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54
“확실히 이상한 곳이야. 이곳에 들어온 뒤 뭔가가 날 부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종족의 낙인도 내 몸에서 떠나려 하는 것 같고.”
맨 마지막에 선, 초승달 모양의 낙인의 청년이 막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표정이 급변했다.
한제의 심신이 세 청년의 곁을 스쳐 지나간 순간, 번개 모양의 낙인의 청년도 우뚝 멈춰 섰다. 머릿속에서 콰쾅 하는 소리가 울리는 것을 느낀 순간, 미간의 낙인이 격렬하게 번득이기 시작했다.
곁에 선 초승달 낙인의 청년은 바르르 떠는 와중 뭔가를 떠올렸지만 그것을 확신하지는 못했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진 그의 심신에 거친 파도가 몰아쳤다.
누구보다 충격을 받은 것은 미간에 화염 모양의 낙인이 새겨진 청년이었다. 한제의 심신이 곁을 스쳐 간 순간, 그는 모든 힘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으며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에 잠식됐다. 미간의 화염 낙인은 순간 그의 육신을 재로 태워버릴 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제의 심신이 이곳에서 떠나가면서 그런 느낌은 금세 사라졌다.
그제야 서로를 돌아본 세 사람은 서로의 눈에서 두려움과 충격을 읽어낼 수 있었다.
“엄청난 심신이야!”
번개 낙인의 청년이 찬 숨을 들이켰다.
“우리 주작족의 선조가 이곳에 있나봐! 방금 그 심신은 선조의 것임이 분명해. 그러지 않고서야 내 종족의 낙인이 이런 변화를 일으켰을 리 없어!”
화염 낙인의 청년은 창백했지만 두 눈에서는 탐욕의 빛이 드러났다.
허나 마지막 한 사람, 초승달 낙인의 청년만은 되새기고 싶지 않은 악몽과 같은 기억을 떠올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설마 그가⋯⋯? 말도 안 돼. 그가 어떻게 이곳에⋯⋯. 방금 그 심신이 매우 강력하긴 했지만 우리 셋이 봉인을 열고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당해낼 수 있을 터! 자네들, 날 좀 도와주겠나?”
화염 낙인의 청년이 입술을 핥으며 느릿하게 말했다.
수호
한제의 심신은 세 청년을 훑고 더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높은 산봉우리 하나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금제가 배치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한제의 심신이 다가가자 산봉우리에서 매우 강력한 한 줄기 신식이 튀어나와 충돌했다.
이 충격에 한제는 멍해져 있던 상태에서 퍼뜩 깨어났다.
“이렇게 순수한 경지는 정말 오랜만이군!”
음산한 신념 한 줄기가 산봉우리에서 흘러나왔고 뒤이어 튀어나온 매우 강력한 신식이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하늘과 땅의 색이 변했다. 일곱 색채의 빛마저 물러나면서 신식은 허공에서 거대한 하나의 손이 되어 한제의 심신을 움켜쥐려 했다.
그 순간, 한제의 심신이 급속도로 수축하면서 사방에 대량의 환각을 나타냈다. 마치 온 세상이 흐릿해진 것만 같았다.
그때, 백발노인이 산봉우리에서 나타나 허공을 노려보다가 전방의 허공을 후려쳤다.
콰쾅!
공간이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한제의 심신이 진동했고 그가 주위에 일으킨 환각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감히 내 앞에서 환각을 일으키다니! 허나 그 순수한 경지를 보아하니 이전에 왔던 깨달은 자들보다 백배 낫구나.”
그때, 거대한 손이 다시 다가와 한제를 움켜쥐려 했다. 그 손바닥에는 극강의 흡입력이 있는 듯 한제의 심신이 왜곡되면서 빨려들려 했다.
그때, 한제가 허상의 모습으로 나타나 노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말없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에게서 버려진 모든 도념이 순간 몰려들었다. 무궁무진한 도념이 몰려들면서 하늘의 일곱 색채의 빛도 약간 어두워졌다.
찰나의 순간, 한제 주위로는 두려울 정도의 도념이 모여들어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했다. 이에 한제에게 다가오던 거대한 오른손은 우뚝 멈추었고 노인의 표정에도 신중한 빛이 떠올랐다.
“난 경지를 느끼기 위해 심신을 펼친 것뿐, 도우의 수련을 방해할 생각은 아니었네.”
