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70
운혼자는 회오리를 뚫고 나왔다는 기쁨이 아니라 절망에 가까운 눈으로 대지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대지는 이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손바닥이 되어 있었다. 하늘로 솟구쳐 오른 다섯 개의 봉우리는 손가락이었고 어둠에 잠긴 대지 위의 균열들은 손바닥의 주름이자 손금이었다. 좀 전의 회오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손바닥에서 거칠게 발산되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회오리 안의 목소리가 말한 손바닥의 힘이었다.
지금 한제와 운혼자 청의의 노부인은 칠채계, 그러니까 이 손바닥 안에 들어 있는 셈이었다.
지치고 늙은 목소리가 했던 말이 한제의 심신에서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이 손바닥에서 빠져나가야만 살 수 있다!’
그 거대한 손바닥이 천천히 오므려지고 있었다. 흘러넘칠 듯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는 한편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다섯 개의 손가락은 천천히 합쳐졌다. 손바닥 안의 미물을 그대로 꽉 움켜쥐어 죽여 버리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짙은 전의만을 발산했다. 온몸의 피가 끓어올랐고 미간에 여섯 개의 반점이 나타나더니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반점의 중심에서는 경지로 이루어진 규칙의 반점도 있어서 언뜻 7성급 고신처럼 보였다.
“덤벼라!”
한제는 오른손에 쥔 삼지창을 휘두르며 전선(戰仙)처럼 아래쪽을 향해 돌진했다.
한제의 손가락에 끼워진 방덕재의 반지가 줄기줄기 빛을 발했다. 이 빛은 급속도로 회전하며 폭풍을 형성했고 한제는 그 폭풍에 휩싸인 채 돌진했다.
잠시 망설이던 운혼자가 이를 악물고는 뒤를 따랐고 중상을 입은 청의의 노부인은 손바닥에서 벗어나고자 높이 날아올랐다.
산봉우리로 이루어진 다섯 개의 손가락은 엄청난 속도로 오므려져 곧 하늘을 가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 새끼손가락이 다가오자 광기 어린 바람이 일었다. 공간마저 찢어발길 듯한 이 바람은 그 아래에 자리한 모든 생명과 육신을 소멸시켰다.
청의의 노부인은 그 바람을 맞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창백했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녀는 죽을힘을 다해 더 높이 솟아올랐다. 그녀는 이 거대한 손바닥의 목표가 한제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만약 한제가 죽는다면 흩어져 사라질 것이고 안정을 찾게 될 터였다. 지금의 그녀는 칠채계 밖으로 나갈 엄두까지는 낼 수가 없었다. 그저 살아남고 싶을 뿐이었다.
“저자만 죽으면 살 수 있어!”
그녀는 이를 악물고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손가락을 부수다
전의를 번득이고 있는 한제에게 새끼손가락이 다가왔다. 너무도 거대해 하늘의 절반은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저자가 정말 장존인가. 장존이든 누구든 나를 죽이려 든다면 싸워주겠다.’
한제의 미간에서 규칙의 빛이 급속도로 회전했다. 동시에 그는 왼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순간 한 줄기 검은 바람이 불어닥쳤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섯 마리의 흑룡이 나타나 포효하며 새끼손가락을 향해 달려들었다.
“캬오오오!”
그 순간, 검은 바람 속에서 일곱 번째 흑룡이 포효하며 나타났다. 규칙의 반점에 어린 전의의 경지 아래 한제는 기존의 한계를 뚫고 일곱 번째 흑룡까지 소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끼손가락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꼿꼿하게 선 산이라면 일곱 마리 흑룡은 산봉우리를 부수는 선룡(仙龍)이라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산이 무너져 내리기 전까지 쉬지 않을 터였다.
콰쾅! 콰르릉!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거대한 충격이 거친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한제는 그 파도에 휩쓸리고도 물러나기는커녕 앞으로 나아가며 왼손으로 또 한 번 하늘을 가리켰다.
일곱 마리의 흑룡이 새끼손가락에 몸을 부딪치며 차례로 무너져 내리던 그때, 한 줄기 서늘한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약간 진득하면서도 음산한 기운이 순식간에 온 세상을 뒤덮으면서 수없이 많은 빗방울을 응결시켰다.
그 순간, 무궁무진한 원력이 응집되었다. 이 기운은 사방을 휘저으며 방울방울의 빗물에 녹아들어 궁극의 기운으로 온 세상을 뒤덮었다.
