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85
이에 따라 수련자들의 기억 역시 계속해서 과거로 되돌아가 이들은 어느덧 2천 년 전의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오운래는 몸을 격렬하게 떨었다. 눈빛은 더욱 멍해졌고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이미 규열기 절정으로 떨어져 있었다.
수련 기간이 3천 년도 안 될 정도로 매우 짧았던 한 여자 수련자는 두 번째 단계에서 문정기 수련자로 추락한 상태였다.
한 번만 더 1천 년을 더 거슬러 간다면 이 소녀는 존재 자체가 사라지게 될지도 몰랐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이 모든 것은 현실과 허상 사이에 자리했으나 한제가 원하기만 한다면 이 찰나를 영원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다행히 한제는 어느 순간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은 온 세상을 담아낸 뒤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규칙의 변화를 깨달은 듯 번득였다.
눈을 뜬 한제는 자신의 심신에 들어온 여러 수련자들과 돌문 근처에 선 그들의 본체를 확인하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온 세상이 휘청거렸다.
오운래와 수련자들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순식간에 2천 년의 세월이 흩어졌고 이들은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이들의 눈은 불신과 두려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한바탕 악몽을 꾼 것처럼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헛짓거리를 했구나!”
한제의 목소리에 금혈마수는 거대한 주둥이를 주인에게 문질렀다. 녀석은 한제에게 수련의 성과를 시험해볼 대상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 수련자들을 이곳으로 끌어왔으나, 이내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한편, 한제가 두 눈을 뜨고 오운래와 수련자들이 2천 년이 넘는 세월을 되찾은 순간, 풍의 선계 깊은 곳에 석상이 되어 있던 노인의 두 눈이 번득였다.
“만만치 않은 녀석이군!”
한제는 돌문 위에 선 채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 눈빛에 수련자들은 심신이 떨렸다.
자신들을 포위한 수천 마리의 흡혈마수들보다도 저 백의의 사내가 두려울 정도였다.
차라리 흡혈마수들과 싸우다 죽는 게 낫지 방금과 같은 기이한 일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후, 한제는 시선을 거두고는 몸을 훌쩍 날렸고 금혈마수가 뒤를 따랐다. 수련자들을 에워싸고 있던 수천 마리의 흡혈마수도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너희들이 머물 만한 곳이 아니니 속히 떠나라.”
한참 후에야 한제의 목소리가 울려오자 오운래와 수련자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좀 전의 일을 상기하고 두려움에 몸을 떤 그들은 이곳에 더 머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들은 한제가 떠나간 방향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 뒤 곧장 자리를 떴다. 이들이 마음에는 한제에 대한 경외심과 유월이라는 두 글자가 깊게 새겨졌다.
“유월⋯⋯.”
금혈마수의 등에 올라탄 채 이동하던 한제가 중얼거렸다. 심신에 자리한 잔야의 바다에는 거대한 돌문이 생겨나 있었다.
다만 유월이라는 두 번째 신통술은 아직 완벽하게 깨닫지 못한 상태였다. 끊임없는 깨달음과 검증의 과정이 더해져야만 완성할 수 있을 터였다.
“시간이 부족하군. 일단은 귀원종과의 약속도 있고 하니⋯⋯.”
한제는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번 깨달음을 얻는 데 들인 시간은 열흘이었다. 8급 종파의 시합은 이미 시작되었을 터였다.
“사흘 뒤에 떠나자. 귀원종과의 약속을 지킨 후에 다시 오면 되지.”
그가 결심을 내리자 주위의 흡혈마수들은 더욱 빠른 속도로 풍의 선계 깊은 곳을 향해 돌진했다.
“풍의 선계 내부에는 얼마나 많은 흡혈마수가 있는지 확인해야겠군!”
한제는 더 이상 흡혈마수들의 속도를 제한하지 않았다. 그저 몸 곳곳에 금제를 드리워 자신의 기운을 꽁꽁 감쌌을 뿐이다. 그렇게 몇 시진동안 전신을 금제로 빽빽하게 감싼 후에야 풍의 선계 중심을 향해 갔다.
다음 날, 조각이 된 대지가 하나둘 눈앞에 나타났다. 크기는 제각각이었으나 모든 조각에서는 황량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곳에 발을 들인 수련자가 거의 없었던 듯했다.