한제의 온몸은 도념으로 싸여 있었고 저 멀리서는 아직도 수많은 도념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던 노인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그는 지금껏 신통력을 발휘해 수많은 도념들을 응집하는 심신을 본 적이 없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피식 웃었다.
“이번만큼은 넘어가주지. 허나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소매를 휘두른 그는 다시 산봉우리로 돌아간 뒤 신식을 거두었다.
한제는 곧장 물러나 수많은 도념에 휩싸인 채 대지를 넘었고 눈 깜짝할 사이 산골짜기 안의 육신 안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의 두 눈은 서늘하게 번득였다. 만약 방금 그 노인이 심신을 내놓으라고 고집을 부렸더라면 어쩔 수 없이 모든 도념을 동원해 공격에 나섰어야 할 터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자 수많은 도념이 몰려들어 그의 손끝에 응집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버렸던 모든 도념이 몰려들자 오른손에는 검은 빛 덩어리가 하나 생겨났다.
산골짜기 너머 잃어버린 자들은 다시 멍한 눈으로 여기저기 흩어졌고 깨달은 자들 역시 중얼거리듯 속삭이며 느릿하게 이곳을 떠나갔다. 12급 흉수들도 정신을 차린 듯 포효하며 제자리로 돌아가자 눈 깜짝할 사이 산골짜기 밖의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창송자 역시 창백한 얼굴로 얼른 물러났다.
한제가 오른손을 움켜쥐자 검은 빛 덩어리는 펑 소리를 내며 검은 결정이 되었다. 한제는 그 결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수많은 단약에서 뽑아낸 도념을 응집해 만든 극강의 법보였다. 쇄열기 수준 수련자라도 이것을 부순다면 그 안에서 튀어나간 도념에 의해 도심이 무너져 내릴 터였다.
“뭘 보호하고 있는 거지⋯⋯?”
한제는 칠채계 깊은 곳에 있던 그 노인을 떠올렸다. 노인은 쇄열기 후기 수준으로 그 산봉우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뭔가를 지키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청년… 그자가 이곳에 나타날 줄이야. 하긴, 이곳은 장존과 관련이 있는 곳이니 이해 못 할 것도 없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은 침착했다. 세상의 도를 품은 듯한 모습이었다.
“유해에 새겨진 문양을 본 순간 경지는 돌파했다. 시간만 있으면 정열기 중기에 진입할 수 있겠어.”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산골짜기 밖에 드리운 세월금의 장막을 바라보다가 그곳을 빠져나갔다.
파문이 일어난 금제의 막을 넘어 산골짜기 밖으로 나온 그는 창송자가 도망친 쪽을 바라보며 눈을 번득이다가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상태가 회복되자마자 찾아온 것을 보면 창송자 또한 내게 한이 많은 모양이군. 절대로 도망치게 놔둘 수는 없지. 옥병의 비밀도 알아내야 하고 칠채계에서 나가는 방법도 알아내야 하니 원신을 거두어야만 한다.”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창송자를 추격했다.
한편, 창송자는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인 심정으로 도망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산골짜기 밖으로 밀려난 수많은 도념 속에서 성난 파도에 휩쓸리는 조각배 신세를 실감했고 특히 상대의 심신이 자신을 훑고 지나갔을 때는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상대는 방금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수준이 더 높아졌음에 틀림없었다.
‘그전에도 양패구상이었으니 지금 싸운다면 필패다!’
씁쓸함을 삼킨 창송자는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한 것은 아깝지만 자칫하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지도 몰랐다.
창송자의 눈에 깊은 한이 어렸다. 한제를 산 채로 씹어 먹어도 이 한이 풀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조 도우와 싸우느라 그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더라면⋯⋯.”
창송자의 두 눈에는 분노의 화염이 이글이글 타올랐지만 이내 체념으로 물들었다.
“하아… 그래, 나는 미련을 버리겠다. 원하는 것은 다 가져라. 난 이곳을 떠나자마자 단단히 봉인하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균열을 파괴할 것이다. 여자호는 방덕재를 죽이고 혼을 뒤졌겠지만 방덕재는 여기서 나가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니 너희는 이곳에 영원히 갇혀 있게 될 것이다!”
창송자는 속도를 올려 가장자리로 향했다. 그리고는 이전에 온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는 장소로 향했다.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두려움만 아니었다면 훨씬 빨리 움직였을 것이다.
