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73
한제가 두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내가 그를 뛰어넘을 것이다!”
이어서 손목의 팔찌를 잠시 바라보던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쉰 뒤 그것을 풀어 저물공간에 넣었다.
뒤이어 오른손을 휘두른 그는 저물공간에서 세 개의 원신을 꺼냈다.
첫 번째 원신은 진천군의 것이었다. 한제는 일찍이 그에게 칠채계를 나가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약속은 지킨 셈이지만 진천군의 육신은 사라졌고 원신도 반 토막 난 데다가 매우 흐릿했다. 훅 하고 바람만 불어도 그대로 흩어져 사라질 것 같았다.
한제는 신식을 진천군의 흐릿한 원신으로 천천히 뻗었다.
“진 도우, 우리는 칠채계에서 빠져나왔네.”
진천군의 원신 안으로 넣은 신식을 통해 한제가 말했다.
“고맙네, 도우⋯⋯ 하나만 더⋯⋯ 부탁하겠네. 나를… 역수종으로⋯⋯ 스승님께 데려다주게.”
진천군의 원신은 어찌나 약해졌는지 몇 마디를 하는 것만으로도 더욱 흐릿해졌다.
“알겠네.”
한제는 약속한 뒤 진천군의 원신을 거두고 청의의 노부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두 눈을 꼭 감은 그녀의 원신도 흐릿했지만 금방 무너질 것 같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의 원신에는 한제의 봉인도 남아 있었다.
목표는 풍(風)의 선계
한제는 결인을 그려 노부인의 원신이 걸려 있던 봉인을 열었다.
잠시 후, 노부인은 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제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원신은 심각한 부상을 당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공법이 파괴된 탓에 수준이 대폭 떨어져 정열기 중기에 불과했다.
한제 또한 말없이 그저 냉랭한 눈으로 노부인의 원신을 응시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노부인은 씁쓸한 얼굴로 낮게 말했다.
“여 도우, 내 생사금을 줄 테니 살려주게. 믿지 못하겠다면 내 혼을 뒤져서 가져가도 좋아. 그저 날 놓아주기만 하면 되네. 우리 사이에 묵은 원한은 없지 않은가.”
노부인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그녀는 한제와 더 얽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 손바닥의 힘 아래에서 살아남기까지 한 상대의 힘에 이미 압도당한 상태였기에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저 목숨만 건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한제는 노부인의 원신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녀의 정수리에 손을 얹고 신식으로 안쪽을 훑어 생사금을 찾아냈다.
잠시 후, 한제는 손을 떼더니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강력한 바람이 불면서 노부인의 원신을 싣고 황량한 대륙으로부터 먼 우주로 떠밀려 날아갔다.
수만 리 밖으로 밀려난 후에야 바람은 흩어져 사라졌다. 노부인의 원신은 두려움에 바르르 떨다가 한제 쪽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멀어져갔다.
마지막 원신은 당연히 운혼자의 것이었다. 허나 지금은 그 원신을 회복시키기에 좋은 때가 아니었기에 다시 저물공간에 넣고는 칠채계에서 얻은 가짜 천역주들을 꺼냈다.
그중 하나를 집어 들고 신식을 주입한 한제는 예상했던 대로 칠채계를 떠난 구슬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쉽군.”
미간을 찌푸린 채 다시 구슬들을 거두려던 순간, 그는 돌연 흐릿한 예감이 들었다. 신식이 원신 안의 봉선인에 녹아들어 천운자의 전혼과 융합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 순간, 한제의 덤덤한 눈에서는 일곱 색채의 빛이 어렴풋이 번득였고 몸에서도 같은 색채의 빛이 발산되었다. 그리고 가짜 천역주 안에 심신을 펼친, 순간 구슬은 눈부신 일곱 색채의 빛을 뿜어내면서 활성화될 조짐을 보였다.
한제는 자신이 소환하기만 하면 구슬에 봉인된 역행자의 신통력을 구현해낼 수 있음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횡재했군!”
