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75
전속력으로 뒤를 쫓고 있음에도 점점 거리가 벌어지자 남색 지네가 포효를 내질렀다.
동시에 짙은 남색 화염을 발산해 몸을 감쌌고 녀석의 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타닥 하는 소리가 체내에서 흘러나왔고 그 거대한 몸에서 얇은 남색 선이 반짝이면서 늘어났다.
예리한 칼날 같은 그것은 지네의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이어지는 한 줄기 균열을 만들어냈다.
균열에서 남색 빛이 번득이더니 8천 척에 달하는 지네가 튀어나왔다. 녀석은 좀 전의 지네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속도로 한제를 뒤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지네의 몸에도 균열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6천 척에 이르는 지네가 튀어나왔다. 이번에도 속도는 몇 배나 빨라졌다.
이를 몇 번 반복하면서 지네는 점점 작아졌지만 동시에 속도는 증폭되었다.
지네가 자신을 쫓거나 말거나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던 한제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더 많은 흉수를 끌어들일 테고 그러면 몸을 완전히 회복하기 더욱 힘들어질 터였다.
그렇게 나흘을 내달린 끝에 한제는 난수무계의 가장자리에 이르렀다. 이제 저곳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8급 성역이다.
한데 바로 그때, 한제는 몸을 홱 돌려 역령인을 가리켰다. 그러자 역령인이 그에게로 끌려왔다.
한제는 곧장 결인을 그려 역령인을 두드렸다. 이에 거대한 손바닥이 바르르 진동했고 더 이상의 원력 흡수를 막기 위해 한제가 배치한 봉인이 파괴되었다. 동시에 역령인은 다시 사방의 원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저 앞의 안개에서 남색 빛과 함께 상상을 초월하는 열기가 훅 퍼지면서 반경 수십만 척을 뒤덮었다.
“쿠오오오!”
분노에 찬 포효에 주위의 안개는 빠르게 밀려났다. 그리고 이내 3천여 척에 이르는 지네가 남색 불바다에 휩싸인 채 나타났다.
허나 한제는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그의 앞으로 돌아온 역령인은 원력을 흡수하면서 지네를 향해 돌진했다.
콰르릉!
역령인은 주위의 안개에 회오리가 형성될 만큼 빠른 속도로 돌진해 지네와 충돌했다.
“캬오오!”
지네는 괴성을 내지르며 악에 받친 눈으로 거대한 손바닥을 노려보며 남색 화염으로 뒤덮인 몸을 날렸다.
콰쾅!
남색 화염과 역령인의 충돌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때, 지네는 번개처럼 방향을 틀어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보는 듯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지네를 노려보았다. 그의 미간에서 규칙의 반점이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짙은 남색 불바다를 발산했다. 지네의 몸에서 발산된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진한 남색 화염이었다.
지네는 순간 멈칫했지만 물러나기는커녕 온몸에서 발산하던 남색 화염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며 돌진했다.
한제는 가볍게 손짓을 했다. 화염 계열의 존재에게는 이 손짓 한 번이면 충분했다. 신통력을 발휘할 필요도 없었다.
그 손짓에 미간에서 뿜어져 나온 짙은 남색 불바다가 응집되더니 지네에게로 달려들었다. 돌진하는 동안 불바다 안에서는 남색 빛이 번쩍거리면서 거대한 남색 주작이 되었다.
“캬오오!”
지네는 낮게 포효하며 독사처럼 상반신을 들어 올렸다. 녀석의 몸에서 발산되는 옅은 남색 화염은 한데 응집되더니 순식간에 퍼져 나가면서 주작을 공격했다.
바람의 움직임
콰쾅!
난수무계가 뒤흔들렸다.
이 소동을 눈치챈 수많은 12급 흉수들이 이곳으로 신식을 뻗쳤다. 그 강력한 기운에 한제의 심신이 바르르 진동했다.
콰르릉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두 갈래의 화염이 충돌한 순간, 주작은 분노한 얼굴로 울부짖으며 빠른 속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녀석이 체내로 돌아온 순간,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렸다.
충돌과 동시에 불바다가 무너져 내리면서 지네 역시 밀려났다. 녀석은 몸 절반이 핏물로 변해 흘러내리는 상태로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한편, 무극종의 노인은 경악한 듯 두 눈을 홉떴다.
“저자는 누구란 말인가! 화오보다 강력한 화염의 힘을 가진 데다가 수준도 매우 높다! 부상을 입은 상태가 아니었다면 나조차 저자와 싸워 이긴다고 자신할 수 없을 터! 저 역령인은 신종의 것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어딘가 다르다. 그러니 신종 사람은 아닐 게야.”
노인의 곁에 있던 세 제자는 더욱 놀란 상태였다. 특히 아름다운 여자 수련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반짝이는 눈으로 한제가 달아난 방향을 쫓았다.
무극종 노인은 소매를 휘둘러 세 명의 제자와 함께 곧장 길을 따라 이동했다.
