꾸물거리다가 팍 하고 1천 척 길이의 갈래로 뻗어 나왔는데 그 갈래의 끄트머리에도 머리가 하나 달려 있었다. 바로… 한제의 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