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2
이 영패가 죽일 사람으로 지정하면 수마해 안에서는 1백 일 이상 살아남을 수 없었다. 만약 1백 일을 무사히 넘기면 영패를 활성화시킨 자가 수단이 된다.
전곤은 원래 원영기에 이른 뒤 이 영패를 사용할 생각이었으나 생사의 기로에 놓인 이상 더는 아껴둘 수가 없었다.
그는 멈춰서 한제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영패를 꽉 쥐며 외쳤다.
“멈춰라! 이 영패가 바로 그 유명한 만마백일주살이다! 난 이미 이 영패를 점령했고 영혼을 주입했다. 그러니 네가 날 죽인다면 이 영패가 너를 죽일 자로 지정할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겠지?”
한제는 별다른 대꾸 없이 진곤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개미라도 구경하는 것처럼 흥미와 호기심 어린 표정이었다.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진곤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오늘의 일은 우리 잘못이다. 내 사과하지. 하나 이미 아홉 명을 죽인 상황에서 나까지 죽일 필요가 있겠는가? 날 놓아준다면 만마백일주살의 대상자로 지정하지 않겠다. 또한 널 투사파의 대장로가 될 수 있도록 추천하지. 어떠한가?”
만마백일주살 영패
한제는 여전히 자신과 상관없는 일을 구경하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모완은 흠칫 놀라더니 굳은 얼굴로 작게 속삭였다.
“저건 지정된 자를 1백 일 동안 쫓아다니며 죽이는 영패야. 수마해에도 있을 줄은 몰랐네. 나도 고서에서만 몇 번 봤던 법보거든.”
모완은 께름칙한 듯이 영패의 다른 효력에 대해서도 차분히 설명했다.
전곤은 혹여나 한제가 이 영패에 대해 모를까봐, 그래서 자신의 협박이 통하지 않을까봐 내심 불안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일행이 이 영패를 알고 설명까지 해주니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도우, 내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나? 괜한 고집은 부리지 말게. 이 자리에서 날 죽였다가는 자네는 이 영패 때문에 분명 골치가 아플 거야. 자네 곁에 있는 그 여인까지도 곤란해지겠지. 그러니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어떤가?”
그러나 한제는 전곤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것인지 그를 무시한 채 모완에게 물었다.
“1백 일을 죽지않고 살아 남으면 영패를 활성화 시킨 상대의 수단(修丹)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거, 확실해?”
모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전곤은 불길함을 느끼곤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런데 그때, 한제가 싸늘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죽어.”
순간, 전곤은 신음을 흘리며 코와 입을 시작으로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피를 뿜어냈다.
“윽…”
이어 눈빛이 흐릿해지더니 신식이 파멸된 채 쓰러졌다. 그리고 그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영패가 소리 없이 깨지더니 붉은 빛으로 솟아올라, 허공에 거대한 주(誅)자를 그렸다. 피처럼 선연한 붉은색의 이 글자는 한제의 머리 위에 눈부신 자태로 걸렸다.
한제는 고개를 들어 허공에 걸린 거대한 주(誅)자를 바라보다가 무심하게 교룡의 힘줄로 전곤의 몸까지 옭아맸다. 그러더니 모완을 데리고 날아, 눈 깜짝할 사이에 오정봉으로 돌아왔다.
거대한 붉은색의 주(誅)자를 바라보던 목남과 목북은 순간 탐욕을 느꼈으나, 그 탐욕은 한제의 싸늘한 눈길을 마주하는 순간 씻은 듯 사라져버렸다.
한제는 그들을 힐끗 쳐다본 후 담담하게 물었다.
“투사파의 본부에는 원영기 수련자가 몇이나 되지?”
목남이 얼른 대답했다.
“없습니다. 투사파는 물론이고 남투성 반경 1백만 리 안에 원영기 수련자는 없습니다. 그 정도 수준의 선배님들은 수마해 중앙 지역에만 계십니다.”
한제는 줄곧 덜덜 떨고 있는 목남에게 물었다.
“투사파 장교의 수준은?”
“투사파의 장교께서는 결단기 중기 이십니다. 그러나 거의 절정에 이르셔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곧 후기로 접어들 것이라 합니다.”
한제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더니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길을 안내해줘야겠다. 투사파 본부로 가자.”