거친 바람은 갈수록 맹렬해졌고 주위로는 몇몇의 흡혈마수 무리가 지나쳐갔다.
대부분 붉은색이었지만 개중에는 1천 마리에 달하는 남혈마수도 심지어는 백혈마수도 있었다.
그러나 백혈마수를 부리기는 결코 쉽지 않았기에 한제는 그들을 내버려두었다. 게다가 이미 충분한 흡혈마수를 모아둔 터라 더 이상 모으기도 힘들었다.
한제는 금혈마수가 조금씩 진동하고 있다는 것과 녀석의 두 눈에서 서늘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가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자 녀석은 낮게 쉭 소리를 내더니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중심부로 갈수록 흡혈마수의 수는 점점 많아졌고 무리의 규모도 만 마리가 넘을 정도로 컸다.
그런 무리에는 더 많은 남혈마수가 포함되어 있었고 당연히 백혈마수의 수도 늘어나 수백 마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광경에 심장이 덜컥한 한제는 찬 숨을 들이켰다. 이곳은 기껏해야 풍의 선계 내부와 외부의 경계 정도였다. 그런데도 저 정도라면…
허나 다행히도 공격해오는 녀석들은 없었다. 그저 거친 바람을 타는 듯 지나갈 뿐이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위협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저 흡혈마수들을 다 통제할 수 있다면⋯⋯?”
한제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더 깊은 곳으로 돌진했다.
한데 그때, 금혈마수가 몸을 바르르 떨며 속도를 늦추더니 거친 눈빛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곧이어 저 멀리 하늘 끄트머리에 두 마리의 자혈마수가 나타났다. 한데 기이하게도 두 마리 자혈마수는 마치 한 마리처럼 딱 달라붙어 있었다.
첫 번째 천쇠에 근접한 쇄열기 절정 수준의 기운이 녀석들로부터 발산되었다.
이에 1만 마리가 넘는 규모의 흡혈마수 무리조차 분분히 흩어져 길을 내주었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두 마리의 자혈마수와 충돌한 붉은 흡혈마수 한 마리는 그대로 폭발해 사라졌다. 그럼에도 두 마리 자혈마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아가더니 한제 무리를 스쳐갔다.
한제는 멀어져가는 두 마리의 흡혈마수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금혈마수를 통제해 다시 전진했다.
수십만 마리의 흡혈마수를 스쳐간 후에야 풍의 선계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세 개의 조각이 시야에 잡혔다.
이 세 개의 조각 바깥쪽에는 아홉 개의 조각들이 고리 형태를 이룬 채 떠 있었다. 마치 중심의 세 조각을 보호하는 듯이. 게다가 각 조각은 색이 서로 달랐는데 가장 바깥쪽은 붉은색, 그 안쪽으로 남색, 하얀색, 보라색, 그리고 가장 안쪽은 금색이었다.
허나 이는 외부의 아홉 개 조각들에 한했고 중심의 세 조각은 기이한 힘에 뒤덮여 있어 공간이 왜곡되어 안쪽을 살필 수가 없었다.
한제가 억지로 안쪽을 꿰뚫어보려 하자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가장자리를 두른 아홉 개의 조각 중 하나가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폭발했다.
막라 대륙보다도 훨씬 큰 조각이 진동하면서 가장자리가 그대로 와해되었고 수많은 붉은 흡혈마수가 튀어나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뒤로는 남혈마수와 백혈마수, 자혈마수도 분분히 튀어나왔고 마지막으로는 금빛을 번득이는 흡혈마수들도 수십 마리나 모습을 드러냈다.
이 광경에 한제는 숨이 턱 막혔다. 저 조각들은 수십만 마리의 흡혈마수들로 형성된 대륙이었던 것이다.
조각을 이루다가 튀어나온 흡혈마수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하늘을 빽빽하게 채웠다.
수십만 마리에 달하는 흡혈마수의 등장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시야는 온통 흡혈마수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금혈마수 역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라도 이토록 많은 흡혈마수를 앞에 둔다면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때, 하늘의 일부를 점거하고 있던 흡혈마수 무리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중심부의 세 조각을 둘러싼 기이한 힘이 일으킨 왜곡도 사라졌다.
그 순간, 한제는 창백하게 질리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금혈마수와 자신의 흡혈마수들을 데리고 물러났다.
