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1
진이 파괴되자 무너진 산허리에 자리한 동굴의 모습이 드러났다. 투사파 수련자들은 곧장 동굴로 향했다.
한데 동굴 입구에서 2백 척 정도 거리에 이른 순간,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이 벼락의 위력은 크지는 않았지만 수가 많아 상당한 장관을 이루었다. 이는 한제가 이전에 배치해둔 수백 개의 작은 기초 진으로 이제야 빛을 발했다. 물론 기초 진에 불과해 금세 파괴되었지만 시간은 끌 수 있었다.
전곤은 줄곧 냉정하게 지켜보기만 할 뿐, 직접 손을 쓰지는 않았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한제뿐이었다.
한 덩어리의 벼락 그물이 그의 손에서부터 솟아올랐다. 이 정도 거리라면 목표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 곤선망(困仙網)으로 옭아맬 수 있을 것이었다.
수백 개에 이르렀던 기초 진 중 마지막 하나가 파괴되자 산허리에 자리한 그 동굴은 단 하나의 방어막도 없이 수많은 결단기 수련자들의 앞에 놓였다.
그때 한 여인이 동굴 입구에 나타났다. 그녀에게는 우아하고 탈속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 매끄러운 머리카락과 가지런한 눈썹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다.
전곤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곧 그의 눈빛은 그 여자 너머의 동굴로 향했다. 동굴 안은 어두워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모완은 동굴 앞에 모여 있는 결단기 수련자들을 보며 손을 들었다. 백수 단로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녀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이 원하는 것이 이것이냐?”
전곤은 그녀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한제를 처음부터 쫓았던 수련자 중 한 명인 곤상이 모완의 손에 들린 단로를 보고 껄껄 웃었다.
“저 녀석이 정말로 5품 단로를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그래, 나와 박림은 그 단로를 위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어서 내놓아라!”
곤상이 손을 뻗자 단로는 곧장 모완의 손에서 떠나 그의 손으로 들어갔다.
“대장로님, 이 단로는 저와 박림에게 주시지요. 돌아가면 적지 않은 보답을 하겠습니다.”
곤상이 함께 한제를 쫓았던 동료 박림과 함께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결단 (7)
전곤은 단로를 힐끗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키 작은 수련자가 음흉한 눈빛으로 모완에게 다가갔다. 그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 여기 있는 내 동문들의 시중을 든 뒤에 아가씨는 이 몸의 것이 되는 거야.”
모완은 창백한 얼굴로 몸서리를 치며, 정말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결심했다.
“으아아악!”
그런데 모완에게 다가오던 키 작은 수련자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고통에 찬 끔찍한 비명 소리였다. 이어 그의 코와 입에서, 잠시 후에는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펑그러다 그의 몸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저 멀리로 날아가더니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힘에 붙잡혀 머리부터 터져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머리 없는 시체뿐이었다. 그의 신식도 산산 조각이 나버렸고 그의 금단은 모완의 곁을 스쳐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는 네 놈들이 나를 쫓았지만 지금부터는 내가 너희를 사냥할 것이다. 너희 중 원영기 수준의 수련자가 있지 않은 이상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동굴 안에서 극도로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떠오르더니 투사파 수련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머리에 냉혹한 얼굴. 두 눈에는 무정한 빛이 어려 있었다. 평생 녹지 않을 얼음처럼 그는 우뚝 서 있었다.
뱀 앞의 토끼처럼, 모든 투사파 수련자들이 얼어버렸다. 영혼이 떨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혼을 통해 느껴지는 파동이 신식의 바다를 무너뜨릴 듯했다. 귓가에서는 수없이 많은 우레가 터지는 듯했다.
박림의 체내에 상흔이 생겼다. 머지않아 그는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나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몸에는 주체할 수 없는 경련이 일었고 한 번 경련이 일어날 때마다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피가 쏟아졌다.
깜짝 놀란 전곤이 뭔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의 손에 솟아 있던 벼락 그물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놀란 표정의 그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도망치려 했다. 황천의 화염을 빼앗겠다는 생각은 진작 사라졌고 이제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는 두려웠다. 결단기 중기의 수련자인 그는 남투성 범위 안에서 단 한 번도 겁을 먹은 적이 없었다.
남투성에도 결단기 후기 수련자가 있었고 수마해 중앙 지역과 외곽 지역 사이에서 사자로 활동하는 결단기 후기 수련자들을 마주한 적도 있었지만 그들에게도 별다른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지금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즉각 도망쳤다. 빨리 도망치지 않는다면 죽고 말 것임을 직감한 것이었다.
