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51
허나 한제는 피할 생각도 않고 그런 녀석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냈다.
콰쾅!
충돌의 충격은 고스란히 한제의 오른쪽 어깨뼈로 전달됐다. 이에 뼈가 바들바들 떨려왔고 일곱 빛깔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빛은 살과 피부를 뚫고 나와 먼 곳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번득였다.
뒤로 약간 밀려났던 독수리는 공중에서 한 바퀴 선회한 뒤 다시 달려들었다.
한제는 심신이 진동했지만 피하지 않고 다시 돌진했다. 그러자 산봉우리를 뒤덮은 안개가 움찔거리더니 또 한 마리의 독수리 흉수가 나타났다. 두 마리의 독수리는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두 갈래 검은 빛이 되어 날아들었다.
펑! 펑!
폭발음이 연달아 울렸다. 한제는 거대한 산봉우리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창백해졌고 입으로는 피를 토해냈다. 하지만 두 눈은 갈수록 밝아지고 있었다.
두 마리의 12급 흉수와 충돌하는 충격은 엄청났다. 한제는 그 충격을 모두 오른쪽 어깨에 집중시켰다.
큰 부상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오른쪽 몸에서 요란하게 번쩍이는 빛을 빼낼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이 통한 것인지 오른쪽 반신을 뒤덮어가던 일곱 색채의 빛은 점점 어깨로 집중되고 있었다.
두 마리 독수리 흉수는 끊임없이 공격을 가했고 그때마다 한제의 부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에서는 기쁨마저 느껴졌다.
‘고신의 육신이 있는 이상 부상은 삽시간에 회복할 수 있다. 이 못만 빼낼 수 있다면…’
이 무렵, 한제의 육신은 거의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대신 오른쪽 반신에서 번득이던 일곱 색채의 빛은 모두 오른쪽 어깨와 칠채정으로 집중됐다. 심지어 못은 서서히 약해지더니 이제 슬슬 빠져나갈 조짐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캬오오오!”
그때, 산봉우리의 안개 속에서 또 한 번 포효가 터져 나오더니 세 번째 독수리 흉수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곧장 검은 빛을 그리며 한제에게 달려들어 가슴팍을 강타했다.
“크윽!”
한제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본래 중상을 입은 상태였던 그의 몸은 이제 거의 붕괴 직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오히려 길게 웃음을 터뜨렸고 그 순간 오른쪽 어깨가 펑 하고 폭발하더니 피범벅이 된 살덩이 속에서 일곱 색채의 빛이 쉭 하고 날아갔다. 그 안에는 칠채정이 들어 있었다.
한제는 재빨리 그 못을 움켜쥐고는 흉수와의 충돌로 인한 충격을 이용해 후퇴해 산봉우리 아래로 내려갔다. 독수리 흉수들은 놓칠 수 없다는 듯 세 갈래 검은 빛이 되어 달려들었다.
한제는 끔찍한 통증에 정신이 아득했지만 꾹 참고 통로 안으로 진입했다. 다행히 독수리 흉수들은 분노한 듯 포효할 뿐, 통로 안까지 쫓아오지는 않았다. 분이 덜 풀린 것인지 녀석들은 한동안 그 밖에서 배회하다가 이내 산꼭대기에 드리운 안개로 돌아갔다.
통로 안에서 가부좌를 튼 한제는 곧장 대량의 금제를 배치한 뒤 단약을 꺼내 꿀꺽 삼켰다. 육신의 부상은 끔찍할 정도였지만 고신의 회복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제는 곧장 그곳을 떠나는 대신 고신의 힘을 체내에 돌려 몸 구석구석에 퍼뜨렸다. 칠채정을 뽑아낸 덕에 그의 몸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원만하게 회복되었다.
이틀이 지났을 때,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상태는 많이 호전됐고 원신이 기력을 되찾았으며, 체내의 원력도 완전히 회복된 상태였다. 지금 상태라면 창송자가 부상을 완전히 회복했다 해도 맞붙을 수 있을 듯했다.
한제는 엄청난 속도로 통로를 지나쳐 산골짜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칠채정을 꺼내 살폈다.
‘두려울 정도로군.’
만약 그가 고신의 육신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그의 몸은 이미 일곱 빛깔로 물들고 정신을 잃었을 터였다. 고신의 육신이 없다면 쇄열기 후기 수준의 수련자라 해도 그런 끔찍한 상황을 피할 수 없으리라.
‘만약 철검과의 충돌로 위력이 꺾인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단숨에 내 뼈를 관통하고 온몸의 뼈를 일곱 빛깔로 물들였겠지.’
