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4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해동래의 몸이 순간 사라졌다가 한제로부터 3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한제는 상대가 사라졌던 그 순간, 몸을 아래로 날려 거대한 용으로부터 5백 척 정도의 거리로 떨어졌다. 해동래는 다시 순간이동을 했고 한제는 연거푸 후퇴해 결국 그로부터 7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렀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해동래는 미간을 살짝 구기며 한제를 주시한 채 냉소했다.
“대체 어쩔 생각이냐?”
한제의 생각에 잠긴 듯한 눈빛이 더욱 짙어졌다. 그는 눈을 빛내며 덤덤하게 말했다.
“싸우지 않겠다.”
말을 마친 그는 몸을 훌쩍 날려 모완의 곁으로 가서는 한 손으로 그녀의 가늘고 부드러운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곧장 다시 몸을 날려 1천 척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산봉우리에 이르렀다. 그곳에 착지한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해동래를 주시하며 냉소했다.
해동래의 미간은 전보다 더 구겨졌다.
“그렇다면?”
그는 말을 미처 끝내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한제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잔혹하게 웃으며 입을 벌려 하얀 빛을 토해냈다. 그 빛은 호랑이로 변해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어흥.”
그와 동시에 해동래는 오른손을 휘둘렀고 한제를 중심으로 30척 반경에 번갯불과 같은 파동을 일으키는 거대한 포위망이 나타나더니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한제는 평소처럼 입꼬리를 올려 차게 웃었다. 그리고 호랑이가 달려든 순간, 교룡의 힘줄에서 튀어나온 마혼이 잔혹하게 웃으며 단번에 호랑이를 집어삼켰다.
그와 동시에 수정 비검이 번쩍 빛을 발했다.
후두둑.
그러자 사방을 에워싼 번개 포위망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산 조각이 나버렸다.
어느새 한제의 오른손에서 솟아오른 황천의 화염이 냉혹한 한기를 발했다.
황천의 화염이 나타난 순간, 해동래는 굳은 얼굴로 재빨리 물러났지만 한제의 눈에서 튀어나간 붉은 번개에 경련을 일으켰다. 해동래는 신식이 진동하면서 옴짝달싹하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황천의 화염이 그의 가슴에 적중했다. 해동래의 가슴에서부터 푸른색 빛이 거미줄처럼 퍼져나갔다.
해동래는 그 기세에 선혈을 토해내며 빠르게 뒤로 밀려나, 용머리에서 3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러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그는 결인한 두 손으로 가슴을 몇 번이나 두드리고 여러 개의 단약을 집어삼켰다.
그러자 몸의 절반 정도를 뒤덮은 거미줄 모양의 푸른색 빛이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펑.
그러다 마침내 거대한 소리와 함께 빛은 그의 가슴팍에서 빠져나갔다. 황천의 화염은 번득이며 전보다 색이 훨씬 옅어진 채 한제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그때까지도 한제는 먼저 나서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 서서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해동래는 가슴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한제를 주시한 채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불쑥 물었다.
“어떻게 알게 된 것이냐?”
한제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무얼 말인가? 거리가 멀어질수록 네 기운이 약해진다는 것 말인가?”
모완은 타고난 총명함으로 순간 뭔가를 깨닫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자가 입은 상처도 가짜구나.”
“아니, 상처는 진짜였다. 허나 용머리로부터 3백 척 이내로 들어간 덕에 용의 영기에 치유된 것이지. 나를 원하는 거리로 유인하려는 수작이다.”
한제가 모완에게 이렇게 긴 답을 해주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다만 말을 하는 와중에도 시선은 줄곧 해동래에게 향해 있었다.
