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91
조룡의 체내에서 일어난 화염이 수준을 증폭시켜 쇄열기 초기에서 중기까지 올라갔다. 멀리서 보면 그는 길이만 약 1백 척 정도 되는 유성처럼 보였다. 이 유성은 이글이글 타오르며 한제에게로 돌진했다.
“날 죽이려거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조룡의 생애 마지막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 우렁찬 소리에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의 심신이 진동했다.
원신의 자폭으로 발산하는 힘은 파멸적이다. 제아무리 강력한 수련자라고 해도 그런 힘 앞에서는 무의식적으로 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제는 피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무극종 장로로서 이번 시합을 책임져야 하는 자신의 눈앞에서 선음문 종주를 죽이더니 이제 7급 성역 종파의 장로까지 죽이려 하는 한제를 바라보며 풍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파천종을 등에 업은 이천매와 한제는 입장이 달랐던 것이다. 더구나 풍해는 심만종 출신이었다. 그렇기에 마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 도우, 내 체면을 봐서라도 심만종 사람만은 건드리지 말아주게나!”
음침하고 서늘한 기운을 품은 풍해의 목소리가 한제에게로 전해졌다.
그때, 조룡의 타오르는 원신이 한제의 코앞으로 달려들었다.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으나, 체내에서는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살기(煞氣)가 폭발했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발산된 살기가 폭발한 순간, 풍해는 저도 모르게 우뚝 멈춰 섰다. 한 걸음이라도 더 나섰다가는 자신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가 움직였다.
한제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조룡의 원신을 오른발로 걷어찼다.
백발과 백의가 바람에 흩날렸다. 신통력을 발휘하지도 피하지도 막아서지도 않은 채, 가장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이고 그런 만큼 인상적인 방식으로 반격한 것이다.
쾅! 쾅!
하늘과 땅을 뒤흔들 법한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동시에 유성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 점점이 빛으로 흩어졌다.
무극종을 뒤집다 (4)
발을 거둔 한제는 매우 평온한 얼굴로 주위를 한 번 훑어보다가 마지막으로 풍해를 바라보았다.
“도우, 자네의 말은 너무 늦었네.”
풍해는 어두워진 얼굴로 한제를 응시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있던 수련자들 사이에서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그들의 마음속에 저 여자호라는 수련자가 깊게 각인됐다.
몸을 돌린 한제는 사방의 수련자들을 바라보며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원종을 대표하여 6, 7급 성역의 모든 분종에게 도전한다. 누가 먼저 나서겠느냐!”
한제의 목소리가 사방을 휩쓸었다. 그러자 수련자들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노운종은 미묘한 얼굴로 원비를 바라보며 웃었다. 어딘가 비웃는 듯한 그 미소에 원비는 이를 갈았지만 한제를 힐끔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끝끝내 앞으로 나설 엄두는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적막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7급 청운도(靑雲道) 운삼, 여 도우와 한번 겨루고 싶군.”
7급 청운종은 지난번 시합에서 7급 성역 분종 중 3등을 차지한 곳이다. 청운종의 신통력은 변화가 막측했고 종파의 규모도 상당해 소속 제자만 7천여 명에 달했으며, 수준 높은 수련자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배출한 고수들은 무극종에 선발되기도 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도포를 입은 한 중년 남자였다. 피부는 약간 누르스름해 꼭 병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서쪽 관중석에서 훌쩍 날아올라 보이지 않는 구름을 밟은 듯 유유히 대련장으로 내려왔다.
사내는 7급 성역 안에서 매우 유명한 운삼이라는 자였다. 평소에는 폐관수련에만 집중하는 그는 쇄열기 후기 수련자로 시합 무렵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무극종 내의 시합 이후 8급 성역끼리의 시합에 참여하게 될 세 사람 중 하나로 내정되어 있다는 소문이 도는 자였다.
지난 수천 년간 무극종으로부터 대량의 단약과 법보, 심지어는 신통술까지 지원받아왔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무극종의 7대 장로 중 한 명에게 1천년 동안 직접 도를 전수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무극종에서 8급 성역 종파 간 시합에서의 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집약시켜 배양해낸 고수인 셈이다.
그런 그가 나서자 사방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운삼은 덤덤한 얼굴로 포권을 했다.
“여 도우, 한 수 가르쳐 주시게!”
그의 두 눈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몸에서는 쇄열기 후기 수준의 힘이 발산되었다. 이 힘이 그를 중심으로 강력한 회오리를 형성해 사방으로 펴져 나가더니, 아홉 마리의 붉은 호랑이가 허상으로 나타나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호혼구전(虎魂九轉)!”
이 신통력을 알아본 이들이 경악했다.
