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7
“허목이 선배님을 뵈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체내의 금단을 걸고 맹세컨대, 하는 말에 조금의 거짓도 섞지 않을 테니 부디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청색 옷의 노인은 술을 따라 마시며 천천히 말했다.
“객잔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 자에 대한 말을 듣기만 하면 네 몸의 영력이 혼란스러워지던데 그 자를 직접 본 적이 있는 모양이지?”
허목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조용히 말했다.
“분명 그 흉악한 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자의 수준은 어느 정도지?”
청색 옷의 노인은 눈빛을 번쩍이며 그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물었다. 방금 그 청년이 목숨을 잃었던 것은 한참 동안 말을 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그 자의 수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단기 초기입니다!”
허목은 확신할 수 없다는 듯 말하더니 얼른 덧붙였다.
“선배님, 그자는 겉보기에는 결단기 초기로 보이나 두 가지 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에 청색 옷의 노인은 비록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귀는 쫑긋 세웠다.
“그중 하나는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비검입니다.”
노인은 약간 실망한 듯 술을 따라 마셨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붉은색 빛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 빛 안에 들어 있는 무언가가 사람에게 달라붙으면 그 사람은 곧장 비쩍 마르기 시작하더니 결국 해골이 되어 죽어버리게 됩니다.”
허목은 상대의 안색을 살피며 잔뜩 긴장한 채 말했다.
노인은 한참 동안 고민하는 듯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하급 영석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허목을 잡아챈 뒤 곧장 그 자리에서 순간이동으로 1천 리도 넘게 움직였다.
그가 떠났을 때 객잔 안에 있던 놀란 얼굴을 한 수련자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원영기 고수다!’
★ ★ ★
반 시진 후, 허목의 안내로 투사파에 도착한 노인은 신식으로 사방을 훑어 상관묵을 찾아냈다.
상관묵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사이, 청색 옷의 노인은 그의 미간에서 한 방울의 혼혈을 뽑아냈다. 그리고 그 혼혈과 한제가 가지고 있는 혼혈의 연계를 따라 허목을 내던져 버리고 서남쪽으로 내달렸다.
한편 한제는 모완을 데리고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앞서 있는 수정 비검은 수마해의 짙은 안개를 가르며 길을 내어주고 있었다.
수마해 안은 언제나 안개로 뒤덮여 있었으며, 오직 한 달 동안만 안개가 바닷물로 변했다. 하나 한제는 수마해에서 지낸 몇 년간 폐관 수련만 해왔기에 직접 안개가 바닷물이 되는 과정을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처음으로 안개가 바닷물로 변하는 그 시기에 바깥에 나와 있었다.
이 시기면 안개는 더욱 축축해져, 당초 두 사람이 처음 수마해에 이르렀을 때보다 훨씬 심했다.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안개가 이미 바닷물로 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위쪽으로 향할수록 안개의 습기는 더욱 심해졌고 결국에는 마치 물속에서 유영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바다가 되고 있어.”
모완이 조용히 말했다.
그 순간, 한제가 갑자기 우뚝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사방에 가득한 안개는 천천히 어딘가로 이동했는데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주위의 안개 속 생물들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유영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모완은 한제의 진지해진 표정을 보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무 일도 없어.”
한제는 짧게 대답한 뒤 더욱 속도를 올렸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묘한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안개가 이동하는 속도로 볼 때 뒤쪽에서 누군가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안개를 밀어낸 것만 봐도 추격자의 수준은 굉장할 것이었다.
게다가 안개 속 생물들이 사방으로 유영하면서도 앞으로는 나가지 않는 것이야말로 누군가가 추격해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물고기가 몰려 있는 곳에 활을 쏘면 모두 사방으로 피하지 활 쪽으로 피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청색 옷의 노인
한제는 영기가 깃든 액체를 꺼내 한 모금 크게 들이켰다. 영기가 흡수되자 체내의 금단이 빠르게 돌아가며 강력한 영력을 발산했다. 한제의 속도는 한층 더 빨라졌다.
모완은 한제가 긴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저물대에서 재료를 꺼낸 뒤 간단한 진을 만들어 뒤쪽으로 내던졌다.
한제는 눈빛으로 그런 그녀를 칭찬했다. 그러자 모완은 묘한 행복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지난 사흘간 많은 영력을 소모한 터라 마음만큼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한제가 방금 영력이 깃든 액체를 마신 뒤 속도가 더 빨라진 것을 본 모완은 아까 한제가 주었던 작은 병을 꺼내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 순식간에 정신이 또렷해졌다. 놀란 눈으로 병을 잠시 살피던 모완은 얼른 그것을 다시 잘 챙겨 넣고 연이어 소형 진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날아갔지만 위로 향할수록 보이지 않는 저항력이 점점 더 강해졌다. 이는 수마해 특유의 보호막으로 이곳을 뚫고 나가려는 사람은 모두 그 영향을 받게 되어 있었다.
한제로부터 7만 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청색 옷의 노인은 저물대를 두드려 비취 호리병을 꺼냈다. 호리병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커지더니 1백 배로 불어났다. 노인이 그 위에 올라앉자 호리병은 곧장 앞으로 쏘아지듯 나갔다. 그 속도는 순간이동을 하는 것보다 두 배는 빨랐다.
한제는 안개가 밀려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는 자신의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추격자의 속도가 이전보다 빨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때, 수마해의 안개가 점점 옅어지면서 물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수마해 위에서 내려다보면 온 수마해의 안개가 옅어져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였다.
