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55
창송자는 뒤로 물러나면서 법보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다. 전방에서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핏빛 사이로 일곱 색채의 빛 한 줄기가 뚫고 들어와 곧장 그의 코앞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안…”
제대로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칠채정이 그의 가슴팍을 파고들며 폭발했다.
쾅!
“크아악!”
충돌의 순간, 창송자의 원신은 도망치려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이미 칠채정에 단단히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창송자는 잠시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광기 어린 표정이 드러났다.
어느새 다가온 한제가 창송자의 뒤에 나타나 상대의 원신 정수리를 후려쳤다. 그리고 그 원신이 광증을 일으키려는 순간, 그 기억을 뒤지기 시작했다.
“크으으…”
창송자의 원신은 바르르 떨면서 점점 더 짙은 광기를 드러냈고 머지않아 절정에 이르렀다.
한제는 곧장 손을 거두고는 창송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좀 전에 상대가 열어둔 저물공간에 있던 모든 것을 챙겼다. 그때, 창송자는 완전히 광기에 잠식됐다.
머리를 감싼 쥔 창송자의 온몸에서 핏빛이 발산되었고 두 눈에서는 야수와 같은 빛이 번득였다
“크아아아!”
하늘을 가리키며 포효하던 창송자는 돌연 바르르 떨었고 체내에서 울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은 급속도로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원신 역시 흩어져 사라지면서 붉은 구슬로 변했다.
구슬에서 터져 나온 붉은 빛은 칠채계의 빛을 전부 뒤덮어 이곳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하늘과 땅을 어둡게 만든 구슬은 곧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이를 지켜보던 한제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칠채정에 당한 존재는 광증이 일어나고 체내의 생기가 빨려 들어가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죽음의 순간 붉은 구슬이 된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도를 심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하늘로 솟구치는 붉은 구슬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구슬은 벗어나려는 듯 몸부림을 쳤고 급기야 광기 어린 힘을 발휘했다. 한제는 오히려 붉은 구슬의 힘에 이끌려 허공으로 끌려갔다.
한데 그때였다. 원신 속에서 오랫동안 잠잠하게 있던 천역주가 응집되어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기이한 흡수력이 그의 오른손을 통해 구슬을 감쌌다. 그러자 진동하던 구슬은 더 이상 몸부림을 치지 못하고 한제의 오른손으로 녹아들어 천역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한제의 손에 남은 일곱 색채의 빛이 서서히 칠채정으로 변해갔다.
이 기이한 광경에 한제는 무척 놀랐으나, 겉으로는 어떤 내색도 않은 채 칠채정을 거두었다. 그리고 갑자기 진천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창백한 얼굴로 모든 과정을 지켜본 진천군은 한제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물러나더니 황급히 포권을 했다.
“여 사형의 엄청난 실력에 감탄했습니다! 악독하게도 우리를 이곳으로 끌고 온 창송자의 죽음은 응당 받아야 할 벌 아니겠습니까. 아주 잘 하셨습니다!”
한제 역시 진천군에게로 다가와 살짝 포권을 했다.
“저는 그때 먼저 떠나려 했으나 어째서인지 칠채계 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흉수를 만나 중상을 입는 바람에 여기까지 도망쳐 와서 상처를 치료하던 중이었지요.”
진천군은 묻기도 전에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12급 흉수로부터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한제의 덤덤한 목소리에 약간 긴장한 진천군은 매우 공손하게 답했다.
“특수한 공법을 수련한 터라 흉수에 대해서는 제법 잘 아는 편이지요. 해서 겨우겨우 도망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진천군과는 어떤 원한 관계도 없었기에 한제는 가볍게 포권을 하고 그곳을 떠나려 했다. 한데 그때, 진천군이 불쑥 말을 꺼냈다.
“여 도우, 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뭐지?”
한제가 진천군을 향해 물었다.
“방금 창송자의 혼을 거두셨으니⋯⋯ 여기서 나가는 방법을 아시겠지요?”
