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58
그 무렵, 한제는 번개처럼 안개 속을 질주해 이전에 창송자로부터 옥병을 가로챈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 버티고 있는 세월금의 막이 완전한 상태였더라면 모든 법보를 쏟아부어도 금제를 열기 쉽지 않을 터였다. 허나 몇 달 전, 창송자와 청의의 노부인이 이 금제를 열면서 균열이 생겼음을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미 열려 있는 균열을 다시 여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한제는 파멸진을 형성해 금제의 막을 뒤덮었다. 빛이 번쩍이는 와중 금제의 진에는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이어서 신식을 넓게 펼쳤고 이내 균열을 찾아냈다.
균열은 이미 맞물려 있었지만 그 부분의 세월금은 고작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기에 허점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세월금의 단점이기도 했다.
균열을 찾아낸 한제는 저물공간에서 수정검을 소환해 크게 휘둘렀다. 차공열 법보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가 싶더니 눈부신 검광이 균열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파문이 격렬하게 일렁이면서 한 줄기 미세한 균열이 나타났다. 그러자 수정검이 다시 달려들더니 한제의 통제 아래 무궁무진한 검기를 발산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균열은 점점 더 커졌다.
이어서 한제는 검은 빛을 발하는 삼지창을 소환해 힘껏 움켜쥔 채 유성처럼 돌진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균열에 접근한 순간, 삼지창을 꽂아 넣었다. 그러자 균열 너머에서 어마어마한 힘이 흘러나와 한제의 체내로 흘러들었다.
“흥! 이 정도로 나를 막을 수는 없다!”
한제는 차게 코웃음을 치며 고신의 힘이 흐르는 손을 앞쪽으로 밀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삼지창이 밀고 들어가자 아직 완전히 맞물리지 못했던 균열은 수십 척 길이로 갈라졌다.
한제는 수정검을 거둔 뒤 곧장 균열 안으로 진입해 산봉우리로 향했다. 이어서 산봉우리 정상에 이르자마자 삼지창을 크게 휘둘렀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전방 공간에 한 줄기 균열이 나타났다. 창송자의 기억과 심신을 확장시켜 곳곳을 살필 때 파악한 정보 덕분에 정확한 위치를 단숨에 찾아낸 것이다.
한제는 곧장 균열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계외에서 온 세 명의 청년이 세월금의 균열 안으로 들어와 산봉우리로 향했지만 한제는 아직 알지 못했다.
기이한 공간으로 진입한 한제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거대한 비석이었다. 그 아래에는 유골의 상반신이 칠채정 두 개에 박혀 있었다.
검은 빛이 맴도는 유골에는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고 그 문양에서는 알 수 없는 흡입력이 발산되고 있어 수준이 낮은 자라면 미쳐버릴 듯했다.
천천히 유골로 다가간 한제는 그 문양은 살피지 않으려 애쓰며 비석을 살폈다. 비석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한데 비석의 재질이 어딘가 눈에 익었지만 어디에서 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잠시 후, 한제는 유골을 훑어보았다. 충분히 조심했는데도 심신이 빨려 들어가는 듯했기에 얼른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는 저물공간을 열어 금빛으로 반짝이는 허상의 전(戰) 자를 꺼냈다. 그 순간, 상반신만 남은 유골의 문양들도 금빛으로 반짝였다.
찬란한 금빛과 유골을 덮고 있던 검은 빛이 허공에서 어우러지며 끊임없는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유골에서 튀어나온 금빛이 곧장 전 자를 향해 날아들어 하나로 융합되었다. 그러자 온 세상이 금빛으로 뒤덮인 듯했다.
그때, 전 자가 빠른 속도로 돌진해 한제의 미간에 떨어졌고 한제는 심신이 바르르 떨렸다.
“나 전성야는 장존이 나를 굴복시키러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허나 나천성역 수련자인 나는 계외 사람들과 결탁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 나의 도를 얻고 전의를 깨달은 자여, 계외 사람들의 피로 내 영혼을 위한 제를 지내다오.”
그 순간, 한제의 심신에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전의가 드리웠고 머릿속에서는 전성야가 하늘과 싸우는 모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전 자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어린 장면들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동안, 한제의 경지는 미친 듯이 성장했다. 그리고 전의와 섞여들면서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다.