한제가 왼손을 휘두르자 빗방울들은 검의 비가 되어 손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거대한 손바닥의 표면에 하얀 서리가 끼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얼음층이 되어 얼어붙었다. 특히 새끼손가락은 빗방울에 거의 뒤덮인 상태였고 이매 얼음층에 단단히 고정되어 버렸다. 얼음층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손가락을 봉인한 순간 폭발했다.
이는 환우(換雨)가 일으킨 변화였다. 바로 비를 얼어붙게 한 뒤 얼음을 붕괴시키는 빙붕(氷崩)이었다.
붕괴로 야기된 힘은 얼음으로 봉인만 할 때보다 더욱 강력한 공격력을 가졌다. 전보다 수준이 몇 배나 증폭된 데다가 전의의 경지로 자극받은 한제가 발휘하는 환우의 위력은 확실히 이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콰르릉!
얼음이 붕괴하는 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졌고 칠채계로 형성된 손바닥은 바르르 진동했다.
하지만 멈추려는 기색은 없었다. 새끼손가락도 몇 번 흔들렸을 뿐이었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왼손을 다시 휘두르며 입을 벌려 봉선인을 소환해 대량의 전혼을 꺼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천운자의 혼백을 제외한 나머지 혼백들은 허공자의 혼백을 위수로 하여 새끼손가락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는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살두성병까지 사용한 그는 곧장 결인을 그린 왼손으로 대지를 가리키며 낮게 외쳤다.
“산붕(山崩)!”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퍼진 순간, 대지 전체가 진동하는가 싶더니 한제의 앞에 화염이 이글이글 들끓는 거대한 다섯 개의 화산이 허상으로 나타났다.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산은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뒤이어 한제의 전신에서는 무궁무진한 살육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가 흡수한 회색 옷의 천운자가 가진 모든 살육의 기운이 발산된 상태였다.
살육의 기운은 한데 응집해 핏빛의 검이 되더니 한제의 각종 신통력과 함께 빠르게 다가오는 새끼손가락을 향해 달려들었다.
허상으로 나타난 화산들은 새끼손가락과 중첩되면서 하늘과 땅을 뒤흔들 법한 거대한 소리를 냈고 일곱 마리 흑룡이 달려들어 자폭했다.
동시에 하늘을 뒤덮을 듯 쏟아져 내리는 빗물은 얼음층이 되어 끊임없이 응집하고 무너져 내리기를 반복했다.
수많은 전혼 역시 새끼손가락에 접근하여 폭발했고 살육의 검은 단번에 새끼손가락을 찔러 균열을 내면서 살육의 기운을 주입했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이내 산봉우리로 형성된 새끼손가락이 무너져 내렸다.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새끼손가락의 중간 부분부터 줄기줄기 균열이 일었다. 이어서 새끼손가락 끝이 그대로 폭발하면서 돌조각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쿨럭!”
한제는 창백한 얼굴로 왈칵 피를 토해냈다. 그가 법보로 둘러놓은 보호막에는 균열이 일었고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방덕재의 반지는 펑 하고 가루로 흩어져 버렸다. 심지어 한제의 육신도 한참이나 뒤로 밀려났다.
운혼자는 한제의 뒤에 있던 터라 받은 충격은 작았지만 온몸의 경맥이 마디마디 끊기고 뼈는 산산조각이 나 혈인(血人)이 되어 있었다.
충격의 근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청의의 노부인은 덕분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해 육신이 거의 무너져 내릴 지경이었다. 표정이 급변한 그녀는 다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뒤에서 거대한 검지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다가와 그녀의 몸을 건드렸다.
쾅!
가볍게 닿은 것에 불과하지만 노부인은 피안개로 흩어졌다. 원신은 발버둥 치며 육신에서 벗어났지만 한제가 손을 휘둘러 거두어버렸다.
그때, 절반쯤 사라졌던 새끼손가락이 세상의 힘을 흡수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새롭게 응집되기 시작했다. 만약 완전히 회복한다면 여태까지의 공격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전의의 눈빛을 번득인 한제는 곧장 검지 쪽으로 달려들었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검지만이 아니라 나머지 세 손가락도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만약 이 거대한 손이 주먹을 쥐게 된다면 자신에게 살아날 기회가 없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껏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겨왔지만 이번만큼 큰 위기는 없었다.
거대한 검지가 구부려진 찰나, 한제는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쥐며 창송자의 차공열 법보인 수정검을 소환해 그 위로 피를 뿜어냈다. 그러자 차공열 법보가 가진 모든 잠재력이 발휘되며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검기를 발산하면서 검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차공열 법보는 4대 선계에서도 드문 것으로 그 위력은 막강했다.