진천군은 한제를 바라보며 잔뜩 긴장한 표정을 드러냈다.
한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천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매우 공손한 표정으로 진심을 담아 포권을 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저를 데리고 이곳에서 나가 주신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해드리겠습니다. 이 망할 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한제는 진천군의 얼굴을 한 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당분간 이곳에서 나갈 생각이 없는데…?”
진천군은 한제의 대답에 흠칫 놀랐으나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괜찮습니다. 저도 급할 것은 없이니 나가실 때 데리고 나가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또한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거기까지 말을 했음에도 한제의 표정에 변화가 없자 진천군은 얼른 덧붙였다.
“여 도우, 저는 흉수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역수종의 신통력은 원정을 얻어내는 데 탁월하지요. 이곳에는 적어도 수백 마리의 화무 흉수와 엄청난 양의 원정이 있는 것 같더군요. 제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약속만 해주신다면 제가 최선을 다해 원정을 모으고 이곳을 나간 후로는 감사의 표시를 따로 하겠습니다.”
한제는 이제야 마음이 동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천군에게 옥패 하나를 건넸다.
“원정을 모으면 이 옥패를 통해 내게 알리도록.”
말을 마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려 떠나갔다.
진천군은 한제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정을 얻는 과정에는 엄청난 위험이 따르겠지. 단단히 준비를 해야겠어.”
각오를 다진 진천군은 한제가 건넨 옥패가 마치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희망의 끈이라도 되듯 꼭 쥔 채 동굴 안으로 돌아갔다.
한편, 산골짜기 동굴로 돌아온 한제는 곧장 대량의 원정을 꺼내 진에 배치하고 호흡했다. 세상의 원력이 사방에서 응집되어 체내로 흘러들면서 그의 수준은 정열기 중기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이곳은 매우 위험하지만 수련을 하기에는 좋은 곳이야. 창송자의 기억에서 본, 그가 육신을 다시 응집시킨 장소의 그 석상의 힘도 흡수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계외에서 온 자들에게도 내게 필요한 힘과 계외의 정보가 있을 터. 게다가 이곳에는 청의의 노부인의 생사금과 사마묵의 세월금도 있지.”
★ ★ ★
망망한 우주 어딘가 무궁무진한 성역. 그 성역은 나천과 곤허, 소하, 운해를 모두 합친 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봉계 사람들은 이곳을 계외라 불렀고 계외 사람들은 이곳을 태고의 성신(星辰)이라 불렀다.
창송자의 옥패가 펑 하고 무너져 가루로 흩어진 순간, 궁전에서는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 흩어진 옥패의 가루는 다시 뭉쳐 옥패로 돌아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옥패에는 이름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이한제라… 도를 심은 곳에 곧 도가 자라나겠구나. 그자의 혼으로 도를 무르익게 두어야겠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궁전에서 흘러나왔다. 혼잣말 같기도 온 우주를 대상으로 한 선포 같기도 한 소리였다.
★ ★ ★
칠채계 깊은 곳, 한제의 심신이 이르렀던 산봉우리 위에는 백발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의 뒤편, 일곱 색채의 빛이 번득이는 동굴에서는 수많은 비명과 곡성이 흘러나왔다.
노인은 어디론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더니 한참 뒤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묵의 동굴이 자리한 산골짜기는 대량의 원력으로 차 있었다. 이 원력은 주위를 선회하면서 하나의 회오리를 형성했는데 그 바로 아래에는 한제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내력부터 비밀스러운 칠채계는 신비로운 것들과 위험한 것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하지만 한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창송자의 기억을 흡수하면서 칠채계와 옥병의 액체, 그리고 이곳을 나가는 방법까지 알게 된 상태였다.
