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5
말을 마친 그는 눈을 감고 침묵했다.
모완은 멍하니 한제를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야 조용히 중얼거렸다.
“고마워.”
그리고 그녀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몸을 돌려 용머리 안에서 빠져나왔다.
그녀가 떠난 뒤 한제가 번쩍 두 눈을 떴다. 그의 눈은 더 이상 이전처럼 무정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멍하게 비어 있다가 비통함으로 바뀌었다. 그의 머릿속은 수련 도중 집에 들렀을 때 부모님과 나누었던 대화로 가득 찼다.
‘한제야, 너도 이제 나이가 찼잖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혼담이 들어왔는지 아니? 신선도 가정을 꾸릴 수 있다고 하던데 기왕 왔으니 당분간 돌아가지 말고 적당한 아가씨를 찾아보는 게 어떠니? 이 마을에서 너만 한 애들은 전부 혼인을 했어.’
‘한제 엄마, 한제는 신선이 될 아이야. 며느릿감도 신선이어야지, 안 그래?’
‘신선? 좋지요! 며느리까지 신선이면 집에는 10년에 한 번 오겠네요!’
‘어머니, 걱정 마세요. 마음에 들어 하실 만한 며느릿감을 데려올게요.’
한제는 피눈물을 흘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참 뒤, 그는 피눈물을 닦아내고 오른손으로 돌벽을 내리쳤다. 그러자 용의 입이 천천히 다물어지며 이빨이 서로 교차되어 조금의 틈도 없이 밀폐됐다.
이어서 몇 개의 진을 배치한 한제는 오른손을 미간에 댄 뒤 신식의 바다로 정신을 집중했다. 용머리 속에서 자취를 감춘 그가 신식의 바다로 빠져들었다. 그의 머리 위에서 빛나던 거대한 주(誅)자도 사라졌다.
★ ★ ★
결단기에 이른 이후 처음으로 꿈속 공간에 들어온 순간, 결단기 장로들을 엄숙히 꾸짖고 있던 상관묵이 몸서리를 쳤다. 그는 끔찍하게 두려운 그의 주인인 한제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정혈이 사라졌다. 조금의 흔적도 감지할 수가 없었다. 이에 더욱 두려워진 그는 몸을 훌쩍 날려 용머리를 바라보았다. 한참 뒤에서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그의 얼굴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방금 막 용머리에서 나온 모완 역시 흠칫 놀란 상태였다. 고개를 들어 용머리를 바라본 그녀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꿈속 공간의 모처, 사도환의 거대한 원영은 허공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두 눈은 꼭 감긴 채였다. 투명에 가까운 그의 몸 안에서는 영력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다. 두 개의 옅은 유백색 빛 구슬이 얌전히 그 양쪽에 떠 있었다.
한제는 원영 아래에 서서 그 두 개의 빛 구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무력하게 꿇어앉아 머리를 바닥에 연거푸 찧더니 중얼거렸다.
“아버지, 어머니, 걱정 마세요. 반드시 며느릿감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한참 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들어 사도환의 원영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감격의 빛이 어려 있었다.
“사도환, 걱정 마. 난 벌써 결단기에 이르렀어. 앞으로 원영기, 화신기를 거쳐서 언젠가는 영변 단계에 이를 거야. 그러면 영감도 이곳에서 꺼내고 영감을 위해 새로운 몸뚱이도 찾아줄게. 내가 영감한테 하는 약속이야.”
말을 마친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도환의 원영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져 다른 곳으로 향했다.
★ ★ ★
밀실 안, 일곱 빛깔로 반짝이는 빛 하나가 갑자기 나타났다. 이 빛은 갈수록 밝아지다가 결국에는 하나의 그림자가 되었고 점점 더 실체화되었다.
그 순간, 상관묵의 심장이 뛰었다.
‘그 흉악한 자가 대체 무슨 공법을 수련하기에 온몸의 기운을 감추었을까?’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방금까지도 한제의 기운이 사라진 그 틈을 타 도망칠까 고민도 했지만 금방 그 생각을 접었다.
