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50
한제의 왼쪽 눈에서 불빛이 피어나더니 삽시간에 온몸을 맴돌며 붉은 주작의 갑옷이 되었다. 동시에 오른쪽 눈에서 번득인 전광은 그를 중심으로 반경 1만 척의 대지를 천둥번개의 연못으로 만들었다.
우르릉! 쾅!
번개가 은빛 뱀처럼 빠르고 유려하게 퍼져나갔다. 대량의 바위가 전광 아래 표류했고 한제 체내에 남은 고신의 힘이 왼팔로 응집해 삼지창으로 흘러들었다.
그 순간, 우렁찬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고 한제가 훌쩍 뛰어올랐다. 동시에 불바다가 퍼져 나가며 한제 주위에 주작의 낙인이 나타났다. 마치 한제가 세상 모든 화염을 통제해 나침반으로 달려드는 듯한 모습이었다.
콰쾅!
동시에 전광이 땅으로부터 휘몰아치며 함께 날아올랐다. 마치 반경 1만 척의 연못에서 번개의 산이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천둥번개로 형성된 산이었다.
그 산은 일제히 정상의 한제에게로 응집되면서 사라졌다.
번개와 불의 힘에 힘입은 한제는 전광과 화염에 휩싸인 유성처럼 삼지창을 든 채 역천(逆天)의 길을 걸어 나갔다.
그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더니 이내 하늘을 가르며 격렬하게 나침반을 향해 달려들었다.
“구현변!”
한제는 두 눈에 핏발이 가득 선 채 아홉 개로 갈라졌다가 하나로 합쳐졌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기운이 칠채계에서 그의 몸으로 내리 떨어졌다.
“캬오오오!”
주작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한제는 눈부신 빛이 번쩍 터져 나오는 몸으로 곧장 나침반과 충돌했다.
콰쾅!
온 우주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회전하던 나침반은 바르르 진동했다. 그리고 서서히 몇 갈래 균열이 일어났고 이내 전체로 퍼져 나가더니 펑 소리와 함께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그 순간, 붉은 인영 하나가 무너져 내린 나침반에서 튀어나오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지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나침반이 붕괴하는 소리와 파편들이 칠채계 전체로 퍼져 나감에 따라 그 가장자리에 있던 안개 형태의 흉수들이 재빨리 응집하더니 폭발이 일어난 곳을 바라보았다.
칠채계 곳곳을 멍하니 돌아다니던 잃어버린 자들도 그중 하나인 단목 동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성난 파도와 같은 안개 속을 휘젓고 다니던 깨달은 자들도 그 기이한 속삭임을 그치고는 우뚝 서서 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한편, 칠채계 가장자리 어느 산봉우리의 비밀스런 동굴 안에는 창백한 얼굴에 옷 곳곳이 피로 물든 한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진천군으로 부상을 치료하던 그 역시 거대한 소리와 파동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 무렵, 청의의 노부인은 산골짜기 밖의 금제에 갇혀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었다. 이곳의 금제는 매우 강력했다. 특히 생사금과 파멸금이 융합해 더 이상 그녀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버티기 힘들었다. 그 와중에도 이를 악물고 저항을 이어가던 그녀는 경악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폭발의 근원지를 쳐다보았다.
창송자도 다르지 않았다. 안개 속, 미간에 번개 표식이 새겨진 거대한 석상 머리 위의 일곱 빛깔 안개 덩이에서 가부좌를 튼 채 호흡으로 상처를 치료 중이던, 매우 허약해진 창송자의 원신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사실 그는 누구보다도 놀란 상태였다. 이미 한제를 높게 평가해오긴 했지만 자신과 맞싸울 수 있을 정도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허나 좀 전의 전투로 자신 역시 상대 못지않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특히 그 전투에서 소모한 법보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파왔다. 세 개의 구슬과 이제 못 쓰게 된 수정검도 아까웠지만 무엇보다도 상대의 어깨에 박아 넣은 일곱 빛깔의 못, 칠채정(七彩釘)이야말로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자신의 가장 강한 법보이자 필살기이기도 했던 칠채정을 쓴 것도 아까웠지만 그러고서도 여자호를 죽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은 육신을 잃었다.
그가 도망친 것은 더 이상의 싸울 상태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상대가 곧 죽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상대가 구슬을 통해 발휘한 신통력을 벗어날 수는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러니 자신은 기다렸다가 나침반을 조종해 상대의 시체와 원신을 흡수하고 부상을 회복한 뒤 모든 것을 손에 넣고 이곳을 떠나면 그만이었다.