한편 다른 결단기 수련자들도 안색이 급변했다. 특히 박임이 조짐도 없이 죽어버리고 대장로인 전곤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도망치는 것을 본 후, 그들은 사방팔방으로 무지개를 일으키며 달아났다.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속도를 내면서, 그들은 자신이 가장 느린 사람이 되지 않기만을 바랐다.
★ ★ ★
절체절명의 순간 나타난 인영을 본 모완은 긴장감이 풀리며 다리가 후들거려 벽에 기대어 섰다. 차가운 팔 하나가 그녀의 겨드랑이 아래쪽을 감쌌다. 모완이 깜짝 놀라는 사이 그녀의 몸은 이미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익숙한 체취에 안심이 됐지만 자신의 몸을 떠받친 존재는 안개로 뒤덮여 있어 그 모습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막 뭔가 말을 하려던 그때, 귓가에 한제의 냉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지 마. 지금부터는 저 자들을 죽이는 걸 구경이나 해.”
저물대에서 교룡의 힘줄을 꺼낸 한제가 손을 흔들자 그 힘줄은 거대해졌다. 그리고 그 끝부분이 둘로 갈라지더니 하나는 머리가 사라진 키 작은 수련자의 시체를 다른 하나는 박임의 시체를 옭아맸다.
한제는 신식을 펼쳐 도망치고 있는 수련자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동북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손에는 교룡의 힘줄이 들려 있었으며, 그의 뒤쪽으로는 힘줄에 매달린 두 구의 시체가 펄럭이며 따라오고 있었다.
곤상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방금 그는 거대한 손에 신식의 바다가 흐트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손이 조금 더 힘을 준다면 자신의 신식이 소멸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특히 박임의 기이한 죽음 후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이 순간 그의 마음속에는 후회만 가득했다. 단로 하나 차지하려다가 벌써 둘이나 죽어버렸고 자신 역시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처지가 됐으니 말이다.
곤상은 이를 악문 채 저물대를 두드려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이어서 영력으로 약효를 온몸에 퍼뜨린 뒤 혀끝을 깨물어 피 안개를 뿜어냈다.
그리고 두 손을 그 안개 속에 넣어 여러 갈래의 영력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몸은 빠르게 비쩍 말라갔지만 속도는 이전보다 몇 배나 빨라졌다. 그는 순식간에 잔영을 남기며 1백 리 앞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한제는 멀리서 곤상을 발견하고는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벌려 한 줄기 빛을 뿜어냈다. 그 빛은 번쩍이다가 사라지더니 1백 리 밖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순간, 곤상은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고개를 숙여 보니 수정과 같은 빛이 그의 가슴팍을 뚫고 나와 있었고 그곳으로 그의 금단이 나오더니 뒤쪽으로 날아갔다.
곤상은 입을 벌렸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눈앞이 점차 어두워지더니, 몸이 이상한 각도로 꺾인 채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 죽기 직전까지도 그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사냥감이 어째서 갑자기 사냥꾼으로 변하게 된 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교룡의 힘줄에서 한 줄기 빛이 뻗어 나와 곤상의 시체를 옭아맸다. 이제 결단기 수련자의 시체 세 구는 공작새의 꼬리처럼 삼각형을 이루며 교룡의 힘줄에 매달려 있었다.
모완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방금 본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순간, 한제의 강한 모습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각인되었다.
“세 번째!”
한제는 곤상의 금단을 저물대에 집어넣은 뒤 방향을 틀었다.
투사파의 장로인 진해는 평소 존경받는 자였지만 지금은 개처럼 허겁지겁 내달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빠르지 않은 편임을 잘 알았기에 잠시 법술로 거대한 구멍을 파고 기운을 꽁꽁 감춘 채 숨었다. 축기 수준이던 당시 이런 방법으로 여러 번 위기를 넘긴 적이 있었으나, 이 방법을 쓰는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휴”
땅속에 누운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한숨이 그가 세상에서 내쉰 마지막 호흡이었다. 붉은 번개가 비추는가 싶더니 그는 얼굴의 일곱 개 구멍에서 끊임없이 피를 쏟아냈다.
한 줄기의 금빛 선이 땅을 뚫고 들어와 진해의 시체를 옭아매더니 땅속에서 끄집어냈다.
“네 번째!”
연이어 두 사람을 죽였으나 눈빛이 오히려 더욱 싸늘해진 한제는 다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의 뒤를 따라오는 시체는 벌서 네 개에서 아홉 개로 늘어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대장로 전곤뿐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점점 두려워지고 있었다. 신식을 통해 한제의 뒤에 아홉 구의 시체가 따라오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로는 두려움에 머리가 쭈뼛할 정도였다.
