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69
녀석은 크기도 달라져, 30척 정도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녀석에게서는 정열기 수련자에 비견할 만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한제는 웃으며 흡혈마수를 거두어 넣었다. 녀석은 그에게 필살기와 같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쉽게 내보일 필요가 없었다.
동굴 밖으로 나온 한제는 단로를 포함해 동굴에 남아있던 것까지 거두었다. 잃어버린 자와 깨달은 자가 들어 있던 동굴은 일전에 백발노인과 싸울 때 노인이 도념을 소환함에 따라 비워진 상태였다. 이에 여덟 번째 동굴에 있던 노인 역시 자취를 감췄고 바닥에는 뼛가루만 흩어져 있었다.
“사마묵은 동료들을 모두 찾아냈지만 결국 한 사람도 소생시키지 못했군.”
한제는 잠시 상념에 잠겨 있다가 여섯 번째 동굴 앞에 서더니 돌문을 꾹 눌렀다.
세월금이 모습을 드러내며 파문이 되어 그 위로 퍼져 나갔다. 그때, 한제가 주먹을 세차게 휘둘렀다.
콰쾅!
한제 체내에서 강력한 힘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바위에 떨어졌다.
찰나의 순간, 그의 미간에서 경지로 이루어진 규칙의 반점이 반짝였다. 또한 거대하고도 우렁찬 소리와 함께 그의 오른손이 닿은 바위에 균열이 일더니 무너져 내렸다.
이 광경을 본 운혼자는 찬 숨을 들이마셨다. 한제를 향한 그의 눈빛에서는 경외심마저 담겨 있었다.
바위를 파괴한 한제는 자신이 전보다 몇 배는 강해졌음을 실감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간 한제는 지면의 옥패를 집어 들어 신식으로 살폈다. 당시 그가 예측했던 대로 옥패 안에는 4대 금제 중 세월금이 기록되어 있었다.
한제는 같은 방법으로 일곱 번째 동굴의 옥패도 거두었고 신식으로 그것을 살펴 모든 내용을 기억에 새긴 뒤 옥패를 부숴버렸다. 혹시라도 세월금에 대한 정보가 누군가에게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4대 금제 중 하나인 세월금을 깨닫는 데 사마묵도 무려 1백 년이 걸렸다. 그만큼 익히고 깨닫기 어려운 데다가 거칠기까지 한 금제였다.
허나 한제는 파멸금을 깨달은 사람이고 금제에 대한 조예가 깊은 데다가 수준까지 대폭 상승한 상태였다.
사마묵의 동굴에는 수많은 금제가 걸려 있었는데 아홉 번째 동굴에 걸린 금제는 특별했다. 한제는 당시 그 안에서 일곱 색채의 안개가 맴도는 것을 보았을 뿐,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아홉 번째 동굴 앞에 선 한제는 손을 문에 얹고 가볍게 밀었다. 그러자 두터운 돌문에 대량의 파문이 일면서 일렁이다가 점점 투명하게 변했다. 한제는 전광이 어린 눈으로 동굴 안에 여전히 일곱 색채의 안개가 맴돌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빛은 바위에서 어렴풋이 흘러나와 어두운 산골짜기를 희미하게나마 밝혔다.
동굴 안 일곱 색채의 안개 중심에는 유골이 한 구 있었다. 모양으로 미루어 새끼 사슴의 뼈로 보이는 그것에는 단검 한 자루가 박혀 있었다.
한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예전에 칠채계 어느 동굴에서 이와 같은 광경을 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의미지?’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이내 고개를 들더니 주먹으로 돌문을 때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위에 균열이 일었지만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흥!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한제는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거대한 소리가 산골짜기 전체에 진동했고 돌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균열은 점점 많아지더니 결국 돌문은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허나 동굴 안의 일곱 빛깔 안개는 변함없이 기이하게 부유하고 있었다.
손바닥
동굴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신식으로 안개를 관찰하던 한제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몇 가지 실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눈앞의 안개는 허공이 아니라 사슴의 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흥미롭군.”
잠시 후, 안개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려던 한제는 안색이 급변하더니 손을 우뚝 멈추었다. 그는 원신의 십팔지옥 봉선인 속에서 천운자 분신의 혼백이 튀어나오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봉선인에 봉인되어 윤회의 굴레로 돌아가지 못한 혼백이 통제를 따르지 않고 발버둥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제는 심신을 봉선인으로 뻗어 천운자의 혼백을 살피다가 이내 그 혼백과 합쳤다. 그러자 한제의 기운에 놀랄 만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마치 그가 곧 천운자가 된 것만 같았다.
한제는 천운자의 혼백이 일곱 색채의 안개를 강렬하게 갈망하고 있음을 느꼈다. 봉선인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쳤던 것도 그래서였다.
“흠⋯⋯ 저 안개가 네게 무슨 작용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군.”
