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05
빙산 밖에는 불바다가 불바다 밖에는 수많은 산, 그리고 산들 밖에는 끝이 없는 천둥번개가 나타났다.
겹겹이 발휘된 신통력들은 노인의 두 팔을 따라 뻗어 나가며 고신의 두 팔에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다.
멀리서 보면 탁삼의 두 팔에서 수많은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했고 공간의 균열은 격렬하게 진동했다.
이 신통력들은 탁삼의 팔을 잠시 멈추게 하는 데 그쳤지만 노인은 그 사이 거대한 고신의 두 팔 사이에서 튀어나와 머리 쪽으로 몸을 날렸다.
“무극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내가 당시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해도 할 말은 없을 걸세. 그동안 숨어 지내느라 나와의 약속도 잊은 것인가!”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탁삼 미간의 네 번째 반점 깊은 곳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중년 문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씁쓸한 빛이 어렴풋이 깃든 무정한 눈이었다.
“노부자 약속을 잊은 것은 아니네. 다만 능력이 부족할 뿐. 자네도⋯⋯ 어서 떠나게⋯⋯.”
노회하고 씁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네 번째 반점이 점점 밝아짐에 따라 그 목소리는 갈수록 약해졌다.
한데 그 목소리가 사라지려는 찰나, 흑의의 노인, 노부자의 표정이 급변했다. 또한 한제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순간, 무극자의 사라졌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허나 이번에 그 목소리에 담긴 것은 분노한 듯한 포효였다.
“빨리 가!”
원래는 칠흑처럼 어두워 그 형태만 어렴풋이 볼 수 있었던 네 번째 반점 안은 탁삼이 깨어남에 따라 점점 빛이 들어오면서 환해졌다. 그 안에 가부좌를 튼 중년 문인은 일견 평범해 보였지만 그 하반신은 이미 지면에 완전히 녹아들어 있었다. 마치 바닥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였다.
그곳을 밝히는 빛들은 중년 문인의 체내에서 피어오른 것으로 빛이 하나하나 나타날 때마다 사내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허나 그는 죽지 않았다. 또, 죽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곳에서 수없이 오랜 세월을 견딜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을 쳤고 체내의 수준을 억지로 끌어올려 고개를 쳐들며 포효했다.
노부자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그는 매우 진중한 표정으로 몸을 물리며 네 번째 반점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는 분명 무극자의 목소리가 그곳에서 흘러나온 것을 느꼈으나, 기이하게도 신식으로 그쪽을 훑었을 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또한 방금 무극자가 한 말을 떠올린 노인은 심신이 진동했다.
“너희는 도망치지 못한다!”
냉랭한 두 눈 가득 경멸의 빛을 내비치며 탁삼이 조소하듯 중얼거렸다. 이곳의 모든 사람들을 개미만도 못한 미물로 여기는 듯했다.
“너는 무극자의 뒤를 이어 내 다섯 번째 별이 될 것이다!”
우렁차게 외친 탁삼은 오른발을 들어 세게 구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미간의 네 번째 별에서 빛이 번쩍이며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이전 세 개의 별에서 번뜩인 빛과는 전혀 달라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이에 탁삼이 들어 올렸던 오른발은 그대로 멈췄다.
순간, 뒤로 물러나던 노부자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에는 한 자루 부러진 검이 나타났고 그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위압감이 퍼져 나갔다.
노인은 이어서 혀끝을 깨물어 그 부러진 검에 한 움큼 피를 뿌리더니 힘껏 내던졌다.
부러진 검은 하늘을 뒤흔들 듯한 살기와 검기를 품은 채 쏘아져 나갔고 그 순간 탁삼의 멈추었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떨어져 내리던 오른발은 날아든 부러진 검과 닿으며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크아아악!”
탁삼은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포효를 내질렀다.
부러진 검은 탁삼의 발을 뚫고 파고들더니 파죽지세로 다리를 타고 올라가 곧장 얼굴로 돌진했다. 쇄열기 수준의 수련자보다도 훨씬 빨라, 심지어 천쇠를 겪고 있는 수련자라 해도 그보다 빠를 수는 없을 것만 같은 속도였다.
도망치다
단검은 눈 깜짝할 사이 네 번째 별을 향해 돌진했다.
이때, 무극자가 벗어나려 몸부림이라도 치는 듯 네 번째 별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점점 강력해지고 있었고 단검은 그로부터 1백 척도 되지 않는 곳에 이르러 있었다.
