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45
쇄열기 수준 수련자답게 적지 않은 보물이 있었다. 선옥만 해도 수십만 개였고 원정도 6만 개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온갖 약초와 단약 제조 방법도 있었다. 이곳에 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둔 모양이다.
한제가 가장 중점적으로 찾은 것은 옥패였는데 그중 하나에서 지도 두 개와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구결을 찾아냈다.
두 지도는 모두 칠채계와 관련된 것으로 길은 물론 선옥을 미끼로 원정을 취할 수 있는 흉수들의 위치가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상대의 기억 속에서도 창송자가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방가 노인은 그저 이곳에 많은 흉수의 혼이 봉인되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한데 한 자루의 단검이 한제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동굴 세 번째 석실의 어느 짐승 뼈에 꽂혀 있었던 검이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단검이 한제의 손에 쥐어졌다. 방가 노인 역시 방금 손에 넣은 만큼 아직 이 검을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을 터였다.
신식으로 단검을 훑자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어딘가 익숙했지만 정확히 어떤 익숙함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단검에는 봉인이 걸려 있어 구체적인 위력을 알 수는 없는 상태였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세 번째 석실로 가 바닥에 놓인 짐승 뼈를 살폈다. 성인 사람 크기의 뼈는 사슴과 닮은 모습이었다.
뼈는 전체적으로 칠흑처럼 검었는데 절반 정도는 가루로 부서진 상태였다. 가루가 된 지는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것이, 방가 노인이 검을 뽑으면서 생겨난 현상인 듯했다.
뼈를 바라보던 한제의 표정이 조금씩 변해갔다. 뭔가 이상했다. 이런 동굴 안에 어째서 사슴이 나타난 걸까? 봉인까지 걸려 있는 것을 보면 보통 물건이 아닐 텐데 그런 단검을 사슴에 꽂아 석실에 내버려 두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이 사마묵의 동굴이 아니라면 누구의 동굴인 거지?’
한제는 방가 노인의 기억에서 이곳은 사마묵의 동굴이 아니라 창송자가 어쩌다 찾아낸 곳에 불과함을 파악한 상태였다.
사마묵이 칠채계에 동굴을 남겨둔 것은 확실했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창송자는 애초에 그들을 사마묵의 동굴로 안내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지만 한제는 이미 진짜 사마묵의 동굴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잠시 더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이내 몸을 돌려 석실 밖으로 나갔다. 별다른 단서가 없으니 분석도 불가능했기에 단검을 챙겨 떠날 채비를 했다.
한데 어느 순간, 한제는 우뚝 멈춰 섰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한쪽 구석, 뭉그러진 살덩이 속에 반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방가 노인의 기억을 통해 저 반지가 그의 법보 중 가장 좋은 것임을 파악한 상태였다. 칠채계에서 얻은 것이었지만 노인은 그것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
한제가 손짓을 하자 반지가 곧장 그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반지에 묻은 피를 닦아낸 뒤 신식으로 훑은 한제는 흠칫 놀랐다.
반지에도 봉인이 걸려 있었다. 총 아홉 개 층으로 이루어진 봉인이었는데 방가 노인은 이미 일곱 번째 층의 봉인을 풀어 반지를 통제할 힘의 일부를 얻은 상태였다. 그리고 여덟 번째 층의 봉인도 절반 정도 풀려 있었다.
그 위에 어린 신식을 지우고 자신의 표식을 남긴 한제는 결인을 그려 반지에 찍었다. 그러자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여덟 번째 층의 봉인이 곧장 풀어졌다. 금제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그에게 반쯤 남은 봉인을 푸는 것은 이렇듯 간단한 일이었다.
여덟 번째 봉인이 풀린 반지는 순간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다섯 갈래의 무지개를 방출했고 이 무지개는 한제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는 엄밀하고 단단한 보호막이 분명했다.
“그 노인이 여덟 번째 봉인까지 풀었다면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겠군.”
한제는 다섯 갈래 무지개를 거두어 녹여 넣은 뒤 반지를 챙겼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그는 동굴의 깊은 곳을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훌쩍 날려 질주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신식을 펼쳐 주위에 살짝 둘렀다. 조금의 이상한 낌새라도 있으면 곧장 산골짜기로 피할 생각이었다.
만약 그가 향하는 방향을 보았더라면 창송자는 크게 놀라고 말았을 터였다. 창송자와 청의의 노부인이 지난 길과 완벽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신마갑을 네게 넘길 수야 없지!”
풀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 그곳은 안개도 없어서 시야가 훤했다. 한제는 산골짜기들을 넘어 질주했고 때로는 멈춰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가 다시 나아갔다.
