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59
“화작족의 이름으로 종족의 영혼을 소환한다!”
그 순간, 청년의 원신은 무너져 내리며 반짝이는 화염이 되더니 허상의 주작을 형성했다. 새카만 온몸에서 거친 기운을 사방으로 퍼뜨리는 이 주작은 얼핏 보기에 거대한 불새에 가까웠다.
녀석은 분노한 듯 울부짖으며 하늘을 가로질러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차게 웃으며 왼쪽 눈을 번득였다. 그 순간 그의 체내에서 진정한 주작명(朱雀鳴)과 함께 하얀 주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캬오오오!”
검은 불새를 노려보는 하얀 주작의 눈빛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하얀 주작은 한제가 명을 내리기도 전에 달려들었고 불바다가 넘실대며 거대한 불새를 삼키려 했다.
검은 불새는 두려운 듯 뒤로 물러나려 했다.
“너희 종족의 불을 다룰 수 있는 권리는 내가 가져가겠다!”
한제의 목소리가 울린 순간, 주작과 검은 불새가 충돌했다.
콰쾅!
땅과 하늘이 흔들리는 충격에 검은 불새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검은 불새의 혼과 화염은 하얀 주작에게 흡수됐다. 이제 온 세상의 화염은 한제에게 속하게 된 것이다.
“캬오오오!”
주작은 흥분된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길게 울부짖었다. 녀석의 온몸을 뒤덮은 화염은 끊임없이 들끓으며 점점 더 강하고 격해졌다. 세 번째 각성을 하려는 조짐인 듯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초승달 낙인의 청년은 표정이 급변했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가 뭔가 대처하기도 전에 상황은 끝나버렸다. 상대가 자신의 스승에게 중상을 입히던 장면이 떠올랐다.
‘심지어 스승님은 저자가 모든 힘을 발휘한 것도 아니라고 하셨지.’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청년은 곧장 도망치려 했다. 한데 그때…
“천한 노예 종족, 이전에도 우리 앞에서 감히 천도를 자칭했지!”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청년을 노려보며 내뱉었다.
“난 노예가 아니다!”
초승달 낙인의 청년은 홱 돌아서 한제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차가운 눈으로 청년을 보던 한제의 주위에서는 주작의 화염이 더욱 격렬해졌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망월과 전투를 할 때였다. 계외에서 나타난 상대는 회오리를 형성해 망월을 취하려 한 바 있었다. 그때 오만했던 상대는 한제와 계내 사람들에게 자신이 천도라 했다.
허나 그들은 고신의 노예 종족, 태곳적 고신의 비호를 받았던 월서족이었다.
차게 웃던 한제는 몸을 날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고신의 힘이 담긴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챈 청년으로서는 죽기 살기로 싸워야 했다. 허나 싸워봐야 결과는 뻔해 보였다.
눈앞의 사내는 계내 사람이자 고신족, 심지어 왕족이었다.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책을 통해 그는 아주 오래 전 자신들이 고신을 배반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상대에게 항복하더라도 죽음을 면치 못할 터였다.
‘이 빌어먹을 곳은 대체 어디이기에 계내 수련자들이 있단 말인가!’
청년은 이를 갈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달빛이 전신에 드리운 듯 온몸이 번뜩였다. 몸을 홱 돌린 청년은 한 줄기 회오리를 형성했는데 그 안에서 거대한 보름달이 떠올랐다.
한제의 주먹이 떨어지자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지만 보름달은 바르르 진동하면서도 끝내 무너지지는 않았다. 청년 또한 피를 토해내긴 했지만 이를 악물고 온몸의 힘을 끌어올리며 외쳤다.
“반월력(反月力)!”
순간, 회오리 속의 보름달이 발산한 눈부신 빛이 고신의 힘이 담긴 주먹을 형성해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콰쾅!
두 고신의 주먹이 한데 맞부딪치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노예 주제에 어찌 고신의 힘을 발휘하는 거냐!”
