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29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요종은 9급 성역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어 진입하기 매우 어렵다고 해요. 강력한 흉수들이 모여 있지요. 또한 다른 일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밖으로 나오는 이도 매우 적습니다. 스승님께 듣기로 요종에는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흉수도 있다고⋯⋯. 하지만 신종이 있기에 요종이 조용히 지내는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녀의 설명에 한제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허! 사람으로 변신하는 흉수?”
이천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의 규칙도 깨우칠 수 있고 천도의 검증도 마칠 수 있는데 사람으로 변신하는 게 대수겠습니까? 다만 그런 흉수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고 해요. 저희 파천종에서도 9급 성역에 들어간 뒤에야 몇 가지 비밀을 알게 됐을 뿐이지요.”
이천매는 진지한 표정으로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주 오래 전, 운해성역의 9급 성역에는 단 하나의 종파, 신종만 존재했었습니다. 그 시기에 9급 성역에서 첫 번째 흉수의 난이 발발했지요. 그때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흉수가 세 마리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전해지기로는 그것들은 다른 성역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이천매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 말을 이었다.
“신종이 그 끔찍했던 흉수의 난을 저지한 덕분에 널리 퍼져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신종에서는 일부 수련자를 9급 성역 깊은 곳으로 보냈지요. 신비로운 성역과 연결된 균열의 공간이 있는 그곳에서 강력한 흉수들이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그곳에서는 수만 년째 끊이지 않는 전투가 이어져 오고 있고요. 그러나 자유를 포기하고 그곳에서 마지막 보호막을 이루고 있던 신종 수련자의 일부가 세월이 흐르면서 독립해 요종을 자칭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더는 신종의 명을 따르지 않았지만 몰려드는 흉수들의 공격은 계속해서 막아내고 있지요.”
일견 소름 끼치는 이야기에 한제는 다소 긴장했다. 운해성역 깊은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리라고는 예상도 못 했던 것이다.
“요종과 신종에서 섭혼술(攝魂術)에 뛰어난 귀종과 우리 파천종을 9급에 들인 것도 언제 다시 발발할지 모르는 흉수의 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요. 이는 중요한 비밀이니 다른 사람에게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9급 성역 깊은 곳, 요종이 수만 년간 지켜오고 있다는 공간의 균열 너머 신비로운 성역에 닿아 있는 듯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 그 신비로운 성역이란 곳은 어디일까?’
“9급 성역에서는 신비로운 성역에서 들어오려 하는 흉수들에 저항하는 요종을 지원하기 위해 수백 년에 한 번씩 각 종파 제자들로 구성된 대군을 보냅니다. 어쩌면 저 역시 곧 가야 할지도 모르지요.”
이천매는 바람에 날리는 파란 머리카락 몇 가닥을 쓸어올리며 웃었다.
“만약 그날이 오면 저를 배웅 좀 해주세요.”
눈을 깜빡이며 살짝 웃는 그녀의 모습은 만개한 꽃처럼 아름다웠다. 그 모습이 한제가 막라 대륙을 막 떠날 무렵 남원 산맥 위 누각에서 눈으로 배웅하던 여연비와 어딘지 모르게 비슷했다.
“1백 년 후, 주종 내 분종의 시합이 열립니다. 부디 귀원종을 잊지 말아주세요.”
똑똑한 여연비는 막라 대륙에 한제가 오랫동안 머물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곳은 떠돌이 나그네와 같은 그에게 잠시 스쳐 가는 곳에 불과했으니 자도종과의 갈등을 해결한 그는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제는 그때 여연비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그녀에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그저 막라 대륙에서 벗어날 무렵 바람에 자신의 목소리를 실어 여연비에게 보냈을 뿐이다.
“그러지.”
그리고 지금, 한제는 이천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쇄열기 후기에 이른 것이 분명하나 고고하다기보다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생 같은 수련자를…
이번에는 그런 이천매를 바라보며, 한제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이천매는 웃었다. 두 눈이 반달처럼 곱게 접혔다.
