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78
전체적으로 남색을 띤 이 흡혈마수는 정열기 초기 수준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무리를 이루지 않고 혼자 이동하던 녀석은 한제를 태운 금혈마수가 쉭 소리를 내자 흠칫 놀라 움직임을 멈추었다. 뒤이어 한제와 금혈마수를 발견한 녀석은 혼란스러워 하는 듯했다.
그때, 한제를 태운 금혈마수가 포효하면서 한 줄기의 옅은 금빛이 되어 달려들더니 거대한 주둥이로 남혈마수를 후려쳤다.
“캬오오!”
남혈마수는 비명과 함께 1천 척이나 떠밀린 뒤에야 겨우 멈춰 섰다. 그러더니 방향을 홱 틀어 먼 곳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쿠오오오!”
금혈마수가 포효했다. 순간 사방의 붉은 흡혈마수들이 바르르 떨었고 도망치던 남혈마수는 또다시 움찔 멈추었다.
강력한 위압감에 갈등하는 듯했다. 그리고 녀석은 잠시 후, 천천히 뒤로 돌더니 금혈마수를 향해 날아왔다. 순종적인 태도였다.
한제는 두 눈을 번득이며 금혈마수의 등에서 내려 눈 깜짝할 사이 남혈마수의 곁에 이르렀다.
녀석은 곧장 서늘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봤다.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대상은 금혈마수지 한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녀석이 거대한 주둥이에서 서늘한 빛을 번득이며 달려든 찰나, 한제는 차게 웃으며 오른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순간 남혈마수는 우뚝 멈춰 서더니 꼼짝도 하지 못했다.
한제는 녀석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고 신식을 주입해 기억을 훑어보았다.
한참 뒤, 손을 뗀 한제는 생각에 잠겼다.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 남혈마수는 포악한 눈빛으로 한제를 공격하려 했지만 금혈마수가 노려보자 곧장 굴종하며 흡혈마수 무리에 섞여들었다.
그러나 붉은 흡혈마수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피했다.
“홀로 떨어져 나온 데다가 남혈마수 중에는 약한 축인데도 이렇게 통제하기 힘들다니. 무리를 지어 있으면 어찌 한다? 더구나 저 녀석의 기억에 따르면 저쪽에는 분명 금혈마수가 있다. 하긴, 풍의 선계는 넓은 곳이니 금혈마수는 비록 많지는 않더라도 몇 마리는 있겠지. 어쨌든 녀석들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 무리들 또한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터.”
한제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고는 이를 악물고 선계의 조각으로 향했다. 흡혈마수들이 금혈마수를 따라 한제를 쫓았다.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미간을 두드렸다.
바르르 떨던 그의 미간에서는 경지로 이루어진 규칙의 반점이 빛을 발하면서 회전하더니 튀어나와 금혈마수에게로 떨어졌다. 이어서 한제의 원신이 흘러나와 규칙의 반점에 녹아들었다.
“캬오오오!”
금혈마수는 바르르 몸을 떨었고 두 눈에서 밝은 빛을 뿜어내며 낮게 포효했다.
동시에 녀석의 몸에 흐르던 옅은 금색 빛이 사라지더니 옅은 남색 빛으로 뒤덮였다.
심지어 금혈마수로서의 위압감 역시 한제의 원신으로 봉인되어 이제 녀석은 남혈마수처럼 보였다.
잠시 후, 금혈마수는 길게 울며 곧장 날아올라서는 상공을 한 바퀴 선회했다. 한제의 육신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린 녀석은 남색 빛 한 줄기가 되어 먼 곳으로 날아갔다.
녀석은 떠났지만 2천 마리에 달하는 흡혈마수들은 왕이 내린 명령을 굳게 지켰다.
이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한제의 육신만큼은 지킬 것이다.
특히 남혈마수는 포악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면서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보호했다.
한편, 금혈마수는 남색 빛이 되어 풍의 선계 안을 질주했다. 녀석은 수시로 길게 울었으나, 한제의 봉인으로 인해 왕의 위엄은 드러나지 않았다.