한제는 칠채정을 신식으로 뒤덮어 자신의 낙인을 남긴 뒤 저물공간에 집어넣었다.
‘어쨌든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었구나. 철검은 부러져 못 쓰게 됐지만 대신 이 법보를 얻게 됐으니까. 이것만 있다면 쇄열기 후기 수련자도 두렵지 않다!’
한제는 다시 저물공간에서 방덕재의 반지를 꺼내 왼손 엄지에 끼웠다. 이 반지의 방어력은 엄청나서 칠채계 안에서도 호신용품으로 쓸 만했다.
이어서 동굴 안 사슴 뼈에 꽂혀 있던 단검도 꺼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그의 수준으로는 마지막 봉인을 열 수 없었기에 이내 다시 거두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창송자가 소환했던 핏빛 원영과 같은 작은 사람이었다. 원영은 두려운 듯 잔뜩 위축된 상태로도 여전히 흉악한 눈빛을 번득이며 낮게 포효했다.
“원영인 동시에 법보인가? 흥미롭군.”
한제는 피식 웃더니 입을 벌려 한 움큼 원기를 뱉어내 원영을 감쌌다. 그리고 그대로 집어삼켰다. 자신의 원신 안에서 제련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창송자의 낙인을 지우면 한제의 것이 될 터. 그럼 그때 연구를 해볼 생각이었다.
‘이번 전투로 손실이 있긴 했지만 수확 역시 적지 않다. 옥병과 칠채정, 핏빛 원영, 그리고 그 수정검!’
한제는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못을 칠채정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것이 실제 이름과 똑같다는 것은 우연이었으나, 적중된 상대를 일곱 빛깔로 물들인다는 특성을 고려한다면 놀라울 정도의 우연은 아니었다.
한제는 삼지창을 소환해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그 위에 작은 수정검이 나타났다. 동시에 차공열 법보의 기운이 확산되는 것이 느껴졌다. 철검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위력도 아니었다.
창송자에게서 얻은 물건을 통해 한제는 칠채계에 수많은 법보가 존재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창송자가 사용한 법보 대부분은 이곳과 관련이 있을 터였다.
“이곳은 보물이 가득한 곳이로군. 앞으로의 싸움은 누가 무기와 단약을 더 많이 찾아 먼저 수준을 높이느냐에 달려있겠어!”
한제는 입술을 핥다가 몸을 훌쩍 날려 전방의 산골짜기로 향했다.
그의 첫 번째 목표는 방덕재의 기억 속에서 찾았던 사마묵의 동굴이었다.
방덕재의 기억에 따르면 그들은 사마묵의 동굴을 발견했으나 열지는 못하고 일부만 활성화해두었다. 이번에 이곳에서 얻은 흉수의 혼으로 단약을 만들어 수준을 높인 뒤에 열어 볼 생각이었다.
“열린 적 없는, 완벽하게 보존된 동굴이라!”
한제는 방덕재의 기억에 남은 길을 따라 산골짜기들을 관통했다. 그는 빠르게 이동하면서도 어떤 금제도 건드리지 않았다.
사마묵의 동굴은 꽤 멀었다. 산골짜기 사이사이의 길을 따라가는 도중 마주한 금제는 대부분 붕괴한 상태로 골짜기의 동굴들도 텅 비어 있었다.
다음 날, 한제는 어느 산골짜기 밖에 멈췄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산골짜기였지만 음산한 기운이 심신을 파고들었다.
그곳에는 잡초가 가득했고 금제에는 훼손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방덕재의 기억을 통해 찾은, 사마묵의 동굴이 있는 곳이었다.
신중하게 주위를 살핀 한제는 산골짜기 입구로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금제를 소환했다.
콰르릉!
순간 산골짜기가 바르르 진동하더니 눈앞에 보라색 골짜기가 드러났다. 땅을 뒤덮은 잡초가 사라지고 그 대신 검은 진흙이 깔린 바닥이 드러났으며, 입구에도 검은 빛의 장막이 드리워 접근을 막았다.
산골짜기에는 두 겹의 금제가 드리워져 있었다. 첫 번째 금제는 환각으로 풀어낸다 하더라도 진짜 동굴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방덕재 등이 이전에 풀어낸 것은 이 첫 번째 층의 금제일 뿐이었다.
하지만 금제에 뛰어난 한제는 어렵지 않게 진정한 산골짜기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빛의 장막을 바라보던 그는 피식 웃었다. 이 빛의 장막은 이전에 창송자가 옥병을 취했던 곳에 드리워져 있던 금제의 막과 같은 세월금이었다.
