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62
하지만 불바다는 이미 한제의 주위에서 화염 회오리를 이룬 상태였다.
콰쾅!
역행자들의 신통력과 화염의 회오리가 충돌하면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칠채계 전역이 화염에 타오르는 듯했는데 그 불길이 가장 강렬하게 치솟는 곳의 중심에는 한제가 있었다.
“세상 모든 불은 나의 명에 따라 모든 것을 불태워라!”
영혼까지 불태울 듯한 열기가 깃든 한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그의 미간에서 남색 빛이 반짝이며 화염을 뿜어냈다. 이에 남색 불바다는 한제를 중심으로 다시 퍼져 나갔고 역행자들의 신통력은 무너져 내렸다.
백발노인은 얼른 후퇴하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 순간, 그의 미간이 갈라지면서 한 줄기 균열이 일어났다. 검은 빛을 발하는 균열은 꼭 세 번째 눈 같았다.
“봉멸족의 후손으로서 우리 종족의 봉인을 소환한다. 저자의 화염 낙인을 봉인하라!”
노인은 화염에 뒤덮인 순간 외쳤다. 그러자 미간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빛이 허공에 복잡한 문양 하나를 형성했다. 그 문양이 그의 생기를 흡수하기라도 한 것처럼, 노인은 급격하게 늙어갔다.
도술
검은 문양은 빛을 번득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한제를 향해 달려들어 남색 화염을 그대로 관통하여 그의 미간에 떨어졌다.
한제는 뒤로 수십 척이나 밀려났다. 미간의 남색 화염 낙인은 검은 문양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듯 발버둥 쳤지만 문양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태고의 시대, 하늘을 봉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매우 강력한 종족이 있었다. 이들은 태고의 사람들 중 가장 강한 존재였다. 비록 그 수가 너무 적은 탓에 지금은 거의 절멸된 상태였으나,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이들에게는 모든 생령을 봉인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했다.
백발노인은 진정한 봉멸족의 후손은 아니었지만 봉천술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그 혈통을 가진 듯했다. 그러나 봉천술에는 엄청난 생기가 소모되는데 이렇게 소모한 생기는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
“넌 우리 태고족의 낙인을 흉내 냈다. 너의 화염 낙인이 봉인되면 과연 무었을 할 수 있는지 지켜보마!”
노인은 남색 화염이 매우 두려웠다. 그렇기에 수명과 생기까지 희생해가면서 봉천술을 발휘한 것이다.
그는 곧이어 한제에게로 달려들었다. 두 눈은 한제에게 고정된 채였다. 자신의 봉인이 상대를 영원히 속박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저 화염의 강력했다.
한제는 뒤로 물러났다. 화염 낙인은 봉인을 벗겨내지 못한 상태였고 어느새 사방의 남색 불바다가 사라져 칠채계는 원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너 하나 상대하는 데 화염의 힘이 꼭 필요한 건 아니지!”
한제는 피식 웃더니 오른쪽 눈의 번개 낙인을 번득였다. 그러자 이제 막 안정을 되찾았던 칠채계에 우르릉 하고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동시에 오른쪽 눈동자에 있던 문양이 미간으로 옮겨가더니 엄청난 위엄을 발산했다.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순간 천둥번개가 칠채계를 가득 채우더니 한제 주위로 몰려들었다.
“화작족, 섬뢰족⋯⋯ 어떻게 이럴 수가!”
백발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노인의 눈에 한제는 어느덧 섬뢰족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니, 심지어 그들보다 천둥번개에 대해 더 잘 알고 더 잘 다루는 것 같았다.
한제가 들어 올렸던 손을 아래로 내리자 칠채계 하늘을 가득 채웠던 천둥번개가 백발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면을 타고 흐르던 천둥번개 역시 솟구쳐 올라 노인을 향해 돌진했다. 천벌에 비해도 손색없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한제는 그 천벌을 주관하고 통제하는 존재였다.
‘천둥번개의 힘도 쇄열기 수련자와 맞붙을 수 있을 정도구나! 저자를 반드시 죽여야 해! 존자께서 저자의 혼을 원하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어. 저자는 우리 태고족에게는 재난의 씨앗과도 같은 존재야!’
위로 솟구쳐 오른 백발노인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세상의 원력이 그의 오른손을 향해 응집되기 시작했다.
“너희 수련자들이 자랑하는 극강의 신통력으로 죽여주마!”
