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34
허나 이때 오청의 심신은 진동하고 있었다. 한제가 가벼운 주먹질로 산봉우리를 무너뜨린 광경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불길함을 지우려는 듯, 그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저물공간을 소환해 법보를 꺼내려 했다.
한데 그때, 한제의 두 눈이 번득이더니 하늘을 뒤덮은 듯한 한기와 살기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청, 죽을 시간이다.”
그 목소리가 폭풍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가 귀에 닿은 순간, 오청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한제는 앞으로 한 발 내딛으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후려쳤다. 동시에 왼손의 두 손가락으로 오른손 손등을 두드렸다. 그러자 반경 수만 리의 원력이 요동치더니 한제의 통제에 따르기 시작했다.
흘러넘칠 듯한 원력이 한제의 손가락 끝에 응집되어 오른손 손등에 닿은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되어 회오리를 향해 돌진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에도 한제는 멈추지 않고 왼손으로 또 한 번 오른손 손등을 두드렸다. 그러자 반경 10만 리의 원력이 일어나면서 더 거대한 충격을 형성해 오청이 신통력으로 만들어낸 회오리 안으로 녹아들었다.
끝이 아니었다. 한제는 세 번째로 오른손 손등을 두드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봉래 대륙 전체 원력이 끓어오르듯이 그의 오른손으로 녹아들면서 파멸적인 힘을 담은 채 회오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르르!
회오리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사방을 휩쓸었다. 지면에 깔려 있던 자갈들이 그 힘에 떠밀려 나가면서 주변을 뒤덮었고 머지않아 엄청난 힘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 가루가 되어 퍼져나갔다.
분신만으로도 쇄열기 초기 수련자를 죽였던 한제인 만큼 본체와 합체한 지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게다가 고신의 힘까지 가진 후로 그 힘은 배로 증폭된 상태였다.
신종(神宗)의 사람
한제는 멈추지 않고 오른손으로 허공을 후려치면서 오청에게 달려들었다.
죽음을 직감한 오청은 심지어 후회할 틈도 없이 저물공간에서 수많은 법보들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한제의 신통력은 노부자로부터 배운 것. 그 신통력 앞에서 오청은 감히 저항할 수 없었다.
콰쾅!
“크악!”
비명과 함께 오청이 꺼냈던 모든 법보는 모두 무너져 내렸고 검은 손자국 하나가 그의 가슴팍에 남았다. 강력한 힘에 옷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오청은 피를 토하며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너… 너는… 정열기 수련자가 아니구나!”
오청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한제는 대답 없이 두 눈을 감고 오른손을 다시 들어 올리고는 당시 우의 선계에서 보았던 거대한 손을 떠올렸다.
머릿속에 떠오른 손은 점점 커지더니 결국 그의 생각을 가득 채웠다. 우의 선계에서 홍접을 물리치고 요령의 땅에서 모력해를 놀라게 했으며, 다시 요령의 땅을 방문했을 때에는 선제의 동굴 여덟 번째 층을 훼손하고 능천후를 충격에 빠뜨린 술법이었다. 또한 연맹성역에서는 운해로 도망치려 하는 자도종 수련자들을 단숨에 소멸시킨 술법이기도 했다.
9급 신종의 역령인(役靈印)!
이 손자국에는 설명이 불가할 정도의 위엄이 충만했다. 한 줄기 의지가 된 그것은 한제의 손에 녹아들었다가 쏘아져 나갔고 그의 손짓에 하늘과 땅의 색이 변하면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돌가루는 광풍이 되어 몰아쳤다.
그 손바닥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신식으로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수련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여⋯⋯ 역령인! 9급 신종의 역령인이다!”
하늘 그 자체와 같은 손바닥! 오청은 멍하니 그 아래에 서 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절망감이 온몸을 뒤덮었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자신 역시 함께 소멸되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크아악!”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두려움에 휩싸인 오청은 뒤로 물러났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육신이 붕괴되는 한이 있더라도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도망칠 수 없었다. 하늘을 뒤덮은 손바닥이 끊임없이 커지면서 결국 시야 전체를 채웠기 때문이다.