검수(劍修) 잔영
거대한 용을 본 순간만큼은 한제도 꽤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충분한 영력 제공자만 있다면 화신기 수준에도 충분히 이를 수 있는 술법이 아닌가?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투사파는 일찍이 남투성에 들어가 반경 1백만 리 범위 내의 일인자가 되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러지 못한 것은 이 술법에 효력 유지 시간이 짧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분명 최소한 그 효력 유지 시간을 가장 길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했을 터이니, 단점이 그것 하나뿐이라면 정말 대단한 술법이었을 것이었다.
단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한제는 상대를 자세히 관찰했고 저토록 강력한 상대가 자신을 보자마자 달려들지 않고 도발한 점에 의문을 품었다.
그때부터 거리를 재면서 3백 척 이내로 접근했다가 5백 척, 7백 척, 다시 1천 척까지 거리를 벌리면서 ‘용머리로부터 멀어질수록 위력이 떨어진다’는 또 다른 치명적인 단점을 눈치 채게 됐다.
해동래의 안색은 어두웠다. 원영기 경계에 이른 수준으로도 어떠한 위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제의 추측대로 용머리로부터 1천 척 밖에서 싸운다면 자신이 이길 가능성은 적었다.
★ ★ ★
투룡진의 효력 유지 시간은 반 시진 정도. 지금은 벌써 그 절반 정도가 지난 상태였다.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취할 것인가?’
해동래는 속으로 따져보았다.
원래는 결단기 수련자들에게 진으로 상대를 한동안 붙잡아두게 함으로써 시간을 벌어 단번에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관건은 시간이었다.
결단기 수준의 장로들은 이미 겁을 먹고 있었기에 해동래는 어쩔 수 없이 직접 나서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그의 단점을 완벽하게 간파해버렸다. 그만둘 수도 계속할 수도 없었다.
한제는 상대를 훑어보다가 모완을 끌어당기며 다시 1백 척 정도 뒤로 물러났다. 그의 눈에 깃든 비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해동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나 용머리에 착지했다.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덤덤하게 말했다.
“좋다, 패배를 인정하지.”
탁탁.
말을 마친 그가 발바닥으로 용머리를 살짝 두드렸다. 짙게 피어올랐던 영력이 그의 체내에서 용머리로 급속하게 회수됐다.
거대한 용의 두 눈에서 빛나던 어스름한 빛은 점점 더 밝아졌고 두꺼운 빛의 고리 하나가 빠르게 아래쪽으로 퍼졌다. 해동래의 몸도 영력의 흐름에 따라 덜덜 떨렸고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에 따라 거대해졌던 그의 몸도 차차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이내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용머리에 반쯤 꿇어앉았다. 마치 한순간에 수십 년은 더 늙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오늘부터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그것이 이 투사파 장교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는 떨리는 두 손으로 손바닥 크기의 세모난 자홍색 영패를 꺼내들어 천천히 한제에게 날려 보냈다.
한제는 해동래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영패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동공이 급속도로 좁아들더니 아무 말 없이 모완을 데리고 다시 뒤로 한참 물러났다.
한제가 몸을 뒤로 물리는 순간, 그의 앞에 해동래의 잔영이 나타났다. 그 잔영은 한 갈래의 검광이 되어 엄청난 속도로 한제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한제의 속도도 매우 빨랐지만 비검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휙.
한제는 3백 척 넘게 물러났으나, 번쩍거리며 나타난 비검에 결국 가슴이 찔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비검은 한제의 가슴을 찌른 순간 우뚝 멈추었다. 교룡 가죽 갑옷에 막혔기 때문이었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그 비검을 잡은 채 서 있는 한제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한참 뒤로 물러났으니 망정이지 이 비검이 쏘아진 순간 조금이라도 머뭇거렸었다가는 정말 큰일이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두둑.
비검은 살짝 흔들리더니 중심부터 부서지기 시작했다. 검은 화염이 그 비검의 안에서 발산되면서 타올라 비검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검은 화염이 나타난 순간, 한제는 두 손가락을 비검에서 떼어낸 뒤 차가운 시선으로 해동래를 바라보았다. 해동래는 한이 맺힌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더니 재로 변해 뿔뿔이 흩어졌다. 이 최후의 일격은 그의 필살기이자 그의 최대 비밀이기도 했다.
