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9
하지만 그가 움직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식을 통해 굉장히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제는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곧장 땅 아래로 내려가 토둔술로 3백 척 이상 움직였다.
땅속으로 1천 척 깊이에서 움직이면서도 그는 속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장장 97일 동안 널 기다렸다!”
늙은이의 목소리가 신식을 통해 들려왔다.
머리가 저릿해지면서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듯했다. 한제는 굳은 얼굴로 말없이 질주했다. 1천 척, 2천 척, 3천 척, 4천 척.
그렇게 줄곧 1만 척을 내달린 그는 끝도 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래로 가라앉는 사이 거대한 저항력이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전해져왔다. 한제는 그 저항력을 느끼자마자 곧장 방향을 바꾸어 비스듬히 나아갔다.
“허허, 토행주(土行舟)를 빌려놓기를 잘했구나. 안 그랬으면 땅속 깊은 곳에서 도망치는 네 놈을 쫓기가 훨씬 힘들었을 게야.”
신식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여유가 넘쳤다.
휙-
한제는 갑자기 직각으로 방향을 틀어 위로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그는 땅속 1만 척 깊이에서 1천 척 깊이로 올라왔고 곧이어 땅을 뚫고 나갔다. 그의 눈앞에는 화분맹의 산봉우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제가 막 산봉우리를 향해 내달리려던 때, 빛의 장막 하나가 거대한 산봉우리 위에 나타났다. 한제가 그 빛의 장막에 닿을 찰나, 저물대에서 일전에 받은 신분증 옥패를 꺼냈다. 그러자 조금의 저항도 없이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지면이 크게 솟아오르면서 삼각형의 검은 나무배가 땅을 뚫고 나왔다. 청색 옷의 노인이 그 배에 타고 있었다. 그는 빛의 장막 너머에 있는 한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구나! 아주 특이한 신식을 가졌어. 육신을 차지하기는 했으나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 것을 보면 남의 것을 빼앗은 모양이지? 날 따라와라. 이곳은 네게 어울리지 않아.”
한제는 그늘진 얼굴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청색 옷의 노인은 입꼬리를 실룩이며 기괴한 미소를 짓더니 오른손을 뻗었다.
쩌적.
그러자 빛의 장막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루로 변해버렸다. 그 충격에 온 산봉우리가 크게 흔들리더니 부옇게 먼지가 일어났다.
화분맹의 원영기 수련자들이 하나둘씩 놀란 얼굴로 날아올랐다.
한제는 재빨리 다시 땅속으로 침투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청색 옷의 노인이 차게 웃으며 막 그를 쫓으려던 때, 공중에서 사마종의 원영기 수련자 하나가 크게 외쳤다.
“도우, 어찌 우리의 진을 부순 것이오!”
청색 옷의 노인은 세 달쯤 전부터 이곳에 머물렀고 평소 아무런 기척도 보이지 않다가 이따금씩 뭔가를 찾는 듯 신식으로 사방을 훑었다. 그의 신식은 심지어 화분맹의 원영기 수련자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강했기에 굳이 그를 건드리지 않고 동향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화분맹의 제자 중 한 명이 방금 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그들은 뭔가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노인의 손짓 한 번에 진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상대를 내버려둔다면 화분맹의 체면은 땅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산을 지키고 있던 사마종의 원영기 수련자는 상대에게 진을 파괴한 저의를 물었다.
이는 그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 것일 뿐, 상대의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상대가 원한다면 대답을 할 것이고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떠날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상대를 추격할 수 없었다.
청색 옷의 노인은 화분맹의 수련자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꺼져라!”
그 말이 나오자마자 거대한 기운이 몰아치면서 맹렬하게 확산됐다. 사방의 공기가 이 맹렬한 기운에 파문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노인의 말은 몇 차례의 메아리를 일으키면서 수련자들의 귓가를 우렁차게 울렸다.
거대한 공기의 파문이 겨우 잠잠해졌을 때 청색 옷의 노인은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수련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기만 했다. 어떤 수련자들은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기도 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 청색 옷의 노인이 다시 돌아왔다. 그는 깊은 물처럼 착 가라앉은 얼굴로 산봉우리를 노려보다가 두 눈을 살짝 감았다. 그가 다시 두 눈을 번쩍 떴을 때, 거대한 신식이 몰아치면서 산봉우리에 있던 1만 명 이상의 수련자들을 하나하나 스쳐지나갔다.