한제는 멈추었던 손을 다시 안개 속으로 뻗었다.
그 순간, 일곱 색채의 안개가 끓어오르면서 한제의 오른손으로 빨려 들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러자 바닥에 놓여 있던 뼈에서는 일곱 빛깔의 안개가 다시 뿜어져 나왔지만 그 역시 한제의 손에 흡수되었다.
그렇게 체내로 흘러든 안개는 한제의 원신으로 녹아든 뒤 봉선인에 스며들어 천운자의 혼백에 흡수됐다. 그러자 천운자의 혼백에는 살과 피가 생겨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치 진짜 천운자를 봉선인에 가둔 것만 같았다.
2각 뒤, 사슴 뼈는 더 이상 안개를 발산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한제가 빨아들인 안개는 모두 천운자의 혼에 흡수됐다. 이 혼백은 가부좌를 튼 채 호흡을 반복했다.
“흥미롭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이내 관심을 돌려 사슴 뼈에 꽂힌 단검을 뽑았다. 사슴 뼈는 바르르 진동하면서 가루로 무너져 내렸다.
단검은 일전에 얻은 것과 거의 똑같았고 봉인이 걸려 있었다. 허나 지금은 봉인을 풀기에 좋은 때가 아니었기에 일단 저물공간에 넣은 후 동굴을 나갔다.
“이제 가세!”
한 마디를 툭 던진 그가 몸을 날리자 진천군이 바짝 따라붙었고 그 뒤를 운혼자가 지켰다.
그때, 저 멀리서 한 줄기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청의의 노부인이었다. 그녀는 망설임 끝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그들을 따라갔다.
넷은 칠채계의 가장자리에 도달했다. 그들이 진입했을 때 보았던 제단은 이미 무너져 폐허가 되어 있었다.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창송자의 기억에서 얻은, 이곳을 나가는 결인이었다. 잠시 후, 그의 손이 점점 빨리 움직이자 결인들이 부드러운 빛을 발했고 숨겨져 있던 균열이 벌어졌다.
한데 그 순간, 한제는 표정이 급변해 손동작을 멈추고는 고개를 번쩍 쳐들어 어딘가를 올려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회오리 하나가 나타나 사방을 휘저었고 이에 시커먼 하늘은 산산조각이 나더니 회오리에 섞여들었다.
뒤이어 두 갈래의 매우 무정한, 고래(古來)의 기운을 품은 눈동자가 회오리 깊은 곳에서 나타나 이들에게 다가왔다.
“본존의 도과를 삼키고도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느냐?”
천둥 같은 목소리가 울리자 진동하던 대지에는 쩌적 하고 갈라져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했다. 어둠 속 여기저기서 붕괴음이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동시에 엄청난 위압감이 응집되어 서서히 강림했다. 그러자 칠채계 전역이 텅 빈 공간이 된 것처럼 각 방향에서 기인한 무궁무진한 힘이 맴돌았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수준이 낮은 진천군은 그 압박감에 원신이 진동하며 피를 토해냈고 몇 걸음 물러나 황급히 단약을 꺼내 삼켰다.
운혼자는 창백한 얼굴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 갈래 눈빛 아래 그는 꼭 발가벗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심신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청의의 노부인 역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몸 밖으로는 허상의 인영 하나가 나타났는데 그 얼굴은 노부인과 중년 여인의 얼굴로 번갈아 변했다.
꼿꼿하게 서서 버티고 있는 것은 한제뿐이었다. 엄청난 위압감이 강림했을 때, 그의 주위에서는 왜곡이 일어났다. 마치 그 부근의 규칙은 세상과 섞여들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제는 회오리 속의 두 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만약 네가 이 손바닥 아래에서도 살아남는다면 살아갈 기회를 주마. 약속은 지키겠다.”
그 목소리가 떨어진 순간, 회오리가 급속도로 회전했고 하늘을 휘저으면서 이내 두 눈은 회오리 안으로 숨겨졌다. 동시에 세상이 그대로 무너지기라도 할 듯 사방에서 굉음이 울렸다.
회오리가 강림함에 따라 대지는 격렬하게 진동했고 어둠 속에서는 뭔가가 찢어지고 갈라지는 소리가 끝도 없이 들려왔다.
진천군은 화살처럼 피를 토해내며 튕겨나갔고 운혼자와 청의의 노부인 역시 원신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두려움에 떨었다.
회오리는 점점 빠른 속도로 강림해 대지에 이르렀다. 그때, 한제가 싸늘한 눈빛으로 몸을 훌쩍 날리더니 한 줄기 유성이 되어 하늘로 박차고 올랐다. 그리고 주먹으로 회오리를 강타했다.
콰쾅!
그 어느 때보다 요란한 소리가 울렸고 어둠에 잠긴 칠채계에는 무궁무진한 전광이 나타났다. 백만 마리의 은빛 뱀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이곳을 밝히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 모든 번개는 한제의 주먹으로 응집되었다. 한제는 이렇게 형성된 천둥번개의 힘을 곧장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렸다.
