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15
이윽고 기이한 깨달음이 점차 그의 마음을 채웠다. 세 번째 단계를 목격했던 데다가 청림 덕분에 직접 그 단계를 경험해본 적이 있기에 노부자가 세 번째 단계의 신통력을 사용했을 때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광풍이 불어닥치면서 거대한 원숭이의 팔이 훅 다가온 순간, 한제는 두 눈을 부릅뜨고 가만히 손을 들어 그 거대한 팔을 가볍게 막았다.
콰쾅!
엄청난 힘이 그의 손을 타고 원숭이의 팔로 흘러들자 격렬한 소리와 함께 한제의 옷소매가 세차게 나부꼈고 머리카락도 휘날렸다. 그러나 그의 몸만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반면 거대한 원숭이는 경련하듯 떨었고 녀석의 팔에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한제의 눈이 점점 밝게 번득였다. 머릿속으로 노부자가 취했던 동작들을 셀 수도 없이 많이 반복하던 그는 마침내 본능적으로 그 동작을 따라 왼손을 들었다가 빠른 속도로 오른손을 두드렸다. 그때마다 엄청난 원력이 사방에서 왼손으로 응집됐다가 오른손으로 전해졌고 한제의 얼굴은 약간 붉게 달아올랐다.
“하앗!”
한제가 낮게 기합을 넣었다. 그 순간…
콰콰쾅!
격렬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원숭이는 뒤로 떠밀려 나갔고 녀석의 팔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또한 팔에 남은 또렷한 손자국으로부터 세 갈래의 균열이 팔을 타고 원숭이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콰쾅!
무언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순간, 한제는 원숭이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오른손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깨달음의 빛이 어려 있었다. 신통력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무언가를 파악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방금 자신의 힘으로 세상의 원력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통제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세상의 원력을 강제로 조종하기 위해서는 주위로부터 그 힘을 빠르게 끌어온 뒤 신통력으로 전환해야 했다.
“캬오오!”
그때, 거친 포효에 한제의 생각이 끊어졌다. 거대한 원숭이는 겁에 잔뜩 질린 눈빛으로 자신의 몸을 타고 뻗어 나가는 세 갈래 균열을 바라보았다. 머지않아 몸이 갈래갈래 찢겨나갈 것 같았다.
그 순간, 거대한 원숭이의 체내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 빛에 휩싸인 녀석의 거대한 머리에서는 허상의 혼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 허상의 혼은 흐릿했지만 그 모습은 거대한 원숭이와 같았다. 조금 더 인간다운 모습의 그 혼은 육신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듯했다.
이 광경을 본 한제의 두 눈이 급격하게 밝아졌다.
“응혼성신(凝魂成神)! 옥패에 설명된 바에 따르면 6급 흉수만이 가진 신통력이라 했다. 이 흉수가 생사의 위기에서 6급으로 진화를 한 것인가!”
한제는 앞으로 다가가 원숭이 흉수의 머리에 이르더니 오른손을 내리쳐 이 거대한 원숭이의 혼을 육체 안으로 눌러 넣었다.
“내 영수가 되어라!”
한제는 거대한 원숭이의 두 눈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거대 원숭이는 두려움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영각이 열려 한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녀석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답을 받아낸 한제가 가볍게 두드리자 원숭이의 몸을 타고 뻗어 나가던 세 갈래의 균열이 우뚝 멈추더니 빛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동시에 옥패에 기록되어 있던 공령인(控靈印)이 그의 손에서 나타나 원숭이의 미간에 찍혔고 하나의 문양이 되어 여러 번 번쩍이다가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그 무렵, 하늘에서 전투를 벌여 독수리 흉수를 모두 처리한 흡혈마수들이 다가와 거대 원숭이의 위를 빙빙 맴돌았다.
한제는 거대 원숭이의 어깨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전방을 바라보았다. 거대 원숭이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더니 한 발 앞으로 성큼 나서며 한 줄기 유성이 되어 사라졌다.
★ ★ ★
안개로 가득한 광활한 성역 안, 무척 조용해 보였지만 사실 그 안개 속에는 무한한 살기가 어려 있었다. 5급 성역인 운해성역의 여러 대륙 중 4할은 각 종파의 소유였다.
1급에서 4급까지의 성역 입장에서 5급 종파는 오를 수 없는 경지의 존재였다. 만약 5급 종파의 제자가 4급 성역에 이른다면 누구라도 그들의 매우 공손한 대접을 받게 될 터였다.
