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19
‘본체가 있었더라면 일이 조금 더 쉬웠을 텐데⋯⋯.’
한제는 한숨을 내쉬며 봉선인을 가리킨 뒤 손을 크게 휘둘렀다. 순간 번쩍이는 빛이 발산되면서 수많은 혼백들이 튀어나왔다.
그중 가장 강한 혼은 두 분신이 합쳐진 천운자의 혼과 허공자의 혼이었다. 한제의 필살기나 다름없는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위는 음산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다
한편, 전귀종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저자가 이 짧은 순간에 자신의 모든 핵심 제자들을 처리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심지어 자신의 신통력을 맞고도 목숨을 부지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보다도 상대가 소환한 강력한 사혼들에 심장이 덜컥했다. 저 사혼의 주인은 생전에 엄청난 수련자였음이 틀림없었다. 사혼에 불과한 지금은 생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약해졌겠지만 그럼에도 전귀종은 큰 충격을 받았다.
“크아아!”
한제의 손짓에 따라 허공자와 천운자의 혼은 성난 고함을 내지르며 곧장 전귀종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었다. 속전속결이 생명이었다. 만약 지원 병력이 오기 전에 상황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한제의 목숨은 오늘로 끝일 것이다.
한제는 숨을 고르며 녹슨 철검을 소환했다.
그 검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우주가 진동했고 사방을 가득 채운 안개조차 흘러넘치는 힘에 뒤로 밀려났다.
“차공열!”
전귀종의 표정이 급변했다. 강력한 두 사혼의 등장이 그를 놀라게 했다면 저 철검은 경악과 동시에 짙은 탐욕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전귀종은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쇄열기 수준의 위력을 폭발시켰다.
‘분명 내게 불리하다. 허나 반드시, 그것도 속전속결로 이겨야만 한다!’
전귀종이 달려들자 한제는 녹슨 철검을 쥔 채 물러나면서 왼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허공자와 천운자의 혼이 돌진했다. 미간에 반 정도 남겨놓은 본원을 제외하면 가장 강한 무기인 진혼들과 필살기인 철검까지 꺼낸 것이다.
지금 그는 고신의 육체가 가진 강력함도 끝없는 고신의 힘이 담긴 주먹질도 사용할 수 없었고 잔야력도 발휘할 수 없었다. 심지어 청광순마저 청림의 동굴에서 붕괴했고 8성급 고신의 구명 신통력인 원고 시대의 꿈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일개 수련자의 분신에 불과한 상태에서 쇄열기 수련자를 죽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오른쪽 다리는 뭉그러진 상태였고 전귀종의 신통력을 통해 한제의 몸을 관통한 하얀 빛에는 쇄열기 수준의 원력과 모종의 규칙이 깃들어 있어 체내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만약 원신이 고신의 피갑으로 보호받고 있지 않았다면 진즉 붕괴했을 터였다.
허나 다행히도 주작성종에서 온 세상의 불로 단련해 번개와 불의 규칙의 힘을 갖게 된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
쇄열기 수련자의 강력함을 충분히 알고 있던 한제는 위기가 닥쳐오자 최대한 빨리 전투를 끝내고자 곧장 허공자와 천운자의 혼을 전귀종에게 돌진시켰다.
두 혼을 마주한 전귀종은 신중해졌다. 숱한 싸움을 겪었지만 쇄열기 수련자의 신통력에 이토록 위협적으로 대적한 정열기 수련자는 처음이었다.
특히 천운자의 혼은 거의 광기를 보이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흐릿하고 모호했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규칙을 동원한 신통력들이 날아들었다.
한편, 죽기 전 수준이 첫 번째 천쇠에 이르러 있던 허공자의 혼은 매 공격마다 바람과 번개를 요란하게 일으켰다.
만약 시간만 충분하다면 두 혼만으로도 전귀종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럴 여력도 두 개의 강한 혼을 유지할 만큼의 선력도 없었다. 특히 살두성병은 선력 소모가 큰 술법이었기 때문이다.
허공자와 천운자의 혼이 전귀종과 각축을 벌이고 있을 때,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철검에 정신을 집중시킨 뒤 매섭게 휘둘렀다.
순간 한 줄기 검광이 쏘아져 나가 허상의 검이 되어 전귀종의 머리로 향했다.