몇 시진이나 날아가자 전방에서 백 마리가 넘는 남혈마수들이 다가왔다.
하나같이 포악한 모습이었고 거대한 주둥이에서는 서늘한 빛이 짙게 흘렀다.
심지어 개중에는 짙은 남색으로 번들거리는 녀석도 한 마리 있었다. 정열기 중기에 달하는 기운을 발산하는 녀석이었다.
흡혈마수 무리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한제 곁을 지나갔지만 그 녀석만큼은 의아한 듯 눈을 돌렸다.
한제의 통제에 따라 금혈마수는 계속해서 나아갔고 수백 마리의 남혈마수 무리를 세 번이나 마주쳤다.
“과연 서사조차 쫓겨난 곳답구나. 저런 강력한 녀석들이 수까지 압도적이야! 게다가 아직 가장자리일 뿐이지 않은가. 중심부에는 백혈마수보다 강력한 놈들도 있을 테고 그 수도 어마어마하겠지. 천쇠를 겪은 수련자라 해도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가기는 힘들 거야!”
실제로 이곳에서 수련자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곳은 흡혈마수의 세상인 셈이었다.
금혈마수의 앞에 어느덧 선계의 조각인 이 대륙 가장자리의 거대한 산맥이 들어왔다. 하늘을 뚫을 듯 높이 솟은 산봉우리에서는 장엄함이 느껴졌다.
“여기다!”
원신을 거두어 규칙의 반점에 드리운 한제는 주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 산맥 바깥쪽에서는 흡혈마수 수천 마리가 맴돌고 있었다. 붉은 흡혈마수들은 수백 마리 정도 되는 남혈마수들을 마주칠 때마다 곧장 방향을 틀거나 길을 비켜주었다.
더 깊은 곳, 하늘에 가까운 산맥에는 두 마리 백혈마수도 있었다. 이들은 산맥 절벽에 앉아 거대하고 긴 주둥이를 바위에 갈아댔다. 슥, 슥 하는 소리는 퍽 날카롭고 자극적이었다.
금혈마수는 산맥을 향해 날아갔다. 녀석이 접근하자 산맥 근처를 맴돌던 붉은 흡혈마수들의 눈빛이 음산하게 변했으나, 이내 길을 비켜주었다.
하지만 산맥 부근의 수백 마리 남혈마수들은 거친 눈으로 위장한 금혈마수를 노려보았다. 자기 무리 소속이 아님을 단박에 알아챈 듯 가감 없이 적의를 드러냈고 몇몇은 공격적으로 달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녀석들이 가까이 다가온 순간, 금혈마수는 살기를 발산하며 거대한 주둥이를 휘둘러 가장 가까이 있던 남혈마수를 곧장 찔렀다.
“캬오오오!”
공격당한 흡혈마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돌진하려 했지만 그 순간 금혈마수에게 응집되어 있던 규칙의 반점이 빠른 속도로 번득였다. 동시에 위압감을 발산해 금혈마수의 육신을 뒤덮었다.
이 변고에 반격하려던 남혈마수는 곧장 우뚝 멈춰 섰다.
그 순간, 금혈마수는 예리한 주둥이를 다시 상대의 몸 깊이 찔러 넣고 힘차게 빨아들였다. 그러자 남혈마수는 몸을 바르르 떨었고 온몸의 정수와 피를 흡수당해 잔해만 남았다.
“캬아아아!”
함께 돌진했던 나머지 세 마리가 더욱 격렬하게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금혈마수 역시 피로 범벅이 된 주둥이를 힘차게 휘두르며 맞서더니 곧장 또 한 마리의 남혈마수와 뒤얽혔다.
쾅!
굉음과 함께 금혈마수와 충돌한 남혈마수는 뒤로 밀려났다. 금혈마수는 녀석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주둥이를 박아 빨아들이더니 곧장 다음 흡혈마수에게로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네 마리의 흡혈마수를 처치한 금혈마수는 냉랭한 눈으로 수백 마리의 남혈마수를 노려보았다.
