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89
무극종을 뒤집다 (2)
이어서 뒤이어 6급 성역 분종의 시합이 시작됐다. 하지만 관중들의 시선은 여전히 무극종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모 도우, 여자호라면 도우가 말한 그 수련자의 적수가 되겠습니까?”
추 씨 사내가 번득이는 눈으로 웃으며 물었다.
한편, 모은미는 노운종의 이야기에서 기이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노운종이 말한 여자호라는 사내에게 알 수 없는 익숙함을 느낀 것이다.
그녀는 추 씨 사내의 질문에 대답할 생각도 않고 노운종에게 물었다.
“여자호가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모은미를 바라보는 노운종의 심장이 제멋대로 뛰었다. 그는 애모의 눈빛을 숨기지도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백발이었고 백의을 즐겨 입는 듯했습니다.”
이어서 노운종은 저물공간에서 옥패를 하나 꺼내 손에 쥐고는 정신을 집중해 그 안에 한제의 모습을 새겼다. 그리고 원력을 불어넣자 옥패가 펑 하고 부서지면서 가루로 흩어졌고 허공에 한 사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백의와 백발, 그리고 무표정하면서도 서늘한 얼굴에서 고독함과 형용할 수 없는 기질이 느껴졌다.
한편, 그 모습을 본 순간 무극종 장로들 중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저자는!”
그러나 그들의 충격은 모은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심신이 떨려왔고 애써 격앙되는 마음을 내리누르면서도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마치 타향에서 가족을 만난 듯한 느낌에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여연비의 눈빛 역시 아련하게 변해갔다.
그때, 노운종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대련장 북쪽에서 한 줄기 빛이 쉭 하고 날아들었다. 1백 년간 무르익은 살기를 품은 빛에서 이천매가 나타나더니 좀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무극종의 두 장로에게 물었다.
“거기 두 사람, 그를 본 적이 있나?”
이천매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녀 자신도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허상으로 나타난 인영은 그녀가 집착하고 있는 대상이었다. 전장에서 벗어나 무극종으로 온 것 역시 그 때문이 아닌가.
사실 이천매 스스로조차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지난 1백 년간 힘겨운 전투를 치르며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지칠 때마다 머릿속에 그 사내의 모습이 떠올랐을 뿐이다.
이천매의 등장에 이비선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지만 이천매의 표정에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무극종 종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자리에서 두 장로를 바라보았다.
그중 한 노인이 매우 놀란 얼굴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입을 열었다.
“그가 여자호일 줄이야. 허나 노운종의 말과 달리 저자는 정열기 수준의 수련자가 아닙니다. 며칠 전, 제자들을 데리고 난수무계에 훈련을 나갔다가 저자가 11급 화오를 제멋대로 통제하고 제압하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심지어 12급 흉수에게 중상을 입히기까지 했지요.”
그 말에 무극종의 여러 장로들이 기겁했다.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모를까, 말을 꺼낸 사람이 언사가 무겁고 신중하기로 유명한 오천 장로라면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오천 장로도 저자를 본 적이 있군. 나는 허상의 인영만 보았다네. 며칠 전, 누군가가 5급 성역에서부터 6급 성역까지 그대로 꿰뚫었다는 보고를 받았지. 쇄열기 절정의 수준이 느껴지는 데다가 심지어 첫 번째 천쇠를 겪기도 한 것 같다더군. 때문에 어떤 대륙에서도 그를 막지는 못했다는 거야! 그는 진을 파괴하고 7급 성역으로 진입했다네. 그곳에서 어느 분종 소속 쇄열기 수련자 셋이 막아서자 역령인을 소환했다지. 그렇게 길을 열고 8급 성역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네.”
두 장로의 말에 주변에서는 탄식과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야기를 듣던 모은미의 눈에서 밝은 빛이 번득였다. 그녀는 속으로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어디에 있든 놀랄 만한 일들을 해내는구나.