심지어 그 신식은 땅속 1만 척 깊이도 놓치지 않았다. 노인의 미간은 갈수록 구겨졌다. 그러다 그의 몸이 번쩍하더니 하나에서 둘로 변했고 다시 번쩍하더니 둘에서 넷으로 변했다.
여덟 개의 발을 가진 신식
똑같이 생긴 네 명의 노인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신식은 끊임없이 서로 교차하며 탐색을 진행했다.
하지만 결국 수확은 없었다. 발을 살짝 구른 노인은 세 개의 분신과 함께 선무국의 동서남북 네 개의 방향으로 각각 나아가서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각자 신식의 봉쇄선을 소환해 서로에게 연결했다.
“3년이 남았다. 이 3년 동안 나 팔급마군은 선무국을 장악해 널 찾아내고 말 것이다!”
하나의 본체와 세 개의 분신은 각각 동서남북 네 개의 모서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신식은 이 동서남북의 모서리에서 서로 연결되어 선무국 안을 철통같이 봉쇄했다.
선무국을 드나드는 수련자들은 이 봉쇄선을 지날 수밖에 없었기에 팔급마군은 선무국을 장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팔급마군은 한제 때문에 무척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수마해의 남투성에서부터 시작한 추격은 화분국을 지나 선무국에 진입할 때까지 이어져 왔지만 상대는 갑자기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그의 신통력으로도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상대가 분명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보고 들쑤셔보아도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단념하지 않았다. 사주술을 다루는 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순간, 그의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했다. 사주술을 다룰 수 있게 된다면 그가 그리는 계획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었다.
사실 그는 상대를 쉽게 잡을 수 있으리라 예상했건만 상대는 번번이 미꾸라지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심지어 97일을 기다린 끝에 겨우 모습을 드러냈건만 손을 쓰려는 순간 또다시 땅속 깊이 사라져 버렸다.
다행히 그는 일전에 미리 토행주(土行舟)를 빌려둔 상태였다. 이 법보에는 고급 토둔술이 포함되어 있어 훨씬 수월하게 상대를 추격할 수 있었고 그 덕에 땅속에서 상대와의 거리는 계속 가까워졌다.
그리하여 곧 그 놈의 목덜미를 손에 쥐게 될 것이라 믿었건만 그 망할 녀석이 갑작스레 방향을 틀어 이곳으로 향했던 것이다.
화분맹 산봉우리를 보호하고 있던 진은 그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했지만 상대에게 시간을 벌어주기에는 충분했다. 그 틈에 한제는 또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따라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노인은 선무국과 화분국 배후의 4성 수련국에게 미움을 살 각오를 하고 이렇게 선무국을 봉쇄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선무국과 화분국 사람들을 한 명도 죽이지 않은 것 역시 배후에 있는 4성 수련국 때문이었다. 외부 사람인 자신이 선무국과 화분국 사람 중 하나라도 죽인다면 배후의 4성 수련국에서는 반드시 사람을 보내 자신을 처리하려 할 것이었다.
만약 이전이었다면 두려워하지도 피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지금 그는 눈앞에 놓인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 ★ ★
팔급마군이 선무국을 봉쇄한 지 2년이 지났다. 이미 선무국과 화분맹 사람들은 노인의 신식을 넘나드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또한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도 거의 모든 수련자가 알고 있었다.
문파에서는 제자들에게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는 탐색하러 나가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팔급마군은 조급해졌다. 아직 일 년이 남아 있지만 만약 늦게 돌아가게 된다면 상황이 어찌 될지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는 분노를 삭이며 반년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때까지도 녀석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4성 수련국에게 미움 받을 것을 각오하고 선무국을 폐허로 만들 각오까지 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한 달, 두 달. 그렇게 다섯 번째 달이 되자 팔급마군의 안색은 갈수록 어두워졌고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사악한 기운 역시 갈수록 짙어졌다.
