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72
“내 딸이 보우하는 사람을 어찌 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자가 천역주를 가지고 있다 해도… 게다가 천역주는 당시 봉계 지존의 물건이니 만약 봉인을 풀지 못한다면 손에 넣었다 해도 복이 아니라 화로 작용할 터. 봉계 지존이 그 좋은 예가 아닌가.”
남몽도존은 마치 누가 듣고 있기라도 한 듯 말을 이었다.
“아홉 군데의 칠채계는 본디 봉계 지존에 의해 열렸으나 후에 우리 태고족 손에 들어왔다. 내가 그곳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그 손바닥의 힘뿐. 그마저도 잃는다면 물러날 수밖에. 수만 년간 폐관수련을 해온 장존은 워낙 꾀가 깊은 자이니 내게 그자를 처리하게 한 데에는 분명 다른 목적이 있을 터!”
남몽도존은 당시 장존이 계내에 잠입했다가 중상을 입고 돌아와 전했던 경고를 떠올리고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칠채화가 심어진 곳은 또한 장존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지. 꽃을 기르는 자도 분신으로만 들어갈 수 있을 뿐. 도념이 칠채화를 상하게 할까 봐 그리 한다고는 하나, 알 수 없지. 게다가 그자는 절대 만만한 녀석이 아니야. 놀랄 만한 힘과 왕족 고신의 육신까지 가지고 있었고 성격은 나와 비슷했다. 지금의 수준으로 네 개의 손가락을 부수다니, 태고의 성신에서도 강자로 꼽힐만한 재목이야. 그런 자에게 시간을 준다면 공경의 수준에이를 수 있을 지도.”
남몽도존의 목소리에는 감탄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게다가 그자는 월아의 보우도 받고 있다. 난 생전에 그 아이에게 너무도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 그러니 현생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해치게 두지 않는다. 그 아이가 보우하는 사람 역시 내가 지킨다. 상대가 장존이라 해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내를 잃은 고통과 딸을 잃은 슬픔에 잠긴 남몽도존의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운해성역은 8급 종파의 각 분종 간 시합이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1천 년에 한 번씩, 모든 8급 종파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이 시합은 운해성역의 성대한 의식이기도 했다.
시합 때가 되면 각 분종은 주종으로 가 새로운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우승을 거둔 분종은 포상과 관심을 받게 된다. 게다가 그중 우수한 자는 주종의 제자가 될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패한 자들은 다음 시합이 있을 때까지 1천 년간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머무르게 되고 연달아 성적이 좋지 않으면 주종으로부터 버림받기도 했다.
버림받은 분종은 해산되고 그 분종에 속한 제자들은 다른 분종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대신 하나의 분종이 해산되면 주종에서는 제자들을 선발해 새로운 분종을 조직함으로써 그 규모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귀원종은 아주 오랫동안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번 시합이 그들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다. 만약 이번에도 형편없는 성적을 낸다면 해산될 것이 분명했다. 견디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그대로 소멸될 테니까. 귀원종은 어쨌든 분종에 불과했다.
이런 잔혹한 방식 덕에 8급 성역 종파의 실력은 갈수록 높아졌다. 그러다가 대부분의 분종이 충분히 강해진다면 그 8급 종파는 신종의 은혜를 입어 9급 종파로 성장하게 될 터였다.
소문에 의하면 당시의 파천종과 귀종도 이런 방식으로 9급 성역에 들어갔다고 했다.
난 유금표다!
8급 성역 종파는 다섯 개로 각각 무극종(無極宗), 영풍파(影風派), 홍도종(虹途宗), 응천종(應天宗), 그리고 적혼도(寂魂道)였다.
귀원종과 자도종은 8급 무극종에 속한 분종이었다.
이 성스러운 시합은 일단 성역의 계급에 따라 나눠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이루어지는 과정은 4급에서 7급까지의 성역에서 각각 가장 강한 분종을 하나씩 선발하는 것이었다.
물론 계급을 초월해서 도전해도 상관없었다. 예컨대 1천 년 전 자도종에서는 6급 성역에서 가장 강한 분종에 도전했다.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면서 8급 무극종의 관심을 받은 바 있었다.
모든 8급 종파의 분종 시합에는 9급 성역 사람들이 참관하는데 이들은 시합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자가 있으면 곧장 그를 영입하기도 했다. 8급 종파에서는 이런 요구를 거절할 자격이 없었다. 허나 이렇게 9급 성역 사람의 눈에 드는 사람은 극히 희박해, 최근 1만 년간 총 세 명에 불과했다.