“이건, 저 자의 검수(劍修)야!”
모완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그녀는 정말 놀란 듯했다.
법보로 삼는 단 하나의 비검이 바로 검수였다. 하지만 상고시대와 달리 당금에는 한 자루의 비검만을 법보 중 하나로 삼는 수련자가 매우 적었다.
그런 검수자(劍修者)는 속도로 보나 공격력으로 보나 보통의 수련자보다 훨씬 출중했다. 동시에 검수 구결 역시 굉장히 많아서 최고 등급의 구결을 익히고 극상 품질의 비검을 손에 넣기만 하면 놀라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해동래의 검수 구결은 훌륭한 수준도 아니었으며 비검의 품질 역시 일반적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검수의 강한 공격력과 결단기 중기에 달하는 그의 수준으로 이 남투성을 주름잡고도 남았을 터였다.
일대일의 전투에서라면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겠지만 분산 공격을 할 수 없는 그로서는 다수의 적을 상대할 수 없었다.
이 최후의 일격을 위해 해동래는 체내의 검수로 검환(劍丸)을 쏘아냈다. 이 검환은 사실 그의 금단으로 이 공격은 안타깝게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해동래의 죽음에 가장 기뻐한 것은 목남과 목북 형제였다. 둘은 서로를 돌아보았다가 얼른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동시에 한제가 있는 쪽을 향해 엎드려 절을 했다.
“장교님을 뵈옵니다!”
상관묵은 목씨 형제의 뻔뻔한 행동에 속으로 욕을 지껄이면서도 얼른 한제의 곁으로 날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허리를 깊이 숙였다.
“투사파의 장교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스승님.”
진을 이루고 있던 열 명의 투사파 장로 역시 분분히 비검을 거두고 난감한 얼굴로 침묵하다가 결국 하나둘씩 한제 쪽으로 허리를 굽혔다. 용의 비늘에 있던 수만 명의 제자들 역시 지친 몸으로 버둥거리며 일어나 소리 높여 항복의 뜻을 밝혔다.
해동래의 죽음에도 한제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유감스러웠다. 수련자들의 세상에는 약육강식의 도리만이 있을 뿐, 옳고 그름은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모든 것을 뿌리 뽑아야 했다.
만약 그가 이렇게 직접 찾아오지 않았다면 투사파의 수많은 제자들은 끝도 없이 그를 물고 늘어졌으리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건드리면 엄중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수마해에서 자리 잡기 위한 첫 번째 작업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번 작업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적어도 남투성 반경 1백만 리 안에서는 이제 모든 사람이 한제에 대해 알게 됐다.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만마백일주살 영패에 대한 유혹이 말끔히 지워졌다.
자신의 발아래에서 수만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절하고 있는 모습을 본 한제는 고개를 들어 중앙 지역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등화원, 복수를 위해 나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실력을 키울 것이다. 절세의 마왕이 되더라도 무슨 상관이겠는가!’
한제는 냉소를 짓고 주변을 훑어보더니 상관묵을 향해 말했다.
“오늘부터 네가 투사파의 장교다!”
흠칫 놀란 상관묵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한제의 차가운 시선에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하려던 말을 얼른 집어삼킨 뒤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밀실 하나를 마련해다오. 수련을 해야겠다.”
한제는 냉담하게 한 마디 던진 뒤 모완을 데리고 투사파 쪽으로 훌쩍 날아갔다.
밀실은 빠르게 준비됐다. 그곳은 해동래가 폐관 수련을 하던 곳으로 용머리 안에 위치해 있었다.
밀실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제는 복잡한 표정의 모완에게 말했다.
“폐관 수련만 끝나면 곧장 돌려보내 줄게. 지금은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