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33
움직이고자 하는 바람
‘저자 상당한 양의 선옥을 갖고 있군.’
오청은 여전히 미소를 띤 채 한제를 힐끗 보고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구양륭마저 방을 나간 후, 이곳에는 한제와 창송자만 남게 됐다.
“오청 저자는 처음으로 초대한 것인데 저렇게 나올 줄은 몰랐네. 저런 성격을 모르고 섣불리 부른 내 잘못이야. 어쩌면 이 일로 도우에게 골칫거리를 안겨준 것인지도 모르겠군.”
창송자는 오청의 행태에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괜찮네.”
한제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창송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지. 도우는 일단 이 주성(主城)에 머물러 있게. 나는 경매가 끝나면 다른 도시의 벗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그때 함께 가지. 내가 있는 한 오청도 자네에게 다른 마음을 품지는 못할 것이네.”
그러더니 한제가 답을 하기 전에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한데 도우가 5천 개의 원정을 교환하고자 했다던데 정말인가?”
한제는 말없이 고개만을 끄덕였다.
창송자는 곧장 저물공간을 소환해 그 안에서 저물대를 꺼내 한제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형형한 눈빛으로 한제를 응시했다.
한제는 저물대를 받아들고 신식으로 한 번 훑었다. 그 안에는 틀림없이 5천 개의 원정이 들어 있었다. 운해성역에서도 희귀한 원정 5천 개는 엄청난 양이 분명한데 창송자가 어떻게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저물대를 챙긴 한제는 저물공간에서 미리 준비해 놓았던 저물대를 꺼내 창송자에게 건넸다. 창송자는 그 저물대를 살피고는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 혼원단, 더 가지고 있나?”
한제가 물었다.
“혼원단은 나도 우연히 어느 유적 안에서 얻은 것이라 아홉 개밖에 없다네. 이제는 여덟 개만 남아있는 데 다 따로 쓸 데가 있어.”
창송자의 말에 한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한데 한제가 떠난 뒤 창송자가 웃음을 거두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창송자의 원정은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방에서 나온 한제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마음은 차가웠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많은 선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밝힌 것에 대해서는 걱정되지 않았다. 보옥종의 사람에 불과하면서 그렇게 많은 원정을 가지고 있는 창송자처럼 모든 사람들에게는 비밀이 있는 법이니까.
‘창송자도 다른 뜻을 품고 있는 것이 분명해. 그러나 그는 내가 그보다 더 많은 다른 뜻을 품고 있음은 모를 터. 5천 개의 원정으로는 모자라. 변이된 영수를 자양하고 흡혈 마수를 승급시켜야 한다. 그리고 변이된 흉수와 함께 풍의 선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더 많은 원정이 필요하다!’
도중에 다시 만난 구양륭의 안내로 누각까지 돌아온 한제는 포권으로 작별을 고했다.
누각 밖으로 나왔을 무렵, 시끌벅적한 소리는 점차 잠잠해지고 있었다.
고요한 길거리를 따라 몇 걸음 나아가던 한제는 우뚝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로 한 줄기 파문이 일어나더니 흉수의 혼을 구입한 노부인이 걸어 나와 차가운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휘둘러 옥패 하나를 던져주었다.
“아까 전의 성도는 가짜다. 이게 진짜지. 오청을 조심해라!”
말을 마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옥패를 신식으로 훑은 뒤 저물공간에 넣은 한제는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 서늘하고 음산한 기운이 드러나 있었다.
‘수련계에서는 강자가 우선이지. 오청, 네가 죽기를 원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주마!’
냉소하며 몸을 날린 한제는 한 줄기 빛이 되어 곧장 도시를 빠져나가 봉래 대륙 서쪽 지역의 어느 황량한 땅으로 향했다.
그가 자리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줄기 빛이 하나 더 나타났다. 한제를 뒤쫓는 오청이었다.
★ ★ ★
“안타깝군.”
주성 안, 한제를 뒤쫓는 오청의 모습을 멀리서 살피던 청의의 노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청은 무척 유명했는데 이는 수준보다는 신분과 큰 연관이 있었다. 그는 6급 성역 마총도의 장로이기 때문이다.
봉래 대륙 동쪽 지역의 주성, 창송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정도 선옥을 가지고 간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터!’
그때, 그는 돌연 고개를 번쩍 들더니 오청이 사라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청 저자는 갈수록 탐욕스러워지는군. 주제도 모르는 놈. 마총도과 여자호 사이에 접촉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경매에도 초청하지 않았을 터. 어쨌든 저자가 쫓아간 이상 여자호는 죽게 될 텐데 내게서 가져간 원정이 다른 자의 손에 들어가게 둘 수는 없지.”
