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74
한제는 매우 피곤했지만 두 눈만큼은 번득였다. 쉼 없이 내달리면서도 끊임없이 단약을 이용해 부상을 회복한 터였다.
8급 성역과 7급 성역 사이에는 비록 봉쇄선은 없었지만 매우 빽빽하고 짙은 안개가 있었다.
그 짙은 안개 속에 10급 이상, 심지어 12급 흉수도 적지 않게 활개치고 있는 이곳은 운해성역 안에서도 특히 위험한 곳으로 분류되는 난수무계(亂獸霧界)였다.
‘계’라는 이름이 붙은 것만 보더라도 이곳이 얼마나 광활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보통의 수련자라면 혼자 들어왔다가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질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이곳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수련자는 드물었다. 그러니 신종이 어떻게 이 안개 속의 흉수들을 묶어두고 있는지는 의아할 정도였다.
흉수들은 시종일관 난수무계 안을 맴돌며 원력을 흡수했다. 마치 그들로 인해 난수무계로 진입하는 선이 하나 생겨난 것만 같았다.
난수무계 안에는 네 갈래의 길이 있는데 이 길들만이 그나마 안전한 편이었다. 8급 종파 제자들도 전송진을 사용할 수 없을 때는 가능한 한 그 길을 이용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이 네 갈래 길은 까마득한 옛날에 신종에서 뚫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특수한 방법으로 흉수가 이 길들은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길들에 대해 아는 것은 8급 성역 종파 제자나 안내 옥패를 가진 사람들뿐이었다. 그 외에는 8급 성역으로 들어가려면 무작정 안개 속으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안개층을 벗어나면 8급 성역으로 진입할 수 있을 터였다.
화오(火蜈)
어떻게든 살아남아 안개층을 벗어나면 8급 성역으로 진입할 수 있을 터였다.
난수무계의 세 번째 길을 네 명의 수련자가 질주하고 있었다.
선두의 노인은 흑백이 섞인 도포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은색에 가깝게 새어 있었다. 두 눈에서는 전광이 번득였는데 이에 전방의 안개들이 슬금슬금 물러났다.
노인의 온몸에서는 쇄열기 절정에 이른 기운이 맴돌았다. 세상의 규칙이 노인의 체내로 모여들었다.
뒤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은 이남일녀(二男一女)였다. 모두 나이는 많지 않아 보였고 수준은 정열기 정도였다.
그중 청순한 얼굴과 달리 도포로도 몸의 굴곡이 가려지지 않는 여자 수련자는 말 그대로 매혹적이었다. 그녀를 향한 두 사내의 눈빛은 타오르는 듯했다.
“스승님, 대체 어딜 가시는 건가요?”
여인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은 대답 없이 내달렸다. 그리고 한참 후, 난수무계의 깊은 곳에 이른 뒤에야 멈추더니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희는 우리 무극종의 핵심 제자들이다. 하지만 단약에만 의지해서는 천도를 깊게 깨닫기 힘들다. 하물며 세상의 규칙이야 말할 것도 없지. 천도는 죽음이 코앞에 닥친 위기에서 얻을 수 있는 법이다. 하여 이 스승이 너희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이곳에는 흉수가 아주 많다. 너희는 각자 흩어져 흉수들과의 사투를 통해 천천히 깨달음을 얻도록 해라!”
노인은 세 사람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말을 마치자마자 소매를 휘둘러 광풍을 일으켰다.
강력한 바람에 세 사람은 그대로 떠밀려 사방의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노인은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가부좌를 튼 채 신식을 펼쳐 제자들을 면밀하게 살폈다. 제자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지 않는 이상 도와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 ★ ★
난수무계 너머 7급 성역. 한제는 빠르게 날아드는 역령인 뒤를 따랐다. 그는 봉래 대륙에 있었을 때 이곳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여러 단서를 통해 한 갈래 길이 있는 곳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짐작에 불과했기에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을 우려가 있었다.
‘더구나 내 짐작대로 그곳에 길이 있다 하더라도 한참을 돌아서 가야 한다.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시간까지 지체할 이유는 없지.’
한제는 그 길을 포기하고 난수무계를 관통해 8급 성역에 진입할 생각이었다.
콰쾅!
역령인을 앞세운 한제는 곧장 8급 성역 가장자리의 난수무계에 들어섰고 마치 유성처럼 질주했다.
한데 이곳의 안개는 기이하게도 역령인은 피하면서도 한제에게는 길을 내주지 않았다.
역령인이 전진하며 울리는 소리에 평온하고 잠잠한 호수 같았던 난수무계에 대량의 파문이 일었다.
격렬하게 일렁이는 사방의 안개 속에서는 흉수들의 포효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한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고 속도도 그대로였다. 역령인을 앞세워 달리면서 신식을 넓게 펼친 그는 짙은 안개 속에 대량의 흉수가 숨어 있음을 똑똑히 느꼈다.
“크오오오!”
그때, 전방에서 안개를 밀어낼 정도의 포효와 함께 길이가 1천 척에 이르고 온몸에는 촉수가 달려 있는 거대한 지네가 나타났다.
한제는 단번에 지네가 쇄열기 중기 수련자에 맞먹는 11급 흉수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역령인의 존재를 알고도 감히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에 의아할 뿐이었다.
거대한 붉은 지네가 나타난 순간, 녀석의 포효가 천둥처럼 사방에 울려 퍼지면서 주위의 안개가 한없이 뒤로 밀려났다.
