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82
쇄열기 후기의 수준의 이천매는 잔영이 남을 정도의 속도로 날아가 조룡의 뒤에 나타났고 고운 손을 들어 올렸다가 살짝 휘둘렀다.
그 순간, 하늘을 뒤덮을 듯 엄청난 살기가 나타났다.
천둥소리와 흉수의 포효가 뒤섞인 소리를 내는 살기에서는 기이한 기운도 느껴졌고 뒤이어 한 덩어리 안개가 되더니 곧장 조룡을 뒤덮었다.
“크아악!”
참혹한 비명과 함께 피를 토해낸 조룡이 안개 밖으로 튀어나왔을 때, 그의 왼팔은 피범벅이 된 살덩이로 변해 있었다. 오른손과 두 다리 역시 터져나갔고 뒤를 이어 몸통까지 순식간에 붕괴했다.
피비린내가 훅 퍼져 나갔다. 겁에 질린 조룡의 원신은 다급히 도망쳤다.
이천매는 덤덤한 눈으로 무극종의 풍해와 붉은 머리 노인에게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원하신다면 무극종에 사례를 하나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여영걸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네가 그와 싸우기를 원했다 하니 목숨은 살려주마. 허나 그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너와 저 조룡이라는 자의 숨을 끊어놓을 것이다!”
이천매의 목소리에 담긴 힘과 싸늘함에 주위의 수련자들은 찬 숨을 들이켰다.
풍해는 말없이 붉은 머리 노인과 눈빛을 주고받더니 마른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험! 도우가 찾는 그가 대체 누굽니까? 귀원종 여연비의 사숙조입니까?”
이천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백 년 전, 사숙조께서는 반드시 돌아오실 거라 약조하셨습니다.”
여연비는 조용히 말했다.
★ ★ ★
자신이 무극종과 수많은 수련자들의 관심 대상이 됐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 한제는 수천 마리의 흡혈마수를 이끌고 풍의 선계 가장자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광활한 풍의 선계에는 바람만 가득했으나, 흡혈마수들의 쉭쉭거리는 소리에 묻혀 바람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흡혈마수 안쪽 깊은 곳에서 금혈마수가 내는 소리는 더욱 요란했다. 녀석이 한 번 쉭 소리를 낼 때마다 사방의 흡혈마수들은 경외심을 드러내며 앞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금혈마수의 등에는 백의를 입고 백발을 휘날리는 한제가 앉아 형형한 눈으로 선계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직 그의 상태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대량의 흡혈마수를 얻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제 중심부로 들어가 봐야겠군. 흡혈마수를 조금 더 모은 후에 귀원종과의 약속을 지키러 가야겠어.”
한제를 태운 흡혈마수 왕은 쉭 소리를 내더니 수천 마리의 흡혈마수 무리와 함께 풍의 선계 안쪽으로 향했다.
잔야 후
수많은 흡혈마수가 발산하는 기운에 숨어 있음에도 한제는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흡혈마수들의 전진 속도를 늦춘 채 천천히 풍의 선계 깊은 곳으로 향했다.
바람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강해졌다. 수많은 원혼이 흐느끼는 듯한 바람 소리가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고 회오리를 일으켜 주변을 휩쓸었다.
흡혈마수는 바람을 매우 좋아했고 회오리는 더욱 좋아했다. 한제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백 마리의 흡혈마수가 회오리에 휘말려 멀리 밀려나는 것을 봐왔다. 언뜻 봐서는 바람이 흡혈마수를 날려버리는 건지 아니면 흡혈마수가 바람을 일으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풍의 선계의 훼손된 대지가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붕괴한 땅에는 깨진 거울처럼 거대한 균열들이 있었는데 개중에는 폭이 어찌나 넓은지 그 끝이 한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다.
대지들에는 수많은 폐허의 잔해도 있었는데 무너져 내린 건물에서는 고래의 기운이 풍겨왔다. 그 잔해와 흔적이 거친 바람에 조금씩 사라져가는 광경에서 한제는 문득 황량함을 느꼈다.
이미 우(雨)의 선계와 뇌(雷)의 선계에 가본 바 있는 그는 이제 풍의 선계에 와 있었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정말로 흔치 않을 터였다.
우의 선계는 심각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이전의 선계를 짐작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을 정도라 남은 것이라고는 붕괴한 뒤 수만 년간 후대 수련자들에게 약탈당해온 비참한 흔적뿐이었다.
뇌의 선계는 조금 달랐다. 그곳도 무척 심각하게 파괴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당시의 자태와 강대함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풍의 선계는 앞선 두 곳과 전혀 달랐다. 이곳은 흡혈마수들에게 점거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재난과 붕괴 이후 수련자들의 방문은 매우 적었다. 그렇기에 비교적 온전했다. 단지 쉬지 않고 부는 바람만이 맴돌 뿐이었다.
앞에는 한제가 풍의 선계에서 본 것들 중 가장 큰 조각이 있었다. 거대한 짐승처럼 부유하고 있는 그것에서는 만고의 시간을 담긴 듯 오래된 기운이 풍겨났다.
그리고 중앙에 거대한 돌문이 하나 있었다. 높이가 수십 척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탓에 멀리서도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한제의 흡혈마수들은 이미 전진을 멈춘 상태였다. 금혈마수 위에 가부좌를 튼 한제도 말없이 눈앞의 돌문을 바라보았다. 심신이 진동했다. 자아를 잃고 모든 감각을 잃은 듯한 기분이었다. 맹렬한 바람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흡혈마수의 등에 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그의 눈에는 오로지 거대한 돌문만이 들어올 뿐이었다.