창송자는 음산하게 웃으며 신식을 뻗어 오청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 ★ ★
한편, 주성의 어느 술집 4층. 한 쌍의 남녀 수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답고 품위 있는 중년 사내와 화려한 옷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둘 중 여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쉽게 보물을 노출해 버렸으니 명을 재촉한 셈이지. 안타깝군.”
백의의 청년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 저자 자신보다 수준이 높은 오청이 쫓아오는 것을 알면서도 주성 밖으로 나선 것을 보면 분명 믿는 구석이 있는 거야.”
“흠, 글쎄. 겁을 먹고 도망치는 거겠지. 오청이 끝까지 쫓아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하고 말이야.”
아름다운 여인은 살짝 웃으며 백의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결과는 보면 알겠지.”
청년은 빙그레 웃었고 두 사람은 신식을 펼쳐 오청을 뒤쫓았다.
그 무렵, 주성 어느 길가에서는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노인이 뒷짐을 진 채 느긋하게 걷다가 주위의 건물들을 둘러보며 추억에 잠겼다.
“창송자가 초청해주지 않았다면 난 영원히 봉래 대륙을 밟지도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노인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어 먼 곳을 내다보았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고 당당하게 강도짓을 하려 하는구나!”
노인은 크게 웃으며 몸을 훌쩍 날려 어느 건물 위로 올라가더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신식을 펼치며 구경할 준비를 마쳤다.
주성 가장자리의 어느 분성 객잔 안에서는 흑의의 비쩍 마른 노인이 손에 쥔 두 개의 구슬을 굴리며 창가에 서서 신식을 저 멀리까지 뻗었다.
“오청에게 선수를 빼앗겼군. 제길.”
이처럼 창송자의 모임에 참가한 수련자들은 모두 한제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문인 같은 백의의 청년만이 약간 다른 의견을 내세웠으나, 그 역시 정열기 수련자는 쇄열기 수련자를 상대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봉래 대륙의 쇄열기 수련자들은 모두 오청을 신식으로 쫓았다.
봉래 대륙 동쪽 지역의 높은 산봉우리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이천매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서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한편, 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당려해는 두 눈을 번쩍 뜨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허나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오청을 저지하려 하지는 않았다.
“선생께서 그자를 건드리지 말라 했건만 어쩌려는 것인가?”
한편, 당려해의 옆방에서는 탁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중년 사내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더니 서늘한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
“오청! 네가 감히!”
그는 곧장 몸을 날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순간, 봉래 대륙에서는 바람과 구름이 들끓으며 어두운 기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허나 누구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후에 전설이 될 이름이 운해 대륙을 대상으로 자신의 능력을 선보이는 첫 번째 전투가 곧 되리라는 것을.
한편, 한제는 동쪽 지역을 빠져나가 서쪽 평원을 향해 질주했다. 그의 뒤로 긴 빛 하나가 하늘을 가르며 바짝 따라붙었고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잠시 후, 그들은 봉래 대륙 동쪽 지역과 서쪽 지역의 경계에 닿았다. 그곳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자갈밭으로 싸우기에 적합해 보였다.
한제는 깔끔하고 확실하게, 그것도 빠르게 이기겠노라 마음먹었다. 그래야만 다른 자들이 앞으로 자신을 쉽게 건드리지 않을 터였다. 나아가 마총도에서 감히 자신에게 복수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더구나 이천매를 통해 9급 성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된 지금은 별다른 걱정이 되지 않았다.
우뚝 멈춰 서서 천천히 뒤를 돈 한제는 뒤에서 광풍을 일으키며 나타난 오청을 응시했다. 오청은 살기를 감출 생각도 않은 채 곧장 손을 들어 휘둘렀다. 그는 한제에게 반격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생각인지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쇄열기 초기 수준의 힘이 발휘되면서 거대한 산봉우리의 허상이 나타나더니 오청의 손짓에 따라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네가 먼저 우리 마총도의 제자를 다치게 했으니 나를 원망 말아라. 난 네 원신으로 단약을 만들 것이다!”
한제는 달려드는 산봉우리를 냉랭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5척도 안 되는 거리에 이른 순간 주먹을 날렸다.
쾅!
거대한 소리에 이어 쩌적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산봉우리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재주는 이게 다인가?”
한제의 덤덤한 목소리와 달리 오청은 안색이 급변했다.
“건방진!”
오청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흑백의 회오리를 각각 소환했다. 하늘을 꿰뚫을 듯 솟아오른 두 회오리는 충돌하더니 회색의 회오리 하나로 합쳐졌다.
“발천력(拔天力)!”
오청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회오리는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더니 반경 수만 리의 원력을 끌어오면서 엄청난 기세로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