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
“네가 여기서 한제를 관리하는 건가?”
청년은 순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그는 갑자기 이렇게 높으신 장로가 친히 이곳까지 와 한제를 찾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한제를 괴롭혔던 일들이 생각나, 이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놀란 나머지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예, 제자가 한제 사제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한제 사제는 아주 근면하고 뭐든 잘 배우며, 모든 일에 아주 열심히 임합니다. 제자 늘 마음속으로 본받으려고 합니다만… 제가…”
그 반응에 손 장로는 씁쓸하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사실 모든 장로가 똑같이 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정식 제자의 스승인 2대 제자들을 수련생들은 장로라 불렀다. 저 수련생 눈에야 하늘같은 장로겠지만 사실 손 장로는 2대 제자 중 지위가 낮았다.
실력이 부족해 심지어 3대 제자들에게도 그리 대접받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수련생을 집에 보내는 것처럼 사소한 업무를 맡은 이유 역시 그래서 였다.
손 장로는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제가 묵는 곳은 어딘가?”
“그게… 그 북쪽에 있는 ‘토(土)’자…”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 장로는 무지개를 그리며 순식간에 북쪽으로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청년의 몸은 한층 더 격하게 떨렸다. 그는 앞으로 한제에게 잘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로가 친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자에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손 장로는 ‘토’자 부원(副院)에 도착했지만 한제를 찾을 수 없었다. 방에는 다른 아이 혼자였는데 손 장로가 방에 들어온 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
방을 구석구석 살피던 손 장로는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빨리도 갔군. 흠, 나중에 돌아오면 다시 조사해봐야겠군.”
★ ★ ★
그때 한제는 산을 지나고 있었다. 부적은 과연 신비로운 물건이었다. 부적을 붙인 후 위에서 따뜻한 기류가 내려오더니 몸으로 파고들어 마지막엔 양발에 기가 모였다.
그리고 눈에서는 흰빛이 번쩍이더니 시야가 멀리까지 잡혔다. 선인이 되면 항상 이런 기분일까?
산들바람이 상쾌하게 스쳐 지나갔다. 한제는 신이 나 쉬지 않고 달렸다.
이튿날 새벽 동이 틀 무렵, 한제는 조롱박에 담긴 샘물을 마셨다. 기력을 되찾고 뒤를 돌아보니 이미 산을 벗어나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성이 나타나고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마을에 도착할 것이다.
한제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날이 밝았을 무렵에는 성에 도착했다. 마침 성 안에서는 장이 열려 사람들로 붐볐다. 한제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고르고 재빨리 그곳을 떠나 마을로 향했다.
정오에는 마침내 마을에 도착했다. 한제는 멀리서 집 앞에 높이 걸려 있는 붉은 천을 발견했다. 천에는 큼지막한 ‘수(壽:장수를 뜻함)’자가 적혀 있었다.
집 밖으로 많은 마차들이 서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며 무척 떠들썩했다.
한제는 재빨리 걸어와 문 밖에서 멈춰 섰다. 그런 그의 모습에 모두들 매우 놀란 듯했다. 한 줄기 흰빛이 번쩍이더니 갑자기 그들 앞에 한제가 나타난 것이었다. 모두 부러운 눈빛으로 찬양했다.
“둘째 형님, 한제가 왔어요. 한제 좀 봐. 진짜 인물이 훤하네. 선인 다됐어.”
“정말 인재 중에 인재일세. 좋아! 아주 훌륭해!”
이 씨 가문에서 가장 연배가 많은 셋째 작은할아버지가 수염을 매만지며 큰소리로 칭찬했다. 한 달 전에 한 말은 이미 잊은 모양이다.
“한제 녀석 어릴 때부터 똑똑했지. 내 분명 한제는 선인의 제자가 될 거라고 하지 않았는가? 지난번에는 선인들이 실수한 게지. 선인들도 실수를 하는데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말할 게 있겠나? 한제야, 이 다섯째 작은아버지를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 내 사과하마.”
한제네 집에 모인 친지들의 태도는 지난번과 천양지차였다. 모두 웃음을 띤 채 다정다감하게 굴었다.
그때 한제의 아버지가 밖으로 나와 아들의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한제야, 어쩐 일이니? 내가 집안일은 걱정 말라 하지 않았더냐.”
아버지 얼굴에는 주름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그간 즐겁게 지내신 듯했다.
“아버지, 걱정 마세요. 대산파에서는 모든 제자가 1년에 세 번 집에 올 수 있어요. 아버지 생신인데 아들이 어찌 오지 않을 수 있겠어요?”
한제가 웃으며 말하자 아버지는 만족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며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여보, 여기 누가 왔는지 좀 나와 보시게.”
아녀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한제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고는 기뻐하며 달려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 ★ ★
한 달간 사람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당해왔던 한제는 집에서만큼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둘째 형님, 한제가 선인의 제자가 되었군요. 이 여섯째 동생이 일전에 한 행동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형님도 아시지 않소? 내 입은 거칠어도 마음만큼은 따뜻한 사람이오. 다 한제를 위해 한 말이었소.”
