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80
번득이는 눈으로 금혈마수를 응시하는 송낙해의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금혈마수가 발산한 옅은 금빛이 사방을 뒤덮었고 짙은 위엄이 확산됐다.
새로운 왕의 탄생을 직접 목격한 수천 마리 흡혈마수 중 가장 먼저 복종해온 것은 붉은 흡혈마수들이었다. 녀석들은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공명했다.
수백 마리의 남혈마수는 잠시 갈등하는 듯했으나, 머지않아 강력한 위압감에 굴복했다.
반면 두 마리 백혈마수는 강력한 위압감에도 여전히 금혈마수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금혈마수는 험악한 눈빛으로 낮게 울부짖었고 그 소리에 주위의 흡혈마수들이 매서운 눈으로 두 백혈마수를 노려보았다.
두 마리 백혈마수는 구슬프게 울었다. 특히 방금 금혈마수와 싸웠던 녀석은 온몸을 벌벌 떨면서 요사스러운 붉은 눈을 번득이며 파멸적인 기운을 발산했다.
그 순간, 녀석의 몸은 쾅 하고 무너져 내리면서 피 안개가 퍼져나갔다.
이어서 나머지 한 마리 백혈마수도 펑 하고 터져버렸다. 새로운 왕에게 굴종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것이다.
쇄열기 수련자에 준하는 두 마수의 자폭은 위력이 엄청났다.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송낙해의 두 눈이 탐욕으로 번득였다.
“이때다!”
그는 금혈마수에게 수련자의 원신을 확인했으나, 이를 풍의 선계에서 육신을 잃은 수련자의 것이라 여겼다. 어떻게 금혈마수와 융합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분명 특수한 존재일 터였다. 그렇기에 그의 탐욕은 더욱 커졌다.
금혈마수를 통제하기는 힘들더라도 그것과 융합한 수련자의 원신을 통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라 여긴 것이다. 기껏해야 쇄열기 초기 수준의 원신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로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어마어마한 수의 흡혈마수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탐욕을 억누르고 있었으나, 녀석들이 두 마리 백혈마수의 자폭에 휘말려 있으니 절호의 기회인 셈이었다.
“지금이다!”
송낙해의 온몸에서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몸을 숨겼던 바위에서 튀어나온 그는 한 줄기 번개가 되어 곧장 금혈마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탐욕에 사로잡힌 상황에서도 철저히 계산해낸, 그야말로 절묘한 순간이었다.
송낙해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쇄열기 수준의 기운을 폭발시키자 해와 달의 허상이 그의 두 손에서 나타났다. 그가 속한 적혼도의 신통력은 상대의 육신이 아니라 혼이나 정신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신통력이 퍼져나간 순간, 송낙해는 낮게 기합을 넣으며 포효했다. 상대의 원신을 진동시키고 현기증을 느끼게 하는 신통력이었다.
그의 모든 행동과 계획은 완벽했다. 단 하나, 상대가 한제라는 것을 몰랐다는 점만 빼면.
송낙해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한제의 원신에서 규칙의 반점이 번득였다. 사실 한제는 진즉 송낙해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저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다.
한편, 금혈마수는 뒤로 물러났고 송낙해는 곧장 금혈마수를 추격했다.
이때 규칙의 반점이 회전하기 시작했고 한제의 원신이 비릿하게 웃으며 오른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한 줄기 광풍이 휘몰아치며 회오리를 형성하더니 곧장 송낙해의 신통력과 충돌했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송낙해는 한 움큼 피를 토해내며 수십 척이나 밀려났다.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두 눈은 충격으로 물들었다.
방금 그 공격은 그다지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깃든 도념과 경지, 그리고 규칙에 심신이 뒤흔들리고 경지가 무너질 뻔했기 때문이다.
그때, 한제의 원신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금혈마수가 길게 울부짖었고 순식간에 주위의 모든 흡혈마수가 송낙해에게 달려들었다.
“헉!”
콰르릉! 쾅!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송낙해가 다급히 외쳤다.
“내… 내가 잘못했네! 도우, 용서해주게! 난 적혼도의 장로일세! 나를 살려준다면 후하게 보상하겠네!”
그 목소리에는 초조함과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한제는 덤덤한 표정으로 신념을 통해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금혈마수가 다시 포효했고 다른 흡혈마수들이 더욱 포악하게 달려들었다.
★ ★ ★
같은 시각, 8급 성역 무극종의 거대한 세 개 수련성 중 두 번째 수련성에서는 벌써 며칠 째 산하의 분종의 시합이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참여자도 매우 많아 수련성 전체를 거의 채울 정도였다. 여기에 초대된 손님들과 떠돌이 수련자들까지 방문한 상황이라 무극종은 무척 시끌벅적했다.
시합은 수련성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대련장에서 진행됐다. 대련장 주위에는 수없이 많은 계단이 있었고 각 단에 마련된 자리는 수련자들이 빽빽했다.
그중 귀원종에 배정된 자리는 북쪽 가장자리의 작은 구역이었다. 백 명 가까이 참석한 다른 종파와 달리 열 명도 안 되는 인원만 참석한 귀원종은 초라해 보였다.
여연비는 묵묵히 자리에 앉아 4급 종파의 시합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에야 5급 종파의 시합이 시작될 터였다.
귀원종의 나머지 사람들은 풀이 죽어 있었다. 귀원종의 운명을 바꾸기란 불가능하다는 듯 체념과 슬픔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몸이 불편해 먼저 돌아가 보겠네.”