하지만 회오리는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한제를 매섭게 압박해왔다. 한제의 옷이 풍압에 나부꼈다. 한제는 회오리에서 흘러나오는 흡입력이 자신의 원신을 빨아들이고 원력을 빼앗고 육신을 짓이기려 한다는 것을 똑똑히 느꼈다.
“모두들 구경만 하다가 죽을 것인가 아니면 나와 함께 싸울 것인가!”
한제의 목소리가 음산한 바람을 타고 세 사람의 귀에 꽂혔다. 운혼자는 이를 악물고 몸을 훌쩍 날려 한제의 좌측에 서더니 소매를 휘둘러 무궁무진한 음혼들을 소환했다. 소환된 혼들의 곡성에 운혼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청의의 노부인 또한 망설임 없이 한제의 오른편에 서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녀의 결인에서는 피비린내와 생사의 기운이 어린 데다가 대량의 금제가 번득이는 한 줄기 안개가 소환됐다.
마지막으로 날아오른 것은 진천군이었다. 한제의 아래에 선 그는 두 손을 휘둘러 전신의 모공을 열었다. 그러자 모공 하나하나에서 일렁이는 기운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더니 잠시 후 그의 곁에는 열 마리가 넘는 흉수들의 혼이 나타나 포효했다. 그중에는 12급 흉수의 혼도 두 개 있었는데 비록 허약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생전에 가졌던 위엄은 가히 놀랄 만했다.
한제는 미간에서 경지로 형성된 규칙의 반점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펼쳐 소환한 삼지창을 움켜쥐었다.
“손바닥 하나의 힘이 뭘 어쩌겠는가! 하하하!”
도무지 살아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임에도 통쾌하게 웃은 한제는 다시 한번 하강하는 회오리에 접근했다. 그의 전신에서는 전광이 번득였고 전의가 드러나 하늘과 투쟁하려 하는 그의 기세를 더해주었다. 그런 기세라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낼 것 같았다.
“주인님, 제가 뒤를 받치겠습니다!”
그 전의에 감화된 운혼자 또한 낮게 기합을 넣으며 온몸을 뒤덮은 음혼을 응집시키더니 아주 오래된 듯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검은 송곳을 소환했다. 운혼자는 송곳을 손에 쥔 채 한제의 뒤를 따라 회오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청의의 노부인도 굳건한 의지가 담긴 눈으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주위의 안개들이 삶과 죽음의 기운으로 분리되더니 용처럼 그녀의 몸을 감싼 채 한제와 운혼자의 뒤를 따라 돌진했다.
진천군도 자신이 소환한 모든 흉수의 혼들을 응집시킨 채 뒤를 따랐다.
네 갈래의 긴 빛이 하늘을 가득 채운 회오리를 향해 돌진해갔다.
꽝!
그들은 이내 충돌했다.
한제는 전의를 불태우며 삼지창을 휘둘러 신통술을 이용한 공격을 퍼부었다. 온몸의 원력을 가동하고 고신의 힘까지 발휘했다.
맹렬한 공격에 회오리에는 작은 틈이 생겨났다.
하지만 회오리의 힘은 너무도 강력해 가장 먼저 진천군이 소환한 흉수들의 혼이 무너져 내렸다. 이어서 진천군 또한 비명을 지르며 경련을 일으키더니 피범벅이 되어 터져나갔고 원신은 눈 깜짝할 사이에 회오리로 빨려 들어갔다.
“나가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잖은가!”
진천군의 원신이 참혹하게 외쳤다.
그 순간, 한제는 몸을 홱 틀며 오른손으로 진천군의 원신을 붙잡고 회오리의 힘에 대항했다.
쾅!
결국 진천군의 원신은 둘로 나뉘어 한쪽은 회오리에 빨려 들어갔고 다른 한쪽은 한제의 손에 들어왔다.
그때, 운혼자가 피를 토해냈고 그가 소환했던 음혼도 모두 죽어버렸다. 심지어 법보도 무너져 내렸지만 보통 법보는 아니었는지 무너져 내리는 순간 그 힘을 이용해 운혼자는 한제가 연 회오리의 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회오리의 강렬한 흡입력에 생사금이 모두 소멸되면서 피를 토해낸 청의의 노부인은 재빨리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녀의 좌우 양쪽에서 인영이 하나씩 나타났다. 하나는 노부인, 다른 하나는 중년 부인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인영이었다.
두 인영은 나타난 순간 곧장 자폭했고 청의의 노부인은 그 힘을 이용해 회오리에 난 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일행이 회오리를 관통해 곧장 대지에 착지했을 때, 땅이 진동하면서 기이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다섯 개의 봉우리가 솟아올랐다.
“이,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