“둘째야, 이 다섯째 작은아버지가 너무 늙었나 보구나. 이 씨 가문 사람들은 다들 너희 가족만 바라보고 있다. 내 예전부터 한제를 눈여겨보고 있었지. 분명 출세할 거야.”
한제 부모님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개했다.
잠시 후 잔치가 시작되었고 친척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한제를 칭찬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술을 몇 잔 들이키더니, 한제 아버지의 재산 문제를 꺼냈다. 그리고 큰소리로 다 같이 한제네를 위해 재산을 찾아주자는 말까지 했다. 한제 아버지는 그 말을 그저 웃어넘겼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일은 아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뿐이었다.
시끌벅적한 하루가 지나고 해가 저물었다. 친척들이 떠나고 집 마당에 쌓인 크고 작은 선물들을 바라보며 한제는 만감이 교차했다. ‘한 사람이 득세하면 주변 사람도 그 덕을 본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저녁이 되자 부모님은 한제를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한제는 기대에 찬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산파에서 얼마나 호의호식하는지, 어떤 수련을 받는지 등 한제가 좋은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자 부모님은 너무 기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 10년, 10년만 참자.’
한제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틀간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삼일 째 되는 날 새벽, 한제는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의 인사를 뒤로하고 길을 떠났다.
집을 떠나 꽤 멀리까지 와서도 마을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날씨가 우중충했다. 먹구름이 짙게 깔리더니 이따금씩 천둥소리도 들려왔다.
점점 습도가 높아지며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한제는 더 속도를 냈고 마침내 늦은 밤중에 대산파로 돌아왔다.
★ ★ ★
장호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한제도 침상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밖에서는 계속 천둥소리가 들려왔고 번개가 번쩍였다.
한제는 품고 있던 석주를 만졌다. 이번에 집에 다녀올 때 어머니께 안주머니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그곳에 석주를 품고 돌아왔다.
석주를 꺼내 등불에 비춰보던 한제는 깜짝 놀랐다.
‘분명 지난번에는 구름이 5개였는데. 어떻게 갑자기 6개가 된 거지?’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닐까 의심하며 다시 세어보았으나, 분명 6개였다.
아무리 생각해보도 그 영문을 알 수 없어 그대로 다시 안주머니에 석주를 넣고 잠을 청했다.
의혹
굵은 빗방울이 한제의 방 창문을 때렸다.
음산하고 차가운 기운에 놀라 잠에서 깬 한제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연속해서 번개가 내리치더니 방을 훤히 비추었다. 방은 짙은 물안개로 가득 차 있었고 책상이며 바닥, 심지어 침상의 이불마저 모두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러나 한제의 몸은 가슴팍 일부만 젖어 있을 뿐 다른 곳은 젖어있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장호 쪽을 살폈다.
장호의 온몸에는 흰 서리가 서려 있었고 옷도 전부 다 젖어있었다. 온몸에 서리가 뒤덮인 채로 두 눈은 감겨 있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린 상태로 덜덜 떨고 있었다.
“장호야! 장호야!”
한제는 놀라 장호에게로 달려가 그를 흔들었지만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심지어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듯했다.
급한 마음에 한제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려 밖으로 나가려다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자신의 옷을 만지더니 의혹을 품었다.
‘분명 같은 방에서 그것도 이불까지 흥건히 다 젖어 있었는데 나는 왜 가슴 쪽 말고는 젖은 데가 없는 거지?’
한제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고는 황급히 석주를 꺼냈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물방울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심지어 장호의 몸에 있던 서리까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때 다시 한 번 번개가 내리쳤고 그 순간 물방울이 반짝 빛나더니 갑자기 수정으로 변해 석주로 날아와 흡수되었다.
깜짝 놀란 한제는 석주를 놓쳤는데 그 신비로운 석주는 공중에서 부채꼴을 그리더니 땅에 떨어져 한쪽으로 굴러갔다.
이내 방안에 있던 모든 물방울들이 석주 표면에 붙더니 이내 흡수돼 사라졌다. 동시에 방 안은 본래의 건조한 상태가 되었다. 젖어 있던 이불도 바짝 말랐고 장호의 호흡도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벼락을 동반한 비가 한창 내리고 있었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석주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석주를 자세히 살펴보던 한제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구슬 표면의 구름이 7개로 변한 것이다.
한제는 이제 호기심과 동시에 두려움도 일기 시작했다. 만약 그가 빨리 잠에서 깨 석주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장호는 그대로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한제에게는 큰 지장이 없었다. 이게 다 그동안 석주를 담근 샘물과 이슬을 마셨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구슬 위에 새겨진 구름은 한제의 호기심을 더 자극했다. 대체 구름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한제는 이대로 계속 구슬을 들고 다니면서 빗물을 말라버리게 했다간, 다른 사람들에게 의심을 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잠시 망설이다 한제는 조심스레 구슬을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날이 점점 밝자 잡무실로 가려고 방을 나섰다. 때마침 장호가 침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물, 물, 죽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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