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23
한제는 묵묵히 옥패를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야 거두었다.
“언젠가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생각을 정리한 그는 마음을 가라앉힌 뒤 다시 연단에 집중했다.
그는 황량한 대륙에 갔을 때 약초는 물론이고 흉수들의 혼도 대거 거둬온 상태였다. 대부분은 5급 흉수의 혼으로 단약에 녹여 넣으면 지금 한제의 수준에서는 제법 도움이 될 터였다.
한제의 저물공간에는 영수의 혼들도 들어 있었다. 이는 황량한 대륙에서 죽은 화청종 제자들의 것으로 은색 옷을 입은 여인이 거둬온 것들이었다. 또한 오독문 노파와 영혼으로 연결된 영수이자 6급 절정에 이른 한 마리 영사(靈蛇)도 있었다.
일손이겁을 끝마치고 처치한 8급 흉수의 혼은 세 번의 실패 끝에 귀원종 사원에 있던 단약과 융합시키는 데 성공해 8급 이혼단을 완성한 후였다.
또한 각종 독에 능한 노파의 기억에서 ‘연수술’이라는 이름의 무척 흥미로운 변이연수법(變異煉獸法)을 찾아냈다.
이는 오독문의 뛰어난 수련자인 인구심이 창조해낸 것으로 금제로 우리를 만들어 흉수의 혼들을 집어넣고 독을 이용해 서로를 삼키게 만듦으로써 변이시켜 더 높은 급의 혼백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낸 변이된 흉수의 혼은 일반적인 혼은 삼키지 못하고 오직 같은 방법으로 제작된 흉수의 혼만 삼킬 수 있었다. 때문에 이런 현상은 오독문에 큰 타격을 입혔다.
또한 변이된 흉수의 혼 제작의 성공률도 높지 않고 급이 높아질수록 어려움이 컸다. 예컨대 변이된 9급 흉수의 혼을 만들어내려면 변이된 8급 흉수의 혼을 대량으로 집어삼키게 해야 한다.
한데 변이된 8급 흉수의 혼을 만들려면 그보다 훨씬 많은 변이된 7급 흉수의 혼이 필요하다. 이 7급 흉수의 혼을 하나 만들려면 당연히 엄청난 수의 변이된 6급 흉수의 혼이 필요하니,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흉수의 혼이 필요해지는 법이었다.
설혹 고급 흉수의 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이 혼백은 대량의 귀한 보물로 자양을 해야 했다. 단약으로 대체할 수도 있긴 하지만 이는 성공률 역시 높지 않았고 자양에 실패할 때마다 흉수의 혼은 크게 허약해져 버린다.
한제 역시 첫 번째 단약을 제작했을 때 열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성공했는데 이때는 이미 남아 있는 흉수의 혼이 반 이상 사라져 단약의 효과가 상당히 약해진 후였다.
이처럼 효율성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관계로 오독문에서는 이 방법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 곰곰 계산을 해본 한제는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에 오독문 노파의 기억에서 찾아낸 독약 제조 방법을 참고해 며칠의 시간을 들여 가까스로 몇 개의 독을 만들어냈다.
귀원종에서 이 술법을 시험해볼 생각은 없었기에 막라 대륙 어느 산맥 안으로 들어간 그는 동굴을 하나 파고 대량의 금제를 배치한 뒤 5급 흉수의 혼들을 봉인한 후 독을 뿌렸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는 흉수의 혼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것을 관찰하다가 봉인을 더 강화한 뒤 귀원종으로 돌아왔다.
여러 날 동안 얌전히 좌선하던 그는 자신이 그동안 만들어냈던 단약들을 꺼내 복용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삼킨 것은 5급 단약이었다. 그 안에 깃든 흉수의 혼은 순식간에 흩어져 한제의 원신에 녹아들었다.
그러자 한제는 기이한 상태에 이르게 됐다. 5급 단약을 복용할 때마다 마치 한 마리 한 마리 흉수들이 탄생해 세상을 경배하고 정화를 흡수해 규칙을 깨달아가는 과정과 변화를 목격하는 듯했다.
하지만 5급 단약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저 흉수가 천도를 깨닫는 방법에 익숙해지기 위해 복용했을 뿐이다.