처리
모완은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으로 거대한 용의 몸에 난 비늘을 쓰다듬었다. 체내에서 느껴지는 혼혈의 파동도 그녀의 주의를 끌지는 못했다.
그녀의 섬섬옥수가 용의 비늘을 스쳤다. 그러다가 그녀는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용의 비늘 한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폐관 수련실에 다시 나타난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저물대를 꺼냈다. 지금껏 그가 죽인 모든 결단기 수련자의 금단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대략 1백 개가 넘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죽인 모든 수련자들의 저물대도 그 안에 들어 있었다. 한가한 시간을 틈타 한제는 그 저물대들을 정리했다.
비검과 법보가 매우 많았지만 족자 하나를 제외하고 한제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약 2척 정도의 길이에 팔뚝만 한 굵기인 이 족자에서는 옅은 영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한제는 이 족자의 주인이었던 수련자를 죽인 뒤 저물대를 빼앗아 반 정도 살펴봤던 기억이 났다. 당시 미친 듯한 포효가 그 안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역외 전장의 전송진 안, 경계 법칙의 압박 아래에서 한제는 처음으로 극의 신식의 존재를 감지했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 여러 해 동안 사용해오면서 극의 신식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졌다.
이제 극의 신식의 각종 작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아직도 극의 신식의 끝이 원영기 후기이며, 화신기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한제는 족자를 쓰다듬으며 신식을 그 위에 찍었다. 하지만 족자는 극의 신식의 낙인이 찍혔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감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한제의 흥미는 더욱 커졌다.
지금까지는 원영급 이상의 법보가 아닌 이상 상대의 신식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완벽하게 정복되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법보의 영력 파동은 절대 원영급 법보는 아니었다.
원영급 법보의 최대 특징은 영력의 파동이 굉장히 크다는 것이다. 단보(丹寶)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컸다.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비검은 원영급 법보였기에 혈련술로 정복하지 않았다면 결코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한제의 마음속에 저도 모르게 그 질박한 칼집이 순간이동을 하는 비검과 합쳐진 뒤 비검의 위력을 드높여 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 칼집에 대해서는 사도환 역시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원영급 이상, 심지어는 화신급을 넘어 영변급 법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사도환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물건은 많지 않았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깝게도 그 칼집은 저물대와 함께 등화원에 의해 부서져 버렸다.
‘아니! 그게 정말 그 정도의 법보였다면 원영기 수준인 등화원으로서는 절대 망가뜨릴 수 없어! 그렇다면 지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한제는 눈을 빛내며 족자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거렸다. 그리고 저급한 재료들이 들어 있는 저물대를 꺼내 영력을 집중시켰다.
펑.
그러자 그 저물대는 폭발음과 함께 한 줌의 재로 흩어졌다.
한제는 신중한 눈빛으로 저물대가 폭파되는 과정을 끝까지 주시했다. 그리고 다시 저물대를 꺼내어 부수었고 몇 차례나 이런 행동을 반복했다.
저물대는 파괴되었지만 그 안에 있는 재료들은 파괴되지 않았다. 입구가 하나뿐인 탑에 비유하자면 저물대는 일종의 출입문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 안의 물건들은 각 층에 들어 있는 것과 같았다.
저물대가 파괴되어 출입문이 무너지면 탑 밖으로 나올 길이 없지만 사실상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은 멀쩡한 셈이었다. 만약 다시 그 출입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그 안에 있는 물건을 다시 손에 넣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한제는 깊이 고민하더니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족자를 들고 한참 동안 살펴보았다. 신식의 낙인을 찍은 후에 어떤 감응도 느낄 수 없는 이유는 그 역시 아직 알 수 없었으나, 분명 원영급 법보는 아니었다.
한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족자를 펼쳤다. 한데 족자 안에는 그저 시커멓게 칠해진 그림만이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을 한참 살펴보던 한제는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한 줄기 위기감을 느꼈다.