지네는 마치 깊은 원한이라도 있는 듯이 역령인을 노려보더니 거대한 몸을 휙 날렸다. 그 순간, 녀석의 몸에서 붉은 빛이 발산되더니 사방이 불바다가 되었다. 그 상태로 지네는 한제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한제는 지네와 다툴 시간이 없었다.
콰릉!
역령인과 충돌하려는 순간, 지네를 감싼 불바다는 한 줄기 화염 폭풍으로 응집되어 역령인을 휘감았다. 전진을 막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령인은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품은 상태였기에 화염 폭풍은 순식간에 밀려났고 상당 부분은 역령인에 닿은 순간 그대로 꺼져버렸다.
한제는 역령인 뒤에서 여유롭게 전진했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는 그렇게 지네의 곁을 휙 스쳐갔다.
이 모든 것은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지네는 그대로 한제를 보낼 마음이 없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다시 한 번 포효를 내지르더니 한제를 뒤쫓았는데 온몸에서는 다시 화염이 들끓었다.
그 순간, 저 멀리 안개 속에서 연이어 포효가 울려 퍼지더니 길이가 붉은 지네 여섯 마리가 여기저기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더 멀리서 또 한 번 엄청난 포효가 터져 나왔다. 다른 모든 포효를 제압할 정도로 거대한 이 포효에서는 12급 흉수 특유의 위엄이 담겨 있었다.
뒤이어 길이가 1만 척에 달하는 남색 지네가 짙은 안개 깊은 곳으로부터 엄청난 속도로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개마저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이 지네의 속도를 높여주었다.
한데 남색 지네가 포효한 순간, 멀지 않은 곳의 세 번째 길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도포 노인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12급 화오(火蜈)! 이 안개 속에 산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모습을 드러낸 적은 거의 없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녀석이 저리도 분노했단 말인가! 불길하군. 제자들이 화오를 맞닥뜨린다면… 위험하다!”
노인은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 안개 속으로 진입했다.
한편, 한제는 12급 흉수의 포효에 미간을 살짝 구겼다. 그는 이 지네들이 몰려든 이유는 녀석들이 역령인에 깊은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앞서 녀석들이 달려든 것은 저 12급 흉수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나? 재미있군.”
한제의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그는 저 지네들을 죽이지 않으면 더 많은 흉수들에게 자신의 위치가 드러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미 사방에서 들려오는 포효만으로도 충분히 귀에 거슬렸다.
“죽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한제는 방향을 휙 틀어 오른손으로 뒤를 쫓아오던 흉수를 가리켰다.
“세상 모든 불들에게 명하노니, 타올라라!”
한제의 음산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 순간, 흉수들의 몸에서 발산된 불바다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어서 바르르 진동하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네를 공격했다.
펑! 펑!
한제가 가리킨 지네의 체내에서는 뭔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더 짙은 화염의 힘이 폭발했다.
“캬아아!”
지네는 두려움에 물든 눈빛으로 몸부림을 쳤지만 이내 비참한 비명과 함께 내부에서부터 타올라 재가 되어 흩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한제가 한 일이라고는 손을 들어 뻗은 것뿐이었다.
그는 결과도 살피지 않고 곧장 몸을 돌려 역령인과 함께 다시 나아갔다.
저 멀리 1만 척 길이의 남색 지네는 더욱 짙은 원한이 담긴 눈으로 으르렁거렸고 온몸에서는 짙은 비린내가 풍겼다.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비록 내 몸이 완벽한 상태는 아니지만 제 아무리 12급 흉수라 해도 화염에 속해 있다면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다!”
한제의 눈에서 살기가 번득였다.
그때, 오른편의 안개에서 붉은 빛이 발산되더니 불바다가 훅 퍼져 나오며 한제에게 돌진했다.
그 안에는 길이가 1천 척에 달하는 지네가 흉악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고 있었다.
“흥! 시간이 없어 살려주려 했더니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한제는 차게 코웃음을 치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를 향해 돌진해오던 불바다는 순간 우뚝 멈춰 섰고 곧장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와 동시에 지네의 사방에 퍼져 있던 화염들이 지네에게 달려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화염구(火焰球)를 형성했다.
이번 지네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불살라졌다. 다만 이번 화염은 붉은색 안에 약간의 남색이 섞여 있었다.
화염구가 하늘로 솟구친 순간, 저 멀리서 두 갈래의 불바다가 달려들었다. 두 마리의 지네가 불바다를 발산하며 돌진해오는 것이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싸움을 피하려던 한제는 이럴 바에는 최대한 빨리 죽여 버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경지로 이루어진 규칙의 반점이 미간에 나타났다.
순간 그의 몸에서 남색 화염이 피어오르며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쾅!
우렁찬 소리와 함께 파란 빛이 발산되는가 싶더니 하늘을 뒤덮을 듯한 불바다가 피어올랐다. 안개 속에서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뒤이어 또 다른 방향에서 푸른 화염이 발산돼 거대한 화염구를 이루더니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잠시 후, 안개 속에서 걸어 나온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몸을 훌쩍 날려 곧장 역령인의 뒤를 따라 전진했다.
이 전투에 겁을 집어먹은 것인지, 그 후로는 어떤 흉수도 감히 그의 앞을 막아서지 않았다.
단 한 마리, 1만 척의 남색 지네만이 더욱 분노한 듯 한제를 쫓아왔다.
“쿠오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