이어서 그는 6급 단약을 삼키기 시작했다. 그 안에 깃든 6급 흉수의 혼은 정열기 초기 수련자와 맞먹는 수준이라 삼키자마자 한제의 경지에 파동이 일었다. 마치 한 마리 흉수가 되어 아주 오랜 세월 세상의 규칙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진실을 방불케 하는 하나하나의 환각 속에 잠식되어 있던 한제는 복잡하고 끝없는 깨달음 속에서 자신의 도를 그리고 진실과 거짓 사이의 존재와 영원을 찾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제의 손에는 8급 단약만 남게 됐다.
“한 사람의 힘으로 도를 증명하는 것이 점이라면 여러 사람의 힘으로 도를 증명하는 것은 면이다. 운해의 단약은 운이 아니라 수련자에게 도를 찾을 기회를 주는 것이구나. 흉수의 혼으로 다른 방식으로 도를 찾고 세상의 규칙을 찾는 것. 연맹성역이나 나천성역의 방식에 비해 도를 깨닫는 과정을 단축할 수 있다.”
한제는 잠시 말을 끊고는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흉수는 흉수. 그들의 깨달음은 본원을 또렷하게 거슬러 올라가지는 못한다. 그러니 수많은 단약이 있어야만 자신에게 필요한 도를 증명할 수 있겠지. 도는 일종의 사상과 같고 각자의 사상은 다르다. 자신의 사상을 충만하게 만들고 싶다면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 함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깨달음을 통해 증명하고 그 정수를 받아들여야 하지. 한데 운해성역 수련자들은 흉수의 혼을 골랐다. 마치 수많은 제자들을 사용했던 천운자처럼⋯⋯.”
한편, 그 시각, 막라 대륙 밖에서는 6급 성역에서부터 삼엄한 조사를 시작해온 이들이 막라 대륙의 보호막에 닿아 있었다.
★ ★ ★
오독문은 6급 성역에서 강대한 세력으로 쌍벽을 이루는 화청종과 마찰이 적지 않았고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추해는 오독문의 핵심제자였다. 한제가 처리했던 노파보다는 수준이 낮았지만 정열기 초기에 이르러 오독문 내 강자 반열에 오르면서 문파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한데 지금 그의 얼굴은 어두웠다. 오른쪽 눈에서는 파란 빛이 번득였는데 이 빛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사실 오독문 자람독공(紫藍毒功)을 익힘으로써 얻은 결과였다.
“추 도우, 어째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군. 집에 두고 온 애인이 바람이라도 피울까 걱정이 되나?”
추해의 곁에 있는 흑의의 수련자가 물었다. 겉보기에는 사내였지만 얼굴에는 연지가 발라져 있었고 목소리도 여성스러워 여자인지 헷갈렸다.
추해는 서늘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우, 계속 그렇게 놀리려 든다면 나도 더는 참지 못하네.”
“오독문의 위엄이 아주 대단하군. 한데 오독문이 과연 마총도에 싸움을 걸 수 있는지 궁금한데?”
흑의의 수련자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 웃음은 매우 서늘했다.
동시에 추해의 오른쪽 눈에서 번득이는 파란 빛이 순간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만! 우리 세 사람은 각자의 문파를 대표해 오독문의 배반자를 찾으러 온 것이네. 우리끼리 싸워서는 안 돼!”
목소리의 주인공은 정열기 중기 수준의 중년 사내로 6급 성역 최고 세력으로 손꼽히는 도법문의 핵심 제자였다. 한 노파가 벌인 일로 인해 난처해진 오독문에서는 결국 엄청난 대가를 무릅쓴 채 핵심 제자를 볼모처럼 각 종파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노파의 행방을 찾는다는 명목 아래 진행된 일이었지만 사실은 오독문에 대한 각 종파의 감시에 대한 조치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만약 빠른 시일 내에 노파를 찾지 못한다면 오독문은 엄청난 위기에 직면하게 될 터였다.
이들 뒤로는 각 종파 제자들이 줄기줄기 빛을 그리며 막라 대륙의 보호막을 뚫었다.
“추해, 조우, 자네 둘은 나와 함께 귀원종으로 가세. 나머지 제자들은 흩어져 막라 대륙을 촘촘히 탐색하게 하도록. 한 군데라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또한 사소한 단서라도 파악할 경우 당장 보고하라!”
중년 사내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위엄이 가득했다.
다른 제자들은 우렁차게 답한 뒤 사방으로 흩어져 탐색을 시작했다. 지난 며칠 동안 근처의 대륙을 모두 이렇게 샅샅이 뒤졌던 터라 이제는 이런 작업에 상당히 익숙해진 그들이었다.
중년 사내를 비롯한 세 사람은 귀원종으로 질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귀원종 상공에 나타났다.