한제는 두 눈을 감고는 철검이 알아서 신통력을 발휘하게 두었다. 그러자 검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호를 그리듯 줄기줄기 허상의 검이 나타나 허공을 갈랐다. 그때마다 한제의 원력은 대량으로 소모되었다.
번쩍이는 색색의 검광들로 인해 전귀종 주위는 검광의 꽃밭처럼 빛났다.
눈 깜짝할 사이 생겨난 검광은 총 열세 개였다. 눈을 감은 채 철검의 움직임대로 따르는 한제에게서는 간담이 서늘할 정도의 기세가 느껴졌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그 검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귀종은 두 혼과 얽혀 결인을 그리며 신통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법보의 도움까지 받았지만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는 저 철검이 차공열 법보라는 것을 눈치 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위력에 경악했다. 이에 검광에 거의 뒤덮여 피하지도 못한 채 두 혼으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그 순간,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춤을 추듯 연속으로 여섯 번이나 철검을 내리쳤다. 그러자 여섯 개의 검광이 더 생겨났다.
앞선 열세 개의 검광까지 총 열아홉 개의 검광을 발사하느라 한제의 원력은 이미 6할 가량 소모된 상태였다. 그 이상의 검광을 발산할 수도 있었지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열아홉 개가 한계였다. 그 이상의 검광을 통제하려다가는 철검과의 연결을 끊지 못하고 기력이 쇠할 때까지 검광을 쏘아내게 될 터였다.
한제가 몸을 뒤로 물림과 동시에 허상의 검 열아홉 자루가 전귀종의 곁에 나타났다.
“참(斬)!”
한제의 낮은 외침에 이 검광들은 동시에 전귀종을 향해 달려들었다. 믿기지 않는 속도였다.
쾅! 콰쾅! 쾅!
열아홉 개의 검광 아래, 전귀종은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검광들에 관통됐다.
“크으윽!”
바르르 떨리던 전귀종의 육신은 곧 열아홉 개로 조각나면서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곧장 정수리를 통해 빠져나온 원신이 말의 갈기 법보를 휘감은 채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두려움에 질린 상태로 저 백발 수련자가 파천종과 단약 제조법에 대해 알고 있음은 물론, 서낙형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음을 확신했다.
‘저자는 대체 어느 종파 수련자이기에 저토록 강한 법보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설마⋯⋯ 8급 성역 사람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전귀종의 심신은 격하게 진동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어떻게든 문파에 알려야 했다.
‘곧 후발대 지원조가 도착할 것이다. 조금만 버티자!’
한데 전귀종의 원신이 도망치려던 찰나, 한제의 왼쪽 눈에서 불빛이 번득였다. 순간 그의 온몸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이 퍼져나가더니 곧 바다를 형성했다.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이 불바다가 한 층이 아니라 총 아홉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현변(九玄變)!
아홉 개 층으로 이루어진 불바다는 곧장 수축하기 시작하더니 한제의 몸으로 응집되었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제는 타오르는 듯한 몸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그 한 번의 움직임에 육신은 사라져버렸고 그 대신 수백 척의 하얀 주작 한 마리가 허상으로 나타났다. 이 주작이 바로 한제였다.
“캬오오!”
날개를 한 번 움직인 주작은 이글거리는 불바다를 이끌며 눈 깜짝할 사이 전귀종의 원신을 향해 몸을 날렸다.
“헛! 이건 또 뭐란 말인가!”
원신만 남은 전귀종은 두 눈이 바짝 졸아든 채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죽음이 눈앞에 닥친 그는 곧장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파멸적인 기운 한 줄기를 뿜어냈다. 원신을 자폭시킨 것인데 그의 수준으로는 자폭도 통제가 가능해 왼팔만 폭발하더니 주작에 대적했다.
이어서 전귀종은 그 순간 말의 갈기 법보 역시 폭발시켜 수백 개의 하얀색 실을 형성해 주작에게 달려들게 했다.
하지만 무엇도 주작의 돌진을 막지는 못했다.
“끄아악!”
