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38
‘쇄열기 중기!’
한제는 도관을 쓴 노인의 수준을 단번에 알아보았고 동시에 상대가 풍기는 살기와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피비린내 어린 기운을 느꼈다. 또한 혼을 위주로 하는 그의 신통력을 통해 상대가 운해성역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인물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한제는 끝없이 많은 음혼들은 쉭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흘러넘칠 듯한 기운이 방출돼 순식간에 거리를 뛰어넘어 음혼들과 충돌했다.
콰르릉!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주위의 안개가 바깥쪽으로 밀려났다.
“키야악!”
음혼들은 광풍에 휩쓸리며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고 일부는 그대로 무너져 내리기까지 했다.
한제 역시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한 듯 뒤로 다섯 걸음을 밀려났다.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지면에는 깊은 발자국이 남았다.
한제는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싸늘하게 말했다.
“창송자 이건 무슨 뜻인가?”
창송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금빛이 한 줄기 나타나 눈 깜짝할 사이 수천 자루의 비검이 되었다가 하나로 뭉치더니 거대한 검막(劍幕)이 되어 다시 달려드는 운혼자의 음혼을 가로막았다.
“운혼자! 여 도우는 내 초대를 받고 온 귀한 손님일세. 무례하게 굴지 말게!”
도관을 쓴 노인, 운혼자는 차가운 눈으로 한제를 훑어보더니 피식 웃었다.
“숨기는 것이 많은 자로군. 쇄열기 수준의 신통력을 발휘하고 있으면서.”
말을 마친 운혼자가 허공을 움켜쥐자 앞으로 돌진하던 음혼들이 순간 수축하여 그의 뒤로 모여들더니 아홉 개의 거대한 혼불이 되어 주인 주위를 맴돌았다.
“여 도우, 운혼자는 그저 자네의 수준을 확인하려 했던 것뿐, 악의는 없었으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게.”
창송자는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한제는 말없이 가부좌를 틀었다. 표정에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그의 기분이 어떤지 파악할 수 없었다.
창송자는 속으로 차게 웃더니 운혼자와 묘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저자에게는 오청을 죽일 만한 능력이 있겠지만 우리 같은 쇄열기 중기 수련자에 비할 바는 아니지. 자네와 내가 함께 나선다면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어!”
운혼자가 신식을 통해 창송자에게 말했다.
“저자가 두려운 이유는 신종 사람일 수 있다는 가능성만이 아니라 정열기 수련자처럼 보이지만 오청을 가볍게 죽일 만한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진정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 한데 방금 자네와 맞붙은 모습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는군. 다만 저자는 꾀가 무척 깊으니 기회를 봐서 다시 시도해보세!”
창송자는 두 눈을 감은 채 신식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했다.
한편, 가부좌를 튼 한제는 고개를 숙여 번득이는 눈을 숨겼다. 방금 그는 전력을 다한 듯 보였지만 사실은 힘을 아껴둔 상태였다. 거칠고 맹렬한 강자들 앞에서 자신의 힘을 전부 내보이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쇄열기 중기 수준이라⋯⋯. 분명 강하다. 신통력에 포함된 원력만 해도 쇄열기 초기 수련자와는 전혀 다르지. 허나 전력을 다하고 법보의 힘을 더한다면 이길 수 있겠군. 어쨌든 창송자와 저자가 함께 기습해올 것에 대비해둬야겠어.’
그러는 동안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노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면서 수시로 창송자를 힐끔거렸다.
청의의 노부인은 방금 일어난 일에는 관심 없다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고요함 속에 시간이 흘렀다. 안개로 휩싸인 황량한 대륙에서는 낮과 밤의 구분이 없어 시간의 흐름을 명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한 시진쯤 지났을까? 돌연 멀리서 한 줄기 검광이 휙 하고 날아들었다. 매우 예리하고 서늘해 그것이 지나간 안개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을 정도였다.
짙은 안개를 곧장 꿰뚫은 검광은 번득이며 다섯 수련자가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검광이 다가옴에 따라 유아독존의 포악한 기운이 어린 묵직한 위엄이 느껴졌다.
팅!
낭랑한 소리와 함께 지면에 검이 꽂혔다. 길이는 7척, 폭은 손가락 두 개 정도 되는 긴 검은 전체적으로 은백색으로 반짝였고 음산한 한기를 발산했다.
자루에 달린 금색 술이 흔들리면서 허공에 줄기줄기 파문을 일으켰다. 파문은 점점 격렬해졌고 곧 그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무척 왜소한 그 사람은 척 보기에는 동자 같았으나 이목구비가 뒤틀려 있고 파란 얼굴이 끔찍했다. 일반인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기겁하며 쓰러져 버릴지도 몰랐다.
그는 땅에 꽂힌 검보다 약간 더 큰 정도에 불과했다.
“창송자 대체 무슨 성도를 준 건가? 한참을 헤맸잖아!”
그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투덜대더니 검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음침한 눈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 눈빛은 한제에게 이르렀을 때 흠칫했으나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창송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단목, 날 탓하지 말게. 자네가 잘못 찾은 것이겠지.”
단목이라 불린 사내는 차게 코웃음을 쳤다.
“이번에 가려는 곳에서 윤회단(輪回丹)을 찾을 수 있다고 하던데 정말인가?”
“당연하지. 그 내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만 돌아다녔는데도 윤회단을 하나 발견했다네. 허나 안타깝게도 그 옆에 흉수가 있어서 가져오지는 못했지.”