순간, 거대한 손바닥은 내려오면서 쾅 하는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대지는 진동했고 오청의 육신은 피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심지어 겨우 도망쳐 나온 원신조차 곧장 손바닥에 휩쓸려 성난 바다의 조각배처럼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마총도의 장로이자 쇄열기 초기 수련자인 오청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오청이 죽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거의 순식간이었기에 심지어 그의 저물공간조차 아직 닫히지도 않은 상태였다. 더구나 주인의 죽음으로 인해 낙인마저 지워진 저물공간은 빠르게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한제는 재빨리 그 저물공간에 있던 모든 것을 꺼내 챙겼다. 저물공간을 연 순간 상대를 죽이고 저물공간이 닫히기 전에 보물을 꺼내는 것, 이것이 그가 생각해낸, 쇄열기 이상 수련자의 저물공간에 들어 있는 보물을 취하는 방법이었다.
한편, 거대한 손바닥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채 더욱 격렬하고 광기 어린 기세로 대지를 훑었다. 그 기세에 땅이 진동하면서 봉래 대륙 대지는 거센 파도가 몰아치듯 흔들렸다.
거대한 손바닥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끝없는 원력이 솟아오르면서 하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균열이 나타났다. 벼락이 내리치듯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손바닥은 점점 빨라지면서 더 많은 원력을 흡수했다. 잠시 후에는 한제의 통제에서 벗어나더니 쇄열기 수련자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로 봉래 대륙 동쪽 지역의 허공에 떠 있는 바위로 달려들었다.
그 위에 있던 수련자들이 재빨리 자리를 피한 순간, 손바닥은 바위와 충돌했다. 그러자 콰쾅 소리와 함께 원뿔 모양의 바위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이어서 손바닥은 열 개가 넘는 바위를 붕괴시키더니 주성이 있는 중앙의 바위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하늘로 솟아 봉래 대륙 위의 무수한 보호막을 뚫고 곧장 우주로 나아가더니 안개를 흡수하면서 점점 커졌고 어느 황량한 대륙을 산산조각 낸 후에야 흩어져 사라졌다.
사실 한제의 심신도 격렬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통제를 잃은 손바닥이 저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리라고는 그 역시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쩌면 우의 선계에서 봤던 손바닥도 이렇게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먼 곳에서 이를 지켜보던 마총도의 중년 수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역령인이라니… 도대체 저자는⋯⋯?”
그는 떨리는 심신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오청에 대한 복수는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 무렵, 봉래 대륙의 수련자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창송자의 초청을 받았던 이들도 모두 좀 전의 상황에 경악해 감히 한제를 건드려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봉래 대륙에 있던 각 종파의 수련자들, 특히 직접 이 전투를 목격한 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옷에 묻은 돌가루들을 툭툭 털어낸 뒤 객잔에 숨어 있던 중년 사내 앞에 섰다.
“늦었군.”
사내는 씁쓸한 얼굴로 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마총도의 상기일세.”
한제는 말없이 냉랭한 눈으로 쇄열기 중기 수준인 상기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본체와 합체했을 때 쇄열기 중기 수련자를 이길 수 있을지 늘 궁금했다.
상기는 더욱 씁쓸한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틀 전, 오청은 이미 마총도에서 쫓겨났네. 그러니 그자는 우리 마총도와 관련도 없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신종의 사람을 건드렸으니 화를 자초한 셈이지.”
한제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냉랭한 눈으로 상기를 바라보았다.
상기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저물공간에서 총 7개의 약병을 꺼냈다.
“이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모두 7급 이혼단이네. 총 46알이지.”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약병을 하나 더 꺼냈다.
“그리고 이 안에는 8급 이혼단 아홉 개가 들어 있네.”
“오청의 일은 따지지 않겠다. 하지만 이대로 넘기기에는 부족하군.”
한제는 덤덤하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기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저물공간에서 두 개의 납환과 같은 단약을 더 꺼냈다.
“10급 단약 두 알. 내가 가진 전부네.”
“오청은 단지 나를 곤혹스럽게 하기 위해 선옥 수만 개를 소비했지.”
한제의 덤덤한 목소리에 상기는 말없이 저물대 하나를 꺼내 건넸다.
한제는 그 안에 든 것을 확인도 하지 않고 소매를 휘둘러 거두더니 상기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자리를 떠나갔다.
홀로 남은 상기는 이를 갈며 외쳤다.