산맥 아래쪽의 바위 뒤. 송낙해는 온몸의 기운을 꽁꽁 감춘 채 조심스레 숨어 있었다.
그는 적혼도의 장로임에도 8급 성역의 의식에 참여하지 않았고 벌써 세 달째 이곳에 머무는 중이었다.
송낙해는 자신이 흡혈마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의 목표는 흡혈마수의 왕 한 마리를 잡아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는 것이었다. 금혈마수를 잡기란 매우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접근
송낙해는 세 달째 흡혈마수들을 관찰했다. 그의 예측대로라면 저 무리 중 왕이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 그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보름 전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두 마리의 백혈마수 때문이다. 그로서는 처음 보는 존재였지만 녀석들로부터 쇄열기 수련자에 상당하는 기운과 위엄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여정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온 그는 성공 가능성이 3할은 된다고 여겼다.
만약 검증에 성공한다면 8급 성역에서 송낙해라는 이름은 유명해질 것이고 수준 역시 폭발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어쩌면 9급 성역에서 자신을 초빙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런 달콤한 미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송낙해는 가슴이 뛰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온 것도 그런 이유였지만 저 두 마리 백혈마수 때문에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 상태였다.
송낙해는 두 마리의 백혈마수가 자신의 존재를 어렴풋이 파악했으리라고 예측했지만 녀석들은 그저 산맥 위에 자리를 잡을 뿐이었다.
허나 자신이 지금의 위치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곧장 발각될 터였다.
옴짝달싹하지 못한 지난 보름 동안은 송낙해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적혼도의 장로라고는 해도 말단에 불과해 그의 수준은 아직 쇄열기 중기 수준이었다.
한데 그가 절망에 물들어가던 그때, 저 멀리서 한 마리 남혈마수가 나타났다. 그리고 뒤이어 펼쳐진 광경에 그는 대경실색했다.
‘맙소사! 눈 깜짝할 사이 같은 등급의 흡혈마수 네 마리를 처리하다니! 거칠고 포악한 놈이로군!’
동시에 송낙해는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한편, 그때 금혈마수가 내지른 포효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산맥 위에 앉아 있던 두 백혈마수 중 하나가 서늘한 눈으로 금혈마수를 훑어보더니 날카롭게 울었다.
“키야아아아!”
이어서 녀석은 한 줄기 하얀 빛이 되어 남혈마수 무리에 뛰어들었다. 이에 남혈마수들은 분분히 흩어졌고 백혈마수는 곧장 금혈마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쾅!
녀석이 채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땅을 뒤흔들 듯한 포효가 금혈마수와 충돌했다. 동시에 금혈마수는 수백 척 정도 물러났다.
“크오오오!”
겨우 멈춰 선 금혈마수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금혈마수를 뒤로 밀어낸 백혈마수는 허공에서 살기를 번득이다가 다시 달려들었다. 한 줄기 번개 같은 모습이었다.
두 마리 흡혈마수가 충돌한 순간, 금혈마수에게 찍힌 규칙의 반점이 맹렬하게 회전하면서 어마어마한 힘을 발산했다.
그 엄청난 힘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주위의 흡혈마수들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백혈마수는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뒤로 나가떨어졌다.
날카로운 눈으로 음산한 빛을 드러낸 녀석이 날개를 퍼덕이자 온몸의 털이 바짝 곤두섰다. 그러자 전보다 덩치가 훨씬 커진 것처럼 보였다.
“캬오오!”
날카롭게 우는 소리를 내며 날아오른 녀석은 곧장 금혈마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금혈마수는 주눅 들지 않고 곧장 마주 돌진했다.
콰쾅! 쾅!
요란한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면서 두 흡혈마수의 목숨을 건 결투가 이어졌다.
짧은 순간 두 흡혈마수는 벌써 수십 번이나 충돌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쿵 하고 온 세상을 진동시킬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백혈마수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몸 곳곳의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금혈마수의 상태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뒤로 물러나는 녀석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드러났지만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친 빛은 갈수록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