“으아아악!”
사악한 기운이 가득한 삼각형의 눈동자가 그 시커먼 그림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더니 귀를 찢을 듯 포효했다. 그리고 그림에 격렬한 파동이 일었다.
한제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족자를 얼른 말아 버렸다. 그 안에서 흘러나오던 분노의 포효가 천천히 잦아들더니 결국 사라졌다.
한제의 이마에 땀이 솟아 있었다. 방금 그림 속에서 터져 나온 그 포효는 열네 번째 시체 골짜기 안에서 죽음에 임박한 교룡의 포효에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다만 족자에서 흘러나온 포효의 주인은 그림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밖으로 발산되는 영력의 파동은 없었다.
그는 마침내 족자에 신식을 남기고도 어째서 감응할 수 없었는지를 알게 됐다. 이 족자는 그저 봉인 역할을 할 뿐, 이 법보의 진정한 위력은 족자 안에 있는 그 영수(靈獸)에게 있었다.
신중하게 족자를 정리한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그는 한참 뒤 짐 주머니에서 금단 한 알을 꺼냈다. 금단의 색은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다. 한제는 한참 고민하다가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순간 1백 개가 넘는 금단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 대부분은 이미 색이 어두워져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이전이었다면 금단을 단번에 복용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모완은 줄곧 수련자의 금단을 삼키면 수련 등급은 빠르게 상승할지 몰라도 영력이 잡다하게 뒤섞여 기운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었다.
심지어는 체내의 오행(五行)에 불균형을 초래해 정신이 몽롱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금단을 적당히 다듬어서 오행에 맞춰 복용한다면 후환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한제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금단을 직접 섭취할 생각은 버리고 모완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금단을 다듬는 방법은 마도(魔道)에 속해 있어, 모완은 들어본 적은 있어도 그 구체적인 방법까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은 금단들을 하나의 저물대에 몰아넣고 나중에 방법을 알아낸 다음에 사용하기로 했다.
한제는 교룡의 힘줄을 꺼냈다. 그것을 가볍게 튕기자 마혼이 튀어나와 허공을 한 바퀴 돌더니 순종적인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마혼의 몸에 흐르는 붉은색 빛은 이미 상당히 진해져 있었다.
한제는 냉담한 시선으로 마혼을 훑어보며 물었다.
“네 수련 등급은 어느 정도까지 회복되었지?”
마혼은 조심스럽게 뒤로 몇 발짝 물러나며 다급히 말했다.
“방금 막 축기 후기까지 회복했습니다. 만약 비검이 방해하지 않았다면 벌써 결단기에는 이르렀을 거고요.”
한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혼은 점점 두려워져 다시 몇 걸음 더 물러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축기 후기 절정에 이르렀으니 결단기까지는 조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한제는 마혼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마혼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피하려 했으나, 사방이 철통같이 막혀 있었다.
한제는 손을 뻗어 마혼의 체내를 한 번 뒤집었다. 붉은색 연기가 마혼의 몸에서 발산되다가 주먹만 한 크기의 금단이 마혼의 몸 안에 나타났다.
마혼은 변명하듯 더듬거렸다.
“에? 어… 언제 금단이 생겼지?”
그는 한제의 차가운 시선에 몸서리치며 애원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제는 한참 침묵하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이제 기억나나?”
마혼은 와들와들 떨었다. 그는 결단기에 이른 순간 그 사실을 알아챘지만 줄곧 그 사실을 감춰왔던 터라, 지금 들키고 나니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처리할까? 처리해? 아냐, 못 이겨. 정말? 에잇, 결심했어! 처리하자!’
마혼이 막 결심을 행동에 옮기려던 순간, 한제의 눈에서 붉은 번개가 번득였다. 마혼은 엄청난 고통에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데굴데굴 구른 마혼의 몸에서는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고 심지어 금단마저 작아졌다.
한제의 극의 신식은 본래 이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으나, 그에게는 여전히 탄혼의 능력이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탄혼은 마혼의 천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