한제는 꿈속 공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안색은 팔급마군보다도 훨씬 나빴다.
가진 것을 전부 이용해 상황을 살피던 그는 상관묵의 혼혈에서 약간 다른 파동을 느꼈다. 상대가 그를 계속해서 뒤쫓을 수 있었던 것은 이 혼혈 때문이었다.
꿈속 공간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다. 한제는 자신이 지금 꿈속 공간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면 다시는 나갈 수 없게 될 것임을 예감했다.
이 공간은 한 번 나가면 사흘 후에야 다시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밖에 그 추격자가 있다면 사흘 동안 안전하게 그의 추격을 피해내기란 매우 힘든 일이 될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한제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석주 안에 있는 발광체들은 점점 어두워졌고 그것들이 완전히 어두워진 순간, 한제는 몸서리를 치며 꿈속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한제가 밖으로 나온 순간, 선무국의 사방에서 버티고 있던 네 명의 팔급마군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제의 몸은 그림자 같은 빛에서 점점 실체를 갖춰갔다. 심한 현기증이 몰려들었다. 그는 두통을 참으며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상관묵의 혼혈이 튀어나왔다. 한제는 그 혼혈을 멀리 날려버림과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그 순간, 위기감이 엄습했다.
혼혈이 있는 곳을 따라 땅 위에 나타난 팔급마군은 잔혹한 웃음을 지으며 땅을 두드렸다.
쾅쾅쾅.
순간 대지가 크게 요동쳤고 노인은 토행주에 올라 땅속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곧 지면으로 올라온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상관묵의 혼혈이 터져나갔다.
“결코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노인은 잔뜩 화가 난 채 소리쳤다. 그의 신식이 순식간에 선무국을 뒤덮었고 순간 표정이 약간 변한 그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한쪽으로 질주했다.
한제는 토둔술을 펼쳐 달아나던 도중 사방에서 몰아치는 듯한 영력의 파동을 느꼈다. 그는 상대가 이미 자신을 뒤쫓아 오고 있음을 눈치 챘고 지금의 상태로는 사흘 동안밖에 도망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조용히 땅속에서 빠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네 개의 똑같은 인영이 나타나 그의 사방을 둘러쌌다.
팔급마군이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는 사이 네 개의 인영이 하나로 합쳐졌다.
“네 놈을 거의 3년이나 기다렸다.”
한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팔급마군을 힐긋 노려보기만 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름이 무엇이냐?”
팔급마군의 질문에 한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마량이다.”
노인의 수준은 고요한 바다처럼 감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좋아, 마량. 하나만 묻겠다. 사주술을 다룰 줄 아느냐?”
팔급마군이 번득이는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의 두 눈에는 살기가 넘쳤다. 만약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는 단번에 상대를 죽여 버린 뒤 남투성으로 돌아가 자신을 속였던 이들을 모조리 학살할 것이었다.
한제는 이러한 살기를 읽고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팔급마군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말없이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30척 길이의 푸른색 얼룩무늬 뱀이 노인의 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보랏빛이 도는 검은색 눈으로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이 뱀에게 사주술을 써보아라!”
팔급마군은 들고 있던 뱀을 바닥에 내던지며 냉담하게 말했다.
쩌억-
바닥에 떨어진 뒤 똬리를 틀어 고개를 든 뱀은 비린내가 풍기는 커다란 입을 벌렸다. 한제는 고개를 숙인 채 눈으로 붉은색 번개를 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죽어라!”
그 순간, 한제는 맹렬히 뒤쪽으로 물러났다. 사실 그의 목표는 뱀이 아니라 노인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번에 쏘아낸 극의 신식에는 거의 극한에 달한 위력이 실려 있었다.
동시에 팔급마군은 신식에 커다란 충격이 가해졌음을 느꼈다. 한 줄기 붉은 번개가 그의 신식의 바다를 강타했다. 그의 신식의 바다는 이미 바닷물이 다 말라 있어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문어만 남아 있었다.
바닥에 가만히 엎드려 있던 문어는 갑자기 주둥이를 벌렸고 그러자 엄청난 흡입력이 생겨나면서 붉은 번개가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