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53
흐릿한 인영은 두 눈을 감고 한참 뒤에야 다시 눈을 떠 창송자를 바라보았다. 순간 창송자의 심신이 바르르 진동했고 머릿속에 누군가가 주입해준 것처럼 떠오른 화면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사마묵의 동굴! 중상을 입은 상태에도 저 동굴의 금제를 풀었단 말인가!”
창송자는 곧장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날아갔다.
★ ★ ★
한제는 연단에 집중하면서 첫 번째 동굴을 정리한 후, 그 안에 대량의 금제를 배치한 뒤 저물공간에서 흡혈 마수를 꺼냈다.
흡혈 마수 왕의 상태는 엉망이었지만 녀석은 저물공간에서 튀어나오자마자 강력한 의지가 드러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둘은 마음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계획을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한제는 흡혈 마수의 왕을 동굴의 금제 안으로 밀어 넣었다.
“충분한 원정이 있으니 별일 없겠지.
한제는 운해성역에서 얻은 수많은 흉수의 혼과 막라 대륙에서 기른 변이 흉수의 혼도 꺼내 동굴에 집어넣었다. 이어서 수만 개의 원정까지 꺼내 동굴의 금제에 내려놓고는 그곳을 봉쇄했다.
“오독문의 변이 흉수 제련법대로면 흡혈 마수의 힘을 증폭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풍의 선계에 있는 흡혈 마수들을 통제할 수 있어!”
한제는 동굴 안으로 신식을 펼쳐 흡혈 마수가 흉악한 기세로 흉수들의 혼을 흡수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와 동시에 그곳에 두었던 원정은 짙은 원력이 되어 흡혈 마수의 체내로 흘러들었다.
동굴 안에 한 줄기 신식을 남겨둔 한제는 다시 단로로 다가가 끊임없이 화염을 통제해 단약을 제련했다.
눈 깜짝할 사이 이틀이 흐르면서 단로 안의 화염은 점점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는 단로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대량의 연기가 피어올랐고 서서히 금색 액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한제는 그 액체를 세 개의 작은 병에 나누어 담았다.
그는 산골짜기 밖 금제의 막을 바라보다가 작은 병 하나를 기울여 금색 액체를 마셨다.
체내로 흘러든 액체는 서늘한 한 줄기 기운이 되어 온몸을 맴돌았고 동시에 귓가에서는 흉수의 혼이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제는 두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묵묵히 단약에 녹아든 흉수의 혼이 생전에 얻었던 깨달음을 느꼈다.
이 기이한 상태 아래, 한제는 시간도 잊었다. 그의 심신은 세상의 규칙을 찾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마치 한 마리 흉수가 되어 생존을 위한 갖가지 투쟁을 경험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진실과 거짓의 경지를 확인했고 수많은 흉수들의 깨달음 속에서 한 명의 나그네가 된 듯 끊임없이 도념들을 분리해냈다.
한제의 주위는 왜곡된 듯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이 변화는 점점 더 빨라져 모든 것의 현실성을 지워버렸다.
한참 뒤, 한제는 병에 든 것을 전부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끝없는 탐색과 깨달음을 이어나가는 와중 그의 주위에는 점점 더 많은 도념들이 나타났다.
그런 흉수의 깨달음 중 하나를 택해 수준을 높일 수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의 도심이 혼란스러워질 터였다. 그렇게 얻은 깨달음은 자신의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흉수들의 혼이 얻은 깨달음 속에서 자신의 진실과 거짓의 경지를 확인하고 검증하여 그 안에서 천도를 깨닫는 것이었다. 또한 그가 취한 것은 흉수들의 혼의 깨달음을 통해 얻은 생각이었다. 그것은 혼의 정수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지금 누군가가 이곳에 온다면 도심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터였다. 왜냐하면 이 산골짜기 안의 왜곡들에는 수많은 깨달음에서 태어나 한제에 의해 분리되고 버려진 도념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거짓이 없다면 진실도 없는 법. 진실과 거짓은 사실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한제는 두 번째 약병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순간, 깨달음의 빛이 어린 두 눈을 감은 그는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의 깨달음에서는 점차 수많은 도념들이 흘러 나왔고 산골짜기는 그런 도념들로 가득 차기 시작하더니 이내 금제의 막을 넘어가기까지 했다. 이 광경은 육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화신기 이상의 수련자라면 각각의 도념이 세상에 대한 깨달음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터였다.
도를 흩어버리다
복잡한 도념은 점점 더 많아지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눈 깜짝할 사이 반경 1만 척을 뒤덮으며 왜곡시켰다.
한제는 세 번째 병에 담긴 액체 역시 들이켰다. 그는 모든 것을 잊고 오직 자신의 도를 찾는 데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심신에서 흐릿한 목소리 한 줄기가 피어올랐다. 속삭이는 것처럼 시작된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깨달아라, 천도의 수감자는 생을 거듭하며 수많은 벌을 받아야 한다. 깊은 지옥에서 떠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모든 생명은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며 현생을 풀어야 한다. 하늘의 의지에서 벗어나고 삶의 길을 얻어야 한다. 하늘의 의지를 봉인하고 어두운 시기를 새겨라. 모든 생명이 진정한 도를 얻지 못하고 고통의 바다에 침잠되며 진정한 길을 찾지 못한다. 얌전히 수련의 길을 기다려라⋯⋯.”