귀원종 수련자들은 여연비와 이향동을 비롯한 네 장로의 인도에 따라 이들을 공손히 맞이했다.
네 장로는 지난 며칠 동안 5급 성역에서 있었던 일과 그로 인해 6급 성역 수련자들이 대대적인 탐색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이들로서는 상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알 여력이 없었다.
이향동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포권을 한 뒤 공손하게 말했다.
“귀원종 수련자들이 상급 성역 종파의 선배님들을 뵙습니다.”
그의 곁에 있는 두 명의 노인과 여연비도 함께 포권을 했다.
“난 도법문의 풍패산이다!”
중년 사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될 줄이야!”
곁에 있던 요상한 흑의의 사내는 여연비를 훑어보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난 마총도의 조우다.”
“오독문의 추해다!”
추해는 여전히 어두운 표정으로 귀원종의 수련자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이향동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고 곁의 두 노인은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눈앞에 나타난 수련자들이 속한 세 개의 종파는 6급 성역 세력 전체의 4할에 달하는 힘을 가진 곳들이었다.
귀원종의 일반 제자들은 추해의 눈빛 아래 심신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끼고는 분분히 고개를 숙였다. 오직 여연비만이 덤덤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향동은 두려움을 억누르고 애써 웃으며 다시 포권을 했다.
“상급 성역 종파의 선배님들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저희 귀원종이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전력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
“흥! 우리를 돕겠다고?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지.”
차갑게 콧방귀를 뀐 추해는 순식간에 귀원종 제자 한 명의 곁에 이르더니 번개 같은 속도로 상대의 몸을 한 번 두드렸다. 그러자 귀원종 제자는 순간 몸을 바르르 떨면서 피를 토하더니 땅으로 추락했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귀원종 제자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중 허윤은 분노한 얼굴로 몸을 날려 곧장 추락하던 제자를 붙잡았다. 이 제자는 창백한 얼굴에서 파란 빛을 발하며 몸을 덜덜 떨었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원영기에 불과한 제자에게 손을 대다니, 이게 여기까지 온 목적인가!”
여연비가 서늘한 눈빛으로 일갈하자 풍패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귀원종 도우들, 긴장할 것 없다. 우리 6급 성역의 모든 종파에서 출동한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과 관련이 있는 자를 찾기 위해서다. 그자는 은닉은 물론 독공에도 능하다. 방금 추해 도우가 공격한 것은 저 귀원종 제자의 몸에 독공의 흔적을 남기기 위함이야.”
여연비는 더욱 싸늘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어 부상당한 귀원종 제자 쪽으로 뻗었다.
순간 그 제자는 몸을 격렬하게 떨었고 미간에서 회오리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이내 그 안에서 원영이 흘러나왔다.
원영에는 그의 영혼으로 연결된 영수인 작고 붉은 뱀 한 마리의 혼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허나 이 작은 뱀은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듯 위축되어 있었고 제자의 원영 역시 거의 투명해진 상태였다.
추해는 여전히 어두운 표정으로 그 원영을 훑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파란 빛이 번득이는 오른쪽 눈으로 다른 귀원종 제자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날려 이번에는 허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앗!”
허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추해는 그녀의 수준으로는 애초에 대적이 불가능한 상대이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때, 여연비가 살기 가득한 눈으로 곧장 긴 빛을 그리며 달려들더니 결인을 그린 손을 휘둘러 추해에게 서늘한 바람을 쏘아 보냈다.
“허! 감히!”
추해는 냉소하며 오른쪽 눈으로 파란 빛을 번득여 전방에 일곱 개의 파란 문양을 소환했다. 그리고 그 문양들로 몸을 감싼 그는 여연비가 쏘아 보낸 바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다시 몸을 날렸다.
콰쾅!
산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서늘한 바람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추해는 눈 깜짝할 사이 허윤 앞에 나타났다.
용서해주십시오!
여연비의 얼굴에 더욱 짙은 살기가 드러났다. 눈앞에서 제자인 허윤이 다른 사람에게 당하게 둘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계속해서 공격을 가하려 했고 이향동과 두 노인 역시 추해를 막으려 했다. 허윤은 일반적인 제자와는 다른, 귀원종의 핵심 직계 제자이기 때문이다.
그때, 도법문의 풍패산이 폭발할 듯한 눈빛을 번득이며 낮게 외쳤다.
“귀원종의 제자들이여, 또 한 번 우리의 탐색에 저항한다면 책임을 귀원종 전체에 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