달빛에 수마해의 수면이 반짝거렸다. 바닷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깊어졌고 또 넓어졌다.
철썩철썩.
심지어는 파도가 몰아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청색 옷의 노인은 호리병 위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하나둘씩 진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 진들은 비록 그에게 별다른 해를 입히지는 못했으나, 매우 정교한 것들이라 이동에 적지 않은 방해가 되었다.
가볍게 콧방귀를 뀐 노인은 소매를 펄럭이며 호리병을 매섭게 내리쳤다. 순간, 호리병의 입구가 열리면서 엄청난 힘이 그 안에서 분출되면서 파문이 일어났다.
이 파문은 빠르게 앞쪽으로 나아가면서 고리 형태를 이루었고 그 파문은 닿는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심지어 안개와 바닷물까지도 파괴했다.
노인은 호리병에 앉은 채 그 파문이 터준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한제의 온몸은 이미 물기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그는 다시 영기가 깃든 액체를 마신 뒤 앞으로 쏘아지듯 나가며 넓어지고 있는 바닷물에서 벗어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물은 사방으로 들어찼다. 고개를 돌린 그가 서늘한 눈을 번득이며 앞쪽에 있는 비검을 가리키자 비검은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한제는 모완을 안은 채 마치 예리한 검처럼 바닷속으로부터 곧장 구름을 뚫고 올라 수마해를 빠져나갔다. 바닷물을 돌파한 순간 두 사람은 긴 무지개가 되어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수정 비검은 바닷물 아래에서 번쩍이며 파도를 일으켜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반 시진 뒤, 해수면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폭이 족히 1천 척에 이르는 이 소용돌이는 거대하고 끝없는 파도를 일으키며 한쪽으로 빠르게 회전했다.
이 소용돌이의 중앙에는 수마해 바닥으로 이어진 시커먼 통로 하나가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통로를 따라 비취색의 거대한 호리병이 떠올랐다.
★ ★ ★
호리병 위에 앉은 청색 옷의 노인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호리병을 두드려 날아오르려던 그는 별안간 굳은 표정으로 오른손의 두 손가락으로 눈앞을 가렸다. 한 줄기의 수정 빛이 그 손에 가로막혔다. 노인은 차게 웃었지만 곧 그 웃음은 멈춰버렸다.
그의 두 손가락 사이에 끼인 수정 빛은 천천히 흩어졌다.
‘잔영?’
그 순간, 노인의 머리가 흔들렸다. 수정 빛은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 뒤 허공에서 몇 번 번쩍이다가 사라졌다.
노인은 사라지는 검을 막지 않고 뺨에 난 상처를 쓰다듬었다. 손가락에 묻은 피를 혀로 살짝 핥은 그는 피식 웃었다.
“담이 큰 녀석이로군!”
한참 후, 그는 두 눈을 번쩍 뜨고 호리병을 두드렸다. 호리병은 즉시 줄어들더니 손바닥만 해졌다. 호리병의 마개를 연 그는 그 안에 든 것을 한 모금 마셨다. 진한 술 냄새가 사방에 퍼졌다.
화분국의 화염 마수 재난은 4성 수련국에 의해 수습되었지만 불 속성의 영기는 여전히 날뛰고 있었다. 이 영기는 사람이 호흡할 수 없었고 지면의 온도는 너무나 높았다.
여러 갈래의 뜨거운 액체들이 한데 모여 흘렀으며, 화산까지 연이어 폭발해 일반인들의 나라는 이미 폐허로 변한 지 오래였다.
일반인들의 수도였던 곳은 지금 화염으로 뒤덮여 그곳에 있던 건물도 모두 무너진 상태였고 생물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화분국은 적막한 죽음의 땅이었다.
한제와 모완은 하늘을 날면서 이 광경들을 목격했다. 둘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으나 당시 석주가 화염 영수를 삼키지 않았다면 자신이 그 화염 영수에게 잡아먹혔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우연히 벌어진 일일 뿐, 옳고 그름과는 관계가 없었다. 물론 당시에 이런 결과가 펼쳐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한제는 스스로를 구제하는 길을 선택했을 터였다.
두 사람은 긴 무지개처럼 하늘을 가르며 당초 둘이 처음 만났던 곳을 스쳐지나갔다. 모완은 한제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제는 지금 자신을 뒤쫓는 추격자에 신경을 쓰느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가 오른손을 뻗자 그의 손으로 수정 비검이 날아 들어왔다.
순간 우뚝 멈춘 한제는 비검 끝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손가락으로 그것을 훑어냈다. 피가 묻은 손가락을 한동안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 피에서 그는 강한 영력의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방울의 피에서도 이렇게 강한 영력을 느낄 수 있다면 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이란 말인가!’
옥으로 된 병을 꺼내 비검에 묻은 피를 담은 뒤 저물대에 챙겨 넣은 한제는 커다란 산에 짓눌리는 듯한 압박감을 받았다.
고개를 들어 머리 위에서 빛나는 커다란 주(誅)자를 보고 냉소하던 그는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화분국의 경계를 지나자 저 멀리 화분맹의 초기 점거지인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그곳에는 화분맹 4대 문파의 표지가 높이 걸려 있었다.
한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멈춰서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잘 가.”
모완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한제의 뒤쪽을 살피며 물었다.
“일단 나랑 같이 낙하문으로 가서 좀 피하는 게 어때?”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럴 것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