목남과 목북은 감히 이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공손하게 허리를 숙인 뒤 앞장섰다. 그러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한제의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는 거대한 주(誅)자를 힐끔거렸다. 그저 빨리 많은 사람들이 이 글자를 보고 몰려들어 저 자를 죽여 버리기만을 바랐다.
전투와 피의 길
모완은 처음 한제를 손유재로 착각해 마주쳤던 당시를 떠올렸다. 만약 당시 정말로 싸움이 났다면 오라버니는 한제의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한제를 건드린 자는 모두 죽음을 맞았다. 단순히 그 힘이 강력할 뿐만 아니라 심성도 독했다. 심지어 자신에게 단 한 번도 가련하다는 눈길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말 무정한 사람이야.’
모완은 한제를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몇 년간 그녀는 한제가 자신에게 조금의 이상한 마음도 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됐다. 왜냐하면 한제의 눈에 그녀는 그저 하나의 단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모완은 씁쓸하게 웃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한제는 그런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무심하게 말했다.
“조금만 참아라. 이 일을 처리하고 나면 바로 화분맹으로 돌려보내줄 테니까.”
모완은 입술을 꼭 깨문 채 이마를 살짝 두드렸다.
잠시 후, 길 안내를 하고 있던 목남과 목북이 어두운 표정으로 우뚝 멈췄다. 그들의 전방에 1백 명이 넘는 수련자들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두 한제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붉은 글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려지지 않는 탐욕이 그들 눈에 번득였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두려움도 섞여 있었다.
한제는 냉정한 눈으로 그들을 훑어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계속 가. 누군가가 앞을 가로막으면 죽여라.”
점수를 딸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상관묵은 몸을 훌쩍 날려 목남과 목북이 멈춰 있는 곳으로 향하더니 껄껄 웃었다.
“축기 나부랭이들아, 앞을 가로막는 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전방을 막고 서 있던 수련자들이 길을 비켰다. 사실 이들은 그저 말로만 듣던 만마백일주살 영패가 지정한 자가 누구인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더구나 한제의 뒤에 떠 있는 열 구의 시체를 보면 있던 탐욕마저 사라졌다.
이미 남투성 반경 1백만 리 안의 모든 수련자들은 만마백일주살 영패의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이에 점점 많은 수련자가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계속해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자 한제는 짜증이 났다. 더구나 그들의 눈에 언뜻 스쳐가는 탐욕의 빛에 살의가 일었다. 멀찍이서 따라오고 있는 많은 수련자들의 눈빛도 결코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목남과 목북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그 둘은 결단기 수련자였지만 도중에 마주친 수련자들 중 그들보다 높은 수준의 수련자가 적지 않았다. 심지어 소문으로만 듣던 유명한 수련자들도 멀찍이서 그들을 따라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점점 두려워졌다. 그들뿐만 아니라 상관묵 역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수마해 중앙 지역 원영기 수련자들도 동참하게 될 터였다.
그는 내심 조급해하며 이 망할 놈이 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했다. 자신이라면 사방에 가득한 수련자들을 깡그리 죽임으로써 감히 덤벼들지 말라는 의미를 분명히 했을 것이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점점 더 많은 자들의 표적이 될 것이 분명했다.
모완 역시 두려웠지만 한제의 여유로운 모습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한제의 눈빛은 점점 싸늘해졌다. 결국 그는 우뚝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그리고 얼음장처럼 차갑게 말했다.
“내가 세 번 숨 쉬는 동안에 남아 있는 자들은 모두 죽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친 그는 눈을 감고 숨을 한 번 쉬었다. 번쩍 뜬 한제의 눈에 붉은색 번개가 번득였다. 그와 동시에 그는 모완의 손목을 쥐고 있던 왼손을 풀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러더니 그의 몸은 번개처럼 뒤쪽을 향해 내달렸다.
극의 신식이 미친 듯이 펼쳐지며 한 줄기의 수정 빛이 그의 입에서 토해졌다. 몇 번 번쩍이던 그 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는 한제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큰 범위의 학살이었다.
“으아아악!”
극의 신식이 펼쳐진 범위 안에 있던 축기 수준의 수련자들은 모두 짓이겨진 개미처럼 순식간에 죽어갔다. 그 모습에 남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그들도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번쩍거리는 수정 빛에 머리가 터져 피를 내뿜으며 죽어갔다.