한편, 풍해는 어두운 얼굴로 한제를 노려보고 있었다. 원한이 컸지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에게 덤빌 수는 없었기에 상대의 실력을 좀 더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무극종 장로들은 운삼을 동료 대하듯 보고 있었다. 그들은 운삼이 시합을 위해 내정한 세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다면 벌써 무극종의 장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극종 종주의 눈에도 감탄의 빛이 어렸다. 그는 운삼이 무극종의 강대함을 내보이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8급 성역 종파 간의 시합에서 무극종은 언제나 하위권에 머물렀기에 이번만큼은 상위권으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운삼이 결인을 그린 두 손을 앞으로 뻗은 순간, 아홉 마리 붉은 호랑이의 혼으로 형성된 회오리에서 웅장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각각이 1천 척에 달하는 아홉 마리 호랑이가 튀어나와 서로 다른 방향에서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호랑이들이 나타나자 세상이 붉게 물든 것만 같았다.
허나 한제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는 부상이 악화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압도적인 실력을 내보일 작정이었다.
아홉 마리 호랑이가 포효하며 달려든 순간, 한제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그 사이 경지에 변화를 일으키면서 사방에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왜곡을 일으켰다.
동시에 오른손을 휘둘러 남색 화염을 일으켰다. 이 화염은 그의 몸을 휘감으면서 회오리를 형성했다.
“하앗!”
한제의 낮은 기합에 따라 그의 몸을 두른 화염 회오리는 거꾸로 회전하면서 사방으로 퍼져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아홉 마리 호랑이와 충돌했다.
콰쾅!
웅대한 소리와 함께 온 세상으로 파문이 퍼져나갔다. 그 순간, 남색 화염에 휘감긴 아홉 마리 호랑이 중 세 마리가 무너져 내렸다.
그때, 한제가 화염 안에서 튀어나와 곧장 운삼을 향해 돌진하며 오른손을 들어 올려 하늘을 가리켰다.
“온 세상의 불이여!”
그 순간, 십만 명에 달하는 수련자들 중 불 속성 신통력을 가진 수련자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체내에서 불 속성 원력이 통제를 벗어나 빠져나가려 했기 때문이다.
불 속성 신통력을 익힌 무극종의 백발 장로 역시 표정이 급변했다. 그는 가부좌를 튼 채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다급하게 가슴팍을 몇 번 두드린 후에야 체내의 원력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런 강력한 수련자를 제외한 나머지 수련자들의 체내에서는 화염이 일어나 하늘을 뒤덮을 듯 솟구치더니 한제의 오른손에 응집되었다.
그렇게 모여든 화염이 응집되더니 한제의 오른손 위로 거대한 화염구(火焰球)가 생겨났다. 이 화염구는 그대로 그의 손으로 녹아들었다.
운삼은 굳은 얼굴로 곧장 물러나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저물공간에서 법보를 꺼내려 한 것이다.
하지만 한제는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 했다. 쇄열기 수련자가 막강한 법보를 쥔다면 전투를 빨리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한제는 왼손을 들어 올려 운삼을 가리키며 속으로 외쳤다.
‘정(定)!’
그 순간, 운삼의 몸이 우뚝 멈췄다. 한제는 그 틈에 불바다가 되어 달려들더니 화염구가 녹아든 오른손의 손가락 두 개로 상대의 가슴팍을 세 번 두드렸다.
쾅! 쾅! 쾅!
한제의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운삼은 격렬하게 경련했고 이내 피를 토해내며 무기력하게 한참을 뒤로 밀려났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오른손으로 허공을 꽉 움켜쥐었다. 그 손짓에 사방은 무궁무진한 불바다로 뒤덮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화염이 운삼을 향해 달려들어 맹렬하게 충돌했다.
펑!
순식간에 운삼의 몸은 피 안개로 터져버렸다. 하지만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고 체내에서 흘러나온 유백색 빛 한 줄기가 화염의 힘에 맞섰다.
운삼의 얼굴에는 핏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1만 척 크기의 대련장에 착지한 순간, 그의 발이 닿은 부분에서 쩌적 소리와 함께 수많은 균열이 생겨났고 심지어 폭발하기까지 했다.
다시 한번 뒤쪽으로 물러난 그는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고 나서야 겨우 몸을 멈출 수 있었다.
“우웩!”
운삼의 입에서 울컥 솟아오른 피가 바닥을 적셨다.
“살려줘서 고맙네!”
운삼은 차분히 한제에 포권을 하더니 몸을 돌려 대련장을 떠났다.
적막 한가운데 선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다. 방금 전투는 그에게 별 것 아닌 일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공격으로 그가 치른 대가도 작지 않았다. 전력을 다하느라 부상이 더 커진 것이다.
다행이라면 이 사실을 알아차린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관중석의 수련자들은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나 경외심이 어린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무극종 장로들도 놀란 모습이다. 한제가 선음문과 심만종을 상대했을 때도 놀라긴 했지만 그 정도는 자신들도 해낼 수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운삼의 수준은 자신들과 거의 비슷했다. 그런 운삼이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패하다니… 자신들 역시 저 여자호에게 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불 속성 신통력을 가진 장로는 한제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는 상대가 원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체내에서 화염을 뽑아내 마음대로 쓸 수도 있음을 직감했다. 오랜 수련자 생활에서도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한제는 덤덤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은 누구냐!”
“7급 자송곡(紫松谷) 도림, 여 도우와 싸우고 싶네!”
“7급 천음종(天陰宗) 윤모, 한 수 가르쳐주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