창송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흉수?”
“12급, 안개로 변할 수 있는 교룡이었지!”
단목은 그 말에 침묵한 채 눈만 번득였다.
한편, 한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동요하고 있었다. 윤회단이라는 단약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창송자의 행태로 볼 때 그 단약이 이번 여정의 목적은 아닌 듯했다.
한제는 곁눈으로 단목을 훑어보았다. 역시 쇄열기 중기 수련자였다.
“당장 출발하지 않는 것을 보니, 올 사람이 더 있는 건가?”
“한 명 더 있네.”
창송자는 말을 맺으며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내다보았다. 단목과 운혼자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제는 땅이 경미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어서 황량한 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안개 깊은 곳에서 거대한 인영 하나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보라색 도포를 입은 사내였다.
그가 가까워짐에 따라 지면의 진동은 더욱 격렬해졌고 수많은 돌조각이 튀어 올라 사방을 맴돌았다.
한제는 굳은 눈으로 사내의 뒤쪽을 자세히 살폈다. 짙은 안개가 꿈틀대는 그 뒤로 수백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흉수가 따라오고 있었다. 다만 그 흉수들의 급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 도착한 사내는 차가운 눈으로 일행을 훑어본 뒤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이미 와 있었다.”
그가 말을 마친 순간, 뒤편의 수백 마리 흉수들이 포효하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을 놀라게 할 정도로 요란한 포효를 내지르던 사이, 몇 마리 흉수는 펑 하고 터져 피와 살로 변해버렸다. 그게 신호라도 된 듯 뒤를 이어 모든 흉수들이 터져 나가며 죽음을 맞이했다.
흉수들의 피로 땅은 붉게 물들었고 짙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동시에 흉수의 혼이 줄기줄기 날아올라 거구의 몸으로 급속도로 응집하여 검은 회오리를 형성했다. 회오리는 사내가 움켜쥐자 실체화되기 시작하면서 검은색 단약으로 바뀌었다.
“진즉 도착해서 이곳의 흉수들을 제련하고 있었지.”
사내는 손에 쥔 단약을 집어삼키며 말했다.
“역수종(役獸宗)!”
운혼자는 신중한 얼굴로 사내에게 포권을 했다.
“귀하는 역수종의 어떤 분이십니까? 저는 운혼자로 복천자 도우의 오랜 벗입니다.”
단목 역시 엄숙한 표정을 드러내며 사내를 향해 포권을 했다.
“복천자는 내 사형이지. 난 진천군이라 한다.”
거구의 사내가 답했다. 표정에는 고고하고 오만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쇄열기 초기 수준인데도 쇄열기 중기 수준의 강자들로부터 공손한 대접을 받다니. 소속 종파가 대단한 모양이군. 게다가 이미 와 있었다는데 그자의 존재를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제는 거구의 사내, 진천군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진 형께서 미리 와 계신 줄은 전혀 몰랐군요. 역수종의 은닉술은 정말 대단합니다!”
창송자가 포권을 하며 웃었다.
진천군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덤덤하게 말했다.
“창송자 난 9급 성역의 소환을 받은 까닭에 최대한 빨리 종파로 돌아가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최대한 빨리 끝내지!”
창송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에 모인 수련자들을 한 번 훑어보았다.
“다들 와줘서 정말 고맙네. 이번 여정에서 우리는 모두 큰 소득을 거둘 것이네. 빈손으로 돌아올 사람은 절대 없을 거야.”
그는 잠시 멈칫하며 한제를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여 도우, 자네에게는 약속한 원정뿐만 아니라 감사의 의미로 몇 개의 보물도 선택해 가져갈 수 있게 해주겠네!”
한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설명은 그곳에 도착하고 하겠네.”
말을 마친 창송자는 또 한 번 포권을 한 뒤 긴 빛을 그리며 안개 속으로 달려들었다.
방 씨 성을 가진 노인과 청의의 노부인이 뒤를 따랐다. 진천군이 몸을 날리자 발아래 있던 두 덩어리의 검은 연기는 독수리 흉수의 혼이 되어 그를 따랐다.
“여 도우, 이쪽으로…”
운혼자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몸을 날렸고 운혼자는 차가운 눈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여섯 명의 수련자로 이루어진 일행이 창송자가 안내하는 쪽으로 향했다.
창송자는 익숙한 길인 듯 옥패를 꺼내 방향을 확인하지도 않았고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한제는 자연스레 가장 뒤처졌지만 그는 말없이 가속 부적을 꺼내 몸에 붙이면서 폭풍에 휩싸인 채 앞으로 튕겨 나갔다.
며칠간의 질주가 이어진 끝에 안개가 점점 짙어질 무렵 멀리 떨어진 5급 성역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의 황량한 대륙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일세.”
창송자는 몸을 날려 그 황량한 대륙에 이르렀다. 그리 넓지 않은 그 대륙에는 수많은 흉수가 살고 있어 착지하자마자 낮은 포효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대륙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네. 더욱이 내가 이곳에 숨겨둔 비밀을 찾을 수는 없지.”
창송자는 미소를 지었다.
“방 도우, 미안하지만 이 황량한 대륙에 지금 와 있는 다른 수련자가 있거든 모두⋯⋯ 죽여 버리게!”
창송자의 목소리에 얼굴이 흉터로 뒤덮인 방 씨 노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신식을 펼쳐 황량한 대륙 곳곳을 훑으며 흉수를 사냥하고 있는 수련자를 발견하는 즉시 모조리 죽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