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92
한 사내와 한 여인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뒤이어 대련장 동쪽과 남쪽에서 각각 한 줄기 빛이 날아들었다.
이들은 자신 외에 또 다른 지원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는 듯 서로를 보고는 멈칫했다.
그때, 한제가 광오한 목소리로 낮게 외쳤다.
“한꺼번에 와라!”
뒤이어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대련장 위의 허공을 꾹 눌렀다.
그러자 수련성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대련장이, 심지어 수련성 자체가 바르르 진동하기 시작했다.
고래(古來)의 기운이 그의 오른손에 의해 수련성에서 뽑혀 나오는 듯했다. 한제의 몸도 그 기운 아래 약간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수련성의 혼으로부터 힘을 뽑아내고 있어!”
어떤 수련자가 놀란 듯 외쳤다. 깊은 충격이 어린 목소리였다.
대련장 주위의 수련자는 한제가 대지를 향해 뻗은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을 때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허나 이는 그저 느낌일 뿐, 흔들리는 것은 대지가 아니라 그들의 심신이었다.
심신이 그대로 뽑혀 나오더니 두 다리를 타고 대지로 녹아들어 한제에게로 빨려 들어가면서 눈앞이 흐릿해졌다.
순식간에 세상이 거칠고 서늘한 기운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영겁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그 기운에 질식할 듯했다.
모든 것은 환각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실제처럼 느껴졌다.
한제의 오른손에서 만들어진,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소용돌이가 세상의 기운과 수련성의 혼, 모든 수련자들의 심신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여기에는 어떤 저항도 소용이 없었다.
뒤이어 수련성의 혼이 그대로 뽑혀 나왔다. 그야말로 하늘을 흔들고 땅을 뒤집을 기세였다.
“저… 정말로… 수련성의 혼을 빼내고 있어…”
이 신통력과 상황을 파악한 7급 성역의 강자 몇 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수련성에도 혼이 있다는 말은 들은 들었지만 그 혼을 뽑아낼 정도라면 천도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라는 거지?”
“저 술법은 풍의 선계와 함께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대건,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수련성 전체를 움켜쥔 듯한 오른손을 맹렬히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대지가 울렸다. 허나 귀로는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심신으로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수련성은 진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수련성이 깨어나고 있는 것만 같았고 그렇게 소생한 순간 수만 년간 응집해온 혼을 그대로 빼앗기기 시작했다.
세상 만물에는 혼이 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어느 것 하나 혼을 가지지 않은 것은 없다.
수련성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수련성의 혼은 수만 년 동안 느릿하게 자라나면서 높은 영성을 가지게 되고 거칠고 오래된 기운을 품으면서 천도의 변화에 부합해간다.
그런 수련성의 혼을 뽑아낸다는 것은 어지간한 수련자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경지였다.
허나 지금 한제의 눈에 이곳은 수련성이 아니라 하나의 영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그가 뽑아낸 것은 어느 영의 혼이나 마찬가지였다.
줄기줄기 유백색의 안개 같은 기운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한제의 오른손 위로 응집되었다.
그 순간, 주위의 수련자들은 이 수련성의 초목이 순식간에 말라버리더니 결국 재가 되어 흩어지는 환각을 보게 됐다.
동시에 수련성의 모든 산맥 또한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영기는 전부 뽑혀 사라졌고 맑았던 강줄기는 탁해지다가 결국 완전히 말라 쩍쩍 갈라진 바닥을 드러냈다.
심지어 수련성 전체 면적의 2할을 차지한 서쪽의 바다는 하늘을 뒤덮을 법한 파도를 일으켰다.
우렁찬 파도 소리가 세차게 울려 퍼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오래되고 거친 세월의 기운이 응집되어 수련성의 혼을 격렬하게 뒤흔들었고 이에 수련성의 혼이 유백색 안개가 되어 대지와 대련장을 훑다가 돌연 폭발했다는 것이었다.
한제가 원하기만 한다면 수련성의 혼은 완전히 뽑혀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 수련성은 영기를 잃고 폐허가 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수련성이 그대로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무극종을 뒤집다 (5)
무극종 사람들은 충격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풍해 역시 두려운 얼굴로 찬 숨을 켰다. 허나 그는 곧 냉소했다. 그는 저 백발의 수련자가 머지않아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 여겼다.
사실 심만종에서 무극종으로 들어온 수련자는 풍해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보다 선배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선배는 바로 심만종의 첫 번째 종주이자 지금은 무극종의 태상장로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평소 세상일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조룡을 죽이고 심만종을 몰아붙인 저자에게는 큰 불쾌함을 느낄 터였다.
한편, 한제에게 도전하겠다고 나선 도림과 윤모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손을 들어 올렸다.
하얀 연기가 얇은 선처럼 줄기줄기 그의 오른손을 맴돌며 주먹만 한 하얀 공을 형성했다. 이 빛의 공 안에는 오래된 기운이 어려 있었다.
