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61
“저, 저게 대체 뭐란 말인가!”
평생 수련을 해오면서 수많은 것을 보고 들었지만 저런 화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쇄열기 수준 수련자의 육신과 원신조차 불살라버리기에 충분한 화염이라니…
그때, 짙은 남색 빛으로 뒤덮인 화염의 근원지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캬오오오!”
바로 주작명(朱雀鳴)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남색 주작 한 마리가 화염 안에서 나타났다. 마치 새로 태어난 듯한 주작의 출현에 칠채계를 뒤덮은 남색 불바다는 환호라도 하듯 더욱 격렬하게 일렁였다.
이어서 남색 화염 속에서 호리호리한 인영 하나도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 순간, 연맹성역의 사성종내 모든 주작성종 사람들의 체내에서 화염이 미친 듯 이글거리더니 난생 처음 그들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분출되어 주위를 감싸들었다.
청룡성황
청룡성황이 머무는 청룡대전 밖에는 가부좌를 튼 네 명의 노인이 있었다. 청룡성종의 장로들로 이들은 어째서인지 무척 초조해 보였다.
대전 안에서는 무궁무진한 고통이 깃든 포효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는데 듣기만 해도 심신이 진동할 정도였다.
“성존께서 폐관수련을 하신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끊임없이 울리는 포효를 들으며 장로 하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 있던 장로가 막 답을 하려던 순간, 대전의 포효가 한층 더 격렬해졌다. 이어서 거대한 충돌음도 들려왔다. 누군가 머리로 벽을 들이받고 있는 듯했다.
그 충격으로 대전이 진동했지만 대량의 금제 덕분에 무너지지는 않았다.
네 장로는 서로의 표정에서 걱정과 초조함 그리고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한편, 청룡대전의 밀실에는 노인 하나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하고 온몸이 바짝 마른 노인은 엄청난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듯 얼굴이 일그러진 상태였다.
콩알만 한 땀방울이 흘러내리며 옷을 적셨고 입에서 터져 나온 포효는 대전을 뚫고 나가 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그의 양어깨와 다리, 골반, 그리고 가슴팍 앞뒤는 밀실의 벽에 연결된 여덟 줄의 검은 사슬로 칭칭 묶여 있었다. 밀실에는 네 개의 법보도 떠 있었는데 사성종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사성종 태고의 성물이었다.
네 성물은 빛을 발하며 마치 노인을 억누르듯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노인, 청룡성황의 오른쪽 팔에서 7촌 정도의 혹이 불룩 솟아올랐다. 피부 아래에서 빠른 속도로 이동한 혹은 눈 깜짝할 사이 그의 가슴팍을 지나 온몸을 맴돌았다.
“크아아아!”
청룡성황의 고통에 찬 포효가 다시 한번 터져 나왔다. 그가 몸부림치듯 꿈틀거리자 몸을 칭칭 감은 사슬이 서로 부딪히며 달그락거렸다. 이내 그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밀실의 벽에 머리를 박았다.
쾅! 쾅!
청룡성황이 머리로 들이받을 때마다 벽에는 균열이 일어났다가 금세 원상태를 회복했다. 그리고 태고의 성물들이 더욱 밝게 번득이며 노인의 곁에 주작, 청룡, 백호, 현무의 낙인을 허상으로 나타내 그의 몸을 단단히 제압했다.
상공에 한 마리 청룡이 나타났다. 매우 오래된 기운을 풍기는 청룡은 무척 허약해 보였고 몸에는 핏빛 혹들이 잔뜩 돋아나 있었다. 끔찍한 모습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청룡성황의 포효는 점차 약해졌고 그의 몸을 맴돌던 혹은 점점 줄어들다가 이내 사라졌다. 사슬이 덜그럭거리는 동안 마침내 평온을 되찾은 청룡성황은 천천히 가부좌를 틀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또 한 번 이겨냈다.”
한데 막 숨을 고르던 그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어딘가를 내다보다가 흠칫 놀라더니 잠시 후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눈가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좋아, 아주 좋아! 과연 늙은 주작성황이 선택한 자답구나. 주작을 세 번째로 각성시키다니. 상고 시대 이후 주작의 세 번째 각성에 성공한 자는 처음이군! 그런 운을 타고난 자라면 내가 이런 고통을 견뎌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겠어! 크하하하!”