봉래 대륙의 시장이 열린 지 이틀째 되는 날, 한제와 이천매는 봉래 대륙 밖의 우주에 이르렀다.
이천매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머리카락을 검게 바꿔놓은 상태였다. 그런 이천매는 더욱 우아해 보여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봉래 대륙 밖에서는 보옥종 제자들이 안내를 맡고 있었다. 그들은 대륙 안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입장료를 받고 보호막을 열어 손님을 들여 보내주었다.
한제로서는 운해성역에 온 이후 처음으로 보는 수련성이었다.
안개 때문에 평생 수련성을 본 적이 거의 없었던 대부분의 운해성역 수련자들은 다소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수련성에서 태어나 수련성에서 살아온 것은 물론, 심지어 나천성역에 자신의 수련성까지 있는 한제로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보옥종 수련자들은 수련성을 가지고 있는 종파 소속이라 그런지 거만했으나, 한제에게는 그 모습이 우스워 보일 뿐이었다.
손님들의 입장과 안내를 맡은 보옥종 수련자 무리는 대부분 음의나 양의 수준이었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는 규열기에 이르러 있었다.
‘과연 유명한 종파로군. 규열기 수준 수련자에게 손님 안내를 맡기다니. 종파의 힘을 과시하려는 것인가.’
보옥종의 뻔한 수작에 한제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둘은 영석을 지불하고 함께 봉래 대륙으로 들어갔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정열기 수준 수련자가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어찌나 거들먹거리던지… 이곳이 9급 성역 종파인가 했다니까요.”
이천매는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지 입을 가리며 웃었지만 한제는 그저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봉래 대륙의 풍광은 아름다웠다. 대지는 옥처럼 푸르렀고 산과 강 또한 화려해 보는 눈을 즐겁게 했다. 일반인들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수련자들을 공손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시장이 열리는 장소는 봉래 대륙의 동쪽으로 허공에는 원뿔형 바위들이 떠 있었는데 그 표면에는 도시들이 있어서 더욱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크기가 각기 다른 이 원뿔형 바위는 매우 많았는데 중앙의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도시들에서는 선계의 음악과 같은 아름다운 곡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한 수많은 영수들이 대륙 동쪽의 바위들 주위에서 구름 위를 떠다녔다.
또한 각 바위 위에는 거대한 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진들을 활성화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영석이 소모되고 있을 터였다.
“보옥종은 사치스러움으로도 유명해요. 저 진들을 이루고 있는 건 다 영석이죠. 선경처럼 보이지만 선기는 없어요. 겉보기에만 그럴싸하지 실체는 없는 셈이지요. 보옥종이라 해도 그렇게 엄청난 양의 선옥이나 원정을 소모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 말을 들은 한제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귀원종에 있을 당시 운해성역에는 선옥이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파악했는데 이는 풍의 선계가 흡혈 마수에게 점유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 안에 진입하지 못하면 선옥을 손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옥종이 영석은 물 쓰듯 낭비하면서 선옥에 대해서는 인색하게 구는 이유 역시 같았다. 자도종 소종주의 저물대에 있던 선옥도 1백 개가 채 되지 않았으니 이곳에서 선옥이 얼마나 귀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운해성역에는 원정(元晶)이라는 또 하나의 귀한 자원이 있었다. 문정기나 음의, 양의에 이르기 위해, 또는 진을 배치하거나 신통력을 발휘하기 위해 선옥이 필요한 것처럼 운해성역 두 번째 단계 수련자들에게 가치가 매우 큰 자원이었다.
이는 운해성역에만 있는 것으로 이를 흡수하면 빠른 속도로 체내의 원력을 회복할 수 있고 수련할 때는 호흡의 속도도 가속할 수 있었다. 심지어 법보를 제련하거나 진을 배치할 때에도 위력이 훨씬 커졌다.
하지만 풍의 선계에서만 구할 수 있는 선옥과 달리 원정은 8급 이상 성역의 종파에서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물론 대부분은 9급 성역에 있었다.