순식간에 코앞으로 달려든 주작은 화염을 뿜어내 전귀종의 온몸을 뒤덮었다. 이에 전귀종의 원신은 비참한 절규를 내지르며 오그라들었고 곧장 뒤로 물러나 활활 타오르는 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와중 남은 손으로 결인을 그려 하나하나의 기이한 문양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곧 그의 곁에 한 마리 거대한 구렁이의 혼이 나타났다. 이 혼이 나타나자 전귀종은 숨을 들이마셨고 이에 구렁이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영혼으로 연결된 영수의 혼을 흡수한 전귀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 질주했다.
한편, 그때 주작이 흩어지면서 가슴팍이 뭉그러져 피로 범벅이 된 한제가 나타났다. 어렴풋이 보이는 가닥가닥의 하얀 실이 그의 육신을 관통한 상태였다.
저 멀리 도망치는 전귀종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 짙은 살기가 번득였다.
“천운의 혼이여, 내 신념에 녹아들라!”
결인을 그린 오른손으로 곁에 있던 천운자의 혼을 가리키자 그 혼이 두 눈을 번득이며 한 줄기 어스름한 빛이 되어 한제의 체내로 달려들었다.
한제는 몸을 한 번 바르르 떨었고 이내 두 눈빛이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평온한 눈빛은 마치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했다. 한제가 평생 만났던 모든 수련자들 중 오직 천운자만 보였던 모습이었다.
청림의 도움으로 백범의 신통력을 더욱 완벽히 깨닫게 된 한제는 살두성병의 수준을 극한으로 올려놓은 뒤 영혼을 자신의 몸에 녹여 넣을 수도 있게 됐다.
그는 저 멀리 도망치는 전귀종에게는 관심도 없는 듯 천천히 두 눈을 감더니 왼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 한 줄기 폭풍이 나타나더니 주위를 휩쓸었다. 동시에 짙은 안개가 부옇게 일어나면서 줄기줄기 노란색 파문이 퍼져 나갔고 그 중심에서 거대한 주먹이 나타나 검지만을 치켜들었다.
천운일지!
자신의 힘에 천운자의 혼을 녹여 넣어 천운일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운해성역에 나타난 천운일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세와 속도로 전귀종의 원신을 추격하더니 가볍게 짓눌렀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천운일지는 전귀종의 원신을 절망 속에 붕괴시켜 빛으로 흩어버린 후 사라졌다.
사방은 고요했다. 공격을 시작하고 전귀종을 죽일 때까지 걸린 시간은 매우 짧았다.
모든 것을 거두고 정리한 한제는 곧장 먼 곳으로 몸을 날렸다.
‘본체가 있었다면 오늘의 전투가 이처럼 고되지는 않았을 터. 삼손칠겁⋯⋯ 본체가 성공적으로 그 난관을 넘길 수 있을까?’
한제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의 체내에서는 수많은 하얀 실들이 휘젓고 다니면서 끝없는 고통을 유발했다.
한제는 이를 악물고는 방향을 틀어 우주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 ★ ★
닷새 후, 막라 대륙이 저 멀리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한제는 마침내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지난 닷새 동안 다행히도 다른 수련자를 한 명도 마주치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제는 자신이 전귀종을 죽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낙형의 사망 소식이 다른 종파 수련자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그 황량한 대륙 주변이 삼엄하게 봉쇄되었음은 알지 못했다.
특히 화청종은 전귀종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주변을 봉쇄한 채 범인을 찾으려 했다. 허나 그때 한제는 이미 저 멀리 떠나간 상태였다.
6급 성역 수련자들은 산골짜기에 남은 서낙형의 유해와 해골 조각 등을 통해 이 사건의 주모자를 오독문으로 추정했다. 그럼에도 오독문은 이렇다 할 해명도 하지 못했다.
다시 막라 대륙으로 돌아온 한제는 한 줄기 빛이 되어 귀원종에 도착했다. 그는 앞으로 5급 성역에서 강한 피바람이 불 것이라 예상했다.
6급 종파 수련자들은 대대적으로 삼엄한 수색을 하고 다닐 터. 그런 상황에서는 귀원종으로서의 신분이 그에게는 매우 중요해졌다.
한제가 귀원종 남원 약초밭에 나타났을 때, 집 밖에서 가부좌를 튼 채 좌선을 하고 있던 허윤은 흠칫 놀랐다.
“당신⋯⋯?”
허윤은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지만 한제는 그녀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오른손을 휘둘러 대량의 약초를 소환했다. 소환된 약초는 그와 허윤 사이에 작은 언덕을 이룰 정도로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