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88
대부분은 그 일에 대해 대략적으로만 들어서 알고 있을 뿐으로 그 상황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운해성역에 이름을 떨친 이천매가 고작 5급 성역 분종과 인연이 닿은 것도 모자라 그 작고 보잘것없는 종파를 위해 그녀는 7급 종파 수련자와 맞서다니.
풍해는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한 후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모든 것은 아무래도 귀원종의 여 씨라는 수련자와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침착하기로 유명한 이천매가 직접 손을 쓴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풍 장로께서 말씀하신 수련자 여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비선의 말에 풍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전명각(典命閣)에 가서 찾아본 결과 그자는 귀원종의 사조 정도 되는 인물로 귀원종 장로인 여연비와 혈연관계인 여자호라는 자인 듯합니다. 연단에 미쳐 약초을 구하러 다니다가 행방불명이 된 자이지요. 그런 자가 어떻게 이천매와 연이 닿고 그녀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인지는 모를 일입니다만.”
이어서 풍해는 노운종과 여자호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노운종은 심지어 선음문과 심만종에 밉보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더군요. 그가 말하길, 여자호는 천도에 대해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여자호가 이번 시합이 끝나기 전에 온다면 귀원종이 5급 성역 분종 중 1등으로 거듭날지도 모른다면서 선음문의 여영걸조차 개미처럼 쉽게 죽일 수 있을 거라고도 했지요. 이 도우가 여영걸을 살려둔 것도 그자가 여자호와 목숨을 걸고 싸워보겠다고 했기 때문이지요.”
풍해의 말이 끝나자 사방은 고요해졌다. 이곳에 모인 무극종의 높은 수련자들은 노운종을 탐냈기에 그런 노운종을 감탄시켰다는 여자호라는 자에게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대련장 위에서는 노운종이 걸음을 옮겼다. 단지 그뿐인데도 상대는 창백한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심장을 즈려밟는 듯한 노운종의 걸음에 반격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시합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노운종의 걸음에 경지가 녹아들어 있음을 깨닫고는 감탄했다.
노운종이 여섯 걸음을 옮겼을 때, 그와 맞서던 분종의 종주가 쓰게 웃으며 포권을 했다.
“내가 졌네. 과연 무극종이 자랑하는 인재답군. 감탄했네.”
말을 마친 그는 무극종의 종주를 향해 허리를 깊게 숙이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이제 5급 분종의 시합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이천매의 방문으로 귀원종의 출전 시기가 밀려왔으나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무극종의 장로 하나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귀원종이 있는 곳을 내려다보며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원종, 출장!”
이천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있었다. 어떤 기억을 더듬는 듯한 얼굴이었다.
여연비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아랫입술을 꾹 깨물더니 한참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원종에서 수준이 가장 높은 그녀는 이번 시합에 반드시 나서야만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여연비는 귀원종 사람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살폈다. 그중에는 그녀의 세 사형들도 있었고 그녀의 제자도 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한 마리 나비처럼 구름을 밟고 대련장으로 나섰다.
“스승님⋯⋯.”
허윤은 반짝이는 눈으로 멀어져 가는 여연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귀원종의 운명이 어찌 될지 그녀로서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순간 모든 이목이 집중됐다. 노운종과 이천매가 나타나면서 귀원종에 일어났던 일은 금세 소문이 퍼졌고 사람들은 그 신비한 수련자가 정말로 나타날 것인지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수만 명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여연비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녀는 노운종의 맞은편에 이르렀다.
노운종은 복잡한 표정으로 여연비를 바라보았다.
“귀원종에 다른 시합은 필요치 않습니다. 저만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여연비는 굳건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약속하셨어. 꼭⋯⋯ 꼭 오겠다고!’
여연비는 차분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응원하는 미소를 짓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제 6급, 심지어 7급 분종의 관심도 집중되어 있었다.
“노 도우, 한 수 가르쳐주시게.”
여연비는 노운종을 향해 허리를 살짝 굽혔다.
노운종은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들어 무극종의 종주와 장로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포권을 하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종주님, 그리고 여러 선배님. 저는 귀원종과 대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시합은 불공평합니다!”
모은미와 나란히 앉은 무극종의 종주가 미간을 구겼고 그 앞에 앉은 풍해가 벌떡 일어서며 호통을 쳤다.
“불공평하다니! 노운종, 그게 대체 무슨 뜻이냐!”
그의 목소리에 담긴 힘 때문인지 노운종의 얼굴은 약간 창백하게 변했다.
그로서는 풍해처럼 수준 높은 자의 호통 앞에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다시 한 번 포권을 했다.
“저는 귀원종의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수준도 높고 천도에 대한 깨달음도 깊지요. 저는 그에게 대적도 하지 못할 겁니다. 한데 그가 오기 전에 귀원종과의 시합을 마쳐버리면 이는 귀원종에게 불공평한 처사 아닙니까? 이 노운종은 그와 싸우고 싶습니다. 제가 나선 것 역시 그와 진정한 승부를 가리기 위해서입니다.”