어느 순간 성벽과 같은 산맥이 저 멀리 나타났다.
하루가 지났을 무렵, 성벽 같은 산맥에 가까워진 한제는 어느 산골짜기 앞에 멈춰 섰다. 이 산골짜기만 넘으면 산맥 아래쪽으로 넘어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어떤 기이한 느낌에 한제는 신중하게 주위를 살피다가 결인을 그려 금제를 소환하더니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미간에서 한 줄기 검은 선이 피어올라 금제를 형성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더니 허공으로 떠올라 검은 빛을 발산해 사방을 뒤덮었다.
검은 빛에 뒤덮인 순간, 전방의 풀밭에서 불빛이 반짝 일어나며 기이한 매화 모양의 도안이 드러났다. 그 도안을 본 순간 한제의 눈빛이 굳어졌다.
“매화십팔금(梅花十八禁)!”
저 매화십팔금은 하루 전에 배치된 것이었다. 아마도 청의의 노부인이 배치한 것이리라.
매화심십팔금은 가장 수준이 높은 금제 진법 중 하나로 상고 시대 4대 금제 중 파멸심금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이미 나천성역에서 파멸심금을 습득한 상태였기에 한제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노부인이 금제를 배치했다는 건 매복이나 경고를 하기 위함일 텐데⋯⋯.”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멈춰 서서 바닥에 배치된 매화십팔금을 자세히 살폈다. 상황이 간단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는 신식으로 산골짜기 바깥쪽 바닥을 샅샅이 살피고는 표정이 더욱 묵직해졌다.
멀지 않은 곳의 매화십팔금 중앙에서 보일 듯 말 듯한 검은 빛을 본 후로 그의 머릿속에는 청의의 노부인이 교룡의 피와 살을 흡수하던 모습과 구보봉천진을 열었던 공법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배치한 금제를 살피던 한제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만물의 생기를 죽음의 기운으로 만드는 것이로군. 상고 시대 4대 금제 중 생사금과 매우 비슷한데⋯⋯.”
한제는 쪼그려 앉아 어스름한 빛이 맺힌 손으로 풀밭 아래 진흙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빛이 굳어졌다.
풀의 뿌리 부분은 이미 썩어 있었고 생기도 거의 빠져나간 상태였다. 몇 시진만 더 지나면 모든 생기를 잃고 진 역시 완전히 파괴될 듯했다.
“창송자가 곁에 있어서 진을 세심하게 다듬을 수 없었던 모양이군. 금제를 통해 이곳 초목의 생기를 흡수한 뒤에 금제를 활성화하려는 거야.”
그는 점점 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은 절반만 완성된 상태다. 파괴할 수는 있지만⋯⋯.”
한제는 차게 웃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뒤로 조금 물러나더니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검은 빛이 사방을 뒤덮었다.
파멸심금으로 이루어진 표식은 진동하다가 곧장 무너져 내렸고 하나하나의 검은 빛이 되어 퍼져나가 풀밭에 떨어졌다.
“파괴하는 대신 내 낙인과 금제를 남겼으니 그녀 몰래 저 진을 차지할 수 있게 됐다. 파멸심금과 생사금을 더했으니 상고 시대 4대 금제 중 두 개의 위력이 합쳐졌다. 모르고 들어섰다가는 창송자라 해도 중상을 피하지 못할 터!”
신중하게 풀밭을 가로지른 한제는 산골짜기에 진입한 후에야 한시름 놓았다.
성벽과 같은 두꺼운 산맥과 이어진 눈앞의 산은 매우 험준하고 높았으나 한제는 망설이 없이 들어섰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원의 말이 떠올랐다.
“아주 먼 옛날, 규칙이 아홉 개로 나뉘었는데 그중 하나가 금(禁) 또는 진(陣)이라 불렸다는군. 그 금제는 오래 전부터 천(天), 지(地), 현(玄), 황(黃) 네 등급으로 나뉘었는데 그 위에 또 하나의 층차, 바로 허(虛)가 있었네. 허는 또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것이 바로 4대 금술일세. 상고 시대 4대 금제에는 파멸금, 생사금 뿐만 아니라 고혼금(古魂禁)과 신비로운 세월금(歲月禁)이 있지. 선계의 금제 중 대부분이 이 4대 금에서 기인해 여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했어.”
산을 오르며 한제는 생각에 잠긴 채 중얼거렸다.
“내가 나천성역을 떠났을 때, 이원은 만약 상고 시대 4대 금을 전부 습득하여 하나로 합치면 허술(虛術)을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금제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허술! 그러나 수만 년이 흐르면서 금제가 분화된 뒤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고 했지.”