네 번째 반점의 빛이 절정에 이른 순간, 세 번째 별 역시 같이 번쩍이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별안간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몸은 해골로 이루어져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는 없었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는 자였다. 그는 한 걸음 내딛어 단검 곁에 이르더니 전방을 거세게 후려쳤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기세였다.
한제가 보기에 그의 동작은 물 흐르는 듯 유려하면서도 어떤 규칙을 품은 것 같았다. 심지어 그가 세상의 규칙을 품은 것이 아니라 세상의 규칙이 그 사람의 동작에 따라 변한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 순간, 거칠 것 없이 돌진하던 부러진 검이 그대로 멈췄다. 검신은 방금 나타난 해골의 두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었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해골 수련자 역시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온몸에서 펑, 펑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시커먼 두 눈에서는 빛이 번득였고 텅 빈 미간 위로는 초승달 표식이 또렷하게 나타났다.
“크아아!”
그가 낮은 기합과 함께 두 손가락을 맹렬하게 흔들자 부러진 검이 방향을 틀어 비스듬하게 날아갔다. 그제야 해골 수련자는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숨을 헐떡이는 것처럼 가슴팍을 들썩이며 세 번째 반점으로 돌아갔다.
이를 지켜보던 한제의 얼굴이 씁쓸하게 변했다.
노부자는 곧장 오른손을 휘둘러 부러진 검을 회수하더니 방향을 틀어 빠른 속도로 공간의 균열을 내고 도망치려 했다.
“도망치지 못한다!”
탁삼은 거칠게 외치며 두 눈을 어스름하게 번득였다. 그러더니 무슨 신통력을 발휘한 것인지 미간에서 다섯 번째 별이 회전하기 시작했고 그 속도는 순식간에 극한으로 치달았다. 이전의 네 개와 달리 빛조차 나지 않아 멀리서 보면 꼭 하나의 검은 구멍처럼 보이는 다섯 번째 별은 탁삼의 미간에서 떨어져 나와 노부자를 향해 돌진했다.
한데 그 순간, 네 번째 반점 안에서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밝은 빛이 번득였다. 이 빛은 한 줄기 장벽이 되어 다섯 번째 반점을 뒤덮었다.
“노부자 어서 도망치게! 내가 그때 큰 잘못을 저질렀네. 왕족 고신의 힘을 이용해 공열 초기를 돌파하겠다고 덤볐다가 결국 이렇게 돼버리다니⋯⋯.”
네 번째 반점 안의 무극자는 피를 토하며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저 다섯 번째 반점이 노부자를 흡수한다면 자신은 절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막아낸 것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노부자를 구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일말의 기회라도 생길 터였다.
노부자는 망설임 없이 한 걸음 나서며 전방에 파문을 일으켜 거대한 회오리를 만들어냈다.
그때, 두 눈을 서늘하게 번득이던 탁삼이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보라색 번개가 이 공간의 균열 곳곳에 나타나 수련성 몇 개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하나의 창을 형성했다.
“멸신모!”
진정한 왕족 고신의 무기, 멸신모였다.
탁삼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그 창을 움켜쥐더니 매섭게 내던졌다. 멸신모는 하늘과 땅을 뒤흔들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고신의 힘을 싣고 노부자를 향해 곧장 날아갔다.
엄청난 속도 때문에 신식으로도 볼 수 없었으나,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든 멸신모가 지나간 공간에는 균열이 일면서 잔영이 남았다.
노부자는 어두운 얼굴로 곧장 회오리로 몸을 던졌다. 멸신모의 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테지만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는 무극자가 붙잡고 있는 다섯 번째 반점도 곧 움직임을 회복할 테니 어쩌면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회오리 안으로 들어간 노부자는 결인을 그려 부러진 검을 다시 소환해 그 위로 피를 뱉어내더니 멸신모 쪽으로 날려 보냈다.
한제는 묵묵히 이 광경을 지켜보며 탁삼의 강력함을 실감했다. 서사의 기억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긴 했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분명 달랐다.
그는 멸신모를 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이 멸신모는 하늘의 위엄처럼 모든 생령을 다 거둬버릴 수 있는 존재로 보이겠지만 한제에게는 그저 하나의 법기일 뿐이었다.
부러진 검과 멸신모가 충돌했다. 크기로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지만 부러진 검은 기세에서는 멸신모와 큰 차이가 없었고 멸신모는 우뚝 멈춰 섰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부러진 검은 뒤로 나가떨어지더니 사라졌다. 반면 멸신모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앞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노부자가 탁삼의 반점에 갇히게 둬서는 안 된다!’