그 말에 사방의 관중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여 씨 성을 쓴다는 귀원종의 그 신비로운 수련자는 이미 많은 사람의 관심 대상이 되어 있었는데 노운종의 이 말로 인해 그 관심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
“노운종, 과연 스승님께서 칭찬하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요. 역시 범상치 않은 자입니다.”
이비선이 흥미로운 듯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은 대련장 위에 우뚝 선 노운종에게 향해 있었다.
“노운종, 여연비. 앞으로!”
무극종의 종주가 입을 열었다. 그 역시 여자호라는 수련자에게 깊은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여연비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노운종은 두말없이 주종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여연비 역시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올랐다.
용맹하고 준수한 사내와 유약하자먼 굳건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함께 날아가는 모습은 상당한 장관이었다.
모은미조차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운종은 그 수준은 차치하고 언사만 보더라도 운해성역의 걸출한 인재라 할 만 했다.
특히 이비선의 두 눈은 노운종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곧 무극종 종주 앞에 이른 노운종은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제자 노운종, 종주님과 주종의 여러 장로님들을 뵙습니다.”
그러던 중 그의 시선이 모은미에게 닿았다. 그 순간,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한겨울 서릿발처럼 서늘하고 냉랭한 그 여인만 남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뒤이어 여연비가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제자 여연비, 종주님과 장로님들을 뵙습니다.”
무극종 사람들은 대부분 노운종에게 향했다. 특히 추 씨 성의 중년 사내의 눈빛에서는 자애로운 빛마저 느껴졌다.
“노운종, 좀 전에 네가 말한 그 사내는 귀원종의 여자호인가?”
무극종 종주는 덤덤하게 말했으나 그 목소리와 말투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과 쇄열기 절정의 강력한 수준이 느껴졌다. 허나 이는 그의 수준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저는 그의 이름은 모르나, 여자호일 것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노운종의 묵묵한 답변에 무극종의 종주가 되물었다.
“그자의 수준이 어떻게 되느냐?”
노운종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느낀 바에 따르면 그의 수준은 정열기 초기였습니다. 허나 그 깊이를 가늠할 수는 없었습니다. 진짜 수준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말에 무극종 종주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자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상세히 고하라!”
노운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억을 더듬어 설명을 시작했다.
귀원종으로 가던 중 이천매와 만난 이야기부터 여자호가 이천매의 세 가지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답했다는 것, 천도를 원이라고 설명했던 것까지…
이야기가 여기에 이르자 사람들의 표정이 급변했고 특히 무극종 장로들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종주 역시 깊이 고민하다가 밝은 눈빛을 번득였다.
“천도가 하나의 원이라… 훌륭한 시각이로군! 네가 이 세상 안에서 도를 탐색하고 있었을 때 그자는 세상 밖에서 도를 관철했구나. 천도에 대한 이해력으로 볼 때 그자는 너를 월등히 능가했겠지!”
이비선은 노운종의 말을 듣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운해성역에 그렇게나 도에 밝은 사람이 있었다니. 한데 이전까지 그런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어요.”
“저 역시 여 형과 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깨달은 바가 컸습니다. 동시에 여 형에게 탄복했지요. 이번에 여 형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아직⋯⋯.”
노운종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은 이제야 이천매가 이곳에 온 이유와 그녀가 귀원종을 도운 연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귀원종에 그런 인물이 있었을 줄은 몰랐군.”
풍해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여연비를 바라보았다.
“여연비, 그자가 정말 너희 귀원종의 선조더냐?”
질문을 해온 것은 무극종의 종주였다.
이곳에 이른 뒤 처음으로 자신에게 떨어진 질문에 여연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사숙조께서는 세상을 유람하시다가 1백 년 전 돌아와 위험에 빠진 귀원종을 구해주시고 그때부터 머무르셨습니다. 다만 노 도우를 비롯한 다른 이들과 도에 대해 의논의 하신 뒤부터는 다시 한 번 유람에 나선 까닭에 지금으로서는 행방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 수련자들은 도를 깨우치기 위해 온 세상을 돌아다니지. 어지간한 일에는 관여하지 않으려 할 게야. 그래야만 도를 깨우칠 수 있는 것이지.”
중년 사내인 추 씨가 약간 아쉽다는 듯 말했다.
“네 사숙조가 이번 시합에 오겠느냐?”
무극종 종주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자호에 대한 흥미가 점점 커졌다. 게다가 그가 귀원종 수련자라면 무극종 소속이기도 한 셈이었다.
“꼭 오겠노라 약속하셨습니다.”
여연비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강단이 있었다.
“좋아, 그럼 그자를 기다리도록 하지. 귀원종과 자도종의 시합은 잠시 미뤄두세. 풍 장로 6급 성역 분종의 시합을 시작하도록.”
무극종 종주가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