이때 이 5급 성역 안, 고요했던 안개 속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한 줄기 빛이 나타났다. 그 빛 안에는 용처럼 생긴 영수가 있었고 그 머리에는 짙은 위엄을 풍기는 한 수련자가 서 있었다.
긴 빛이 지나가고 난 뒤 이곳의 안개는 더욱 요란해졌다. 수많은 흉수들이 겁에 질린 눈빛으로 이리저리 도망쳤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2각쯤 뒤에는 수십 갈래의 빛이 엄청난 속도로 안개를 뚫고 이 5급 성역을 질주했다. 하나하나 빛에는 등에 수련자를 하나씩 태운 각기 다른 영수들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5급 성역의 수련자가 아니었다. 5급 성역이 이렇게 요란하게 뒤흔들린 것은 바로 6급 성역에서 온 이들의 출현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여섯 군데의 5급 성역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영수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 수련자들의 눈에는 흥분과 끝을 알 수 없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6급 성역에서 온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 5급 성역의 어느 황량한 대륙이었다.
★ ★ ★
한 황량한 대륙 북쪽에서는 무거운 무언가가 계속해서 지면으로 떨어져 내리듯 대지가 진동하는가 하면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안개도 그 기세에 꾸물거리며 뒤로 떠밀렸다.
한 무리의 새 같은 흉수들이 안개 속에서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도망쳤고 지면의 흉수들도 다급하게 흩어졌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무언가에 큰 두려움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짙은 안개 속에서 키가 1천 척에 달하는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건장한 체구의 그것은 거대한 검은색 원숭이였다.
그 원숭이 뒤로는 소처럼 생긴 흉수들이 붉은 눈을 번득이며 쫓아오고 있었는데 이에 따라 짙은 안개와 모래 먼지가 피어올랐다.
소처럼 생긴 흉수들의 사방에는 일곱 종류가 넘는 서로 다른 흉수 무리들이 한데 뒤섞여 긴 대열을 이룬 채 마치 밀물처럼 검은 원숭이를 뒤쫓았다.
하늘에서는 새와 같은 형태의 흉수들도 추격에 동참한 상태였다.
이 광경을 누구라도 봤다면 흉수들의 압도적인 수에 수준 높은 수련자라 해도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을 터였다. 게다가 그중에는 5급이 분명해 보이는 흉수들도 있어 신통력까지 쏘아대고 있었다.
하지만 검은 원숭이는 민첩하게 대부분의 신통력을 피해냈고 종종 적중됐음에도 두꺼운 가죽 덕에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이 원숭이는 두 발로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쿵! 쿵! 요란하게 울리던 소리는 바로 이 원숭이의 발소리였다.
녀석이 광풍을 일으키며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동안 앞에 산골짜기가 나타나자 원숭이는 땅을 박차고 훌쩍 뛰어올라 그 산골짜기를 단박에 뛰어넘었다.
유성처럼 빠른 녀석이 순식간에 다른 산봉우리의 꼭대기로 오르자 그 위를 선회하고 있던 독수리 같은 흉수들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하지만 채 다가오기도 전에 원숭이가 휘두른 두 팔에 녀석들은 터져나갔다. 마치 앞을 막는 것은 무엇이든 파괴해버릴 듯했다.
뒤이어 원숭이가 이른 산꼭대기에는 크기가 수백 척에 달하는 둥지가 하나 있었는데 녀석은 그 근처로 다가가 주먹을 휘둘렀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둥지는 박살이 나면서 갈라졌고 그 너머로 붉은색 풀 한 포기가 드러났다. 원숭이는 멈추지 않고 둥지를 완전히 부순 뒤 그 붉은 풀 근처의 바위를 뽑아냈다. 수십 척에 달하는 바위는 그대로 뽑혀나갔다.
“캬오오오!”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지른 원숭이는 이내 먼 곳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곳을 지키던, 천 마리가 넘는 독수리 흉수들이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드러내며 원숭이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변화
돌진하던 검은 원숭이는 손에 쥐고 있던 바위를 부수어 안에 들어 있던 붉은 풀을 꺼내더니 어깨 쪽으로 넘겼다.
원숭이 어깨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는 그 풀을 받아 들더니 저물공간에 집어넣었다. 이어서 가볍게 검은 원숭이의 몸을 두드리자 녀석은 그 뜻을 알아채고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지르며 기쁜 기색으로 속도를 높였다.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이 검은 원숭이 뒤로는 먼지와 안개가 섞여 뿌연 가운데 수많은 흉수들이 고함을 질러대며 죽일 듯 쫓아오고 있었다.