콰쾅!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순간 한제가 외쳤다.
“쇄검(碎劍)!”
한제의 명에 수정검이 폭발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형성했다. 이에 검지는 우뚝 멈춰 섰다.
한제는 쉬지 않고 저물공간에서 또 하나의 법보를 꺼냈다. 이 역시 수정검과 같은 차공열 법보의 기운을 짙게 풍기는 푸른 도끼였다. 창송자의 저물대에 있던 것이나,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제련된 이 도끼에는 대량의 봉인이 드리워져 있었다.
선혈이 흐르는 도끼는 푸른빛을 그리며 검지를 향해 돌진했다. 한제의 통제 아래 도끼는 엄청난 기운을 폭발시켰고 이 기운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며 도끼에 드리운 모든 봉인을 열었다. 그러자 도끼는 파멸적인 힘을 뿜어냈다.
콰쾅!
다시 한번 하늘과 땅이 뒤흔들리면서 새끼손가락이 무너져 내렸을 당시 발산되었던 충격에 비할만한 힘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힘에 운혼자의 육신은 무너져 내렸다. 피범벅이 된 살덩이 속에서는 참혹한 표정의 원신이 튀어나왔다.
검지는 아직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그 위에는 수많은 균열이 일어나 있었다. 그 상태로도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하앗!”
넓은 그늘을 드리우면서 검지가 눈앞에 다가온 순간, 한제는 낮게 기합을 내질렀다. 붉게 충혈된 두 눈에는 전보다 더 짙은 광기를 담은 채로 그는 고신의 솥을 허상으로 소환해냈다.
고신의 솥은 한제에게 두 개밖에 없는 고신의 신물 중 하나로 서사가 직접 제련해낸 것이었다. 한제로서는 본 위력을 다 발휘할 수도 없지만 그에게 이 솥은 단순한 보물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죽고 나면 보물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고신의 솥은 실체를 갖춘 것처럼 점점 또렷해지더니 검지와 충돌했다.
콰르릉!
충돌의 순간, 한제는 마치 하나의 수련성과 충돌한 듯한 충격에 왈칵 피를 토해냈다. 얼굴은 창백해졌고 제법 큰 부상까지 입게 됐다. 고신의 솥은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한제와 함께 검지의 힘에 의해 끊임없이 아래쪽으로 밀려났다.
“무너져라!”
한제는 죽을힘을 다해 멈춰 섰다. 그 무렵, 검지 외에도 세 개의 손가락이 하늘을 가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한제는 이를 갈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살아오면서 숱한 위기를 마주쳤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 격렬하게 저항했다.
한제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외침이 터져나왔고 그러자 고신의 솥이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엄청난 기운을 발산했다. 그와 동시에 고신의 솥은 수많은 조각으로 갈라지면서 곧장 검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쾅!
원신이 떨릴 정도의 충돌음에 한제는 심신에 중상을 입었다. 그 상태로 올려다보니 이윽고 거대한 검지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새끼손가락처럼 절반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붕괴해 버린 것이었다.
한제는 부상으로 약해진 상태였지만 얼굴에는 전의가 짙게 어렸다. 그는 입가의 피를 손등으로 닦은 뒤 거의 죽어가던 운혼자의 원신을 거두었다.
이제 칠채계 안에 남은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다섯 손가락 중 두 개가 파괴된 상태였다. 하지만 검지 역시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한제에게는 조용히 생각을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남은 세 손가락도 끊임없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제는 거친 숨을 내쉬며 신통력과 법보를 하나하나 쏘아 보냈다. 미간에서는 경지로 이루어진 규칙의 반점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전의로 그를 감쌌다.
가장 강하지만 속도는 느린 엄지를 제외한 중지와 무명지가 나란히 압박해왔다.
동시에 두 손가락을 상대할 수는 없었기에 한제는 삼지창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삼지창은 검은 빛이 되어 무명지를 향해 달려들었고 한제는 그 사이에 중지를 향해 돌진했다.
미간에서 규칙의 빛이 회전하는 사이 남색 화염이 그의 온몸은 뒤덮었다. 동시에 천둥번개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만 마리의 은백색 뱀처럼 손바닥 안에서 폭발했다. 불바다와 천둥번개가 손바닥 곳곳을 누볐다.
남색 화염 속에서 미간의 반점은 격렬하게 번득였고 그 주위의 불바다는 그를 따라 중지를 향해 튀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