한제는 세차게 외치고는 계속해서 주먹을 휘두르며 나아갔다. 그때마다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초승달 낙인의 청년은 피를 왈칵 토해내며 물러났다.
한제의 주먹이 회오리에 닿을 때마다 반월력이 발휘되면서 이 기이한 공간은 요란한 충돌음으로 가득했다.
“부서져라!”
한제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비할 데 없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주먹을 거두더니 몸을 돌려 오른발로 회오리를 걷어찼다.
콰르릉!
그 한 방에 회오리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그 안에서 떠오른 보름달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피범벅이 된 청년은 저 먼 곳으로 나가떨어졌고 한제는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청년의 두 눈은 흐릿했지만 그는 몸부림을 치며 복잡한 주문을 외웠다. 동시에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빠르게 미간을 두드렸다.
“월금(月禁), 신의 분노!”
월서족의 오랜 신통술인 금술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 월서족에게는 굴욕과 같은 신통술이기 때문이다.
청년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먼 곳을 향해 높이 쳐든 두 손으로 기이한 결인을 그렸다.
“신이시여, 저희 월서족에게 힘을 빌려주십시오!”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흘러넘칠 듯 강력한 고신의 힘 한 줄기가 청년 근처에 나타났고 허공이 왜곡되면서 수천 척에 달하는 고신의 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고신의 허상은 전신이 흐릿했고 두 눈은 꼭 감겨 있었다. 미간에서는 일곱 개의 반점이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고신족의 혼이여, 우리 월서족에게 적을 파괴할 힘을 주십시오!”
청년은 엄청난 굴욕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의 뒤편 허공에서 나타난 허상의 고신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포악한 기운을 풍기며 느릿하게 오른손을 들어 한제에게로 뻗었다.
청년은 악에 받친 눈빛을 번득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신 둘이 치고받고 잘해봐라!’
한제는 비통한 눈으로 자신에게 손을 뻗어오는 허상의 고신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이내 그의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이 반짝이며 회전하면서 전신을 고신의 기운으로 뒤덮었다.
“네가 보호하고 있는 종족은 우리 고신족을 배반했다. 왕족 고신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흩어져라!”
그 순간, 허상의 고신이 뻗어오던 손을 우뚝 멈추었다. 그러더니 흐리멍덩했던 눈에 빛이 돌아왔고 이내 서서히 흩어졌다.
그 모습에 월서족 청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왕족 고신인 한제 앞에 고신의 허상을 소환한 것은 고신족의 비밀을 몰랐기에 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월서족을 보호하던 고신의 혼은 한 줄기 의지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왕족 고신의 명에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따랐다. 그들로서는 태고의 계약을 해지할 방법이 없었으나, 오늘 이 순간, 한제가 왕족 고신의 이름으로 새로운 명령을 내린 것이다.
“앞으로 고신은 월서족을 보호하지 않는다. 오히러 그들을 파멸시킨다!”
한제가 차게 내뱉으며 발을 구르자 청년의 전신 뼈는 박살이 나버렸고 살은 한제의 손짓에 따라 비석 아래의 유골 쪽으로 쓸려갔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청년의 육신은 유골이 중첩되더니 양어깨, 칠채정이 박힌 자리에서 피가 솟았다. 두 개의 못으로 고정된 부위에서는 곡성(哭聲)이 울려 퍼졌고 도념이 미친 듯이 흡수되면서 청년의 영혼은 끊임없이 갈려 나갔다. 어지간해서는 견뎌낼 수 없을 고통이었다.
“끄아아아!”
청년은 비명을 질렀지만 한제는 그를 바로 죽이지 않았다. 당시 전성야가 겪었을 고통을 똑같이 느끼며 차라리 죽음을 원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비석 아래에 박힌 청년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몸부림을 쳤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원신조차 빠져나가지 못하고 체내에 봉인된 상태였다.