이는 원정의 기원과 큰 관련이 있었다. 원정은 12급에 이르러 안개로 변할 수 있는 원수(元獸)에게서 나는 것이다. 그러니 오직 12급 원수를 가지고 있는 종파나 수련자만이 원정을 길러낼 수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12급 흉수는 많지 않고 그중 안개로 변할 수 있는 종은 더욱 드물었다. 게다가 그런 원수를 가지고 원정을 거둘 수 있는 것은 8급 이상 성역의 실력자들뿐이었다.
만약 저급 성역에서 원수가 나타난다면 엄청난 규모의 전투가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원수는 곧 원정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
한제는 이천매와 함께 어느 원뿔형 바위 위의 도시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시장이 열려 있었고 수련자들 수는 적지 않았다. 좌판을 펼친 채 호객을 하고 있는 수련자도 있었다.
“여기는 가장자리인데도 굉장히 북적이네요.”
이천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여기저기서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마치 일반인들의 시장 같았다.
말없이 걷던 한제는 한 좌판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좌판 앞에는 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눈앞의 중년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가진 선옥이 많지 않으니 대신 단약 하나를 더 붙여줌세. 어떤가?”
“단약이라면 내가 직접 만들 수 있으니 필요 없네. 선옥 70개를 원정 하나로 쳐주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야.”
중년 사내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노인은 눈을 흘기며 차갑게 중얼거리더니 눈을 감았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매! 정말 그대로군!”
그 목소리는 세 명의 수련자 무리로부터 터져 나온 것이었다. 그중 맨 앞에 선, 서른 전후의 수려한 사내는 기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뒤를 따르는 두 사내 역시 외모가 준수했고 수준도 낮지 않았다.
그들을 발견한 이천매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으나 얼른 원래의 표정을 되찾은 뒤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양 도우.”
선두에 선 청의(靑衣)의 사내는 가까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몇 개월 만이지? 그대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이렇게 만나게 됐군. 여긴 좀 시끄럽고 복잡하니 어디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나 할까.”
사내의 부드러운 목소리에서는 매력이 물씬 풍겼다.
“양 도우의 호의는 고맙지만 괜찮네.”
이천매는 덤덤하지만 냉랭한 목소리로 답했다.
“천매⋯⋯.”
청의의 사내는 흠칫 놀라더니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말씀 삼가시게, 양 도우! 천매라는 이름, 자네가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이천매는 다시 미간을 찌푸린 채 자못 화가 난 듯한 얼굴로 외쳤다. 그녀는 이전에 눈앞에 자리한 사내 양옥에게도 질문을 했지만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는 못한 바 있었다.
양옥은 불쾌한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하지만 감히 이천매에게 화를 내지는 못했고 괜히 옆에서 냉랭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백발의 사내에게 화풀이를 했다.
“넌 누구냐!”
한제는 차가운 눈으로 청의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정열기 중기 수준인 그의 미간에는 어둠이 숨겨져 있었다.
뒤의 두 사내는 모두 정열기 초기 수준이었는데 그들은 어느덧 양옆으로 퍼져 한제를 포위하듯 둘러쌌다.
세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도 생기지 않자 한제는 다시 노인의 좌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인과 흥정을 벌이던 중년 사내는 이미 자리를 뜬 상태였다. 사실 주위의 수련자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슬금슬금 흩어지고 있었다.
좌판의 노인은 덤덤한 표정으로 눈을 흘기며 한제를 한 번 훑어보았다.
“원정, 얼마나 가지고 있나?”
한제는 노인의 허리춤에 매인 옥패 하나를 심드렁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하나밖에 없네. 하지만 난 선옥 외에 다른 것은 받지 않아.”
노인은 얼굴 근육을 꿈틀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한제는 신념을 통해 노인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했다. 그러자 노인은 흠칫 놀란 얼굴로 한제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한제는 저물공간에서 저물대 하나를 꺼냈다. 정열기 수준 수련자는 저물대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거래를 할 때만은 은닉을 위해 종종 사용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