한편, 한제가 깨달음을 얻고 있던 그때, 근처의 허공이 왜곡되더니 계외에서 온 세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화염 낙인의 청년은 탐욕스런 눈으로 한제를 보았다. 한제의 몸에서 흐르는 강력한 화염의 힘을 똑똑히 느낀 것이다.
‘저자를 삼키면 승급할 수 있을 터!’
곁에 있는 번개 낙인의 청년 역시 한제의 몸에서 흐르는 천둥번개의 힘을 느끼고 전율했다. 또한 상대가 현재 기이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눈치챘다.
‘하늘이 주신 기회다!’
오직 초승달 낙인의 청년만이 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느낀 충격을 애써 눌렀다.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든 그의 머릿속에 아득한 기억이 떠올랐다.
‘역시 저자였군!’
짙은 살기를 풍기며 한제를 향해 달려든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결인을 그린 오른손으로 미간을 세게 두드렸다.
그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몸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번개 낙인의 청년은 몸이 수백 척으로 커졌고 그의 전신에는 전광이 흘렀다.
화염 낙인의 청년은 등에 한 쌍의 화염 날개가 나타났고 머리에는 뿔이 돋아났다. 온몸에 화염이 흐르는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초승달 낙인의 청년은 피부가 달처럼 창백하게 변하며 반짝였다. 이곳에 존재하는 금빛을 반사하기라도 하는 듯 맑고 밝았다.
그들이 거친 기세로 달려든 순간, 한제가 몸을 홱 돌렸다. 밝은 그의 두 눈에서 경멸과 조소가 가득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뛰어난 우리 수련자들은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제의 두 눈에서 전의가 번득였다. 눈앞의 세 사람은 모두 계외 사람들이었다. 이 순간, 인과는 없었다. 살의만 있을 뿐이었다. 계외와 계내의 역사를 알아갈수록 그 살의는 더욱 짙어졌다.
번개 낙인의 청년이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정열기 절정 정도에 불과했던 그가 기이한 변화를 겪은 뒤로는 쇄열기 중기에 맞먹는 힘을 보였다. 이는 숨기고 있던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힘을 빌리는 극강의 술법인 듯했다. 이는 한제로서는 처음 보는 신통력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계외 사람들과의 싸움이 처음은 아니었다. 당시 망월의 곁에서 진을 사이에 두고 계외 사람들과 싸운 적이 있었다. 당시의 한제는 그들의 시선을 끌 만큼 강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저들을 비웃을 자격이 충분했다.
번개 낙인의 청년이 온몸으로 전광을 번득이다가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번개 자체가 되어 엄청난 속도로 돌진했다. 그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자 사방에 나타난 번개가 하나의 거대한 인영을 형성했다.
높이만 천 척에 달하는 거대한 인영의 온몸에는 푸른 전광이 맴돌았고 미간에는 거대한 번개 낙인이 새겨져 있었으며, 두 눈은 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진동할 정도였다.
“섬뢰붕(閃雷崩)!”
청년은 낮게 외치며 한제와의 거리를 좁혔다.
“천둥번개라⋯⋯.”
한제의 눈에 담긴 비웃음이 더욱 짙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그의 오른쪽 눈에서 전광이 번득였다. 동시에 번개의 낙인이 그의 오른쪽 눈동자에 나타났다.
뒤이어 몸을 앞으로 날린 순간, 한제의 눈에 비친 이 세상은 한없이 느려졌다. 사방 모든 것은 물에 잠긴 듯, 그대로 굳어버린 듯했다.
한 발 앞으로 나선 한제는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나기도 전에 이미 번개 낙인의 청년 앞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전광이 번득이는 오른손으로 상대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콰콰콰쾅!
번개 낙인의 청년은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쿠웨엑!”