한제의 두 눈은 더욱 싸늘해졌고 그 눈길이 닿는 곳의 수련자들은 분분히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참혹한 비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한 구의 시체가 떨어질 때마다 한제의 뒤에 있던 교룡의 힘줄이 한 갈래씩 뻗어 나와 그 시체를 옭아맸다.
한제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더욱 빠르게 움직이며 결단기 수련자들을 처리했다. 축기 수준의 수련자들에게는 그 영향만 미쳐도 충분했다. 저 멀리 달아났던 수련자도 수정 비검의 공격에 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한제의 극의 신식 범위 안에 있던 수련자들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 수련자들의 눈에서 더는 탐욕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보다는 깊고도 짙은 두려움만 가득했다. 한제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글자가 어두운 밤의 횃불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한제의 뒤에 따라오고 있는 교룡의 힘줄에는 이미 1천 구가 넘는 시체가 빽빽하게 매여 있었다. 시체들은 마치 망토처럼 한제의 뒤에서 펄럭펄럭 흔들렸다.
그때, 1천 리 밖의 안개 속에서 일고여덟 명의 노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묵묵히 아무 말도 없이 미간을 구긴 채 한제를 노려보았다. 그들의 눈빛에 어린 두려움은 갈수록 짙어져갔다.
★ ★ ★
이들은 평소 수련에만 몰두하는 자들로 모두 결단기 중기 수준이었다. 남투성을 관장하는 3대 문파나 투사파도 그들에게는 예우를 갖추었다. 만약 만마백일주살 영패가 아니었다면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서두릅시다. 1백만 리 밖에 있는 원영기 수련자까지 동참한다면 우리에게 기회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말을 한 자는 머리가 하얗게 샌 백발이었으나 얼굴은 어린아이 같았고 어딘가 요사스러운 기운을 풍겼다.
“헉”
그는 멀리서 한제의 눈빛을 본 순간 크게 숨을 들이켰다.
“저 자는 결단기 초기 수준인데 어찌 저리도 강한 위력을 가진 겁니까? 상관묵도 나서서 저자의 제자가 되려고 했다지요? 우리가 손을 쓴다 해도 소용없을지도 모릅니다.”
옆에 서 있던 비쩍 마른 노인은 다소 두려운 듯 말했다.
“그리고 그 비검! 그토록 기이한 비검은 처음 봅니다. 심지어 순간이동까지 할 수 있다니! 원영기급, 아니 화신기 수준의 법보일지도 모릅니다. 한자리에서 죽인 수련자만 벌써 백 명이 넘어요.”
“저 자의 뒤에 처음 매달린 열 사람이 투사파의 장로들이라는 사실, 알고들 계십니까? 저 자는 결단기 수련자를 마치 벌레처럼 죽였습니다. 그런데도 욕심이 난다면 알아서들 하세요. 난 가담하지 않겠습니다. 먼저 물러납니다!”
그중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자가 두려운 듯 내뱉더니 일행들에게 포권을 취한 후, 저물대를 두드려 배 하나를 꺼내 올라타더니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남은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뒤에 누군가가 불쑥 입을 열었다.
“중앙 지역의 사자들이 곧 도착할 텐데 난 절대 이 기회를 그들의 손에 덜렁 넘겨주지 않을 겁니다. 이건 유일한 기회요. 저 자를 죽여 수단을 얻어내기만 한다면 난 결단기 후기에 이를 수 있단 말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요. 난 이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10년 안에 등급을 높이지 못한다면 그러니 이번에는 뭐든 시도해볼 겁니다!”
일행의 끝에 있던,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느릿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그는 엄청난 힘을 일으키며 한제를 향해 날아갔다. 그의 일행 하나도 자리를 박차고 검광이 되어 그 뒤를 바짝 쫓았다.
남은 수련자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방금 자리를 떠난 둘에게 고정됐다. 상황을 관전하다가 그 둘이 성공의 기미를 보이면 곧장 동참하고 반대로 절망적이라면 포기할 생각이었다.
결단기 수련자의 시체 하나를 밀쳐버리고 손에 든 금단을 저물대에 집어넣은 한제는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수련자들을 보며 냉소했다.
탁탁.
한제는 자신의 뒤쪽에 있는 교룡의 힘줄을 두드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나와, 오늘부터는 마음대로 삼켜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