노인은 낮게 외치며 오른손을 앞으로 강하게 떠밀었다. 순간 거대한 허상의 손바닥이 나타나더니 세상의 원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역령인!”
한제의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일찍이 신종에서 수련한 이 술법으로 네놈을 죽여주마!”
꽈르릉!
노인이 소환한 역령인은 곧장 엄청난 위압감을 발산하며 천둥번개와 충돌해 하늘과 땅을 뒤흔들 듯 요란한 소리를 냈다.
한제는 전의가 어린 눈으로 빠르게 달려드는 손바닥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그는 노인과 똑같이 오른손을 들어 후려쳤다. 그러자 노인의 역령인이 흡수하고 있던 세상의 원력에서 일부가 분리되더니 한제 쪽으로 응집되면서 또 하나의 역령인이 칠채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럴 수가!”
이 광경에 백발노인은 또 한 번 경악했다.
역령인은 운해성역에서 매우 유명한 신통력이었지만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드물었다. 그러니 두 개의 역령인이 맞붙는 모습은 더욱 보기 힘들었다. 1만 년에 한 번이라도 일어날까 말까 한 상황이었다.
두 개의 역령인이 나타난 순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칠채계의 대지에서는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균열이 일었다. 까마득한 절벽처럼 형성된 균열은 한제와 노인의 역령인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리고 두 개의 손바닥은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혀들었다.
백발노인은 역령인의 정수를 배우지는 못한 상태였다. 진짜 정체를 숨겨야 했던 그로서는 신종의 중요한 신통술을 익힐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천부적인 자질로 끊임없이 연구한 끝에 역령인을 약간 파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역령인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그 3할에 달하는 힘을 가진 데다다 쇄열기 후기의 수준까지 더해진 덕에 만만치 않은 위력을 발휘했다.
한제 역시 진정한 역령인을 발휘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의 선계에서 깨달은 뒤 많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천둥번개의 힘과 고신의 기운까지 섞어 넣을 수 있었다. 이에 그의 역령인 역시 진위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두 역령인은 경천동지할 위력을 발휘하며 강력한 기세로 달려들어 충돌했다.
콰콰쾅!
땅이 진동하고 산이 흔들렸으며 하늘은 갈라졌다. 두 손바닥의 충돌로 인한 파멸적인 힘에 칠채계에는 대대적인 붕괴가 일어났다. 거대한 균열이 멀리까지 퍼져 나가면서 칠채계를 완전히 둘로 갈라 버렸다.
이 싸움을 목격한 진천군은 만약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간다면 아무리 귀한 보물이 있다 해도 함부로 욕심을 내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너무 놀라 쥐죽은 듯 숨었다.
한편, 청의의 노부인은 지친 몸을 끌고 날아가다가 저 멀리서 둘의 싸움을 감지하고는 한제에 대한 분노마저 잊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나는 절대 여자호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같은 시각, 운혼자와 같은 골짜기의 흉수들도 두려움에 떨며 몸을 숨겼다. 덕분에 운혼자는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러자마자 칠채계가 격렬하게 진동하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파동 안에 한제의 기운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역령인의 충돌로 인해 칠채계가 둘로 갈라진 그 순간, 한제는 강력한 충격에 뒤로 밀려나면서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얼굴은 급격히 창백해졌고 미간의 천둥번개 낙인도 흐릿해졌다. 역령인에 천둥번개의 힘을 대량으로 주입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백발노인 역시 무사하지는 않았다. 그도 뒤로 밀려났고 발이 땅을 디딜 때마다 깊은 발자국과 함께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한 창백해진 얼굴로 피를 왈칵 토해냈고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발을 굴러 솟아오른 그는 땅에 생긴 균열을 뛰어넘어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섬뇌족의 낙인도 봉인해주마!”
번개처럼 움직인 노인은 흙먼지를 헤치고 달려들며 미간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러자 검은 균열과 함께 검은 빛을 번득이는 문양이 튀어나왔다.
연속해서 두 번의 봉천술을 발휘한 대가로 생기와 수명이 대폭 소모되면서 노인의 몸은 비쩍 말라버렸고 무덤 속에서 걸어 나온 듯 죽음의 기운마저 느껴졌다.
검은 문양은 한제의 미간에 떨어져 천둥번개의 낙인을 단단히 봉쇄했다.
이어서 노인은 오른손을 들어 올려 세상의 원력을 응집시켜 긴 창을 소환하며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한제에게는 비록 세 번째 낙인은 없을지라도 전성야가 물려준 전의가 남아 있었다.