한제는 생각을 접고 창송자와 노부인을 찾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한나절이 지났다. 하늘을 뒤덮은 일곱 색깔 빛 아래, 한제는 산맥의 가장 높은 곳에 이르렀다.
성벽과 같은 산맥은 고리 형태로 안쪽과 바깥쪽이 구분됐다. 안쪽은 짙은 안개로 가득 차 있어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마치 검은 바다처럼 안개는 파도를 치듯 몰아치고 있었다.
한제는 창송자가 그 안개 속에 있음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냉소하더니 곧장 몸을 날려 산맥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경전
창송자는 안개 속을 한 걸음씩 조심스레 이동했다. 곁에는 청의의 노부인이 검은 기운으로 몸을 감싼 채 나란히 걷고 있었다.
사방은 고요했다. 두 사람의 느릿한 발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여자호는 이미 죽었을 터. 방덕재는 수혼술에 능하니 분명 뭔가를 건졌을 테지. 신종 특유의 신통술인 역령인도 필시 손에 넣었을 거야.’
창송자는 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며 중얼거렸다. 방덕재와 여러 차례 함께 일을 해왔던 그는 눈빛만으로도 상대와 합을 맞출 수 있었다.
‘방덕재가 도착할 때가 됐는데⋯⋯.’
창송자의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번득였다.
“창송자 도우, 아까 말한 곳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 하지?”
여태까지 말이 없던 노부인이 불쑥 물었다.
“거의 다 왔네. 저 앞이야.”
대답을 마침과 동시에 창송자는 우뚝 멈춰 섰고 노부인이 신중하게 앞을 살폈다.
안개 너머로 흐릿한 석상이 서 있었다. 그 석상이 움직이면서 안개가 이리저리 흩날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석상의 앞에 이르렀다.
어떤 사내의 모습을 한 석상은 높이가 1천 척에 달했다.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석상의 사내는 미간에 번개 모양의 표식이 있었다.
“이건⋯⋯?”
흠칫 놀라며 석상의 미간을 응시하던 노부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바로 그때, 어떤 목소리들이 사방의 짙은 안개 너머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이한 목소리에는 영혼을 꿰뚫는 듯한 힘이 깃들어 있었고 멀리서도 가까이에서도 들려오는 것 같아 좀처럼 방향과 거리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깨달아라, 천도의 수감자는 생을 거듭하며 수많은 벌을 받아야 한다. 깊은 지옥에서 떠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얌전히 수련의 길을 기다려라⋯⋯.”
“깨달아라, 모든 생명은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며 현생을 풀어야 한다. 하늘의 의지에서 벗어나고 삶의 길을 얻어야 한다. 얌전히 수련의 길을 기다려라⋯⋯.”
“깨달아라, 하늘의 의지를 봉하고 어두운 시기를 새겨라. 모든 생명이 진정한 도를 얻지 못하고 고통의 바다에 침잠되며 진정한 길을 찾지 못한다. 얌전히 수련의 길을 기다려라⋯⋯.”
이 기이한 목소리들에 창송자는 두려운 듯 주위를 둘러보았고 노부인은 찬 숨을 들이마셨다. 목소리는 마음 깊이 남아 끊임없이 맴돌며 원신을 진동시키고 심지어 도심까지 흔들었다.
“저들은 누구지? 이 목소리는 대체⋯⋯.”
“저들은 깨달은 자⋯⋯.”
창송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개가 요동치며 일어나더니 한 줄기 허상의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엄청난 속도로 돌진한 그것은 창송자와 노부인의 사이의 허공에 떠 있었다. 뒤이어 기이한 목소리가 두 사람의 심신에 똑똑히 전해졌다.
“창송자 깨달은 자는 대체 뭔가?
청의의 노부인이 창백한 얼굴로 외치듯 물었다. 심신에서 끊임없이 맴도는 기이한 목소리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잃어버린 자는 자신의 도를 잃고 멍한 상태로 끊임없이 칠채계 안을 돌아다니며 도를 찾지. 반면 깨달은 자는 도의 경지를 가지고 있지만 경전을 본 뒤 무너져 내린 도심을 더는 응집하지 못하게 된 자야. 이 안개 속을 떠돌며 끝없이 찾아다닐 뿐. 이미 죽었거나 집념만 남은 도혼으로 존재하지!”
창송자는 끊임없이 맴도는 목소리를 듣다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경전?”
노부인이 되묻자 창송자는 광기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경전! 칠채계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이곳에 들어온 뒤 수많은 단서들을 통해 알게 됐어. 이 세상에 천도의 피로 만들어진 경전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