그때, 대전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밖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네 명의 장로였다.
“또 한 번의 폐관수련을 마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청룡성황은 결인을 그린 손으로 사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몸을 감고 있던 사슬이 사라졌고 네 개의 성물도 그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청룡성황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밀실 밖으로 나가서는 냉랭한 눈으로 네 장로를 바라보다가 툭 내뱉었다.
“주작성에 무슨 변화라도 있었나?”
“주작성과 연결된 공간의 균열 안에서 고신이 깨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존의 분부에 따라 네 종족 구성원의 선혈과 족인(族印)으로 태고의 진을 배치해둔 상태입니다!”
청룡성황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한참 뒤에야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곤허성역은 혼란스러워진 지 오래되었고 그 틈을 나천성역이 침입했지. 사성종의 모든 이들을 소집하라. 곤허성역에 복수를 할 것이다. 그들은 투항 아니면 죽음을 택해야 할 것이야!”
네 명의 장로는 감격한 얼굴로 몸을 바르르 떨더니 곧장 물러났다. 그들의 명이 전달되면 사성종은 대대적인 움직임을 보이게 될 터였다.
“계외 사람들도 곧 도착하겠지. 아직인가⋯⋯.”
청룡성황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 ★
주작이 날갯짓을 하던 그때, 남색 화염 속에서 느릿하게 걸어 나온 한제는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았다.
“불, 천둥번개, 전의가 내가 가진 진실과 거짓의 경지와 융합할 수 있다면 나는 더욱 강해질 터. 천쇠까지 더해지면 나에게 대항할 자는 없을 것이다! 허나 아직 하나의 계기가 모자라!”
한제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칠채계 깊은 곳, 구름을 뚫을 듯 높이 솟은 산봉우리를 바라보던 그는 그 꼭대기의 동굴과 그 안의 기이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도를 심으면 도를 얻게 될 것이나, 성숙해진 그 열매는 누가 따갈 것인가.”
무심히 내뱉은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주작이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남색 화염을 휘감은 채 돌진했다. 녀석이 일으킨 강한 힘과 바람에 전방을 뒤덮은 남색 불바다에는 한 갈래 길이 생겨났다.
남색 주작의 목표는 10만 척 밖에 있는 백발노인이었다.
흉수의 뼛조각 아홉 개로 몸을 감싸 주위의 화염을 막고 있던 노인은 바다처럼 세상을 뒤덮은 남색 화염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그를 감싸고 있던 뼛조각에서는 순간 연이어 펑 하는 소리가 났고 작열하는 열기를 견딜 수 없다는 듯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이 정도의 화염이라니! 저자의 수준은 높지 않지만 이런 화염을 다룰 수 있을 정도라면 쇄열기 수련자와 맞붙을 수도 있겠어. 안타깝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온몸의 원력을 동원한 노인은 쇄열기 후기 수준의 힘을 발휘했다. 순간 그의 두 손 사이에 거대한 공이 하나 나타났다. 엄청난 원력이 깃든 공이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파멸적인 힘을 발산했다.
“존자께서 저자의 혼을 원하시는 것은 저 높은 순도 때문만이 아니라 화염에 대한 깨달음 때문인가!”
노인의 목표는 한제를 죽이고 혼을 취하는 것이었다. 누구도 그의 목표를 저지할 수는 없었다.
노인이 두 손을 앞으로 떠밀자 거대한 공이 돌진했다. 동시에 노인은 낮게 외쳤다.
“소환, 역행자!”
그 순간, 남색 화염에 뒤덮인 하늘에서 일곱 색채의 빛이 뿜어져 나와 화염에 대항했다. 그 빛에서는 허상의 인영 하나와 거대한 나침반이 나타났다. 이어서 일곱 빛깔의 검 한 자루가 나타나 남색 불바다를 잘라낼 듯 달려들었다.
일곱 색채의 빛으로 이루어진 신통력은 역행자의 술법. 허나 그 위력은 창송자가 발휘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했다.