세상을 순식간에 무(無)로 돌리고 수련자들을 재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은 기운이었다.
한제 생에 세 번째, 엄밀히 따지자면 첫 번째로 뽑아낸 수련성의 혼이었다.
산마에게 몸을 빌려주면서 나천성역 전쟁에서 수련성의 혼을 뽑아낸 것이 첫 번째였고 주작성을 개조하기 위해 뽑아낸 것이 두 번째였다.
허나 첫 번째는 자신이 아닌 산마가 뽑아낸 것이었고 두 번째는 숙련되지 않은 상태라 얄팍한 깨달음만 얻었을 뿐이었다.
허나 지금, 경지와 수준이 높아지고 규칙의 반점을 갖게 된 그는 아주 완벽하게 수련성의 혼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사실상 자신의 힘만으로 온전히 뽑아낸 것은 처음이었다.
수련성의 혼이 깃든 공을 든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손을 휘둘렀다.
빛의 공은 도림과 윤모를 향해 돌진했다.
겨우 주먹만 한 데다가 빠르지도 않은 빛의 공이 다가오는데도 두 사람은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도망칠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발아래에서 수련성이 살아나 자신을 향해 공격을 퍼붓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콰쾅!
빛의 공은 두 사람으로부터 수십 척 떨어진 곳에서 폭발했고 그 순간 대지가 우렁차게 진동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대지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동에 따라 강력한 힘이 마구 튀어나와 사방에서 도림과 윤모를 공격했다.
수련성 서쪽의 바다가 끓어올라 한 덩이 수증기가 되더니 강한 기세로 흩어졌다.
뒤이어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콩알만 한 빗줄기가 수련성 전체에 쏟아졌고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쿨럭!”
도림과 윤모는 뒤로 밀려나면서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육신은 무너져 내리기 직전이었다. 만약 한제가 마음만 먹었다면 그들은 벌써 숨을 거두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들이 토해낸 피는 안개가 되어 빗속에서 흩어졌다.
“…”
“…”
고요했다. 대지를 때리는 빗소리와 간헐적으로 내리치는 천둥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없었다.
이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은 빗속에서 우뚝 선 백발 사내에게 쏠려 있었다. 빗방울은 그의 반경 10척 안으로는 한 방울도 들어서지 못했다.
“수련성의 혼을 뽑아낸 신통력의 힘인가…!”
단약이나 흉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에 운해성역의 수련자들 수준은 나머지 세 개 성역 수련자들에 미치지 못했다.
또한 풍의 선계에 들어가지 못함으로 인해 선술과 신통술을 전수받지 못한 탓에 신통력에 대한 깨달음도 다른 성역 수련자들보다 한참 뒤떨어졌다.
그러니 다른 성역에서도 최상급 신통술에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자비를 베풀어 주어 정말 고맙네!”
창백한 얼굴로 도림은 포권을 하더니 재빨리 대련장에서 내려갔다.
7급 자송곡의 대제자인 그는 수천 년간 주종이 전력을 기울여 키워온 존재로 각종 단약과 공법을 끊임없이 지원받았다.
심지어 엄청난 수련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기에 스스로 정점에 서 있다고 생각해왔다.
한데 오늘, 그는 전력을 다하지도 않은 상대의 공격 한 번에 패배하고 말았다.
이에 그는 씁쓸한 심정으로 일행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가 아무 말도 없이 얌전히 앉았다.
윤모 역시 이를 악문 채 한제에게 포권을 하고는 대련장을 떠나갔다. 그녀의 모습 또한 퍽 쓸쓸해 보였다.
모은미는 이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한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겨우 백여 년 사이에 이 정도로 강해졌을 줄이야!’
매우 낯선 한제의 모습에 그녀는 어째서인지 더욱 짙은 슬픔과 괴로움을 느꼈다.
그는 한제의 과거 모습을 오랫동안 봐왔다.
가족을 잃고 쫓기던 어린 수련자가 깊은 복수심과 원한을 품은 채 살육을 자행해 피로 이루어진 강을 흐르게 했던 것도 점점 두각을 드러내다가 우의 선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새로운 주작이 된 모습도.
한데 이제 그는 발을 한 번 구르는 것만으로도 온 우주를 진동시킬 강자가 되어 있었다.
한편, 이비선은 찬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저 신통술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스승이 수련성의 혼을 뽑아내는 것을 직접 본 적도 있다.
스승은 그때 ‘운해성역에서 이 술법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세 명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이 술법은 세 번째 단계의 신통력이었다.
스승은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 사이에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다는 말도 해준 바 있다.
전설에 따르면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가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면 배울 수 있는 네 가지의 엄청난 신통술이 있다.
그중 두 개가 축지성촌과 수련성의 혼을 빼내는 추취성혼(抽取星魂)이었다.
이런 신통술은 훈련이 아닌 깨달음을 통해서만 깨우칠 수 있으나, 그런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