피를 뿜어내며 잔뜩 문드러진 청년의 가슴에는 거대한 번개가 그물처럼 박힌 채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반응할 틈도 없었다. 다른 두 청년이 본 것이라고는 한제가 등을 돌리는 모습뿐이었다. 그러자마자 자신들의 동료가 나가떨어지며 피를 왈칵 토해냈고 이제야 뭔가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번개 낙인 청년은 뼈의 절반이 끊임없이 부러지고 있었다. 뒤로 수백 척을 밀려난 그의 몸에 흐르던 전광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가슴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전광의 그물에 그대로 봉인되어 버렸다.
“크아아아아!”
피로 범벅이 된 그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그 순간, 천 척에 이르던 허상이 실체화되면서 사방에 나타난 무궁무진한 천둥번개가 그 인영에게로 몰려들었다. 전광을 흡수하는 허상의 인영은 마치 천둥번개의 화신 같았다.
허나 그 모습을 보면서도 한제는 냉랭한 얼굴로 한 걸음 나섰다. 진실과 거짓의 경지를 펼친 그의 발걸음은 번개 낙인 청년의 심장을 지르밟는 듯했다.
쾅!
번개 낙인 청년은 가슴팍에서 또다시 피가 튀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한제는 청년에게서 눈을 돌려 허상의 인영에게 다가가더니 가볍게 후려쳤다. 동시에 전광을 번득이던 오른쪽 눈에서 번개의 낙인이 튀어나와 허상의 미간에 박혔다.
“너희 종족의 천둥번개를 다룰 수 있는 권리는 내가 가져가겠다!”
엄숙하고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가 울린 순간, 마치 법칙처럼 섬뢰족이 가지고 있던 자격을 앗아갔다.
허상의 인영은 몸을 바르르 떨더니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무궁무진한 번개가 되어 번개 낙인의 청년에게 떨어졌다.
펑! 펑!
연이은 굉음과 함께 청년의 육신은 무너져 검은 재로 흩어졌고 원신은 번개에 의해 단단히 봉인되었다.
몸을 돌린 한제는 주위의 모든 천둥번개를 흡수했고 번개에 봉인된 청년의 원신 역시 오른쪽 눈으로 빨아들였다. 그의 오른쪽 눈에 나타난 번개 낙인이 더욱 또렷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을 지켜봤던 화염 낙인의 청년은 공포에 휩싸여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다가 달아나려 했다.
그때, 한제가 그에게로 몸을 휙 돌렸다.
“불?”
한제의 입가에 걸린 비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왼쪽 눈에서 화염이 솟아올랐고 수천 척을 불바다로 뒤덮었다.
화염 낙인의 청년은 창백하게 질렸으나 온통 불바다로 뒤덮인 상태라 도망칠 수도 없었다.
“으으…”
낮게 침음한 그는 날개를 퍼덕여 대량의 화염을 뿜어냈고 이로써 화염 폭풍을 형성한 채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기이한 주문을 외워 수많은 화염 창을 형성하더니 한제에게 내던졌다.
한제는 가볍게 오른손을 휘둘렀고 그러자 반경 수천 척을 뒤덮은 불바다가 더욱 들끓기 시작하더니 화염 낙인의 청년을 휩쓸려 했다.
불과 불의 대결이었다.
콰쾅!
둘의 화염이 충돌한 순간, 경천동지할 소리가 울렸다.
“크아아!”
그 순간, 불바다에서 튀어나온 화염 낙인의 청년은 날개를 퍼덕이며 보라색 화염을 이끈 채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사람도 아니고 주작도 아닌, 그저 계외의 수련자에 불과하군.”
한제의 왼쪽 눈에서 화염이 발산되더니 온몸으로 퍼져 주작의 갑옷을 소환했다. 이 순간, 그는 마치 태고의 화신(火神)과도 같았다.
이 광경을 지켜본 화염 낙인의 청년은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성갑(聖鉀)!”
“태워라!”
한제는 싸늘한 눈빛으로 왼손을 들어 청년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작은 손짓에 화염 청년은 격렬하게 떨기 시작했다. 그의 체내에서 폭발한 화염이 주인을 태우기 시작했다.
“끄아악!”
화작족(火雀族)으로서 평생을 불과 함께해온 자신이 불에 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는 경악했다. 그리고 비명이 울려 퍼지는 사이, 그의 육신은 재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태고의 계약을 해지하다
청년의 원신은 화염 속에서 다급히 주문을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