한 종파 내의 시합이 끝나면 여러 분종 제자 중 가장 강한 세 명이 선발되는데 이들은 나머지 네 개의 8급 종파에서 선발된 자들과 본선을 벌인다. 이 시합은 매우 중요해 9급 성역의 엄격한 심사 아래 진행되며, 각 8급 종파 간의 실력을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최종 우승한 8급 종파가 1만 년간 그 성적을 유지한다면 9급 성역 종파로 거듭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그만큼 중요한 시합이기에 각 8급 종파에서는 일찍부터 준비에 나섰고 덕분에 8급 종파 간의 시합에 나갈 세 명의 제자는 거의 미리 내정되어 있었다.
이들은 주종에 속하지 않아도 주종의 핵심 제자와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았다. 심지어 주종 사람이 직접 지도하고 기술을 전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파천종이 떠난 뒤 8급 성역에서는 총 열일곱 차례의 시합을 진행하며 승부를 내고 있었다.
1만 년 전부터 두각을 드러낸 적혼종은 아홉 번 연속 우승한 상태로 파천종이 떠난 이래 열여덟 번째 시합인 이번에 우승한다면 9급 종파가 될 터였다.
1천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시합을 앞둔 지금, 8급 성역은 달아올라 있었다. 이 시합은 앞으로 몇 개월이 지나야 끝날 텐데 그동안 8급 성역 곳곳에서는 시장이 열리고 거래가 진행될 터였다.
그런 곳이라면 사기꾼이 몰리게 되어 있다. 그리고 개중 시합 기간만 되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이가 하나 있었다. 시합 때마다 나타나 수많은 이들을 등쳐먹는 그자는 매번 이름을 바꾸었다. 그에게 사기를 당한 종파는 체면 때문에 그 사실을 발설하지도 못했다.
그가 주로 목표로 삼는 것은 귀원종처럼 해산을 코앞에 두고 있으면서 시합에서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는, 세력이 약한 곳이었다. 그런 종파는 시합 이후 해산되는 관계로 뒤를 캐거나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천강종(天罡宗)은 5급 성역 내의 약소 종파였다. 8급 응천종을 주종으로 둔 이곳은 이번 시합을 앞두고 걱정에 휩싸였다. 귀원종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시합 때마다 거의 꼴찌를 도맡아 해온 까닭에 이번에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해산하게 될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한 달 후면 분종의 시합이 열리는군. 허나 매번 우리 천강종이 꼴찌를 도맡아 했으니⋯⋯ 휴우.”
천강종 대전에 앉은 세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종파가 해산돼 다른 분종으로 보내지면 지위는 한참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이때부터는 다른 이들의 비웃음과 치욕 속에서 평생을 살게 될 터였다.
“나머지 세 분종이 분명 우리보다 훨씬 강하니 우리에게 희망은…”
한 노인이 씁쓸하게 말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한⋯⋯ 어렵겠지.”
다른 노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받더니 가라앉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달 뒤 이곳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
그때, 대전의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돌연 하늘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세 노인은 동시에 고개를 쳐들었다.
옥패가 하나 날아들더니 펑 하고 터지면서 천강종을 보호하고 있는 진을 파괴했다. 이어서 대전의 지붕마저 뚫고 들어와 세 노인의 중앙에 이르렀다.
옥패에서는 매우 강력한 기운 한 줄기가 발산되어 대전을 가득 채웠고 눈 깜짝할 사이 천강종을 전부 뒤덮었다. 이에 천강종이 자리한 대륙은 진동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세 노인은 표정이 급변해 벌떡 일어나더니 멍하니 전방의 옥패를 바라보았다. 옥패에서 나오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기운으로부터 그들은 쇄열기 수준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고 충격에 심신이 흔들렸다.
그때, 오만한 목소리가 옥패로부터 흘러나왔다.
“축윤명, 천해(天海) 대륙에서 태어나 일곱 살이 되던 해부터 천강종에서 수련을 시작. 2백 살에는 결단기에 이르고 6백 살이 넘어 원영기에 이르렀으며, 올해 규열기 초기에 이르러 천강종의 종주가 되었지. 나종강, 천해 대륙에서 태어난 나해도의 아들. 대량의 단약과 부단한 수련에 힘입어 억지로나마 규열기 초기에 이르렀다. 주신, 천해 대륙이 아닌 주무 대륙 출신. 양의의 경계에 이르러 735년째 제자리걸음 중. 내 말에 조금의거짓이라도 있더냐?”
“선배님의 모든 말씀이 정확하십니다. 선배님은 누구십니까?”
자신조차 잊고 있었던 내용까지 목소리에서 흘러나오자 세 노인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역시 쇄열기 수준에서 느껴지는 압박이 훨씬 충격적이었다.
“나는 유금표다! 금표자라는 별칭으로 불리지!”
세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본 이름은 아니었지만 옥패 하나만으로 쇄열기 수준의 기운을 이토록 짙게 풍길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대에게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선배님께서는 이곳에 오신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축윤명이 허리를 굽히며 물었다.