그가 보기에 이 금제는 적어도 2만 년은 된 듯했다. 옥병이 있던 곳의 세월금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파괴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법보를 왕창 쏟아부어야만 열 수 있으리라.
빛의 장막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겨 있던 한제는 잠시 후 옥패 하나를 꺼냈다. 황량한 대륙에서 얻었던 사마묵의 물건이었다.
‘우연히 사마묵의 유물을 손에 넣은 내가 이제 그의 동굴 앞에 서다니, 재미있군.’
옥패를 든 손을 느릿하게 빛의 장막 안으로 뻗자 빛의 장막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파문이 일어나 일제히 옥패에 응집되는가 싶더니, 곧 펑 하는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빛의 장막을 완전히 열지는 못했고 가까스로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균열 한 줄기만 생겨났다.
한제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균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가 들어가자마자 균열은 맞물렸고 파문도 사라져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한제가 거두었던 환각도 다시 생겨나 보라색 산골짜기는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한제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기름진 풀밭이었다. 1천 척 정도로 크지 않은 산골짜기에는 무렵 아홉 개의 동굴이 있었는데 모든 입구는 돌문으로 막혀 있었다.
풀밭에는 유해가 한 구 있었다. 가부좌를 튼 채 골짜기에 기대어 고개를 숙인 유해는 오른손 검지로 지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유해 앞에는 세 개의 옥패가 놓여 있었다.
묵묵히 유해를 바라보던 한제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백골로 변한 그 뼈에서 미약한 일곱 색채의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존(掌尊)
조심스레 다가간 한제는 쪼그려 앉아 유해를 한참이나 자세히 살피다가 바닥에 놓인 첫 번째 옥패를 들어 신식으로 살폈다.
“⋯⋯내가 이곳에 돌아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때, 나와 사숙, 그리고 여러 동문들은 그의 요구대로 이곳에서 비밀스러운 공간의 균열을 발견했다. 이 공간의 균열은 매우 기이했고 안에서는 일곱 색채의 빛이 발산되었다.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사매는 무지개를 매우 좋아했는데 난 그녀에게 이곳에 데려와 주겠다고 약조한 바 있다.”
그것은 누군가가 남겨둔, 이 공간에서 보낸 긴 세월의 기록이었다.
– 균열 안으로 들어온 우리가 마주한 것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우리는 가장 깊은 곳에서 그 끔찍한 존재를 발견하고 수련계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운해성역 뿐만 아니라 나천, 소하, 곤허까지 재앙으로 몰아넣을 엄청난 비밀을…
하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희망을 훼손했다. 우리는 죄인이다. 스승님은 나를 문파에서 쫓아내셨다. 그분이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안다. 나와 동문들은 운해성역의 안개 속을 헤맸다. 그 안개만 봐도 두려워졌다. 비밀을 알게 되었기에⋯⋯.
난 우리가 그런 절망 가운데 엄청난 재난을 다시 맞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우리는 재난을 피해 도망치다가 결국 이곳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난 평생을 이곳에서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운명인가⋯⋯? 난 운명을 믿고 운명을 신봉한다.
옥패의 기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 벌써 3년이 지났다. 둘째와 셋째 사제는 잃어버린 자가 되었다. 나흘 전, 난 그들은 보았지만 그들은 날 알아보지 못하고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무슨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 이곳에 온 지 6년째다. 난 옥패 하나를 찾았는데 그것에는 세월이라는 이름의 금제가 남아 있었다. 반드시 이것을 배워야 한다.
– 사숙이 떠나셨다. 깊은 곳으로 떠난 그분은 내게 그 안의 어떤 목소리가 자신을 부른다고 하셨다. 이제 11년째⋯⋯. 난 세월금을 약간 파악한 상태다.
– 얼마나 지났을까? 30년은 됐겠지… 깨달은 자의 공격이 다시 가해졌다. 난 그들 사이에서 사숙을 보았다. 그들은 여섯째 사제와 다섯째 사제를 데리고 갔다.
– 세월금을 마침내 파악했다! 어느 산골짜기 안, 나와 남은 동문들은 진정한 세월금을 배치했다. 그리고… 아홉째 사제가 자신의 수명을 희생해 진에 세월을 더했다. 그는 죽기 전 내게 자신의 유해를 파천종에 보내달라고 했다. 난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 세월금으로 보호한 산골짜기는 나의 집이 되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온기는 찾을 수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점점 낯설어져 가는 익숙한 얼굴들뿐. 계속해서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방법을 찾아 그들을 구해내야만 한다!