이어서…
“모든 생명이 진정한 도를 얻지 못하고 고통의 바다에 침잠되며 진정한 길을 찾지 못한다⋯⋯.”
한제의 마음속에 그 문장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산골짜기 밖의 잡다한 도념은 점점 많아짐에 따라 그것은 반경 10만 척, 1백만 척까지 퍼져 나가더니 결국 칠채계의 절반을 뒤덮었다.
도념들은 거대한 회오리처럼 모든 경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한편, 이미 이틀 전에 사마묵의 동굴이 있는 산골짜기로부터 1만 척 떨어진 곳에 이른 창송자는 도념의 회오리 때문에 감히 그 안으로 들어서지는 못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신을 집중했다. 허나 그는 보이지 않는 회오리의 흡수력에 끊임없이 저항하느라 저 멀리서 잃어버린 자 여럿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의 보폭은 빠르지 않았지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축지법이라도 쓰는지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들은 창송자에게 접근하는 대신 그 근처에서 멈췄다. 마치 도를 듣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보다 더 멀리서는 안개 속을 표류하던 깨달은 자들이 이 산골짜기로 날아들었다. 그들의 입에서는 기이한 속삭임이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이 모든 현상의 중심에는 한제가 자리한 산골짜기가 있었다. 한 줄기 회오리가 칠채계 내의 도를 승화시키며 느릿하게 퍼져 나가자 한제에 의해 버려진 도념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이에 칠채계 전체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도를 듣던 잃어버린 자들은 더욱 멍해진 두 눈으로 한곳만을 바라보았다. 이따금 보이지 않는 도념이 그들에게 흡수되었다.
그때, 허공에 떠 있던 깨달은 자들의 중얼거림이 뚝 그쳤다. 산골짜기를 향한 그들의 눈은 감겨 있었는데 마치 한제의 도를 느끼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가장자리의 화무(化霧) 12급 흉수들도 안개 속에서 가지각색의 모습을 드러내더니 산골짜기 밖을 맴돌며 깨달은 자들과 함께 한제의 도를 느꼈다.
도란 무엇인가?
한제는 삶과 죽음, 원인과 결과 진실과 거짓의 경지를 모두 스스로 깨달아낸 바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수련자였을 때부터 여태까지 겪어온 생각의 변화로 얻어낸 결과였다.
생사윤회의 경지를 통해 그는 생사를 꿰뚫어보았고 한 번 한 번의 위기를 겪을 깨마다 살아났으며, 결국 역심을 품고 하늘에 거역하는 수련자가 되었다.
부지런히 한계를 뛰어넘으며 걸어온 거역의 길 위에서 생사를 꿰뚫어본 그에게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생사윤회의 경지가 그에게 가져다준 집념과 생각이었다. 덕분에 그는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세상은 만물을 굴복시키려 했다. 또한 만물은 수많은 도를 형성해 사람들이 이를 깨닫게 했다. 이는 천도가 만물에게 준 선물이었으며, 모든 생명이 따르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을 따르는 순종적인 수련의 길이었다.
하지만 한제가 발을 딛은 길은 달랐다. 삶과 죽음 뒤에는 원인과 결과가 따랐다.
한제의 경지는 첫 번째 변화를 겪은 뒤 일반인 학자처럼 사고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는 더 깊이 도의 진리를 깨닫고 싶어 했다.
그 후에 깨달은 것이 인과의 순환이었다. 원인을 보면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 모든 깨달음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었다. 이를 완벽히 깨닫고 난 뒤 한제는 인생의 절정을 맞았다.
하나하나의 원인과 결과 속에 단단한 도심을 맺게 되었고 이는 더 깊은 층차의 도념에 응집되었다. 이후 그가 보는 세상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바로 이 하늘은 나의 하늘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비할 데 없이 커 보여 끝을 알 수 없는 하늘일지 몰라도 한제의 눈에 하늘의 끝은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하늘이 원인이라면 땅은 결과로 하늘과 땅 역시 하나의 인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허나 그는 인과라는 단로에서 벗어나 이 하늘 밖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이 단계에서 한제의 경지는 이미 극한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청림의 출현과 천역주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극한에 달한 인과의 경지를 다시 변화시켜 진실과 거짓의 근본을 탐색하게 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지보다 더 깊은 층차의 깨달음이었다. 이 경지는 천도의 가장자리에 이르러 있어, 한 발만 더 나서면 핵심에 이르게 될 정도였다.
영겁과도 같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정도의 경지에 이른 수련자는 매우 드물었다. 경지는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깊이의 경지는 마찬가지로 각 수련자의 수준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한제는 대도(大道)를 찾고 있었다. 특별해 보일 것 없는 듯한 목표였지만 사실 경지의 깨달음으로 끝을 본 그의 목표는 다른 사람의 그것을 뛰어넘은 상태였다.