“오청, 절대 저 사람을 건드리지 말라 했건만 내 말을 어기고 마총도까지 휘말리게 하다니⋯⋯. 더구나 저자는 신종의 사람이 아니냐!”
한편, 봉래 대륙 동쪽의 산봉우리 꼭대기에서 상황을 지켜본 이천매는 기이한 눈빛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신종? 신종 사람이 9급 성역 밖으로 나오지 않은 지는 한참 됐다. 게다가 역령인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신종에서도 소수의 핵심 제자에 불과하지. 쉽게 밖으로 나올 수가 없어. 그리고 방금 그 신통술은 어딘가 이상해. 세상의 원력을 강제로 거칠게 끌어모은 느낌이었어!”
그러는 동안 한제는 봉래 대륙 동쪽 지역에 이르렀다. 절반이 폐허로 변한 시장과 하늘을 가득 채우다시피 떠올라 있는 수련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허나 이 수련자들은 두려움과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길을 비켜섰다.
그중 봉래 대륙 6급 종파 소속 종파의 장로들은 분분히 앞으로 나와 공손히 포권을 했다.
창송자도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반면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는 속으로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자신에게 인사를 해오는 이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자리를 떠났다.
수련계에서는 힘이 우선이었고 한제는 손쉽게 쇄열기 초기 수준 수련자를 죽였다. 또한 역령인까지 선보였으니 5급 성역에서는 감히 그를 건드릴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보옥종에서는 시장의 반을 날려버린 책임을 물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객잔으로 돌아온 한제는 전투로 얻은 수확을 정리했다. 상기로부터 받은 것은 물론이고 오청의 저물공간에서 거둬온 것만 해도 소득이 적지 않았다.
한제는 그중 붉은 깃털을 집어 들었다. 순간 그의 왼쪽 눈에서 번득이는 불빛이 퍼져나가 깃털 안에 깃든 불 속성 원소와 은은하게 공명했다.
“주작을 세 번째로 각성시킬 수 있다면 내 힘은 배가 될 텐데… 깃털이 하나뿐이라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군.”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깃털은 주작 형태의 화염이 되더니 주위를 맴돌다가 그의 왼쪽 눈으로 녹아들었다. 그 순간, 한제의 전신은 불바다로 뒤덮였지만 기이하게도 방 안의 어떤 것도 손상시키지는 않고 허공에서 타오르기만 했다. 그리고 한참 뒤, 한제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이후로 며칠 동안 6급 종파에서는 물론 창송자의 모임에 참가했던 이들이 하나하나 꽤나 고급스러운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이들로서는 한제가 신종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으나,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라도 최대한 좋은 관계를 맺어두려는 것이었다.
막 도법문의 수련자를 배웅한 한제는 주작의 깃털을 팔았던 흑의의 노인을 맞게 되었다.
노인은 이전의 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여유로운 얼굴로 한제를 대했다. 그 역시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제는 쇄열기 초기 수준의 오청을 손쉽게 처리한 사람이었고 이 노인 역시 쇄열기 초기 수준이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굴지 않을 수 없었다.
“여 도우, 아직 내 소개조차 하지 않았군. 난 어느 종파 소속도 아닌 두덕일세. 6급 성역의 떠돌이 수련자인 내가 이렇게 여 도우와 연을 맺을 수 있어 참으로 영광이라 생각하네.”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도우는 떠도는 구름처럼 종파로부터 자유로우니 부럽군.”
두덕은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성격상 워낙 조용한 것을 좋아해 종파에 들어가지 않았지. 봉래 대륙에도 벗의 초대로 오게 된 것뿐일세. 이틀 뒤의 큰 경매가 끝이 나면 떠날 예정인데 언젠가 6급 성역에 올 기회가 있다면 나를 찾아와주게.”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뭔가 말할 듯 고민하다가 이내 결심을 굳히고는 입을 열었다.
“두 도우, 주작의 깃털은 어디에서 구했나?”
“그건⋯⋯.”
두덕은 망설이는 듯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6급 성역의 어느 황량한 대륙에서 구했네. 외부인들은 잘 모르는 황량한 대륙인데 나도 우연히 발견했지. 그곳의 흉수 대부분은 화염 신통력에 능해 매우 위험해서 깊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