이천매는 웃음기 어린 눈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편, 여연비은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린 그녀는 한제가 온 우주를 갈라버릴 기세로 6급 성역과 7급 성역을 관통해 8급 성역에 이르렀다는 말에서 그가 약속을 잊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이비선은 전혀 다른 생각 중이었다. 여자호라는 자가 어떻게 역령인을 소환했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노운종은 쓰게 웃었다. 여자호가 그토록 엄청난 기세를 떨치고 다녔다니, 그와의 격차가 더 벌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극종 종주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로서도 더 이상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순간부터 그에게 신비의 수련자 여 씨는 후배가 아니라 동급의 수련자로 보였다.
“여연비, 이곳에 남아 기다려라. 6급 분종의 시합이 끝날 때쯤이면 네 사숙조도 도착하지 않겠느냐.”
무극종 종주는 마른기침을 하며 말했다.
이천매는 이비선의 안내에 따라 그녀 곁에 앉았다.
그 순간, 모은미는 전광과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슥 훑었다. 이비선을 사이에 두고 두 여인의 눈빛이 찰나에 부딪혔다.
이비선은 서로를 소개하다가 문득 느껴지는 냉랭한 분위기에 눈을 깜빡이며 몸을 살짝 뒤로 뺐다. 그러자 두 여인의 시선은 장애물 없이 곧장 맞닿았다.
“미모가 뛰어나다더니, 과연 그렇군.”
모은미는 이천매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천매는 아름답지만 낯선 모은미가 어째서 그런 눈빛으로 자신을 본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에 그녀는 상대가 시선을 거두었을 찰나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미모로 따지자면 모 도우만 하겠습니까?”
한편, 6급 분종 시합에 특별할 것은 없었다. 허나 그중에도 당시의 노운종처럼 눈에 띄는 자가 한 명 있었으니, 6급 분종 거령종(巨靈宗)의 제자 원비였다.
평소 폐관수련에 몰두하며 종파를 떠나 있는 경우가 많은 그는 2백 년 전에야 돌아오면서 앞선 두 번의 시합에는 불참했다.
중년으로 보이는 그의 수준은 쇄열기 중기로 공격이 상당히 매서웠다. 지금까지는 두각을 드러낸 적이 없는 자였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시합에 나와 실력을 내보였다면 선음문이 6급 분종 중 1등을 차지하지 못했을지도 그래서 여영걸이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원비는 지금 종파의 일반 제자 대표로 나선 상태였다. 여영걸은 차게 웃으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들어 그에게 도전하지 않았고 이에 원비의 명성은 순식간에 치솟아 올랐다.
원비는 전광과 같은 눈빛으로 무극종이 자리한 곳을 바라보았다. 형형한 눈은 시종일관 모은미를 비롯한 세 여인에게 향해 있었다.
“저라면 이 도우께서 말씀하신 그 신비의 수련자와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낭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허나 이천매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대련장 위의 원비를 한 번 훑어보더니 아무런 말없이 짧게 고개를 저었다.
원비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피식 웃었다. 대신 이번에는 노운종을 바라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노운종, 너는 어떤가? 나에게 도전하겠느냐?”
노운종은 덤덤한 눈으로 원비를 내려다보다가 한참 뒤에야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원종의 여 형이 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도전하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6급 분종의 시합도 말미에 이르러 7급 분종 간의 시합이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6급 분종까지의 시합은 7급 분종끼리의 시합에 앞선 맛보기에 불과했다.
허나 이번에는 아직 5급 성역 간의 경기가 마무리 되지 않았으므로 계속해서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수많은 외빈들도 보는 가운데 5급 분종의 1등을 결정하기도 전에 7급 성역의 시합을 이어가기도 좀 그랬다.