한데 저 소리는 무엇인가! 게다가 나침반에 대한 감지가 끊어지다니…
“그 상태에서도 나침반을 파괴했단 말인가!”
창송자는 처음으로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솟구쳤다.
그는 지금 산맥으로 둘러진 곳에 있었지만 사실 이곳은 다른 자들에게 말한 것과 달리 칠채계의 중심부가 아니었다. 칠채계의 중심은 이보다 더 안쪽에 있는데 그곳의 가장자리이자 안개로 뒤덮인 산골짜기에는 창백한 얼굴의 운혼자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한편, 한제는 이를 악물고 흐릿해지는 신식과 정신을 되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시야는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때, 산골짜기 안에서 폐허가 된 동굴을 발견한 그는 다급하게 그 안으로 들어가 저물공간에서 은시(銀屍)와 허이국을 꺼내 경계를 세우고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주인님, 이 허이국을 이제야… 주인님?”
전귀종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운 이후 처음으로 나온 허이국은 상을 기대하며 나오기가 무섭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제는 이미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짧은 순간, 허이국의 머릿속에는 배신과 자유에 대한 계획이 세워졌다.
하지만 그때, 허이국은 몸을 바르르 떨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은시가 싸늘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상대의 강력함을 잘 아는 허이국은 재빨리 눈길을 돌렸다.
“경계를 서라!”
은시는 냉랭한 목소리로 외친 뒤 한제 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를 살폈다. 그런 그녀의 두 눈에서는 혼란과 부드러움이 뒤섞여 나타났다.
허이국은 감히 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동굴 입구를 지키고 섰지만 속으로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저 여인은 대체 뭐란 말인가? 나처럼 풍류와 멋이 넘치는 절세미남을 놔두고 다 죽어가는 이한제 따위에 붙어 있는 꼴이라니⋯⋯.’
허이국은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섰다.
은시는 정신을 집중하더니 흐릿한 기억을 따라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한 줄기 어스름한 빛이 번득이며 동굴 입구에 금제가 떨어졌다.
한제가 이 광경을 봤더라면 흠칫 놀랐을 터였다. 이 금제는 다름 아닌 생사금이었고 심지어 청의의 노부인보다도 훨씬 능숙해 보였기 때문이다.
반 시진 후에야 한제는 의식을 찾고 눈을 떴다. 그는 동굴 입구를 힐끗 보고는 다시 은시를 보더니 말없이 가부좌를 틀고 호흡에 집중했다.
순식간에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칠채계에 들어선 모두가 부상 회복에 여념이 없는 듯했다.
한데 그 사이에 한제는 안색이 더욱 창백해진 상태였다. 심지어 그의 오른쪽 어깨에는 일곱 색채의 빛이 어렴풋이 드러나기도 했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그 아래 뼈에는 칠채정이 단단히 박힌 채라 뼈에 간 금이 점점 널리 퍼졌다. 고신의 회복력으로도 회복이 어려웠다.
통증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문제는 칠채정이 뼈에만 박힌 것이 아니라 원신에도 박힌 채 끊임없이 생기를 흡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그를 완전히 빨아먹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으려는 듯했다.
‘대체 무슨 법보이기에 이토록 강력하단 말인가! 심지어 차공열 법보인 철검을 두 동강 내다니…’
망가져 쓰지 못하게 된 철검에 생각이 미치자 씁쓸했다.
‘게다가 그자의 그 구슬… 각 구슬이 일곱 색채의 빛을 흡수해 신통술을 발휘했지. 아주 기이한 법보였어. 심지어 천운일지를 소환하기도 했지.’
천운자의 전혼이 봉선인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던 표정도 떠올랐다.
‘이곳은 분명 천운자와 관련이 있는 곳이야.’
고통을 참고 생각을 정리하던 한제의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하지만 창송자도 중상을 입었다. 내가 먼저 회복하기만 한다면 다음에는 끝장을 내주지. 그리고 그 노부인… 그녀는 아직 진에 갇혀 있겠지. 운혼자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무사하지는 못할 터. 이 셋은 처리했지만 먼저 떠난 진천군은… 그자의 신통력이 흩어지면서 생성된 파동을 느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죽었을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
생각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았고 고통까지 머릿속을 흐려놨지만 한제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모두에게는 각자 속셈이 있다. 다른 사람이 보물을 가지고 무사히 떠나도록 두지 않겠지. 그럴 바에야 내가 먼저 움직여주겠다.’