11급 단약을 제련해 만든 세 병의 액체를 다 마신 한제의 깨달음은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의 앞에는 저물공간에서부터 단약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는데 봉래 대륙에서 가져온 이 단약 중에는 8급, 9급, 10급이 섞여 있었다.
한제는 단약들을 집어 삼키는 것이 아니라 부수었다. 그러자 그 안에 들어있던 흉수의 혼이 흘러나와 사방의 수많은 도념으로 형성된 회오리에 흡수되었다.
복잡한 도념이 늘어나면서 다시 사방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산골짜기 밖에 모여든 잃어버린 자들의 멍한 눈에 점점 빛이 드러났고 허공에 떠 있는 깨달은 자들의 몸은 점점 실체를 갖춰갔다.
창송자는 씁쓸한 얼굴로 발버둥 치며 스스로의 심신을 지켰다. 도념의 폭풍에 금방이라도 뒤덮일 것만 같았다.
칠채계 전역은 한제가 버린 도념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공간에 왜곡이 생겨났다. 이런 상황은 점점 확산되어 이제는 칠채계 가장 깊은 곳까지 뻗어갔다.
끊임없이 깨달음을 얻어가는 와중 한제의 심신이 체내에서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자리한 산골짜기와 그 안에 가부좌를 튼 자기 자신, 그리고 그 앞에 떠 있는 단약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그의 심신은 느릿하게 확산되어 산골짜기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깨달은 자들은 한제의 심신이 자신들을 훑은 순간 일제히 몸을 바르르 떨었다. 잃어버린 자들과 흉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창송자도 도심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한제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그는 계속해서 심신을 확산해 가장자리의 산꼭대기 동굴 안을 살폈다.
그 안에는 한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사내는 두려움이 어린 눈으로 그저 멍하니 앞을 보고만 있었다. 한제의 심신이 떠나간 뒤에도 사내는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제의 심신은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면서 그곳의 동굴들을 하나하나 살피고는 성벽과 같은 산맥을 따라 움직였다. 그 길을 따라가던 와중 한제는 산맥 아래 산골짜기에 생사금과 파멸금을 융합해 조성한 진을 하나 발견했다.
그 안에서는 안색이 창백한 청의의 노부인이 눈을 감고 좌선하고 있었다. 노부인의 도심은 무척 어지러워 금방이라도 분열될 듯했으며, 외모 역시 때로는 노파였다가 다시 중년의 모습이 되는 등 수시로 바뀌었다.
한제는 계속해서 나아가 고리 모양 산맥의 안개에 이르렀다. 이 짙은 안개도 한제의 심신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이에 안개를 뚫고 나가던 그의 앞에 금제의 막으로 덮인 두 개의 산봉우리가 나타났다
허나 세월금도 한제의 심신을 막지 못했고 그는 가볍게 그 안으로 진입했다. 첫 번째 산봉우리는 텅 비어 비석만 하나 남아 있었는데 비석에는 아무런 글씨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그저 오래된 기운만이 서려 있었으나, 한제가 바라보자 그 기운마저 흩어져 사라졌다. 비석은 하나의 법기 같았다.
한제의 심신은 계속해서 퍼져 나가 세월금으로 뒤덮인 두 번째 산봉우리로 진입했다. 이 산봉우리 꼭대기에는 거대한 석상이 세워져 있었고 그 중턱에는 거대한 돌문이 하나 있었다. 돌문에는 번개 모양의 낙인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돌문까지 통과한 한제는 그 안에 둥둥 떠 있는 일곱 색체의 빛 덩어리들을 볼 수 있었다. 각각의 빛 덩어리에는 흉수의 혼이 하나씩 봉인되어 있었는데 최소 7급부터 13급까지 다양했다.
그는 또한 그 동굴 안에서 청의의 노부인과 매우 닮은 소녀를 발견했다. 파리한 안색으로 가부좌를 튼 그녀는 몸을 끊임없이 바들바들 떨었다.
한제는 이 산의 봉우리 안에 숨겨진 공간도 보았다. 그곳에도 비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두 개의 칠채정에 박힌 유골의 절반이 있었다.
그의 심신은 유해를 가득 덮듯 새겨진 하나하나의 문양에 집중했다.
그 순간, 심신 속에서 천둥번개가 내리친 듯 한제의 상태가 어지러워지면서 격렬한 변화가 일어났다. 유해에 집중한 채 문양들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던 그의 심신에서 이전에 들려왔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얌전히 수련의 길을 기다려라.”
얼마나 지났을까? 한제의 심신은 멍한 상태로 칠채계의 가장 깊은 곳까지 진입했다. 이곳 역시 안개로 잔뜩 뒤덮여 있었는데 그럼에도 한제의 심신을 막지는 못했다.
한제는 그 안개 속에서 세 명의 기이한 청년을 발견했다. 그는 그중에서 미간에 초승달 모양의 낙인이 새겨진 청년을 일전에 본 적이 있었다.
“비밀스러운 곳이군. 게다가 우리 섬뢰족(閃雷族) 선조의 기운이 느껴져.”
미간에 번개 모양의 낙인이 새겨진 청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뒤를 따르는 청년의 미간에는 화염 모양의 낙인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는 어두운 안색으로 침착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