천천히 다가간 한제는 청년의 정수리에 손을 얹고 신식을 불어넣어 상대의 머릿속을 강제로 헤집어 기억을 취했다. 상대는 거의 죽은 상태였지만 더욱 강렬해지는 고통에 의식을 잃을 수도 없었다. 그저 끝을 알 수 없는 시달림 속에서 서서히, 아주 서서히 죽어갈 뿐이었다.
잠시 후, 한제는 손을 거두었다.
그 무렵, 주작의 몸에서 발산된 화염은 전에 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주작의 수준은 지금 세 번째 각성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 ★ ★
봉계의 망망한 우주 아래 허공. 우주를 뒤덮은 넓은 진 밖의 이곳은 태고의 성신이자 계외라고도 불린다.
그 안에는 번개로 가득 찬 곳이 있다. 태고족(太古族) 중에도 유명한 섬뢰족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섬뢰족 중에는 오랜 세월 흩어지지 않은, 영원한 천둥번개가 한 줄기 있었다. 허공에서 온 이 천둥번개는 수시로 천둥소리를 냈는데 섬뢰족 사람들은 그곳에 사당을 짓고 제를 지냈다.
하지만 칠채계의 번개 낙인 청년이 죽은 순간, 이 천둥번개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소리로 섬뢰족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그리고… 영원할 줄로 알았던 천둥번개가 돌연 흩어져 사라졌다.
잠시 후, 이 천둥번개는 다시 나타났지만 이미 섬뢰족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후였다.
같은 시각, 태고의 성신 속 화작족의 지역. 주작성종처럼 화염으로 뒤덮여 있었고 곳곳의 사당에는 주작의 조각상이 있었다. 다만 이 주작은 외모가 검은 불새에 가까웠다.
한제의 손에 화작족의 청년이 죽고 불의 힘을 빼앗긴 순간, 이 공간의 모든 불새가 바르르 진동하며 거친 기운을 내뿜었다. 뒤이어 쩌적 하고 갈라져 전체 조각상의 3할이 무너져 내렸다.
이에 화작족 사람들 역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옛 전설에 따르면 그들이 돌아올 때 가짜 주작은 스스로 붕괴할 것이라 했다. 설마…”
화작족 어느 수련성의 노인이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각, 계외의 가장 강력한 7대 종족 중 월서족에서도 모두를 경악하게 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선조들이 큰 공을 세운 덕분에 월서족은 태고의 성신 내에서 높은 지위를 유지해왔고 장존회의 장로를 셋이나 배출했으며, 오랜 세월 영화를 누렸다.
그들이 다스리는 성역은 매우 넓었는데 그중 북쪽의 금지된 땅은 진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경계 역시 삼엄했다. 그 안에 들어가 수련할 수 있는 것은 월서족에서도 신분이 높은 몇몇뿐이었다.
이 금지된 땅에는 고신의 형상을 한 아홉 개의 거대한 조각상이 있다. 각 조각상 위에는 월서족 노인이 하나씩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월서족 내에서도 천부적 자질이 뛰어나고 수준도 높은 이들이었다.
이들은 조각상에 존재하는 고신의 힘을 억지로 흡수하려는 듯 두 손으로 기이한 결인을 그리고 있었다.
태고 이래로 고신을 배신한 월서족은 고신의 힘을 얻을 방법을 고안해왔다.
그들은 태고의 치욕에서 벗어나 오히려 고신족을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월서족에서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해온 끝에 마침내 고신을 삼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허나 여기에는 엄청난 위험이 뒤따르다 보니 아직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고 금지된 땅은 고요했다. 그러나 칠채계에 월서족 청년이 소환한 고신의 혼이 태고의 계약을 해지한 바로 그 순간…
꽝!
아홉 개의 고신 조각상에 순간 엄청난 소리와 함께 줄기줄기 균열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