여연비는 조용히 말한 뒤 주종이 정해준 거주지로 향했다. 거주지마저 외딴 곳에 있어 더욱 쓸쓸해 보였다.
“절세미인으로 유명한 여연비 도우 아닌가! 과연 소문이 사실이었군. 귀원종이 해체되고 나면 우리 선음문(仙音門)에서 데려올 가치가 있겠어!”
어디선가 음탕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남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의 정체를 알아차린 이들은 표정이 급변해 얼른 비켜섰다. 동시에 수많은 시선이 귀원종 쪽으로 쏠렸다.
귀원종 사람들은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입도 열지 못했다. 허윤 역시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있을 뿐이었다.
중년 사내의 뒤로는 두 명의 백발노인이 따르고 있었는데 냉랭한 표정과 전광같이 예리한 눈빛에 누구도 감히 그들과 눈을 마주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6급 성역 선음문! 모습을 보아하니 종주의 대제자 여영걸 같은데?”
“선음문은 벌써 수차례 연속으로 6급 성역 시합에서 1등을 차지해 종주께서도 아끼는 종파지. 소문에 따르면 이번 8급 성역 최종 의식에 우리 무극종이 내보낼 세 사람 중 한 명은 선음문 출신일 거라더군.”
“여영걸이 수련한 공법은 매우 잔혹해서 수많은 희생양이 필요하다던데… 더구나 쇄열기 절정인 무극종 여 장로님과 혈연관계라는 소문도 있으니 저자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겠지.”
우뚝 멈춰선 여연비는 아름다운 눈을 싸늘하게 번득이며 몸을 돌려 준수한 중년 사내를 마주보았다.
“귀원종은 아직 해산되지 않았고 해산되지도 않을 겁니다.”
여연비는 싸늘하게 대꾸하고는 돌아서서 떠나려 했다.
하지만 여영걸은 피식 웃으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다른 곳에서 들은 소문을 말한 것일 뿐, 오히려 난 도우에게 호감이 있네. 귀원종이 해산된다 해도 여 도우는 여러 종파에서 환영받을 거야.”
그때, 다른 방향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원종이 해산된다면 우리 자도종에서 귀원종 전체를 수용할 걸세!”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라색 옷을 입은 사내였다. 그는 서늘한 눈으로 여영걸을 슥 훑어보더니 여연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포권을 했다.
여연비는 흠칫 놀랐다.
“이 노운종은 여 형과 만남을 가지고 잊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눈 바 있네. 만약 그가 돌아온다면 귀원종은 해산되지 않겠지. 오히려 1등을 차지하게 될 걸세.”
노운종이 여연비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있으려니 여영걸이 옆에서 침착하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노 도우도 귀원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모양이군. 자네가 말하는 여 형이라는 자가 혹시 나를 말하는 것인가?”
그 순간, 노운종이 싸늘한 얼굴로 호통을 쳤다.
“닥쳐라! 감히 네놈과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여 형에 대한 모독이다! 여 형에 비하면 네놈은 한낱 미물에 불과하니 말이다.”
여영걸은 가늘게 뜬 눈으로 노운종을 응시했다.
그는 1천 년 전 노운종이 자도종을 5급 성역의 분종 1등에 올려놓은 뒤 6급 성역 1등이었던 선음문에 도전해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도전 자체만으로도 선음문에게는 치욕이었고 이를 계기로 노운종과 자도종은 운해성역에 널리 이름을 떨쳤다.
더욱이 지금 노운종의 기세는 범상치 않았다. 여영걸은 1천 년 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상대가 다시 도전해오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5급 성역 종파에게 연속으로 두 번이나 도전을 받는다면 선음문에게는 엄청난 모욕일 터였다.
선음문이 패할 리는 없겠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고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두고두고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여 형이라는 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자네는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
여영걸은 불쾌함을 애써 감추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노운종은 여전히 싸늘한 눈으로 여영걸을 노려보았다. 알면 알수록 경멸스러운 자였다.
“그가 온다면 미물이라 불러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게 될 걸세.”
그때,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여 씨라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 나 역시 기대되는군.”
일견 무기력하고 맥없는 듯한 그 목소리가 퍼진 순간, 주위 모든 수련자들의 원신에 격렬한 파동이 일었다. 오직 여영걸만이 침착함을 유지했다. 오히려 그는 기쁜 얼굴로 몸을 돌려 공손히 포권을 했다.
“조 선배님을 뵙습니다.”
허공에서 왜곡이 일어나더니 한 중년 사내가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눈에 띄는 매부리코와 얇은 입술, 음산한 눈빛이 합쳐져 무척이나 각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노운종은 침착함을 되찾고는 차분히 포권을 하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노운종, 7급 심만종(尋巒宗)의 조 선배님을 뵙습니다.”
노운종이 상대의 종파와 이름까지 자세히 언급한 것은 귀원종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이에 여연비와 귀원종 수련자들도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그의 출현에 주변의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주위의 구경꾼들도 황급히 뒤로 물러났고 몇몇은 멀리 떠나갔다.
이제 상황은 자도종과 선음문, 거기에 심만종까지 연루된 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갈등의 교차점은 노운종이 언급한 신비의 여 씨 수련자였다.
조가 사내는 여영걸 곁에 서더니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가 진정 그토록 강력한지 궁금하군. 자네는 도전을 받아들여야 할 걸세.”
그의 음산한 목소리에 여영걸은 활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에게 어떤 신통력이 있는지 저 역시 궁금합니다. 한데 그자가 노운종 도우의 말에 미치지 못하는 자라면 어찌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