첫 번째 옥패의 내용은 여기에서 끝났다. 한제는 침중한 얼굴로 유해를 바라보다가 두 번째 옥패를 들고 신식을 주입했다.
– 1백 년이 흘렀다. 이곳에는 낮과 밤의 구분이 없어 정확한 시간을 헤아릴 수 없지만 세월금의 강도를 통해 짐작할 수는 있다. 허나 내가 느끼기에는 1천 년은 더 된 것 같다. 열셋째 사제는 스스로의 목숨을 끊었다. 더는 이 감옥에 갇힌 듯한 삶을 견딜 수 없었으리라. 이제 남은 것은 나와 열여섯째 사제, 그리고 넷째 사숙까지 세 사람뿐이다. 난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안다. 어쩌면 이것은 벌인지도 모른다. 허나 굴복할 수 없다. 이 상황을 감수할 수 없다.
– 오늘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내가 이곳에 온 지 130년이 넘은 이 날, 역행자가 처음으로 나타났다. 넷째 사숙이 역행자가 된 것이다.
– 모두 떠나고 나와 열여섯째 사제만 남았다. 나는 방법을 하나 찾아냈다. 그들을 모두 구해낼 방법을…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한번 시도해볼 생각이다. 열여섯째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곧장 산골짜기를 떠날 것이다.
– 둘째 사제와 셋째 사제를 포함해 잃어버린 자가 된 모든 동문을 데리고 돌아왔다. 산맥 깊은 곳에서 깨달은 자가 된 다섯째 사제와 여섯째 사제도 찾아내 데리고 왔다. 또한 나는 깊은 곳으로도 향했다. 그곳의 길은 아주 익숙했다. 그리고… 둘째 사숙을 찾아 그를 데리고 돌아왔다.”
두 번째 옥패는 여기서 끝났다.
한제는 멍하니 옥패를 내려놓고는 충격적인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후 세 번째 옥패를 집어 들었다.
– 이곳에서 지낸 지도 벌써 3백 년이 넘었다.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본 나는 어떤 구슬을 발견했다. 이 구슬은 역행자의 신통력을 봉인할 수 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넷째 사숙을 구하기 위해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것을 찾고 있다.
– 깊은 곳에 방문한 것도 벌써 네 번째다. 난 이곳에 넷째 사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강력한 역행자를 마주하기 위해 구슬로 그들의 신통술을 봉인했고⋯⋯ 수년을 헤매다 마침내 넷째 사숙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그곳에 있었음에도 난 실패했고⋯⋯ 일곱 빛깔로 반짝이는 못에 박히게 되었다. 이 못은 기이하게도 몸에 박히자마자 내 체내에 즉시 녹아들었다.
난 결국 그곳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흐릿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려 애쓰며 산골짜기로 돌아왔다. 내 의식은 점점 흩어졌고 광기 어린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눈앞의 모든 생명을 죽이고 싶게 만드는 생각⋯⋯. 허나 이곳에 생명체란 나와 열여섯째 사제밖에 없다.
– 난 내 신분 영패와 짐승의 뼈에 새겨진 단약 제조 방법을 건넨 뒤 열여섯째 사제를 산골짜기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10년 후에 돌아오라고 일렀다. 그렇게 열여섯째가 떠났고 난 이곳에 앉아 골짜기 밖의 일곱 빛깔로 뒤덮인 하늘을 바라보며 광증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동문들 중 누구라도 깨어나 이 옥패를 보게 된다면 지난 수백 년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될 터.
– 나는 그 기이한 구슬을 제법 모아둔 상태다. 그것들은 크기와 무게가 완전히 똑같은데 자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제련한 물건인 듯했다.
– 의식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하지만 난 한 줄기 힘이 내 원신을 흡수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원신이 완전히 흡수되면 광기 어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될 것 같다. 어쩌면 그 시도를 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성공한다면 광증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 내 의식은 이미 내 몸에서 떠나가 기이한 우주로 뻗어나간 듯하다. 그곳에서 나는 한 사람을… 검은 도포를 입은 중년의 사내를 본다. 그의 미간에는 둥근 문양이 있다. 그자는 스스로를 장존이라 부른다⋯⋯.
한제는 창백한 얼굴로 찬 숨을 들이마시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손에 들린 옥패와 눈앞의 유해를 번갈아 바라보던 그의 눈에 경악한 빛이 어렸다.
“장존⋯⋯.”
한제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선제 청림의 동굴에서 계외 사람들 중 강력한 존재를 장존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