한데 그는 어느 순간 우뚝 멈춰서는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저 멀리서 한제가 번개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살기로 몸을 감싼 그 모습에 창송자는 간담이 서늘해져 더욱 속도를 높였다.
이를 본 한제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리더니 고신의 솥을 소환했다. 그리고 차게 웃으며 창송자를 가리켰다.
“환위!”
그의 말이 터져나온 순간, 창송자의 몸이 반짝이는 빛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창송자와 한제의 자리가 뒤바뀌었다.
“헛! 이게 무슨 조화냐!”
잠깐 어지러워졌다가 정신을 차린 순간, 창송자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뒤에 있던 여자호가 앞에서 방향을 틀어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창송자는 자리가 바뀌었다는 것을 몰랐던 상태라 한동안 앞으로 돌진했고 이에 둘 사이의 거리는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한제가 오른손을 앞으로 뻗더니 왼손으로 그 손등을 연타했다. 그러자 흘러넘치는 듯한 원력이 일어나 미친 듯한 한 줄기 충격이 되어 창송자에게 돌진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헉!”
눈동자가 바짝 졸아든 창송자의 얼굴에서 일곱 개의 핏빛 원영이 튀어나와 빠른 속도로 그의 미간에 떠오른 번개 모양 낙인으로 모여들었다. 순간, 낙인은 눈부신 빛을 발산하면서 전방의 원력을 향해 힘을 뿜어냈다.
콰쾅!
요란한 폭발음이 울린 순간, 멀지 않은 산봉우리의 동굴 안에 있던 진천군은 밖으로 나와 둘의 전투를 보고 찬 숨을 들이마셨다.
충돌과 함께 흘러넘치는 듯한 원력은 흩어져 사라졌고 그것을 관통한 번개가 달려들자 한제는 두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으로 전방을 매섭게 후려쳤다. 그러자 한제의 뒤에 거대한 고신의 허상이 나타나더니 한제의 손짓에 따라 주먹을 휘둘렀다.
콰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주먹과 번개가 출동했다.
순간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했다. 번개는 바르르 진동하면서 무너져 내렸고 그 안에 담긴 힘은 대량의 천둥번개가 되어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창송자는 악에 받친 상태였다. 그는 한제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듯 가능한 가장 강한 신통력을 발휘한 상태였다.
“천둥번개라⋯⋯.”
한제는 피식 웃었다. 뒤이어 그가 오른쪽 눈으로 전광을 번득이자 미간에서 회오리가 나타났고 그 안에서 태고의 뇌룡의 원신이 튀어나와 하늘에서 내리치는 천둥번개를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캬오오오!”
세상 모든 천둥번개를 다스릴 권리가 있는 뇌룡의 포효가 울려 퍼지는 와중 한제의 오른쪽 눈에서는 전광이 번득이면서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이어서 반경 수천 척을 천둥번개의 연못으로 만들었다.
이 무렵, 하늘에서 떨어지던 천둥번개가 일제히 멈춰 섰다가 곧 한제의 체내로 빨려 들어갔다. 이어서 주위로 펼쳐진 천둥번개의 연못으로 섞여 들더니 주위를 전광의 지옥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주위를 뒤덮은 천둥번개가 한제의 오른쪽 눈으로 응집됐다.
이 광경에 창송자는 넋이 나가고 말았다.
한편, 멀지 않은 곳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진천군은 경악했고 식은땀이 등과 이마를 타고 흘렀다.
그들이 놀라는 동안에도 한제는 멈추지 않았다. 전광을 흡수한 뒤 번득이기 시작한 그의 오른쪽 눈에서는 한 줄기 번개의 허상이 나타났다. 좀 전에 창송자가 소환했던 것과 똑같은 모양의 번개로 이는 곧장 창송자에게 달려들었다.
“헛!”
창송자는 몸을 뒤로 물리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일곱 개의 원영을 날려 보냈다. 핏빛 원영들은 창송자를 감싼 채 번개에 저항했다.
그때,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아직 수준이 높아진 상태는 아니었지만 경지의 돌파로 인해 그의 신통력은 한층 강력해진 그는 저물공간에서 칠채정을 꺼내 힘껏 내던졌다. 칠채정은 일곱 빛깔의 빛이 되어 엄청난 속도로 창송자에게 돌진했다.
먼저 달려든 번개가 창송자의 앞을 막아 선 핏빛과 충돌했다.
펑! 펑!
연이은 폭발음과 함께 창송자를 막아 선 핏빛이 끊임없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