한제는 기쁨을 숨기지 않은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셔 천운자의 전혼과 떨어졌고 그러자 구슬은 원상태로 돌아왔다.
한제는 구슬을 거뒀다. 아직 부상을 완벽하게 회복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이 구슬들 덕분에 이전보다 더 강한 방어력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최대한 빨리 상처를 치료하고 풍의 선계로 가서 흡혈마수 무리를 얻는 것이다. 그래야 운해성역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을 테니까. 귀원종 종주의 시합은 몇 개월간 진행될 테니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풍의 선계가 우선이다.”
결정을 내린 한제는 엄청난 속도로 나아갔다.
1백 년 전 봉래에서 대량의 성도를 얻어 기억에 새긴 그는 안개로 뒤덮인 성역을 제집 안방처럼 능숙하게 가로질렀다. 이윽고 6급 성역과 교차 되는 가장자리를 넘은 한제는 곧장 그 안으로 들어섰다. 이어서 성도에 따라 깊은 곳으로 나아가 풍의 선계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 8급 성역으로 향했다.
부적을 활용한 그의 속도는 마치 첫 번째 천쇠를 겪은 수련자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였기에 근처의 수련자들은 재빨리 비켜섰다.
“엄청나군! 대체 누구지?”
한제의 엄청난 속도에 짙은 안개는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7급 성역은 반쯤 봉쇄된 상태라 외부인의 진입이 저지된다. 이 봉쇄선은 7급 성역 가장자리에 고리 형태로 드리워졌고 7급 성역 각 종파 수련자들이 돌아가며 보초를 선다.
‘6급 성역과는 전혀 다른 부분이지.’
5급 성역에서 8급 성역까지의 거리는 엄청나서 한제는 빙 돌아서 가기보다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그렇기에 누구도 방해하지 않도록 기량을 마음껏 드러내며 이동 중인 것이다.
덕분에 어떤 수련자도 그의 앞을 가로막지는 않았지만 몇몇 수준 높은 노인들은 멀찍이서 그를 쫓아왔다. 너무 빠른 속도에 힘겨워하면서도 끈질기게 따라오는 이유라면 이토록 엄청난 속도를 내는 수련자가 6급 성역에 대체 무슨 이유로 왔는지 궁금했기 때문일 것이다.
6급 성역을 가로지른 지 열흘가량 됐을 무렵, 한제는 7급 성역의 봉쇄선에 가까워졌다. 봉쇄선 밖은 6급 성역의 구역인데도 돌아다니는 수련자는 거의 없었다.
한제는 전방의 7급 성역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어스름한 빛은 거대한 진을 이룬 채 진입을 막고 있었다. 통행 옥패를 가지지 않은 이상 마음대로 봉쇄선을 넘을 수 없고 멋대로 봉쇄선을 뚫으려 했다가는 경계를 맡은 7급 종파 수련자들과 맞붙게 될 것이다.
한제에게는 당연히 옥패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속도를 늦추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높여 봉쇄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뒤를 쫓던 수십 명의 6급 성역 수련자들은 전방에서 은은하게 전해져오는 파동을 느꼈다. 그리고 한제가 7급 성역의 봉쇄선에 가까워지자 그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아마도 눈앞의 저 강력한 수련자는 상급 성역 수련자로 이제 자신의 성역으로 돌아가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상급 종파의 전송진을 이용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긴 했으나 문제 삼을 것은 없었다.
한데 추격을 포기하고 막 떠나려던 이들은 잠시 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여태 뒤쫓던 자가 7급 성역 봉쇄선을 코앞에 두고도 속도를 늦추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속도를 올렸기 때문이다.
“저자에게는 통행 옥패가 없는 거로군!”
“그러게! 며칠간 쫓아온 것이 헛수고가 아니었구나. 진에 난입하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오랜 세월, 감히 7급 성역을 도발한 자는 없었다.
한편, 7급 성역 봉쇄선을 경계하던 수련자들은 화들짝 놀라 재빨리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미처 막아설 틈도 없이 한제는 봉쇄선에 충돌했다.