돌문에서 느껴지는 오랜 세월의 무게가 한제의 심신을 따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한제는 세월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바위와 대지가 끊임없이 변하다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거대한 문은 돌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틀이었다. 높이 솟은 두 갈래 사각형 기둥이 가로놓인 채 짧은 기둥으로 연결되어 문 형태를 이루고 있을 뿐이었다.
한제는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허나 두 눈은 여전히 돌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데 어째서인지 돌문은 낯설지 않았다. 어딘가… 천역주가 열릴 때 나타나는 허상의 문과 비슷했다. 다만 문짝까지 달린 천역주의 문과 달리 틀만 있다는 것이 달랐다.
한제는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풍의 선계 중심에 이를 터였기에 한제는 아직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거대한 문을 바라보던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금혈마수로부터 떨어져 바람을 타고 앞으로 나아갔다.
금혈마수와 5천 마리에 달하는 흡혈마수들도 붉은 구름을 형성해 조금씩 다가왔다.
거대한 문은 흡인력을 가진 듯했고 조금씩 다가갈수록 강력한 기운이 풍겨나왔다.
문은 어찌나 거대한지 고개를 들어도 꼭대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짙고 서늘한 기운이 보이지 않는 회오리를 이루어 거대한 문을 중심으로 사방을 향해 퍼져나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형태 없는 회오리는 문에 한 층의 옅은 안개를 드리웠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안개의 존재가 확실히 느껴졌다.
한제는 무의식적으로 문을 향해 신식을 펼쳤다.
그 순간, 한제의 심신에서는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귓가에서 천둥이 울린 것처럼 일어나 거대한 소리와 충격이 안개를 흩어버리면서 눈앞에 거대한 문이 또렷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문이 아니라 하나의 생령이었다. 영혼을 가진 이 생령은 영겁의 세월을 살아내면서 의식을 가지게 된 듯했다.
앞서 뻗었던 신식이 점점 그 생령과 융합되면서 한제는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잊어갔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으나 그러는 동안 한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지금 그의 상태는 잔야를 만들어내던 당시와 비슷했다.
수련자는 세상을 떠돌며 도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은 산봉우리를 보지 못하고 한눈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넓은 바다를 보지 못한 화가는 제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 한들 굽이치는 산이나 파도치는 바다와 사람의 관계를 제대로 그려낼 수 없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느껴야만 그림에 혼을 담을 수 있는 법이다.
수련자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모두 일정 수준에 이르면 세상을 돌아다니며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산과 바다를 보더라도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하는 화가는 혼이 담긴 산수화를 기를 수 없는 반면 깊은 감명을 받는 이는 걸작을 남길 수 있는 법.
세상을 떠도는 수련자 역시 그저 유람하는 데 그치는 자가 있는 반면 세상을 마음에 녹여내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전환시키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한제는 지금 눈앞의 돌문을 자신의 마음에 녹여내고 있었다. 수련자들은 이런 상태를 3대 경계 중의 하나인 시(始)의 경계라 불렀다.
시란 모든 것을 창조하는 근원이다.
한제는 바다 앞 벼랑에 앉아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를 보고 그 모든 것을 마음속에 녹여낸 끝에 잔야라는 신통력을 창조해낸 바 있다.
그리고 오늘, 풍의 선계의 거대한 조각 중앙에 선 거대한 문 아래에서 또 한 번의 깨달음을 얻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기운이 돌문과 완전히 융합된 순간, 한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기운과 모든 생기가 흩어져 사라진 상태라, 만약 다른 수련자가 있어 신식을 펼친다 해도 한제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할 터였다.
한제의 기운이 사라진 순간, 금혈마수는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숙이면 꿈쩍도 않고 서 있는 모습이 똑똑히 보이는데 모든 기운이 사라지고 자신과의 연계도 끊어지자 금혈마수는 혼란에 빠졌다.
금혈마수는 구슬프게 울며 한제의 근처를 맴돌았다. 그 소리에 주위의 흡혈마수들도 부근을 맴돌며 우짖었다.
★ ★ ★
같은 시각, 풍의 선계 깊은 곳의 어느 조각. 수없이 많은 흡혈마수들이 날갯짓하며 주위를 맴도는 이 조각 위에는 한 사람의 석상이 있었다.
한데 이 석상이 어느 순간 두 눈을 깜빡이더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완전한 인간이 되었다.
“돌문 안의, 점점 약해지는 아홉 가지 규칙 중 그는 어떤 규칙을 깨달을 것인가?”
하늘은 푸르렀고 밝은 빛이 대지에 드리워져 있었으며, 선기가 주위를 맴돌았다. 우아한 모습의 선수(仙獸)들이 허공을 노닐었다. 저 멀리 수많은 선인들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대지도 마찬가지였다. 높이 솟은 산봉우리 사이로 강물이 흘렀고 곳곳에 드리운 선기의 안개가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했다.
땅에는 수많은 선인들이 가부좌를 튼 채 거대한 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진은 1만 리에 걸쳐져 배치되어 있을 정도로 규모가 엄청났다.
“원고 시대 선역의 뜻을 이어받아 선문(仙門)을 고치고 진정한 고대 선인들을 맞이하라!”
엄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거대한 진 안의 선인들이 결인을 그리며 선력을 발산해 진에 녹여 넣었다.
콰쾅!
우렁찬 소리와 함께 사방에 왜곡이 일어났고 거친 파문이 퍼져 나갔다.
이에 따라 선계의 산봉우리와 강을 비롯한 모든 것이 짙은 선기를 발산했다. 선기는 파문에 흡수되어 더 먼 곳으로 확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