사실 그가 운혼자를 먼저 다른 곳으로 보낸 것도 청의의 노부인을 가둬놓은 것도 창송자와 일전을 벌인 것도 그들에게 다른 마음이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때, 오른팔에서 다시 통증이 시작됐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한제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눈빛으로 왼손을 들어 올려 오른쪽 어깨를 그었다. 그러자 상처가 생겨나면서 피가 터져 나왔고 뼛속에 박힌 칠채정이 드러났다. 순간 일곱 색채의 빛이 동굴을 가득 채웠다.
이를 곁눈질로 바라보던 허이국이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독한 놈! 다른 자에게만 저러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까지 독한 놈이다!’
허이국의 생각을 알 길 없는 한제는 이를 악문 채 왼손으로 칠채정을 움켜쥐고는 힘차게 잡아당겼다. 기다렸다는 듯 극심한 고통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끄으으…”
한제의 꽉 다문 이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고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칠채정을 뽑아내지 못했다. 못은 마치 뼈에서 자라난 것처럼 분리되지 않았다. 더구나 칠채정에서 번득이는 일곱 빛깔은 뼛속으로 녹아들어 오른팔 뼈까지 물들이고 있었다.
일곱 빛깔이 뼛속으로 녹아드는 순간, 머릿속이 흐릿해지면서 광기 어린 모습이 드러날 조짐까지 보였다. 이런 조짐은 곧 사라졌지만 한제는 찬 숨을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광증이 차오르던 느낌은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마치 층층이 봉인에 뒤덮인 듯,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이 아니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새 칠채정은 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이 못이 전부 사라져 버린다면 내 뼈는 완전히 일곱 빛깔로 물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될 것이다. 대체 이 못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깨의 상처는 점점 아물더니 이내 말끔히 사라졌다. 그러나 칠채정은 여전히 박혀 있었다.
한제는 두 눈을 감았다. 못에 고정되어 있는 원신이 발버둥 치며 체내를 맴돌았다.
‘외부의 힘으로 뽑아낼 수 없다면 체내의 원력과 고신의 힘으로 뽑아주겠다.’
칠채정(七彩釘)
또다시 사흘이 흘렀다. 그러나 그의 수준으로는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약간이나마 늦출 수 있을 뿐, 다른 조치는 취할 수 없었다.
‘도움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도움을 받아야 해.’
하지만 자신을 도울 만한 사람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 한제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문제의 옥병을 발견했다. 창송자가 이곳에 온 진정한 목적이기도 한 옥병이었다.
한제는 신식으로 옥병을 살폈다. 안에는 검은 액체가 반 정도 차 있었는데 피인 듯했지만 냄새는 나지 않았다.
‘창송자의 원신을 사로잡으면 이게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
옥병을 품에 넣은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 입구에 배치된 생사금을 바라보다가 은시에게 물었다.
“생사금을 배치할 수 있나?”
은시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작게 대답했다.
“야⋯⋯ 약간의 기억이⋯⋯.”
“금제를 풀어.”
여인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굴 입구로 다가가 고운 손으로 허공을 살짝 밀었다. 금제는 느릿하게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제는 더 묻지 않고 소매를 휘둘렀다.
허이국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으나 입을 뻥끗거리는 사이 한제가 그와 은시를 한꺼번에 저물공간으로 거두었다.
동굴 밖으로 나선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통증을 애써 참으며 몸을 훌쩍 날렸다. 그가 향하는 곳은 칠채계 내부가 아니라 산골짜기 밖의 산봉우리 뒤쪽 가장자리였다. 그곳에는 화무(化霧) 흉수들이 가득했다. 한제는 그 흉수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한제는 이전에 지났던 곳들을 엄청난 속도로 지나쳐 순식간에 칠채계의 가장자리에 이르렀다. 산맥 중턱의 통로를 건너 고개를 들었을 때, 산봉우리 위에 짙게 드리운 안개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 여정은 위험할 것이다. 허나 이 못을 빼내려면 어떤 위험도 감수할 만하다. 더불어 내 고신의 육신이 얼마나 강한지도 확인할 수 있을 터!”
한제는 곧장 산봉우리 꼭대기를 향해 돌진했다.
한데 그가 목적지에 이르기도 전에 안개 속에서 요란한 포효와 함께 몸길이가 1천 척에 달하는 거대한 독수리가 안개 속에서 튀어나와 달려들었다. 독수리 뒤로는 안개가 길게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