‘도대체 저 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이기에 그 짧은 시간에 아홉이나 되는 결단기 수련자들을 싸늘한 시체로 만들었단 말인가? 설마 저 자가 원영기에 접어들기라도 했단 말인가?’
하지만 전곤은 바로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이전에 그들이 한제를 뒤쫓았을 때만 해도 분명 그의 수준은 축기 후기에 불과했다. 그는 한제가 처음부터 저런 실력이 있었다면 도망 다녔을 리도 없고 며칠 사이에 원영기에 접어들었을 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상황은 순식간에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전곤은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그냥 꿈이 아니라 지독한 악몽이었다.
한제는 멀리서 전곤을 바라보며 속으로 냉소했다. 전곤은 결단기 중기 수준으로 그 속도는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빨랐지만 한제만큼 빠르지는 못했다. 더구나 저렇게 도망치다 보면 영력의 소모가 극심해 곧 속도가 떨어질 것이었다.
전곤은 이를 악물고 방향을 틀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투사파 지부가 있었고 그곳에는 두 명의 결단기 수련자가 있었다. 그들이 돕는다고 상대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 추격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영력을 십분 발휘해 최대의 속도로 투사파 지부를 향해 질주했다.
★ ★ ★
오정봉(五丁峰)은 높이 솟은 거대한 산으로 곳곳에 누각이 서 있었다. 1천 년 전, 원래 이 부근에는 큰 문파가 하나 있었는데 그 문파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문파를 소멸시킨 투사파는 이곳을 하나의 지부로 만들었다.
지부의 제자들은 각자 수련을 하고 있었다. 한데 느긋하게 앉아서 여유를 즐기던 두 명의 결단기 장로 목남과 목북 형제는 돌연 두 눈을 번쩍 뜨고 서로를 돌아보았다가 얼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하늘에서 전곤이 날아오고 있었다. 영락없이 쫓기는 꼴이었다.
전곤은 도착하기도 전에 소리 높여 외쳤다.
“목남, 목북! 얼른 저자를 막아! 저자가 오정봉에 한 발짝이라도 들여서는 안 돼! 성공한다면 상급 영석 1만 개를 보상으로 주지!”
말을 마친 그가 다급하게 도망쳤다.
목남과 목북은 전곤의 말에 놀라서 얼굴이 굳어버렸다. 대장로를 도망치게 할 정도의 적을 그 두 사람이 어찌 막아낸단 말인가?
그때, 두 사람의 시야에 한제가 들어왔다. 대장로를 도망치게 만든 사람이 대체 누구일지 짐작도 하지 못하던 두 사람은 한제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그 뒤에 딸려오는 아홉 구의 시체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목남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저건, 본부의 아홉 장로님?”
목북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난 한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그는 동생을 이끌고 공손하게 한쪽에 서서 외쳤다.
“목북이 선배님을 뵈옵니다.”
목남 역시 몸을 덜덜 떨면서 목북을 따라 공손하게 인사했다.
“목남이 선배님을 뵈옵니다.”
그러나 한제는 냉랭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힐끗 쳐다봤을 뿐,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 두 사람의 심장은 두방망이질 쳤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미 오랜 시간 전속력으로 내달린 전곤은 영력이 바닥났음을 느끼고 저물대에서 단약을 꺼내 먹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한제와의 거리는 더욱 좁혀졌다.
전곤은 비참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웃더니 이를 악물고 저물대에서 붉은색 영패 하나를 꺼냈다. 그 영패에는 짙은 붉은색으로 징벌한다는 의미의 ‘주(誅)’자가 쓰여 있었다.
이 만마백일주살(萬魔百日誅殺) 영패는 상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제작자의 대가 이미 끊겨 수마해에서도 열 개가 채 남지 않은 것이었다.
이는 전곤 역시 운 좋게 손에 넣은 것으로 전곤은 영패를 얻자마자 정복하여 보물처럼 아끼면서 절대로 그 존재를 밖에 드러내지 않았다. 본래는 좀 더 수준이 높아진 뒤에 사용하려고 아껴두었던 것이었다.
이 영패를 활성화시키려면 결단기 이상 수련자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또한 이 영패가 지정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수준은 수단(修丹)이 되는데 그 수단을 복용하면 신통력이 적지 않게 증가했다. 영패의 이런 기이한 효과 때문에 수마해에서는 이 영패가 지정한 사람을 보면 기를 쓰고 죽이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