무극종 종주는 잠시 고민하다가 여연비와 노운종을 힐긋 바라보았다. 종주인 그로서는 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통성과 권위를 가진 시합에서 5급 종파의 시합을 언제까지고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충분히 기다렸다. 여자호 그자가 늦은 것이니 우리를 탓할 수는 없을 터.”
하얀 도포의 노인은 눈을 번득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노운종, 여연비. 두 사람은 대련장으로 나가 5급 성역 분종 간의 경기를 마무리하라!”
그 말에 모든 수련자의 시선이 집중됐다.
노운종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여연비를 향해 포권을 한 뒤 대련장으로 곧장 날아갔다.
여연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한제가 오는 중임을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오지 않은 이상 이 시합은 내가 이어나가야 해!’
작게 한숨을 내쉰 여연비는 한 마리 나비처럼 팔랑팔랑 대련장으로 날아갔다. 그녀의 눈빛은 전보다 더 굳건해져 있었다.
무극종 분종 간의 일에 끼어들 자격은 없었기에 이천매는 묵묵히 여연비를 바라았다. 만약 귀원종이 해산된다면 모든 귀원종 사람들을 데리고 파천종으로 갈 생각이었다.
노운종과 여연비가 대련장에 이르자 수많은 관중이 숨을 죽인 채 집중했다. 하지만 대련장 위로 쏠린 모든 눈빛에 선의가 어려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선음문의 여영걸은 원한이 짙게 어린 눈빛으로 대련장 위의 두 사람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우습군. 아직도 그자가 올 거라 생각하는 것인가?”
여영걸은 주먹을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그보다 더 멀리, 심만종이 모여 있는 곳. 육신을 잃은 조룡의 원신은 종파의 장로와 종주 곁에 있었다. 그는 약해진 상태에서도 악독한 눈빛으로 여영걸을 노려보았다.
“걱정 마십시오. 내 가만 있지 않을 테니. 그자가 정말로 온다면 죽여 버리겠습니다!”
“이천매가 막아서더라도 상관없어. 그녀가 파천종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니까!”
무극종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있었던 일을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그곳에 흐릿한 허상의 인영이 나타났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 심지어 그 허상조차 자세히 보지 못했다.
한편, 원비 역시 대련장에 선 두 사람을 번득이는 눈으로 바라보며 냉소를 흘렸다. 그는 그 신비의 수련자가 오기를 바랐다. 그자가 대체 어떤 신통력을 쓰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여연비는 문득 외로움을 느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지만 그들 중 누구에게도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지난 1백 년 동안 기다렸던 그 사람, 여태 나타나지 않은 그 사람뿐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다는 듯 몸을 틀어 노운종을 바라보았다.
“노 도우, 한 수 가르쳐주시게.”
노운종 역시 하늘을 바라보다가 눈빛을 거두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전투에서 봐주는 일은 없을 걸세.”
여연비는 슬프게 웃었지만 표정은 굳건했다. 그런 모순된 감정으로 인해 더욱 기이한 아름다움이 풍겼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원력을 휘저었다. 그러자 허공에 원력으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나타나 회전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기이한 힘이 한 줄기 내려와 녹아든 것만 같았다.
순간, 하늘의 색이 변했다. 회오리는 갑자기 크게 불어나다가 쾅 하고 그녀의 통제에서 벗어나 하늘로 솟아올랐다.
여연비는 흠칫 놀랐고 격렬하게 몸을 떨더니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노운종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몸을 바르르 떨었고 원신이 진동했다.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이 먼 하늘에서부터 돌진해오는 것만 같았다. 엄청난 압박감은 온 세상과 더불어 그의 저항 의지까지 억눌렀다.
그 익숙한 느낌에 노운종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주위의 다른 수련자들 역시 하늘에서 전해지는 압박감을 느꼈다. 이 압박감은 귀청이 떨어져나갈 것만 같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과 땅을 진동시켰다.
우주 전역의 천둥번개가 모두 몰려든 듯 하늘은 수없이 많은 은빛 뱀으로 뒤덮인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