노인이 달려들던 순간, 한제는 광기 어린 전의를 번득였다. 그러자 그의 미간에서 밝은 금빛이 터져 나와 주위를 채우며 번득였다. 동시에 한제의 미간에 전(戰) 자가 나타났고 전의가 온 세상 가득 드리웠다. 지금, 그는 이한제가 아니라 전성야의 화신 같아 보였다. 하늘을 떠받칠 듯한 기세는 누구도 꺾지 못할 것 같았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한제는 온몸으로 금빛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휘둘러 허공에 전 자를 띄워 올렸다. 이 글자는 곧장 백발노인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마… 말도 안 돼!”
백발노인은 이미 매우 놀란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남은 수명을 모두 쏟아부어 한 번 더 봉천술을 발휘한다 해도 상대가 또 다른 힘을 발휘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노인이 충격에 넋을 잃고 있는 와중에 한제가 코앞으로 달려들더니 고신의 힘을 발휘해 몸으로 부딪쳐 왔다. 그의 몸에서는 광기 어린 전의가 느껴졌다.
백발노인은 몸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근접전에 돌입했다.
노인은 수많은 법보를 꺼냈지만 상대를 막지 못했다. 반면 한제는 주먹과 발을 마구 휘두르며 노인을 몰아붙였다.
백발노인이 평생 겪은 전투의 대부분은 법술과 법보를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상대는 엄청난 힘이 담긴 주먹과 발을 마구 휘둘러왔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공격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이 상당해 살짝 닿기만 해도 육신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한제의 미간에서 낙인이 번득이며 머릿속에서는 전투 장면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전성야 일생의 전투들이리라.
그는 단 한 번도 물러나지 않았고 그런 경험과 경지가 ‘전’이라는 글자로 집약되었다.
전성야가 보기에 전쟁이란 일종의 정신이자 사상이며 불굴의 의지였다. 죽더라도 혼은 남아 전혼이 될 것이며, 소멸되더라도 의지는 남아 하늘을 뒤흔들 것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우리 뛰어난 수련자들은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사상과 평생의 전투 경험이 한제에게 전수된 것이다.
한제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백발노인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노인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온몸의 원력으로 전방을 붕괴시켰다. 동시에 그 반동을 이용해 한제와의 거리를 벌렸다.
한제가 다시 달려들었을 때, 노인은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들어 결인을 그리더니 체내로부터 보이지 않는 파문을 빠른 속도로 발산시켰다.
“잃어버린 도와 깨달은 도 그리고 이곳에서 수만 년을 방황한 혼들이여, 너희의 도혼을 녹여내라!”
노인이 외침이 울려 퍼진 순간, 한제의 화염과 천둥번개에 자취를 감췄던 잃어버린 자와 깨달은 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허나 그들은 나타나자마자 무너져 내렸다. 잃어버린 자들의 두 눈에는 잠깐 맑은 빛이 나타났지만 그 순간 그들은 재가 되어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튀어나온 도혼들이 백발노인에게로 몰려들었다.
깨달은 자들 역시 하나둘 흩어져 내리며 대량의 도념을 퍼뜨렸고 이렇게 형성된 도혼 또한 노인에게로 모였다.
칠채계 가장자리에서 화염에 몸부림치던 흉수들도 붕괴했고 혼백은 노인에게로 향했다.
“태고의 힘이여, 저자의 도를 흩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백발노인 앞에 응집된 도혼들은 하나로 융합되더니 눈부신 빛을 사방에 드리웠다. 그 빛은 순식간에 한제의 몸까지 뒤덮었다.
“산도(散道)!”
노인의 거친 외침이 울려 퍼지면서 그가 가진 모든 힘이 발산되었다. 봉멸족의 기술 중 봉천술을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것으로 그들이 고신과 고마, 고요 다음으로 강한 종족이자 태고족의 통솔자가 되게 해준 방법이기도 했다.
이는 술법도 신통술도 아닌 일종의 도술이었다.
이 도술의 빛에 뒤덮인 사람은 가진 도가 모두 흩어지게 된다. 다만 백발노인의 수준으로는 이 도술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었고 유지 시간도 극히 짧았다. 그 짧은 시간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수명 중 9할 이상이 소모될 것이 분명했으나, 노인으로서는 존자의 명을 완수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칠채계의 진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