한제의 머릿속을 채운 유일한 생각이었다.
멸신모가 잠시 멈춰선 그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극한의 속도로 몸을 날렸다.
그의 행동에 노부자의 눈빛은 굳어졌고 염뇌자는 흠칫했으며, 시음종 여덟 왕들도 놀란 기색이었다.
멸신모를 막아선 한제의 육신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지만 그 원신은 결인을 그려 멸신모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신념을 한 가닥 뿜어냈다.
“이 이한제는 네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순간, 멸신모가 바르르 진동하는가 싶더니 이내 탁삼의 신념을 품은 포악한 기운을 퍼뜨렸고 그 기운에 부딪힌 한제의 원신은 곧장 붕괴했다.
“첫 번째 별은 너를 위해 남겨두었다!”
원신이 사라지기 직전, 한제가 마지막으로 들은 탁삼의 목소리였다.
멸신모는 다시 쉭 하고 날아들었지만 한제가 벌어준 약간의 시간은 노부자와 염뇌자 시음종의 여덟 왕까지 모두 회오리 안으로 사라질 여유를 만들어주었다.
멸신모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회오리를 찢듯 그 안으로 파고들며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염뇌자는 그 회오리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그 엄청난 힘의 여파로 피를 토해내며 온몸이 뻣뻣해졌고 두 다리도 펑 하고 피 안개로 터져버렸다. 원신 역시 그 힘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크흐흐… 천하의 염뇌자가 이 무슨 꼴이란 말인가!”
비참한 웃음을 터뜨린 염뇌자의 눈에 그늘이 졌다. 이 순간, 그는 탁삼을 향해 당시의 중현자에 버금가는 원한을 품었다. 엄청난 힘이 다시 한 번 뻗어 나오는 것을 본 그의 눈에는 심지어 광기가 드러났고 이에 그는 육신을 자폭시켜 반격하고 원신만을 도망치려 했다.
한데 그 순간, 노부자가 나타나 한 손으로 염뇌자를 잡은 채 번쩍 하고 사라져 버렸다.
시음종 여덟 왕도 가까스로 회오리 밖으로 빠져나왔지만 강력한 힘의 영향으로 인해 육신은 펑 하고 터져나가 여덟 갈래의 서늘한 기운이 됐다. 그렇게 기운으로 이루어진 허상이 된 그들은 곧장 도망치려 했으나, 회오리 건너편에서 전해지는 엄청난 힘에 그중 다섯 갈래의 기운은 그대로 흩어지고 말았다.
남은 세 갈래 기운은 겨우 관을 꺼내 그 안의 육신을 취했으나, 도망치기도 전에 그 끔찍하고도 강력한 힘이 다시금 뻗어와 새로운 육신까지 소멸시켰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1만 척도 벗어나지 못한 시음종의 세 왕은 끝도 없이 시달렸고 피 안개를 분출하는 도중 결국 한 사람이 더 죽었다.
숨이 붙어 있는 두 왕도 거의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다가 그 강력한 힘이 다시 뻗쳐오는 것을 보고 절망에 잠겼다. 한데 그때, 검은색 파문이 일더니 두 개의 팔이 쑥 빠져나와 그들을 파문의 회오리 안으로 끌어당겼다.
“주존(主尊)!”
두 사람은 기쁜 목소리로 외치며 그 팔이 이끄는 대로 끌려 들어갔다.
멸신모의 여파는 그 회오리 안으로도 뚫고 들어갔고 그 안에서는 누군가의 짧은 비명이 들려왔지만 이내 회오리와 함께 무사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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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작성 밖 월성의 평범한 산봉우리에서 한제는 두 눈을 떴다. 그는 곧장 벌떡 일어나 오른손을 휘두르더니 은시를 저물공간으로 들여보내고 자신이 배치한 진을 파괴한 뒤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사라져 버렸다.
다시 모습을 나타낸 곳은 주작성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 한가운데였다.
하지만 한제는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고 어두웠으며, 심지어 약간 떨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탁삼의 마지막 목소리가 맴돌았다.
‘첫 번째 별은 너를 위해 남겨두었다!’
“본체가 삼손칠겁을 통과한다 해도 삼지창을 손에 넣는다 해도 탁삼에게는 대적할 수 없을지도 몰라.”
씁쓸한 얼굴의 한제는 탁삼이 완전히 속박에서 벗어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더 이상 연맹성역에 머물 수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떠나 다시는 돌아와서는 안 돼! 탁삼에게 대항할 힘을 갖추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