콰르릉! 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안개마저 뒤로 밀려났다. 동시에 거대한 봉쇄선을 구성한 어스름한 빛이 격렬하게 번쩍이면서 쩌적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펑!
순식간에 진에는 수많은 균열이 일더니 엄청난 거미줄처럼 뻗어나갔다. 결국 진은 무너져 내렸고 산산조각 나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고도 한제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곧장 봉쇄선을 지키고 있던 7급 성역 수련자들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한제를 막아서려던 수련자들은 상대에게서 발산된, 심신을 격렬하게 흔들 정도의 기세에 반사적으로 물러났고 황망한 눈으로 저 멀리 사라져가는 수련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를 지켜보던 6급 성역 수련자들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그렇게 자랑하던 진이 깨졌으니 7급 성역의 체면도 말이 아니군!”
“그러게 말일세! 정말 통쾌하군! 아하하!”
수준이 높은 이들은 7급 성역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특히나 봉쇄선의 존재는 더욱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그 봉쇄선을 뚫어낸 사람이 있다니, 그 패기와 기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한제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이곳만 지나면 풍의 선계가 있는 8급 성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7급 성역은 역시 달랐다.
한제가 어느 대륙 근처를 지나치려던 순간, 쇄열기 수준의 기운 네 갈래가 튀어나오더니 신식을 뻗어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에서 온 도우이기에 우리 종파의 땅에 멋대로 난입한 것인가. 이러고도 무사히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록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고는 하나 네 명의 쇄열기 수련자로는 한제를 저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덤덤한 얼굴로 계속 나아가면서 오른손을 가볍게 뻗었다. 그러자 거대한 손바닥의 허상이 나타났다. 이 손바닥은 그가 지나던 대륙을 뒤덮고도 남을 만큼 거대했다.
손바닥의 허상이 나타난 순간, 사방에서 힘이 응집되었고 우주를 채운 안개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뒤이어 묵직한 위엄이 강림했고 손바닥은 곧장 네 갈래의 신식을 휩쓸었다.
“역령인!”
“신종의 수련자인가!”
네 갈래의 신식은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외치더니 곧장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손바닥은 엄청난 속도로 사방을 휩쓸며 그 신식들을 공격했다.
콰쾅!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거대한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급기야 대륙마저 진동하면서 수천 척 정도 밀려났다.
거대한 손바닥은 끊임없이 원력을 흡수하면서 점점 커졌고 그 안에서 발산되는 기운은 더욱 강력해졌다.
한제는 손바닥 뒤에 붙은 채 앞으로 나아갔다. 손바닥이 길을 뚫자 전방의 모든 것들이 길을 비켜섰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제가 떠난 뒤, 수천 척을 밀려난 대륙의 종파 동서남북 네 귀퉁이에 솟은 누각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네 노인은 피를 토해냈다. 이어서 그들은 충격과 공포에 몸을 떨며 벌써 한참 멀어져간 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 7급 성역을 휩쓸 만큼 강한 자야!”
“살기를 드러내지 않았기에 이 정도로 끝난 게지.”
네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며 애써 두려움을 참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무궁무진한 원력이 응집되면서 역령인은 계속해서 커졌다. 1백 년 전, 한제는 이 정도로 커진 역령인을 통제하지 못했다. 허나 지금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역령인 뒤에서 나아가던 한제의 전방에 조금씩 그늘이 지기 시작하더니 황량한 대륙이 하나 나타났다.
역령인은 곧장 그 대륙과 충돌했는데 이에 대륙은 바르르 진동하더니 반으로 갈라졌다.
역령인으로 길을 뚫기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났을 때, 한제는 8급 성역에 거의 이르러 있었다.
역령인은 사흘 전 이미 통제 범위를 넘어선 상태라 한제는 원력의 흡수를 중단시켰다.
그럼에도 쇄열기 수련자들조차 두려움에 떨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고 거대해진 상태였다. 그런 역령인이 나아가는 곳마다 안개는 뒤로 물러났다.
전방에 8급 성역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려 20여 일을 쉬지 않고 달려온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