더구나 한제는 경지를 돌파한 상태라 원정만 충분히 흡수한다면 정열기 중기로 올라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고신의 육신으로 쇄열기 중기 수련자도 쉽게 상대할 수 있을 터였다. 쇄열기 후기 수련자라면 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내 수준이 정열기 절정에 이른다면 쇄열기 후기 수련자들도 능히 상대할 수 있을 터!”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곧장 산골짜기를 채운 흘러넘칠 듯한 원력을 온몸으로 응집시켰다. 응집된 원력은 연기처럼 흩어지면서 그의 체내로 흘러들었다.
펑! 펑!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바람 한 점 없는데도 한제의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체내의 원신 역시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면서 체내로 흡수되는 무궁무진한 원력을 흡수했다.
원력이 점점 더 많아짐에 따라 원신은 육신과 같은 크기에 달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한제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자 별빛보다 더 반짝이는 빛 두 갈래가 뿜어져 나와 하늘을 관통하듯 솟구쳐 올랐다. 바로 그 순간, 한제의 주위에 배치된 대량의 원정이 재가 되어 뒤로 밀려나면서 하나하나의 고리를 그려 냈다.
“정열기 중기!”
한제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탁한 숨을 뱉어낸 그는 오른손을 휘둘러 옥병을 쥐었다. 창송자로부터 빼앗은 그 옥병이었다.
“잃어버린 자는 도를 삼키고 깨달은 자는 도를 기른다. 그렇게 얻어진 도는 이곳에 존재하는 네 개의 비석에 녹아든 뒤 아래쪽의 유골을 거쳐 불가사의한 힘이 된다. 이 힘은 유골에 스며들어 검은 피로 배출되는데 이것은 그냥 피가 아니라 그 유골의 주인이 생전에 깨달은 도의 정수다.”
한제는 창송자의 기억에서 얻은 이 중요한 정보를 되새겼다.
창송자가 이런 정보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쇄열기 중기인 그자를 상대로 한 수혼술이 완벽하지 않았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으니까.
“이 도의 정수에서 중요한 것은 반만 남은 유골 주인의 신분이다. 두 개의 비석에 반토막 난 두 개의 유골. 그렇다면 같은 사람일 터! 생전에 이름을 날리던 수련자였음이 분명하다.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유골을 파내 이런 끔찍한 방식으로 그의 도를 취하려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이 도의 정수를 마시면 그의 도를 얻을 수 있다고 했지.”
창송자의 기억에 따르면 그 유골에 새겨진 문양은 나중에 새겨진 것이었다. 어떤 수준 높은 수련자가 자신의 신통술을 문양으로 만드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고안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허나 아쉽게도 이 도의 정수는 직접 마실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창송자는 안전한 곳을 찾아가 마시려 했던 것이다.
“그가 이것을 가지고 가려고 했던 곳은 칠채계 깊은 곳에 있는 그 산봉우리였다! 어째서 그곳에 가려고 했는지, 그곳에 있던 백발노인을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제는 번득이는 눈으로 옥병을 바라보았다.
“이곳의 모든 것이 비석을 통해 도를 흡수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느낌이다. 흉수들조차 수단이나 재료에 불과한 셈. 이곳에 13급 흉수가 없는 것도 13급에 이른 흉수는 모두 죽임을 당해 혼을 빼앗겼기 때문일 터. 이 모든 것이 도의 정수 때문인가. 허나 도의 정수는 수련자들이 쉽게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 백발노인이 지키고 있는 것이 어쩌면 이 모든 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고민하던 한제는 옥병을 거두어 품에 집어넣었다.
“사마묵의 옥패에는 이곳에 네 개의 비석이 있다고 되어 있었다. 한데 내가 심신으로 이곳을 훑었을 때 발견한 것은 두 개뿐. 게다가 그중 하나의 비석 아래에는 유해도 옥병도 없었지. 이는 어찌된 일일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제는 산골짜기 안에 있는 아홉 개의 동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아직 열지 않은 네 번째 동굴로 다가갔다.
돌문을 열자 문에 걸려 있던 금제가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