“큰 위기를 눈앞에 두고도 모르고 있구나! 사흘 전, 누군가가 나를 찾아와 원정 6만 개를 내놓을 테니 너희 셋의 숨을 거두어 달라 했다!”
그 말에 세 노인의 표정이 급변했다.
“허나 난 천강종과 아무런 원한도 없다. 허나 원정과 단약이 필요하니 별수가 없지 않겠느냐.”
점점 음침해지는 목소리와 옥패 안에서 흘러나오는 쇄열기 수준의 기운이 더해지자 세 사람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서, 선배님⋯⋯.”
“결코 원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원정 6만 개라면 내게도 꽤나 도움이 될 터라 어쩔 수 없구나. 물론 너희들이 그 이상을 내게 줄 수 있다면 그 의뢰를 무시할 수 있지. 아니, 어쩌면 너희를 도울 수 있을지도…”
“하, 하지만… 원정 6만 개라니⋯⋯.”
무언가 이상한 상황임에 분명했지만 두려움에 휩싸인 세 사람은 아무런 의심조차 갖지 못했다.
“저희에게는 그렇게 많은 원정이 없습니다만⋯⋯.”
“시간이 없다. 딱 1각의 시간을 주마. 내 제안을 거절한다면 어쩔 수 없다.”
★ ★ ★
같은 시각, 운해 5급 성역 아주 깊은 곳의 어느 황량한 대륙에서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대지가 진동하며 수많은 균열이 나타났고 뒤이어 백발 인영이 땅을 뚫고 솟구쳐 올라왔다.
“우웩!”
바닥으로 떨어진 한제는 창백한 얼굴로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하지만 그는 곧장 신식을 펼쳐 황량한 대륙과 칠채계를 잇는 균열을 단단히 봉했다.
잠시 숨을 고른 한제는 기이한 눈으로 손목에 걸린 팔찌를 바라보았다. 남색이었던 팔찌는 어느새 비취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참 뒤 고개를 든 한제는 운해성역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돌아왔다!”
이 황량한 대륙은 구석진 곳에 있어 찾아오는 이가 매우 적었다. 게다가 주종 시합을 앞둔 시점이라 찾아올 사람은 더더욱 없을 터였다.
칠채계에서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 한제는 문득 감개무량해졌다.
“갈 때는 일곱 명이었는데 돌아온 것은 나 하나구나. 게다가 그때는 정열기 초기였지만 지금은⋯⋯.”
한제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두 눈은 빛났다.
“쇄열기에 반쯤 발을 들였지!”
100여 년간 창송자의 저물공간에서 얻은 법보들과 대폭 높아진 수준, 흡혈마수 탈변까지 얻은 것도 많았다. 게다가 세월금은 물론 신비로운 사슴 뼈에 꽂혀 있던 두 자루 단검까지 얻었다. 눈 깜짝할 사이 지난 것 같은 1백여 년 사이에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세상일이란 무상하여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철검이 두 동강 나고 남몽도존과의 싸움으로 수정검과 도끼를 잃었지. 고신의 솥도 파괴되었다. 게다가… 본래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여섯 번째 반점이 소멸했다.”
작게 한숨을 내쉬던 그가 중얼거렸다.
“허나 경지로 이루어진 규칙의 반점은 남아 있어. 무너진 여섯 번째 반점은 고신의 두 번째 손을 잘 넘기면 회복할 수 있을 터. 어쨌든 한 번 이른 적 있던 수준을 회복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우니까.”
득실을 따지던 한제는 이득이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저물공간에서 거의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원신 두 개를 꺼냈다. 계외 청년들로 그들의 미간에는 각각 번개와 화염 낙인이 찍혀 있었다.
한제는 두 원신의 정수리에 오른손을 얹고 그들의 기억을 억지로 헤집었다. 두 원신은 몸을 덜덜 떨면서 참혹한 비명을 내질렀고 점점 허약해지다가 결국 펑 하고 무너져 내렸다. 한제는 무너진 원신을 흡수해 상처를 치료했다.
칠채계 안에서 초승달 낙인 청년의 원신을 훑은 데 이어 방금 두 청년의 기억까지 살피면서 한제는 계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
“태고의 성신⋯⋯ 태고 5존!”
생각을 정리한 한제는 단약들을 꺼내 하나씩 삼키며 눈을 감고 호흡했다. 우주의 원력이 체내로 몰려들었다.
상처를 치료하는 와중에도 신식을 펼쳐 어떤 동정이라도 느껴진다면 곧장 반격할 수 있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사흘 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전광과 같은 눈빛으로 운해성역을 꿰뚫어볼 듯 고개를 들었다.
육신의 부상이 다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완전히 아물 터였다. 허나 원신의 부상은 제법 심각해 짧은 시간에 완전히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원신에서는 시종일관 통증이 느껴졌다. 남몽도존의 손바닥이 발휘한 힘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정도였다.
“그게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자의 실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