저 멀리 5급 성역 종파 소속 수련자 몇몇은 넋을 놓고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총 일곱 명인 이들은 저 많은 흉수들의 눈에 띌까 두려운 마음에 조심스레 이 황량한 대륙에 이르렀다. 허나 두려움에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를 못하니 이들이 손에 넣은 약초는 매우 적었다.
그때, 검은 원숭이가 두 발을 굴러 수천 척을 솟구쳐 올라 또 하나의 산봉우리 꼭대기에 이르렀다. 이곳의 산은 험준했지만 원숭이는 개의치 않고 산꼭대기에 이른 뒤 한 덩어리 안개 같은 꽃 몇 송이를 손에 넣었다.
그때, 날카로운 소리가 하늘에서부터 들려오더니 길이가 5백 척에 달하는 5급 독수리 흉수가 안개를 뚫고 검은 원숭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엄청난 속도에 녀석과 원숭이 흉수 사이의 거리는 순식간에 1천 척 안쪽으로 줄어들었다.
이를 본 원숭이는 왼손으로 산봉우리를 움켜쥔 채 몸을 날려 마치 그네를 탄 듯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빙글 돌았다. 그리고 그 회전력을 이용해 검은 독수리를 걷어찼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독수리는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밀려났다. 그 사이에 검은 원숭이는 회전력을 이용해 몸을 날려 다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흉수의 수는 전보다 더 많아졌다.
★ ★ ★
서낙형은 두 눈을 감은 채 어두운 산골짜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창백한 그의 입가로는 굳은 피가 묻어 있었고 검은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다.
사방에서는 귀신이 우는 듯한 소리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그 안에는 펑 하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 개의 인영이 다급하게 달려오더니 30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렀다. 그중 한 명은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스승님, 셋째가… 전사했습니다. 저희는⋯⋯ 나갈 수 없습니다.”
네 사람 모두 청년이었는데 하얀 옷은 피로 잔뜩 물들어 있었다.
서낙형은 눈을 뜨지 않았지만 그 얼굴에는 짙은 슬픔이 드러났다.
그와 제자들이 자리한 산골짜기는 안개로 가득했는데 그 안에서는 죽은 혼들이 뒤섞여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댔다.
이 산골짜기 밖에는 초록색 전광으로 뒤덮인 여덟 개의 거대한 두개골이 허공에 뜬 채 연결되어 하나의 진을 이룬 상태였다. 매우 기묘한 이 진은 황량한 대륙의 수많은 혼들을 응집시키고 그것들에 형태를 부여했고 형태를 가진 혼들을 진에 융합시키면서 점점 강력한 신통력을 발휘했다.
이런 사혼(死魂)은 단약으로 만들 수 없었다. 단약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것은 생혼(生魂)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혼은 대부분 사람이나 마수가 죽기 전에 가진 원념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 원념은 세상에 녹아든 채 오랫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한편 진을 이룬 여덟 개의 두개골 중 하나에는 노파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비쩍 마른 노파는 피부에 주름이 가득했고 표정도 잔뜩 일그러져 있어 마치 귀신처럼 보였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번득이는 어스름한 빛에는 음산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서 도우, 자네가 데리고 온 열아홉 제자 중 이제 네 명 남았군. 한데 어찌 계속해서 무고한 제자들의 목숨만 끊어놓으려 하는가? 자네가 가진 그것만 내놓으면 모두 살 수 있는데 말이야.”
음산한 목소리가 산골짜기에 왕왕 울리자 네 명의 청년은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말없이 스승을 바라보았다.
“서낙형, 그 물건이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느냐? 자네 수준이 높다고는 하나 우리 오독문(五毒門)의 독에 중독됐으니 당분간은 신통력을 발휘하면 몸이 터져 죽게 되지 않는가? 잘 생각해보라고.”
서낙형은 침통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6급 화청종(華清宗)의 제자로 정열기 후기 수준인 그는 여러 단서를 따라 제자들을 이끌고 비밀리에 3급 성역에 갔다가 무언가를 손에 넣었다.
한데 불확실한 근거만으로 그것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놀라웠지만 그때까지 순조로웠던 모든 일이 그 물건을 찾아낸 뒤부터는 험로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