흡혈마수 왕의 변이
세 개의 조각 상공에는 거대한 골짜기가 하나 있었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골짜기였다.
그리고 엄청난 위압감을 발산하는 그 골짜기 안에서 거대한 흡혈마수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만 약 수십만 척에 달할 것 같은 녀석은 골짜기 안에서 튀어나오려 몸부림을 쳤다.
몸을 반쯤 드러낸 흡혈마수는 그 주둥이로 수련성 하나도 완전히 흡수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크아아아!”
녀석의 포효가 풍의 선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에 선계는 격렬하게 진동했고 대지는 무너져 내릴 조짐을 보였으며, 사방의 흡혈마수들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금혈마수 역시 뒤로 물러나면서 벌벌 떨었다. 하지만 한제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녀석은 주인처럼 거역과 반항을 아는 흡혈마수였다.
엄청난 위압감과 하늘을 뒤흔들 정도로 우렁찬 소리 아래, 금혈마수는 온몸으로 금빛을 번득이며 몸을 홱 틀었다. 그리고 골짜기에서 빠져나오려 버둥거리는 거대한 흡혈마수를 향해 포효했다.
“캬오오오!”
이 포효에는 광기와 불만 그리고 상대와 같은 흡혈마수 왕으로서의 존엄성이 깃들어 있었다. 금혈마수가 내지른 포효는 비록 약했지만 그래도 하늘을 뒤흔들 정도의 힘과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흡혈마수 왕에 대한 흡혈마수 왕의 도전이었다.
금혈마수는 광기 어린 눈으로 거대한 흡혈마수를 응시했다. 눈에서는 격렬한 갈망이 번득였다.
녀석은 저 거대한 흡혈마수가 종족의 순수한 피를 가지고 있음을 똑똑히 느꼈다. 그 피는 금혈마수에게 치명적일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당장 그 피를 한 방울이라도 빨고 싶은 유혹이 들었다.
이 갈망은 한제의 심신으로 전달됐고 한제는 생각에 잠겼다.
주위를 둘러싼 흡혈마수의 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놈들이 발산하는 기운은 압도적이었다. 어떤 수련자라도 심신이 떨려서 앞으로도 나갈 수 없고 뒤로도 물러날 수 없게 만드는 기운이었다.
금혈마수가 포효를 내지른 순간,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흡혈마수들이 시선을 돌려 금혈마수 쪽을 노려보았다.
한제는 이를 악물고 마음속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금혈마수는 곧장 또 한 번 포효를 내지르더니 옅은 금빛을 번득이면서 몸을 날렸다.
“캬오오오!”
녀석이 몸을 날린 순간, 주위의 흡혈마수들도 포효를 내질렀다. 그러나 그 어떤 흡혈마수도 감히 나서지는 않고 주위를 빙빙 배회할 뿐이었다. 이것은 흡혈마수 왕 사이의 결투이므로 누구도 끼어들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두 마리 자혈마수가 싸늘한 눈빛을 번득이더니 곧장 달려들었다.
본래 한제는 모든 기운을 숨기고 자신의 흡혈마수들 사이에 숨어 있을 생각이었다. 허나 자혈마수들이 달려드는 것을 본 그는 무리에서 튀어나가 수십만 흡혈마수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캬아아!”
“쿠오오오!”
사방에서 수십만 흡혈마수가 동시에 격렬한 포효를 내질렀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친 기운을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한제는 금혈마수의 등에 올라탄 채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검은 번개가 나타나 그의 손에서 거대한 삼지창으로 바뀌었다.
그때, 금혈마수가 다시 한번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왕의 위엄이 담긴 포효가 거친 파도처럼 주변의 흡혈마수들을 휩쓸었다.
그러자 모든 흡혈마수가 우뚝 멈추었고 더 이상 포효도 내지르지 않았다.
단 두 마리의 자혈마수만이 더욱 빠른 속도로 돌진해왔을 뿐이다.
자혈마수들은 쇄열기 절정 수준에 달하는 기운을 내뿜으면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한제는 백발을 휘날리며 삼지창을 휘둘렀다. 체내로부터 발휘된 고신의 힘이 온몸을 감쌌고 삼지창까지 뒤덮었다. 이어서 셀 수 없을 정도의 번개와 남색 불바다가 삼지창으로부터 발산되었다.
“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