‘이곳은 분노한 12급 흉수들의 기운에 짓눌려 있다. 더 이상 제자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8급 성역에 진입하자마자 한제는 고개를 돌려 뿌듯한 눈으로 난수무계를 바라보았다.
그가 남색 지네를 끝까지 뒤쫓지 않은 것은 방금 그 안에서 13급 흉수의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그에게는 풍(風)의 선계에 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난수무계가 괜히 유명한 게 아니었군!”
한제는 8급 성역에 진입한 후로는 서두르지 않았다. 8급 성역에는 수준 높은 강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 안개 속에서 지네와의 교전을 몰래 지켜본 자들 중에도 그런 이가 있었다.
한제는 발산하던 기운을 거두고 속도를 약간 늦춘 채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감췄다.
그 상태로 여러 종파가 있는 곳들을 피해서 빙 둘러 풍의 선계가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며칠을 이동했을 때, 한제는 풍의 선계로 이어지는 입구에 이르렀다. 5급 성역에서 떠나온 지 거의 한 달이 지난 참이었다.
운해성역과 이어진 풍의 선계는 심각하게 파괴되었지만 흡혈마수들 때문에 그 잔해는 거의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풍의 선계 입구에는 거대한 균열이 있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그 안을 빽빽하게 채운 흡혈마수들 안에서 살아남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당연히 흡혈마수 무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흡혈마수를 손에 넣기 위해 풍의 선계에 들어갈 때에도 강력한 수련자를 중심으로 여럿이 힘을 합쳐야만 했다. 이때도 대부분 선계의 가장자리에 머물렀다.
풍의 선계 입구인 균열 바깥에는 강력하고 포악한 흉수들이 가끔 나타나는데 그 체내에 깃든 희귀한 선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정으로 응결된다. 이를 손에 넣는 것도 수련자들에게는 큰 소득이었다.
지금도 균열 밖에 열 명이 넘는 수련자들이 모여 있었다. 조금 더 많은 수가 모이면 들어갈 계획인 듯했다.
그때 저 멀리서 한제가 안개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백발 덕에 그는 나타난 순간 모든 수련자들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 ★ ★
같은 시각, 5급 성역 막라 대륙 귀원종. 여연비는 산봉우리에 서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긴 흑발을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마치 선녀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처연한 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분종끼리의 시합인 주종의 의식이 코앞에 닥쳤다. 귀원종의 참가자는 모두 준비를 마치고 전송진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여연비가 항상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을 기다렸다. 허나 기다림이 10년, 50년, 100년이 되도록 그 사람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잠시 후, 땅이 가볍게 진동하면서 눈부신 빛이 귀원종 안에서 발산되더니 사방의 원력이 응집되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여연비의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채 슬픈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반드시 오시겠다고⋯⋯.”
“스승님, 주종이 전송진을 열었습니다. 사숙께서 스승님을 찾으십니다. 이제 가야 합니다.”
뒤에서 허윤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여연비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하늘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어느덧 얼굴을 뒤덮었던 처연한 빛은 사라지고 대신 굳은 의지가 드러났다.
“이번 여정이 끝나면 너와 나는 더 이상 사제지간이 아닐 것이다. 네 자질은 매우 뛰어나니 어느 분종으로 가든 핵심 제자가 될 수 있을 거야.”
“스승님!”
허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더 이야기할 것 없다. 나는 이미 뜻을 정했다.”
여연비는 제자를 한참 바라보다가 산봉우리 아래로 내려갔다.
세 사형은 전송진 앞에 서 있었다. 묵직한 압박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처럼 착잡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내 진이 활성화되면서 그들은 8급 성역의 주종 무극종으로 전송됐다. 그 순간, 여연비는 보석 같은 눈물을 흘렸다.
‘당신이 돌아올 때쯤 우리 귀원종은 이미 사라졌겠지요.’
★ ★ ★
9급 성역 요종 밖의 기이한 균열을 둘러싼 전장은 밀물처럼 몰려들던 흉수들이 주춤하면서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다. 덕분에 운해성역 수련자들은 짧게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의 이목이 이천매에게 집중되었다. 칼에 묻은 흉수의 피를 닦아내는 그녀는 매우 피곤해 보였으나 그럼에도 침착했다.
그녀는 말없이 전장에서 벗어나 요종의 분종으로 향했다.
“세 달 정도 자리를 비우려 합니다.”
이천매는 대전 가장 깊은 곳에 가부좌를 튼 흐릿한 인영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단호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대전 안은 고요했다. 흐릿한 인영의 주인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 안에서 두 갈래의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와 이천매에게 닿았다.
그 매서운 눈빛 아래 평온함을 유지할 자는 많지 않았으나 이천매는 여전히 침착했다. 인영의 주인도 그런 태도의 이천매에 적잖이 감탄했다.
“안 된다!”
“허가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알리러 온 것입니다.”
이천매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 밖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