일곱 빛깔 검은 검기로 변하더니 남색 주작에게 달려들었다.
“키야아아아!”
남색 주작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검기와 충돌했다.
콰쾅!
그 틈에 허상의 인영이 몸을 날렸다. 그 인영에게서는 살육의 기운이 줄기줄기 흘러나와 쏟아지는 비처럼 남색 화염을 향해 떨어졌다.
하지만 남색 주작의 기세에 밀려나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세상 어떤 신통력이라도 주작 앞에서 붕괴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한제가 몸을 날렸다.
그는 한 줄기 남색 빛이 되어 돌진했는데 왼쪽 눈에서 남색 빛이 반짝였다. 그 빛으로 남색 불바다를 휘감은 한제는 엄청난 기세를 품은 채 거대한 나침반을 향해 달려들었다.
“붕괴!”
나침반은 신통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한제가 쏘아 보낸 불바다에 뒤덮였고 한제의 낮은 외침과 함께 불길에 휩싸여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한제는 결인을 그린 왼손을 아래로 뻗었다. 그러자 남색 주작이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반경 10만 척을 뒤덮은 불바다를 이끌며 백발노인에게 돌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노인의 신통력이 발휘되자마자 한제는 모든 것을 파괴할 듯 날카로운 공격을 쏟아부었다.
노인은 아득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신중한 표정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칠채계 수호자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역행자들이여, 나타나라!”
노인의 외침에 칠채계 전역을 뒤덮은 남색 불바다를 뚫고 수십 개에 달하는 허상의 인영이 나타났다.
남녀노소가 뒤섞인 흐릿한 인영들은 엄청난 기운을 발산하며 일제히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뒤이어 그들의 체내에서는 무궁무진한 신통력이 뿜어져 나왔는데 천운일지에 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신통력도 있었다.
“정열기 수련자로서 역행자의 신통력을 당해낼 수 있을까? 너의 화염은 분명 강력하지만 내게는 존자로부터 받은 법기가 있다.”
노인은 덤덤하고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본래 한제는 쇄열기 후기 수련자를 마주치게 되면 곧장 후퇴했을 터였다. 허나 지금은 주작이 세 번째 각성을 마쳤고 세상 모든 천둥번개의 힘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 또한 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상태였다.
더구나 그는 전성야의 전의를 흡수했다. 아직 융합시키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쇄열기 후기 수련자와의 싸움을 피하지 않게 됐다.
한제의 왼쪽 눈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화염이 그의 미간으로 향했다.
“난 생사의 경지를 포기했다. 이 순간, 화염으로 심신을 대체하고 화염으로 깨달은 경지를 대체할 것이다. 이 순간, 난 화염이며 세 번째 각성을 마친 주작이다!”
한제의 미간으로 모인 화염은 더욱 격렬하게 타오르며 남색 화염의 낙인을 남겼다.
이 순간, 한제는 더 이상 수련자가 아니었다. 그는 화염의 신선이자 세상 모든 화염의 통제자였다. 지금의 그는 화작족과 비슷했다. 차이라면 그의 미간에서 타오르는 화염이 화작족의 붉은색과 다른 남색이라는 것뿐이었다.
남색 화염 낙인이 그의 미간에서 타오르던 그때, 한제는 하늘을 향해 길게 포효했다. 동시에 남색 주작이 희열에 가득 차 울부짖었다. 주작은 몸을 번쩍이며 하늘을 가로질러 한제의 미간으로 들어왔다. 마치 한제의 원신이 된 주작이 원래의 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순간, 한제의 몸 위로 새로운 갑옷이 생겨났다. 주작 모양의 남색 갑옷에 휩싸인 한제는 말 그대로 주작 같았다.
“세상 모든 불에게 명하노니, 응집하라!”
한제가 낮게 외친 순간 칠채계 전역에 퍼져 있던 남색 화염이 주인을 맞이하듯 들끓더니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몰려들어 이글이글 타올랐다.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칠채계를 뒤덮었던 불바다가 수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이 광경에 백발노인은 대경해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역행자들이 발휘한 신통력이 한제에게로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